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100화 (100/175)

100. 나를 흔들지 마라

[연예이슈] tnV ‘식사남녀’ 시청률 13.7% …… 유수한 빗속 고백 최고의 1분!

드라마 ‘식사남녀’는 순항 중이다.

조금씩 시청률이 오르고 있었고 연기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유수한은 영화 대본 리딩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 7화 언제 옴??

- 드디어 뭐가 좀 풀리네 ㅠㅠㅠㅠㅠ

- 강인한 정신 차리니까 사이다 먹은 기분 ㅋ

└ 22222 고구마 징하게도 멕였다

└└ 33 남주가 정신 차리니 체기가 내려감 ㅋㅋㅋㅋㅋ

핸드폰을 보며 반응을 찾아볼 즈음, 차는 어느새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유수한은 가방을 챙긴다. 물론 가방에는 대본과 필기구, 마스크밖에 없었다.

마스크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게 될 때 얼굴을 가리는 용도였고 대본과 필기구는 대본 리딩에서 필수였다.

물론 유수한은 항상 대본을 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안녕하세요.”

제작사 회의실, 대본 리딩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유수한을 반기러 온 사람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대본 리딩은 홍보를 위한 시간이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리에 앉는 유수한을 찍고 있었다.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와 다른 모습.

유수한은 짧아진 머리칼에 살은 더 빠졌다. 너무 과하게 빼지는 않았다. 운동으로 체지방을 최대한 줄이고 근육량을 늘렸다. 그렇기에 탄탄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 다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사람은 최지원이었다.

영화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을 맡은 최지원은 은밀히 서윤한을 쫓는다. 최지원이 맡은 역할의 이름은 ‘윤태수’였다.

“반가워요. 수한 씨.”

유수한도 자리에서 일어나 최지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지원은 30대였으니 이번에도 유수한은 팀에서 막내에 속했다. 아역 배우가 있기는 하지만, 비중을 보면 팀에서 막내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역시 유수한이다.

“자, 다 모였나요?”

고운영 감독이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했다.

긴 테이블에 꽉 들어찬 인원. 유수한은 눈으로 배우들을 훑었다. 그리고 고운영 감독의 손짓에 새로운 대본이 들어왔다.

“수정 대본입니다.”

응?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툭.

책상에 놓인 대본을 본다. 여전히 빛은 선명했다. 금빛이 찬란했으니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유수한은 대본을 훑었다.

초반부에도 몇 대사가 수정되어 있었고 어떤 장면은 삭제되었으며 그를 대체할 다른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5분 후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알아서 바뀐 대본을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물론 바뀐 대본을 받았다고 한들, 내용이 크게 틀어지지 않았으니 바로 진행해도 무리가 없다. 유수한은 우선 자신 위주로 분량을 훑으며 달라진 대사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했다.

5분이라는 시간은 짧다.

하지만 그럼에도 바뀐 대본에 적응해야 했다.

“자.”

다시 울리는 고 감독의 목소리.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 * *

유수한은 항상 대본 리딩이 설레면서도 두렵다.

대본 리딩은 서로의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처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첫 장면부터 유수한이 푸시업을 하는 장면이었기에 모션으로 연기를 대신했다.

“후우, 훅.”

그리고 그 숨소리에 다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수한은 진지했다. 단순한 리딩이라고 해도 그 어떤 장면도 허술하게 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고운영 감독도 미소를 지으며 대본을 넘겼다.

“위험합니다.”

서윤한은 재개발을 앞둔 달동네에서 나름 유명 인사였다.

잘생긴 얼굴은 어딜 가나 유명해지기 쉽다. 서윤한은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지만,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막노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 짧은 순간, 동네를 벗어나는 그 순간이면 충분했다.

유명 메이커 브랜드 트레이닝이 아닌 짝퉁을 입고 있어도 빛이 나는 남자였다. 솜이 삐죽 튀어나온 패딩을 입어도 존재감은 충분했다.

‘설정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네.’

유수한은 대본을 살피며 생각했다.

고운영은 주인공 설정을 잡을 때 미남 배우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캐스팅을 하고 보니 지나치게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설정을 일부 바꾸며 장면 역시도 세세하게 바뀐 듯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서윤한은 좁은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앞에 걸어가던 여자를 구해 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여자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우며 오토바이를 피하는 순간은 찰나였다. 여자는 당황했고 등 뒤로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존재에 깜짝 놀랐다.

“어, 저 혹시 이름이…….”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니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홀린 듯 묻는 그 말에 서윤한은 무표정으로 여자를 응시했다.

“이름, 없습니다.”

짧게 대답하고 서윤한은 사라진다.

그렇게 오늘도 새로운 여자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떠난 서윤한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점이 있다.

이번 여자는,

“저런 사람이 있었나?”

꽤 집요한 성향이었다.

서윤한의 존재를 알았으니 이제 정보를 캐낼 것이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동네에서 서윤한은 이미 유명 인사였으니까.

“못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항상 무표정인 서윤한의 미간이 좁혀져 있다.

장난감 총으로 인형을 땄을 뿐이다. 동네 꼬마의 부탁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국가대표의 자질이 있다느니,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은 다소 허무맹랑했다.

아니, 그 전에.

간첩인 서윤한이 어떻게 국대가 되며 사격 선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왜 못 해? 너 총 잘 쏘잖아.”

이인태는 막무가내였다.

서윤한을 스토킹하고 끝내 그의 집까지 따라붙었다. 서윤한은 그의 미행을 떨쳐 냈지만, 변수는 존재했다.

잘생긴 외모 탓에 동네에 서윤한의 집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어이, 이수원 씨.”

남한에서 서윤한은 가명을 쓰고 있었다.

신분을 세탁하여 새로운 신분, 이수원이 되어 살아갔고 언제 서윤한으로 돌아갈지는 모른다.

“계속 막노동하며 살 거야? 나이 몇이야? 이제 슬슬 미래를 준비할 나이잖아. 어?”

미래, 미래를 준비한다.

북한에서의 서윤한은 미래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남한에 내려가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지원금은 끊겼고 소식도 전무했다.

한국에 온 지 5년.

23살이었던 그는 나이를 먹어 28살이 되었다.

처음 남한에 도착했을 때는 달라진 환경에 당황했다. 공화국이 그의 머리에 주입한 남한의 정보와 달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즐비한 높은 건물에 어딜 가나 음식이 널려 있다. 별나라 세상에 떨어진 그에게 주어진 건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를 신분증과 기밀 정보가 들어 있는 작은 수첩 하나, 그리고 방 한 칸도 얻을 수 없는 정착금이었다.

“미래?”

서윤한이 이인태를 응시했다.

“내일 당장 죽을 수 있는데, 그깟 미래?”

무미건조한 어투에 이인태가 한발 물러선다.

이인태가 생각하기에 서윤한은 꼬여도 한참 꼬인 사람이었다. 아직 젊은 애가 왜 저렇게 세월을 버리고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해 보자니까.”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너.”

서윤한이 돌아서자, 이인태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너 돈 필요하지?”

그 목소리에 대문을 열던 서윤한이 멈칫했다. 그 모습에 이인태가 미소를 짓는다. 제대로 짚은 듯했다.

“이번 전국 사격 대회 열린다. 우승 상금이-”

길게 말을 끄는 이인태.

“300만 원이라더라?”

그 말에 서윤한이 뒤돌아본다.

돈이 필요한 그에게는 300만 원은 유혹적이었다.

“해 볼래?”

“…….”

“네가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어. 나는 그냥 네 가능성을 보고 싶은 거지. 아, 참가비는 내가 내 줄게.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나가 보자.”

이인태는 말 그대로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리 장난감 총이라고 해도 일반인이 백발백중으로 정확히 타깃을 넘길 수는 없다. 작은 타깃에도 탁탁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모습에서 재능을 보았다.

국가대표 코치이자, 국내 실업팀 감독인 이인태는 이 청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이인태가 보았던 재능이 진실이라면 이 잘생긴 청년은 사격계에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관심 있으면 연락 줘. 진짜 대회에 나가고 싶으면 일찍 연락해야 해. 선수 등록하고 룰도 숙지해야 하니까. 아니다. 생각 있으면 내일 연락해. 알아들었지?”

서윤한은 명함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 명함을 받은 서윤한은 그대로 구겨 바닥에 버렸다.

“야!”

툭, 구겨져서 떨어지는 명함에 이인태가 어이없다는 듯 화를 낸다. 서윤한은 그런 그의 얼굴을 잠시 응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인태는 바닥에 떨어진 구겨진 명함을 주워 빳빳하게 폈다. 가늘게 구겨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내용은 확인할 수 있다.

“쯧, 저 건방진 새끼. 성격은…….”

이인태가 문틈에 명함을 꽂아 두었다.

연락을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명함을 남겨 두는 건 마지막 미련이었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이인태.

이인태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서윤한이 다시 대문 앞에 섰다.

문틈에 꽂힌 명함.

그 명함을 물끄러미 보던 서윤한이 결국 명함을 가져간다.

[계속 막노동하며 살 거야? 나이 몇이야? 이제 슬슬 미래를 준비할 나이잖아. 어?]

날 흔들지 마라.

[이봐, 젊은 사람이 그렇게 도전 정신이 없어서 쓰겠어?]

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서윤한은 조국을 배신할 줄 모른다. 평화로운 남한 분위기에 젖어 가면서도 공화국을 잊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여기 사람들은 여유롭다.

북한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기도 널렸고, 마음만 먹으면 소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북에서는 소고기를 먹으면 처형당하는데.

감은 눈을 떴다.

서윤한은 몸을 일으켜 책상에 놓인 명함에 손을 뻗었다. 구겨진 명함, 그리고 여전히 선명한 글자.

“총 한 번만 쏘게 해 주세요.”

그저.

“선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윤한은 공기 권총을 바라보았다.

10M 공기 권총. 이인태를 그를 시험하기 위한 무대로 공기 권총을 선택했다.

말없이 서윤한은 총을 확인한다.

확실히 살상 무기와는 느낌이 달랐다. 조심스럽게 만져 보던 서윤한이 과녁을 바라보았다.

“일단 권총부터 느껴 봐. 하나씩 경험해 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타앙!

그 말을 무시하듯 격발음이 울렸다. 물론 귀를 따갑게 할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을 하던 도중이었기에 놀랄 수밖에.

“10.1?”

모니터를 확인한 이인태의 눈이 커졌다.

“이 새끼, 진짜 천재네?”

첫 발.

우연일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10점을 때려 박을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이인태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지금은 국대 코치였지만, 언젠가는 맡게 될 감독을 향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선수 하나만 제대로 키워 낸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타앙!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10.3…… 미친놈.”

어디서 사격을 해 봤나?

이게 처음 사격을 해 보는 사람의 솜씨가 맞나? 뽑기방에서 하는 장난감 총과는 차원이 다를 텐데, 이걸 이렇게 능숙하게 다룰 수 있나? 이런 놈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거봐. 너 지금 이 실력으로 대회 나가면 우승 충분히 가능성 있어.”

서윤한은 대답 없이 총알을 장전했다.

다시금 과녁을 향해 조준한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희열이 찾아왔다. 중심부에 총알이 더 가까이 박힐수록 심장이 뛰었다.

타앙.

이번에는 10.5.

서윤한은 조금 더 정확하게 사격을 하고 싶어졌다. 총알을 장전한다. 이윽고 그는 옆에서 주절주절 말을 하고 있는 이인태를 보았다.

“나는 선수 못 합니다.”

그는 사격이라는 것이 스포츠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북에서도 사격 선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서윤한에게는 열리지 않은 길이었다.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사격이 스포츠라는 사실을,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렇기에 직접 총을 쏴 확인해 봐야만 했다.

심장이 뛴다.

사격 선수로서 총을 잡는 일은 그에게 기분 좋은 쾌감을 안겨 주었다.

“뭐, 뭐야? 너 그 총 안 내려놔?”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 내려놓고 말해! 이 새끼야!”

“대답 여부에 따라 당신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뭐, 뭘 죽여?”

서윤한은 정확히 이인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이인태는 두 손을 들며 반항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 설마 했다. 설마, 진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총을 겨눈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저 총에 맞는다고 해서 진짜 죽을까?

살상용이 아니라고 해도 머리에 정확히 맞힌다면, 서윤한 실력이라면 머리에 구멍을 내고도 충분했다.

죽지 않더라도 어디 하나가 고장은 나겠지.

“북한 사람도 남한에서 선수가 될 수 있습니까?”

“뭐? 북, 뭐?”

“간첩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간첩입니다. 이런 나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내가 북한 사람이라도, 간첩이라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서윤한은 장난 따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대답 여부에 따라 죽일 거라는 말도 사실이다.

“그, 그건 알아봐야 해.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두 번째 질문.”

흔들림이 없다.

총을 겨누는 팔에 여전히 힘이 단단히 담겨 있었다.

“내가 간첩이라는 걸 신고할 겁니까?”

“안 해! 안 할 테니까, 일단 총 좀 내려놔!”

“…….”

서윤한은 그를 바라본다.

숨 막히는 대치, 서윤한이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인태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서윤한에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윤한의 미래는 조국이었다. 공화국을 위해 이 목숨을 바쳤다. 자신을 생각할 겨를 없이 다른 누군가의 심장을 멎게 하는 일이, 그의 미래였다.

“선수.”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나 사격 선수 하고 싶습니다.”

이인태는 이 상황에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눈부신 재능에 이끌려서 데려온 청년이 지금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도 현실감이 없다.

북? 북한 사람? 간첩이라고?

“빌어먹을.”

어쩐지 운이 좋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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