106. 언제 시간 되세요?
[연예이슈] tnV ‘식사남녀-시즌2’ 마지막 회 15.8% 유종의 미 거둬
이제야 비로소 드라마 ‘식사남녀’가 끝났다.
유수한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물론 영화 촬영이 남아 있었고 지난 밤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사생팬에 대한 마무리도 남아 있었다.
“어제 그러고 잠은 좀 잤냐?”
이른 아침.
김민수는 졸린 눈으로 차를 끌고 왔다. 퇴근하는 길에 다시 유수한 집에 돌아가야 했던 김민수는 최지영 때문에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아예 못 자지는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하품을 늘어지게 한다.
유수한은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설마 살면서 집 앞에 누가 찾아오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아마 김대한이었다면 그런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뭐, 빚쟁이 정도나 찾아오겠지.
“근데 진짜 보통 아니더라고요. 이번이 처음도 아니어서 가중 처벌 될 것 같아요. 저번에 걸렸을 때는 훈방 조치로 끝난 모양이더라고요.”
아직도 한국은 스토커에 대한 처분이 약했다.
유수한은 당분간 본가에 살면서 이사 갈 집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회사와 가까운 거리, 그리고 헬스장과 가까운 거리였으면 했다.
“이사 가실 거죠?”
“응, 영화 끝나고 찾아보려고.”
“잘 생각하셨어요.”
리얼리티 예능을 나오다 보면 사생활이 노출된다.
이사하는 일이 귀찮지만, 이미 위험성을 감지했으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사를 하는 수밖에.
“안녕하세요.”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촬영은 절반가량 진행되었다. 이제 한 달 정도만 고생하면 촬영을 마무리 짓고 휴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유수한은 현장에 도착해 크게 한 바퀴 돌며 미리 도착해 촬영 세팅 중인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현장은 어수선했다.
고운영 감독은 촬영 감독과 함께 스토리보드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유수한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목 인사를 건넸다.
“수한 씨는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네, 아무래도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게 좋아서요.”
배우가 되면서 생긴 루틴이었다.
주연 배우였지만,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나와서 현장 분위기를 살피고 대본을 읽으며 촬영을 준비했다.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생각했던 연기가 달라질 때도 있었다.
글로만 읽었을 때 생각했던 분위기와 직접 현장을 보았을 때 분위기가 달라, 연기 톤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30분이라도 일찍 나와 현장 분위기를 느끼며 촬영을 준비하는 편이었다.
“참 성실하네요.”
당연히 현장에서 유수한에 대한 평가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위치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존중한다. 배우로 자리 잡고 부와 명예를 얻어도 가장 중요한 건 자만하지 않는 일이었다.
유수한은 의자에 앉아 시나리오를 읽었다.
오늘 촬영할 분량을 읽다 보면 하나둘 배우들이 모인다. 유수한은 대본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모여든 사람들을 가만 쳐다보았다.
“10분 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FD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고 걸음을 옮긴다. 배우들 사이에 선 유수한은 가볍게 리허설을 시작했다.
* * *
[연예뉴스] 유수한 ‧ 정동인 ‘내 심장을 향해 쏴라’ 크랭크업
영화 촬영이 끝났다.
유수한은 요즘 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사 가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게 느껴졌는데, 막상 집을 찾아보니 느낌이 달랐다.
처음 유수한이 되었을 때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김대한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항상 단칸방에 살았던 김대한이었기에 뭐든 다 좋아 보였다.
“이 집은 어떠세요?”
기존에 살던 집은 내놓았다.
여기저기 집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그 과정이 즐거웠다. 처음에는 예전에 살던 집처럼 아파트를 둘러보았고 요즘 유행한다는 땅콩집도 찾아보았다.
땅콩집은 참 신기했다. 3층 구조에 옥상까지 있어서 여러모로 활용도가 좋을 듯했다.
여러 집들 중 마음에 드는 집도 있었지만, 아직 딱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집을 찾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우선 회사나 헬스장과 가까운 지역을 찾고 싶었는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한적한 동네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도 느껴졌다.
“좋긴 한데,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여태 본 집은 다 좋았다.
신축이었고 남향집이었다. 위치도 좋았다. 회사와 헬스장 모두 가까이 있으며 역세권이라, 나중에 팔 때도 비싸게 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혹시 주택은 어떠세요?”
“주택이요?”
“네, 청담동 쪽에 괜찮은 집 나왔는데 관심 있으시면 보러 가실래요?”
그러고 보니, 주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수한이 되면서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이사할 집도 아파트 중심으로 보고 있었다.
사실 지금 둘러보고 있는 땅콩집도 충분히 마음에 든다.
층마다 콘셉트를 달리해서 살면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딱 들진 않았다.
“그럼 지금 보러 가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주택도 둘러보는 게 좋을 듯했다.
“사실 신축은 아니에요. 근데 리모델링해서 깨끗해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생각한 건 한적한 동네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점이었다.
차에서 내린 유수한은 집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담벼락 위로 곧게 자란 나무가 보인다. 마당이 제법 넓었고 내부를 보지 않아도 느낌이 좋았다.
“어떠세요?”
유수한은 말없이 거실을 둘러보았다.
높은 층고에 햇빛이 잘 들어온다. 지어진 지 오래된 집이었지만, 현대식 리모델링 덕분에 깔끔했다.
유수한은 집을 둘러보며 가구 배치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한 번도 집을 구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기존 유수한의 취향대로 살았는데, 이제야 비로소 자신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었다.
“좋네요.”
무엇보다 거실 통창이 가장 좋았다.
넓은 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넓은 마당이 좋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아파트보다는 본가가 더 좋았다. 유수한의 본가는 2층 주택이었고 동네 분위기도 한적한 편이었다.
“여기 풀 옵션이에요. 집주인이 리모델링해서 계속 살 생각이셨는데, 회사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해서 급하게 내놓은 집이에요.”
공인중개사의 설명을 들으며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쓰던 물건이라 꺼리실 수도 있는데, 구입하신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네.”
“만약 괜찮으시면 텔레비전만 따로 사시면 될 정도로 괜찮은 집이에요.”
그 말대로 괜찮다.
방은 3개로 적당하고 부엌도 역시 넓게 잘 빠졌다. 유수한은 아일랜드 식탁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며 짧게 생각에 잠겼다.
그냥 망상이었다.
이런 집에서 결혼해서 애 하나 낳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 사실상 유수한은 한 번도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기에, 말 그대로 망상이나 다름없었다.
“계약하죠.”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망상이든 아니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집은 사는 게 옳다.
* * *
집에 돌아온 유수한은 노트북을 켰다.
이사 준비는 뒤로하고 바로 메일에 들어갔다. 한동안 소식이 없었던 낫플릭스 ‘EXIT’의 새 시놉시스가 도착했다.
유수한은 말없이 시놉시스를 읽어 보았다.
[전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터졌다!]
처음 보았던 시놉시스와 비교해서 첫 문장부터 달라졌다. 미팅 때 오한성 작가가 했던 이야기와도 다른 내용이었다.
[미국은 교도소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은 만리장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일본은 사창가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은?]
유수한은 차분하게 시놉시스를 읽었다,
[한국은 군대였다!]
주인공은 직업이 군인이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하사 이은결. 이은결은 냉정할 것 같은 군인 이미지와 달리 소탈하면서도 웃음이 많은 남자였다. 물론 일할 때는 차분해지고 냉정한 면모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갑자기 터진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는 전세계를 공황 상태로 빠뜨린다.]
새로운 시놉시스는 좀비 바이러스의 근원지를 설정하지 않았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정보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설정이었다.
[미디어에서 흔히 보던 좀비와는 다르다! 이게 바로 K-좀비!]
유수한은 흥미로운 눈으로 시놉시스를 계속 읽었다.
[K-좀비는 빠르다!]
모 작품에서 다룬 K-좀비는 다른 좀비와 다르게 걷지 않고 뛰었다. 그 생각을 하면 그리 흥미로운 설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를 쓸 줄 안다!]
이건 좀 다르다.
좀비는 보통 생각이라는 걸 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물론 감정을 가진 좀비를 다룬 영화도 있긴 하지만, 여러 가지를 접목한 좀비라면 특별한 느낌이 나기는 한다.
[총을 쏠 줄 알고 위급할 때 몸도 숨길 줄 안다.]
유수한은 군대라는 장소를 떠올렸다.
그 어느 곳보다 위험한 물건이 많은 곳이었다. 총기류는 물론 수류탄, 어느 부대는 기갑차나 전투기도 있다. 그렇기에 살상이 쉽게 일어날 수도 있는 장소였다.
[K-좀비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많이 잡아먹기 위해 태어났다.]
한국인은 어느 민족보다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굼뜬 걸 싫어한다. 그 특징으로 좀비 역시도 빠른 움직임이 특징이었다. 실제 그런 좀비물이 나왔고 우스갯소리로 K-좀비라고 불렸다.
그 특징을 그대로 이어 간 것도 모자라 무기까지 사용할 줄 안다. 머리를 제대로 가격해야 죽는 좀비 특성상 무기를 사용할 줄 아는 좀비는 거의 사기급이었다.
“음, 제대로 피 튀기겠네.”
유수한은 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이은결(28세) 태권도 선수 출신 군인. 허허실실 잘 웃지만, 위험한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냉정해지는 남자. 갑자기 군부대 내에 터진 바이러스 때문에 혼란에 처한 그 순간, 이은결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빠르게 감염자를 사살하지만, 도리어 위험에 빠지는 건 이은결이다.]
진지한 눈으로 ‘이은결’ 역할 소개를 읽었다.
[“뭐라고? 내가 살인자라고?”]
이은결은 한순간에 살인자로 몰린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은결은 감염자를 사살했다. 감염자는 이미 옆에 서 있던 군인을 물어 죽였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장을 파먹었다.
그 모습에 이은결은 고민 끝에 그를 죽였으나, 돌아온 건 수갑이었다. 군 내에서는 이 사건을 쉬쉬했고 조금씩 좀비 바이러스는 부대에 퍼지게 된다.
[영창에 갇힌 이은결은 생각한다. 이미 살인자로 몰린 이상 달아날 구멍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을 파먹던 그 군인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고뇌에 빠지던 그 순간.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은결은 생존을 위한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순식간에 부대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 목덜미를 물린 채 달아나 버린 탈영병까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이은결은 냉정함을 되찾고 무기고에서 전투를 준비한다.
“훨씬 나아졌네.”
낫플릭스 ‘EXIT’는 총 8부작이었다.
더 늘리지 않고 8부작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길게 끌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좀비물인 만큼 스펙터클한 액션이 중요했고 질질 끌면 오히려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유수한은 마저 시놉시스를 읽었다.
선역이 있으면 당연히 빌런도 있기 마련이었다. 생각보다 빌런의 숫자가 많다. 고구마를 뿌리고 사이다를 적절히 줄 생각인 듯했다.
“정확한 건 대본을 확인해야 알 것 같은데.”
시놉시스를 다 읽은 유수한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좀비물은 한 번쯤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외국에서야 흔한 장르지만, 한국에서는 몇 작품 없었다. 이걸 놓치면 언제 좀비물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더 구미가 당기는 건 ‘낫플릭스’ 제작이라는 점이었다. 낫플릭스에게 한국은 귀한 존재였다. 가성비 넘치는 제작비로 최고의 효율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낫플릭스가 제작한 한국 콘텐츠는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도 전세계적으로. 그러니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낫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해서 득 본 배우도 많다. 그렇기에 유수한 역시도 낫플릭스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유수한은 핸드폰을 들었다.
“네, 감독님. 저 유수한입니다.”
이번에는 아예 다이렉트로 김승찬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 시간 되세요? 네, 대본이 궁금해서요.”
뭐든, 일은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