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뉴페이스
“드디어 왔구나.”
드라마 사전 제작의 좋은 점은 완대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거였다.
지금 유수한은 ‘식사남녀’ 시즌2의 대본을 훑어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10부작이었다. 시즌1과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첫 번째는 로맨스였다.
본격적으로 강인한과 이윤수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연예이슈][단독] 차정준 ‘식사남녀2’ 캐스팅! 유수한 라이벌 된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었다.
드라마 ‘식사남녀’의 시즌1은 로맨스가 10%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강인한과 마주치는 이윤수는 주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정을 쌓았지만, 로맨스는 아니었다.
점차 이윤수는 강인한을 향해 다른 감정을 켜켜이 쌓아 가고 있다. 하지만 강인한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윤수는 그저 부하 직원일 뿐이었다.
진석 : 관심 없는 거 맞습니까? 저는 이윤수 씨와 잘해 보고 싶은데요.
새롭게 드라마에 합류한 차정준이 맡은 역할 이진석은 강인한의 감정을 일깨워 주는 역할이었다. 즉 삼각관계를 위한 역할이었다.
“이진석 분량이 꽤 되네.”
그럴 만하다. 새로운 인물이었고 서브 남주였으니. 강인한의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다.
[HOT] 식사남녀 이진석 역할 맡은 차정준 +109
차정준은 라이징 스타였다.
모델 출신으로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하다. 연기자로 전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준비를 열심히 했는지 연기도 곧잘 했다.
유수한은 차정준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극중에서 라이벌이었기에 상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했다. 강인한이 확고한 주인공이라고 해도 경계해야 한다.
가끔 서브가 주연을 집어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 오 차정준 잘 어울림~
- 와 드디어 섭남 나오네?
- 벌써 설렌다 강 팀장님이 질투할 생각하니까 개맛있다
└ 도른맛임 이게 맛집임
└└ 3333333 강 팀장 질투 지린다 ㅠㅠㅠㅠㅠㅠㅠ
└└└ 44444444 개존맛!!!!
└└└└ 55 원작 잘 살리면 도른맛 ㅇㅈ
시즌1은 늘 비슷한 감정이었다면 시즌2는 사람답게 질투도 하고 화도 낸다.
지금까지 이윤수를 늘 같은 감정으로 바라보았던 강인한의 변화였다. 유수한은 어떻게 해야 강인한답게 감정을 풀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 섭남 등장 ㅋ 오빠 긴장각?
기다렸다는 듯 주민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주에게 서브남주가 붙었다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툰다. 그 사실만으로도 주민하는 신나는 모양이다.
- 긴장을 왜 함?
유수한이 시큰둥하게 답장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본 재밌더라 촬영 기대됨 ㅇㅇ
대충 답장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짧게 잘랐던 머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다. 유수한은 다시 ‘식사남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체 대본도 도착했겠다, 이제는 다시 강인한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인한 : (이윤수를 가로막으며) 갈 겁니까?
후반부에는 강인한도 변화한다.
인한 : (표정 없이 담담하게) 가지 마세요. 내가 기분이 나쁩니다.
아주 천천히.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었던 강인한은 모든 감정에 서투르다.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솔직할 수가 없다.
유수한은 대본을 읽으며 어떻게 연기할지 생각했다. 다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고 새롭게 변화하는 강인한을 만날 생각에도 설렘을 느꼈다.
* * *
‘식사남녀’ 시즌2의 첫 대본 리딩.
기존 배우들이 모두 모인 것은 물론, 새로운 인물인 이진석 역할의 차정준도 자리를 했다.
시즌2를 맞이해 새롭게 호흡을 맞추는 하루. 묘한 긴장감이 배우 사이에 돌았다. 짧은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아, 앞집 사는데요. 택배가 잘못 와서요.”
작가와 감독이 가장 유심히 지켜보는 건 역시 차정준이었다.
시즌2 뉴페이스였기 때문에 아직 정보가 없었다. 차정준의 연기력은 무난했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
“죄송해요. 제 건 줄 알고 가져갔다가 나중에 확인했어요.”
택배가 뜯어져 있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상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한 탓이었다. 열어 보니 화장품이 들어 있었고 누가 봐도 여성 화장품이었다.
“괜찮아요. 상품만 멀쩡하면 됐죠.”
이윤수는 담담하다.
별생각 없는 듯한 눈치였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지만, 제대로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과의 의미로, 제가 아까 치킨을 시켰는데 좀 나눠 드릴까요?”
그리고.
이윤수는 음식에 약하다.
“정말요? 그럼 감사하죠. 어디서 시켰는데요?”
“나나치킨이요.”
“헐, 저 나나치킨 좋아하는데.”
“이번에 신제품 맛있어 보여서 주문했는데, 오면 좀 나눠 드릴게요.”
치킨은 PPL이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PPL과 함께했다. 유수한은 대본을 넘기며 차례를 기다렸다. 짧게 차정준에게 연기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정준 씨, 너무 과하게 말하지는 말고 부드럽게.”
강인한과 라이벌 구도를 펼쳐야 하는 차정준이었기에, 이강은은 길어지더라도 디렉팅을 확실히 주었다.
차정준이 맡은 이진석은 강인한과 매력이 다르다.
강인한은 무뚝뚝하면서도 음식에 집착한 나머지 엉뚱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진석은 서브 남주에 걸맞게 부드러운 세심남이었다.
이윤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도 강인한에게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가끔은 날카로운 모습도 보인다.
“어?”
서로에 대해 몰랐던 지난날에는 회사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쳤다.
“여기서 일하셨어요?”
“네, 이윤수 씨도?”
“네. 저 여기 입사한 지 꽤 됐는데 왜 처음 보는 것 같죠?”
“전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법무팀에서 일해요.”
“아, 건물이 좀 다르기는 하네요.”
미심식품 법무팀은 본관에 있었고 개발팀은 별관에 있다. 같은 회사였지만, 건물이 달라 마주치기 쉽지는 않았다.
“누굽니까?”
뒤에서 강인한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강인한은 이윤수가 추천했던 맛집을 혼자 가려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윤수는 새로 생긴 쌀국수집을 추천했고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즐기기 위해 강인한을 끌고 가던 참이었다.
“아, 앞집 사는 남자요.”
그 대답에 강인한이 미간을 좁힌다.
뭔가 기분이 몹시 불쾌하다는 듯. 무표정이었지만 알 수 없는 미묘한 뒤틀림이 느껴졌다. 강인한은 힐끔 이진석을 본다.
걸음을 옮기며 멀어지는 이진석을 상상하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친합니까?”
처음으로 강인한이 이윤수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친하진 않아요.”
더불어.
“가까이하지 마시죠.”
작은 질투심까지.
“관상이 좋지 않습니다.”
그 순간 호흡을 맞추던 주민하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인한의 마지막 대사는 대본에 없었다. 하지만 감독이 중간에 끊지 않았기에 주민하가 표정 관리를 하며 애드리브를 맞춰 주었다.
“관상이요? 왜요? 사람 좋아 보이는데.”
“사람 보는 눈이 없군요.”
강인한의 톤은 여전히 일정했다.
“아닌데, 좋은 사람인데? 치킨도 나눠 줬어요. 음식 나눠 주는 사람이 얼마나 착한데요?”
그 말에 미간을 좁힌 강인한이 이윤수를 바라본다.
이윤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이진석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택배를 뜯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보답으로 치킨을 주었다. 그 치킨은 따끈하고 맛있었고 맥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그런 쉬운 이유로 좋은 사람이 된다면 나는 이윤수 씨에게는 천사겠군요?”
“네?”
“매일 맛있는 거 사 주지 않습니까.”
“아.”
그렇다.
강인한은 이윤수와 맛집에서 마주치게 되면 생각 없이 계산을 치렀다.
부하 직원에게 얻어먹을 생각도 없었고, 가끔은 귀찮았지만 음식만 뺏어 먹지 않는다면 계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이윤수도 예의를 차린다. 강인한이 두 번 밥을 사면 한 번은 꼭 사려고 드는 여자였다. 그럴 때마다 강인한은 이윤수의 월급을 생각했다.
“설마.”
이윤수는 강인한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말수가 없는 강 팀장이었는데, 오늘은 말이 꽤 길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계속 꼬투리를 잡는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질투하세요?”
여기까지.
애드리브는 꽤 길어졌고 이제 작감의 의견만 남았다.
원 대본이라면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강인한과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윤수의 얼굴에서 마무리였다.
연기를 하다 보니 다른 대사도 덧붙이게 되었고 주민하도 애드리브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이어 나갔다.
“괜찮은데요?”
첫마디는 작가였다.
“이거 그대로 살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어떠세요?”
이강은 피디도 같은 생각이었다.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직설적인 이윤수의 캐릭터가 살았다. 무표정으로 이진석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강인한 역시도 자연스러웠다.
“좋아요. 여러모로 활용하기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아예 대사를 추가하는 걸로 할게요.”
“네, 그렇게 진행하죠.”
유수한은 애드리브에 강하다.
예전 드라마 ‘시간’을 찍을 때 최은호와 벌였던 때 아닌 감정싸움 덕분이었다. 그때, 서브 남주를 연기로 누르기 위해서 다양한 애드리브를 준비했었다.
상황에 맞지 않거나 과한 애드리브는 문제를 일으키기 좋지만,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는 순발력이 되었다. 관건은 상대가 얼마나 애드리브를 순발력 있게 받아 주느냐였다.
주민하는 순발력이 있는 배우였다.
유수한의 애드리브를 자연스럽게 받았다. 두 사람은 이미 두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었기에, 눈만 마주쳐도 애드리브가 툭툭 터져 나왔다.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음식을 두고 펼치는 애드리브는 때때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다음 이어 가겠습니다.”
대본 리딩이 진행될수록 유수한도 감을 잡아 가고 있었다.
강인한의 심경 변화에 따라 부드럽게 감정선을 움직인다. 이윤수를 바라보는 눈빛엔 조금씩 온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
젓가락을 내려놓는 시늉을 한다.
항상 음식 앞에서는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다투던 두 사람이었다. 강인한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맛있게 음식을 먹는 이윤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서서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왜 웃어요?”
강인한은 웃는 줄도 몰랐다.
“내가 많이 먹는 게 그렇게 싫어요?”
이윤수를 보고 웃었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괜한 오해를 받아 억울하기도 했다. 분명 소시지 가지고 치사하게 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미로 웃었던 게 아니었다.
“치사하게. 스프링롤 하나 더 먹었다고 그러는 거죠?”
“하나 더 먹었습니까?”
물론 그건 그거다.
“꼴랑 4개 나오는 거에 지금 3개를 먹었다는 겁니까?”
미간을 좁힌다.
“그게 사람입니까?”
두 사람의 로맨스는 이어질 듯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 * *
[HOT] 식사남녀2 촬영 스틸컷.jpg +412
tnV ‘식사남녀’ 시즌2가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편성은 5월 26일 확정되었고 촬영은 순항 중이었다. 분량이 10회였기 때문에 촬영 역시도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 저거 뭐임? 유수한 지금 머리 내린 거???
└ 맨날 반깐이더니 ㅠㅠㅠ 머리 젖은 거 존잘
└└ 그 장면 같은데 웹툰 145화에 나오는...
└└└ 스포 ㄴㄴ
└└└└ 이게 왜 스포임;; 원작이 있는데;; 안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님?
스틸컷은 주연 위주였다.
유수한은 비 맞은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과 촬영장에서 대본을 들고 대기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주민하는 차정준과의 첫 만남인 택배를 받는 모습과 공원 벤치에 앉아 과자에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차정준은 주로 투 샷이었다.
주민하와의 첫 만남, 그리고 유수한과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이었다.
- 캬, 삼각관계 지린다... 어차피 남친은 유수한이라서 더 지림 ㅋㅋㅋㅋㅋ
└ ㅇㅈㅇㅈㅇㅈㅇㅈ 어남유
└└ 차정준은 그냥 러브라인을 위한 도구일 뿐 ㅎ
└└└ 도구라니; 좀 기분 나쁘다; 차정준 팬 아님
└└└└ 차정준빠 하이~
스틸 컷은 시즌2의 스토리 전반을 예고한다.
미진했던 로맨스를 기대하게끔 했고 뉴페이스 차정준의 역할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유수한X차정준 츄릅
└ 아... 브로맨충 또 나타났네;
└└ 개시름 브로맨스 나오기 시작하면 분위기 엉망 됨 존싫;;
└└└ 또 브로맨 타령하면서 여주 지우게????
└└└└ 이래서 빠들이 붙으면 짜증 난다니까;;;;
- 차정준을 어딜 비벼 강윤커플 최고
- 차정준빠들 팬카페 가라 메인커플 두고 브로맨스 ㅇㅈㄹ
└ 즌1부터 로맨스 기대했는데 초 친다 진심
└└ ㅇㅈㅇㅈ 강윤 팬들이 얼마나 즌2 기다렸는데 ㅋ
└└└ 차정준빠들 특기야 잘생긴 남주한테 비비는 거 ㅇㅇ
└└└└ 극성 ㅇㅈ
새롭게 등장한 차정준.
차정준 팬들은 유수한과의 브로맨스를 밀었지만, 드라마 팬덤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일단 뉴페이스였기에 아직 제대로 정이 붙지 않은 상태였고, 강인한과 이윤수의 로맨스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기에 굶주려 있는 상태였다.
드라마에서 메인 커플의 힘은 크다.
서브 커플의 분량만 많아지면 바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얼굴을 들이민 배우가 메인 커플을 두고 따로 커플 놀이를 하려 하니, 심기가 불편해지는 건 당연했다.
- 우리 강윤이들 아직 뭐 하지도 못했다고 섭빠는 꺼져
└ ㅇㅈㅇㅈ
└└ 우리 애들도 아직 뭘 하지도 못했는데 ㅡㅡ
물론 텃세일 수도 있었다.
시즌제일수록 팬덤의 충성심은 대단하다. 더군다나 잘된 드라마에 시즌2는 본격적인 로맨스를 그린다고 했으니 기대감이 부푸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라이프 체인지]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1,000>
유수한은 드디어 1,000 포인트를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