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02화 (102/175)

102. 종간나 새끼

이경민은 최근 서포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팬사이트에서 입금폼을 열고 진행했겠지만, 유수한이 서포트를 싫어하기 때문에 몰래 진행 중이었다.

‘빛나는 유수한’ 팬사이트에는 가끔 트래픽 초과가 있거나 심하게 어그로가 끌리는 상황에 대피하는 장소가 있었다.

일명 ‘빛유 대피소’였는데, 팬 인증을 따로 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사이트였다. 서포트 진행도 대피소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을 설명해 보자면.

[빛유/자유] 배우님이 영화 촬영을 시작했네요? 지금 바로 ㄱㄱ +154

이렇게 마치 일반 글인 것처럼 글을 쓰면 알아서 눈치를 채고 대피소로 몰려온다.

제목에 대피소라는 말만 없을 뿐 모든 정보가 들어 있었다. 유수한이 영화 촬영을 시작했고 서포트가 필요하니, 대피소로 지금 당장 와 달라는 뜻이었다.

물론 가끔 이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었다.

- 이게 무슨 말임? 어디로 가라는 거야?

└ ㄷㅍㅅ 오라는 뜻이야

└└ 그게 뭔데?

└└└ 빛유 파랑새 들어가 봐

└└└└ 파랑새 가봤는데 모르겠어

└└└└└ 아, 뉴비면 닥눈삼 좀 하자;;;

그럴 때는 다 알려 주지는 않는다.

유수한이 몰라야 하는 게 포인트였기 때문에 제대로 알려 줄 수 없었다. 현재 ‘빛나는 유수한’ 파랑새는 공식 계정도 있지만 비밀 계정도 따로 있었다.

이 역시도 따로 ‘빛나는 유수한’ 팬사이트 회원 인증 및 팬 인증이 필요했다.

팬 인증 같은 경우는 팬미팅 티켓이라든가, 팬사이트 6개월 이상 활동 내역이라든가, 유수한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제품의 팸플릿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서포트불판] 1차 회의 +658

참 오랜만에 진행하는 서포트였다.

커피차 한번 보냈다가 귀 아프도록 잔소리를 들었다. 받은 만큼 그만큼 배로 돌려주려고 하는 사람이라, 뭘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 영화는 참을 수 없지 ㅋ

└ 2222 ㅇㅈ 영화는 못 참지

└└ 33333 첫 영화 못 참지 ㅇㅇ

└└└ 4444 못 참지? 안 참지~

└└└└ 555555

‘빛나는 유수한’ 팬사이트가 생기고 난 후에 처음 있는 영화 스케줄이었다.

물론 ‘식사남녀’ 촬영 때에도 계속 서포트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영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보내서 우리 배우 기 살릴 생각밖에 없었다.

- 그럼 지금 정해진 게 커피차에다가 분식차까지 맞지?

└ ㅇㅇ 거기까지 확정

└└ 커피차+분식차 깔끔

- 우리 총알 얼마나 여유 있어?

└ 커피차, 분식차는 충분히 진행할 수 있음!

└└ 추가 총알 받는 건 다른 선물 때문에 그렇지?

└└└ ㅇㅇ 맞음

- 나 추가 총알 보냈다

└ 22 나도 추가 총알 보냄~

└└ 33 운영진 모자라면 말해달라 대기 중이다

└└└ 44444 입 열어 총알 들어간다

유수한 팬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두 차례 있었던 병크는 팬덤이 와해될 뻔한 위기였으나, 잘 해결하며 오히려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배우 자체가 쉬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팬덤이 굳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떡밥이 줄줄 흐르는 상황, 다른 팬덤이 부럽지 않을 지경이었다.

- 하악, 벌써 설렌다 울 배우님, 이번 서폿 받고 얼마나 좋아할까?

└ 나 잔소리 기대되면 변태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긴 게 나도 잔소리 좀 기대됨 ㅎ

└└└ 그걸로 변태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변태임 ㅋ

└└└└ ㅇㅈ 우리 모두 변태지, 뭐. ㅋㅋㅋ

요즘 팬들은 이상한 취향이 생겼다.

유수한에게 몰래 서포트를 진행한다. 대놓고 커피차를 보낸 지는 오래되었지만, 작품이 하나 끝나면 꼭 종방연에 찾아가 선물을 주곤 했었다.

그때마다 유수한은 잔소리를 한다.

거기에는 돈 쓰지 말라는 말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경민을 포함한 팬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유수한 팬덤은 제법 나이가 있었다.

20대가 주였지만, 30대도 적지 않았으며 간혹 40대도 있었다. 미성년자는 오히려 보기 힘들었다.

직업도 학생, 대학생보다 회사원 비중이 월등했다.

학생 때야 돈이 풍족하지 않다지만, 회사원은 나름 자유도가 있다. 사회 초년생이라고 해도 월급을 받는 입장이니, 덕질에 돈 쓸 여유가 있었다.

유수한은 팬이 돈 쓰는 걸 싫어한다.

그렇기에 매번 잔소리를 하는데, 이제는 듣는 팬들도 마음을 내려놓았다. 차라리 돈 쓰라고 눈치 주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어떤 아이돌은 갖고 싶은 선물이 생기면 은근슬쩍 SNS에 관련 사진을 올려 사 달라는 걸 에둘러 표현한다.

그런 꼴을 보며 덕질했던 사람들이 많은 터라, 유수한의 잔소리가 그저 애정으로 들렸다.

- 자, 그럼 대충 정리된 것 같은데 일단 소속사와 대화해서 일정을 조율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정 나오면 현장 함께하고 싶은 분들 메일 보내주시고요. 예전처럼 추첨 통해서 뽑는 걸로 하겠습니다! 정리 글은 따로 공지로 올려둘게요!

이경민은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며 1차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 2차 회의는 금요일입니다. 그럼 그때 만나요!

서포트 운영진인 이경민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커피차와 분식차를 함께 하기로 했으니, 업체를 선별해야 했다. 커피차는 기존에 한번 보냈던 업체와 다시 한번 또 함께 할 생각이었다.

두 번째인 만큼 잘해 주는 건 물론, 할인까지 들어간다.

분식차는 처음이라 이것저것 알아봐야 할 게 많다. 이경민은 메신저를 열었다. 서포트 운영진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낸다.

- 저는 분식집 리스트 알아볼게요. 다른 분들은 오늘 의견 나온 선물 정리해 주실 수 있나요? 가격대나 어디서 주문할지 그런 거요. 그리고 내일 매니저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한 정리.

이경민은 오랜만에 유수한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유수한은 머리를 잘랐다. 영화 캐스팅되면서 사진으로 보았던 머리였지만,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라 떨렸다.

얼마나 잘생겼을까.

그냥 사진으로만 봐도 잘생겼는데.

“아, 너무 기대된다.”

요즘 이경민은 평화로운 덕질 생활 중이었다.

이따금씩 알 수 없는 병크가 터져서 마음을 앓았다가도 다시 회복한다. 학폭설이 터졌을 때는 충격이 커서 앓아누웠던 이경민이었다.

사실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 학폭설이 진실이었다면 이경민은 덕질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럴 사람이 아니야.”

이경민이 씩 웃으며 분식차 리스트를 뽑아 내기 시작했다.

* * *

“너 뭐 좋아하냐?”

“소고기.”

“말이 점점 짧아진다?”

점점 날씨가 더워진다.

유수한은 오늘도 영화 촬영 중이었다. 야외 촬영이 잡혀 있었고 마트에서 이인태와 아웅다웅하는 장면을 찍고 있다.

“어어, 그거 한우잖아! 당장 빼! 안 빼?”

“먹고 싶은 거 다 담으라고 했잖아-요.”

“소고기 먹고 싶다며? 호주산은 소고기가 아니야? 미국산은? 저기 뉴질랜드도 있다, 어?”

“……종간나 새끼.”

“뭐? 뭔 새끼?”

서윤한은 덤덤한 얼굴로 이인태를 쳐다본다.

이인태는 그저 기가 찰뿐이었다. 이 간첩 놈에게 협박당해서 동거 아닌 동거를 하고 있지만, 나이도 한참 어린놈에게 욕을 들어 먹으려니 기분이 상한다.

“소고기고 뭐고. 그냥 삼겹살이나 먹어. 첩 새끼가 아주 말이 많아.”

첩, 이인태는 요즘 부쩍 서윤한을 첩이라고 부른다.

차마 사람들 시선 때문에 간첩이라고는 말 못 하고 짧게 줄여서 첩이라고 불렀다. 서윤한은 자길 뭐라고 불러도 상관하지 않는다.

휘익.

기분이 상한 듯 가버리는 이인태를 보던 서윤한은 기어코 한우를 들고 따라간다.

“너 오늘 나랑 오늘 단판 짓자.”

이인태는 소주를 카트에 담으며 말했다.

“아무리 니가 첩이어도 위아래가 있는 거야. 우리가 조상은 같지 않냐? 뿌리가 같은 한민족인데, 너 말버릇이 아주 저질이야. 알아? 인마?”

“…….”

“한번 진솔하게 대화해 보자고. 사내답게. 어?”

이인태는 거의 목숨을 건 외줄 타기 중이었다.

간첩인 서윤한을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격 인생을 종지부 찍을 큰 죄였다. 그럼에도 서윤한을 데리고 있는 건 작은 동정 때문이었다.

아들뻘이나 다름없는 이 녀석을 팔아먹는다면 속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사격에 진심인 모습을 보았고 최고 기록을 경신했을 때 밝게 웃던 그 얼굴이 선했다. 사실 불안하다. 쉬이 잠에 못 들고 핸드폰을 든 채로 망설일 정도로.

하지만 옆에 누운 녀석이 안쓰러워서, 또 아들 같기도 해서 그래서 신고하지 못했다.

“맛있냐?”

정 주지 말아야지.

“네가 애냐? 그걸 그렇게 맛있게 먹게.”

서윤한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달달한 간식거리를 꼭 사는 서윤한이었다. 먹을 걸 입에 물렸을 때가 가장 그 나이 같았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고 맛있는 음식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가장 그 나이 같았다.

“정들게 하지 마라.”

이인태는 항상 다짐한다.

진짜 이름도 모르는 젊은 놈에게, 북한 놈에게 정 따위 주지 않겠다고.

“정들면 나만 손해야.”

서윤한은 힐끔 이인태를 보았다.

늘 서윤한은 혼자였다. 북에서도 가족이 없었고 적이나 다름없는 동지와 함께했다.

피를 흘리고 잡초를 뜯어 먹으며 살아남았던 그 질긴 세월, 그 많던 동지는 사라지고 서윤한만 살아남았다.

남한에서도 혼자였던 그였기에 이렇게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느새 아이스크림은 다 먹었다.

서윤한은 쓰레기통에 막대를 버리고 이인태 뒤를 따라갔다.

“컷!”

짧게 모니터링을 하고 야외 촬영이 끝났다.

이제 이동할 시간이었다. 유수한은 차에 올라타기 전에 정동인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배님, 애드리브 잘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기를 하다 보면 생각도 하기 전에 애드리브가 툭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아, 그 종간나 새끼?”

“네. 저도 모르게 나와서…….”

“괜찮아. 연기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이번 애드리브는 좀 과하지 않았나,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고 감독은 오히려 재밌게 나왔다며 좋아했지만, 애드리브를 받은 배우의 생각은 다를 수 있었다. 다행히 정동인은 모니터를 하면서도 별말이 없었다.

“근데 너 나 보면서 그런 생각 하는 건 아니지?”

“네?”

“그 종간나 새끼, 그런 생각 하는 건 아니지?”

“아니요! 아닙니다!”

유수한이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선배님을 존경하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자식.”

오히려 장난치던 정동인이 머쓱해진다.

연기 경력이 있는지라, 유수한이 치는 애드리브는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다. 그런 걸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과격한 애드리브였기에 장난 한번 걸어 봤는데, 너무 진지하게 나온다. 그러다가도 기특했다.

“존경? 자식.”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정동인은 유수한의 등을 탁 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저런 후배가 별로 없다. 요즘 젊은 애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유수한은 여러모로 괜찮은 후배였다.

연기에 대한 열정도 좋았고 선배를 어려워하면서도 잘하려 노력한다. 현장에서 툭하면 차로 도망가는 후배들과 다르게 현장 스태프하고 잘 어울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그러니.

“저희 오빠 잘 부탁드려요!”

기특한 후배의 팬도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아휴, 내가 잘 부탁해야지.”

정동인은 직접 사인을 해 주며 웃었다.

그의 손에는 어묵꼬치가 들려 있었다. 아직 촬영 준비 중이었기에 열심히 일하던 스태프들도 오가면서 간식을 챙겨 먹었다.

“이거 잘 먹을게요.”

어묵꼬치 하나를 야무지게 먹고 커피도 한 잔 챙긴다.

팬들이 직접 포장한 간식까지 주머니에 챙긴 정동인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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