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95화 (95/175)

95. 이제부터 내 조국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은 고운영의 얼굴이 굳었다. 잘생김에는 답이 없다는 말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수한을 보는 순간, 환한 빛이 쏟아지는 듯했다. 뒤에 따라 들어오던 이성실은 후광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감독의 위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 미안해요.”

고운영이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보이며 사과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 잘생겨서…….”

유수한이 외모가 뛰어난 배우라는 건 고운영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화면에서도 잘생긴 배우였지만, 실물은 화면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이 유수한을 보며 ‘얼굴 천재’라고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고운영이었다.

“괜찮습니다.”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목 인사를 건넸다.

“유수한이라고 합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니 더 잘생겼다.

지금까지 고운영은 이번 영화를 준비하며, 온갖 잘생겼다는 배우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상업 영화라 비주얼도 무시 못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늘 얼굴에 있어서는 눈 높다는 소리를 듣던 고운영이었는데, 그런 그녀를 무릎 꿇게 만든 사람이 유수한이었다.

‘어떻게 머리가 짧아도 잘생겼지?’

사실 이보다 긴 머리는 실물로 보지 못했지만, 분명 잘생겼을 것이다.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내도 얼굴에서 빛이 나니까.

“원래 머리 조금 더 길지 않았어요?”

고운영의 물음에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자르고 왔습니다. 괜찮은가요?”

“네,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미남 앞에서는 표정 관리도 안 될뿐더러 자꾸만 솔직한 대답을 내놓게 된다.

입 밖에 터져 나온 말 그대로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서윤한’이라는 인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왔다.

고운영이 그린 ‘서윤한’은 전체적으로 말끔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시나리오 쓸 때나 그랬지, 지금은 현실을 마주했다.

상업 영화에서 비주얼은 중요했다.

“수한이가 서윤한은 이런 모습일 것 같다고 직접 준비한 거예요.”

가만 상황을 지켜보던 이성실이 입을 열었다.

이성실은 지금 승리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학폭설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위기 후에 기회가 온다고. 지금이 그 순간인 듯했다.

“아, 정말요?”

고운영의 눈이 커졌다.

아직 기획 단계였다. 캐스팅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비중 있는 조연 같은 경우는 적합한 배우를 찾기 위해 오디션도 열 계획이었다.

지금은 그저 영화를 이끌어 갈 확고한 주연을 확보하는 게 목표였다. 아직은 촬영이 멀었기 때문에 미팅을 하면서 머리를 자르고 오는 배우는 없었다.

크랭크인은 대략적으로 9월 즈음으로 잡고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어떤 차기작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드라마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식사남녀.”

유수한이 고운영을 보며 대답했다.

“3월 말에 촬영 예정이라 머리를 다시 기를 시간은 충분합니다.”

“아, 그래요?”

“식사남녀는 분량이 10회고 사전 제작이라 5월 말에 촬영 종료 예정이고요.”

드라마 ‘식사남녀’ 스케줄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이유는 드라마 때문에 영화 촬영에 차질을 줄 일은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유수한의 머리에는 올해 계획이 이미 그려져 있었다.

3월 말에 시작하는 ‘식사남녀’는 5월에는 공식적인 촬영이 끝난다. 만약 ‘내 심장을 향해 쏴라’에 캐스팅된다면 그 후에 머리를 자르고 촬영에 임할 생각이었다.

머리를 자르는 것에 부담감은 없었다.

지난번 이야기를 나누었던 낫플릭스 ‘EXIT’ 역시도 군인 설정이기에 짧은 머리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

고운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유수한을 보았다.

이미 학폭설이 터졌을 때 캐스팅 순위에서 한번 지워 버렸던 배우였다. 항상 배우를 볼 때 첫인상을 그 어느 것보다 중요시 여겼다.

머리에 터지는 느낌표는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은 일.

“우선 식사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죠.”

‘서윤한’에게 어울리는 배우인지 철저히 검증해야 옳았다.

* * *

“서윤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로 유수한은 식사 자리에서 갖는 미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감독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 온 정신을 곤두세워야 하는데, 군침 도는 음식은 가끔 시선을 빼앗는다.

늘 다이어트를 안고 사는 유수한이었기에 더더욱.

산해진미를 앞두고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서윤한은 매 순간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요?”

“서윤한이 남한에 온 지 5년이 됐죠. 23살에 왔고 북한에서는 어리지 않은 나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린 나이잖아요. 북에서 지독한 훈련을 받으며 살았으니 그 누구보다 강하게 세뇌를 받았을 거예요. 한국인은 배부른 개돼지다, 이런 방향으로.”

고운영은 가만 유수한의 생각을 집중하며 들었다.

“근데 서윤한이 마주한 한국은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폐쇄적인 북한과 다르게 자유롭고, 사람들 역시 한결 여유롭죠. 그 안에서 서윤한은 흔들려요. 그 누구보다 강직한 성향인 서윤한이니까. 믿고 싶지 않을 거예요. 북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과는 다르니까요. 그 평화에 젖어 들다가도 정신이 번쩍 들죠. 총기를 만지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단련하며 언제 내려올지 모를 명령을 기다리며 살아요.”

유수한이 짧게 생각을 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북한 사람이다. 그 생각이 강하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 역시도 강한 남자라, 더더욱 그럴 거예요.”

이번 미팅을 준비하며 유수한은 간첩을 다룬 영화나 책을 찾아보았다.

남파 간첩으로 살아온 많은 주인공들은 빠른 속도로 남한에 적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결혼까지 했던 주인공도 있었다.

그들은 서윤한과 비교하면 적응력이 빠른 인물들이었다.

서윤한은 그들과 달랐다. 남한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저항한다. 북에서 세뇌당하듯 교육받았던 정보와 현실은 다르다는 걸 직시하면서도 부정했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서윤한은 저항해요.”

“저항이요?”

“네. 자랑스러운 조국이 내게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

“그렇군요.”

“지금까지 서윤한은 자신을 위해 총을 든 적이 없어요. 항상 자랑스러운 조국을 위해서 총을 들었죠. 그렇기에 처음으로 조국이 아닌 나를 위해 총을 들었을 때.”

유수한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심장이 터지는 듯한 충격을 느낄 거라 생각해요.”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기 위한 사격이 아닌 스포츠로써의 사격을 만난다.

더 깊이 연관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더 높은 곳을 갈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윤한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성취감에 빠져든다.

“나를 위해 살아 본 적 없는 사람이니까, 그에게 사격이 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고운영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직접 서윤한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유수한이 해석한 서윤한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지금 당장 계약하자고 소리치고 싶다.

오늘 함께 나오지 않은 제작 PD를 끌고 와서 이 배우를 필두로 투자를 더 받아 오라고 닦달하고 싶다.

여기 내가 만든 서윤한이 살아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기, 기억나는 대사 하나만요.”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고운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나는 대사 한마디만 해 주세요.”

마지막 검증.

“이제부터 내 조국은…….”

유수한은 순식간에 서윤한이 되었다.

싱그러운 미소를 짓던 20대 청년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독한 갈등에 시달리는 20대 청년이 나타났다.

“대한민국이오.”

탁!

순간 심장을 울리는 희열을 이기지 못한 고운영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합격!”

* * *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기쁨을 만끽하는 유수한이었다. 이성실조차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계속 유수한의 성장을 지켜보았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니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직접 유수한을 발탁했던 이성실은 그 어떤 소속 배우보다 유수한의 눈부신 성장에 흥분했다. 고운영의 마음을 한순간에 설레게 했던 빛나는 외모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얼굴에 매료되었던 이성실이었으니.

오늘 유수한은 그 어떤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서윤한’을 만들어 냈고 자신감 역시도 있었다. 짧게 서윤한의 대사를 치던 그 순간은 하이라이트였다.

단숨에 고운영이 ‘합격’이라는 말을 내뱉게 했으니.

[연예이슈][단독] 유수한 간첩 된다? ……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캐스팅 확정!

계약을 진행하고 공식 보도 자료가 뿌려졌다.

[OKEN][단독] ‘내 심장을 향해 쏴라’ 고운영 감독 “완벽한 유수한, 보는 순간 내가 그렸던 서윤한이 서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서윤한을 손에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실감된다.

한동안 유수한을 괴롭게 했던 시간을 잊게 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HOT] 잘생김is뭔들, 밤톨 머리도 잘 어울리는 유수한(feat.내심장을향해쏴라) +487

유수한은 최근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캐스팅 소식과 맞추어 짧은 머리를 보여 주기 위해 진행한 화보 촬영이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진행한 화보 촬영은 마치 서윤한을 미리 보기로 보여 주는 듯했다.

- 유수한 얼굴은 그 누구도 못 까

- 진심 얼굴은 매번 감탄함;;;

- 참 매번 얼굴 열일한다

- 머리빨 필요 없는 외모... 빛난다 진심

- 영화 때문에 머리 잘랐나?

└ ㄴㄴ 영화 촬영은 멀었대 어필하려고 자른 듯

└└ 기를 거래 ㅋㅋㅋㅋ 식사남녀 찍고 나서 다시 자른다더라

└└└ 감독이 극찬할만하네 역할 따내려고 머리 자른 거 아냐 ㅋㅋㅋㅋㅋ

- 트레이닝복 잘 어울리는 남자 연예인 1위 아니냐?

└ 22222 ㅋㅋㅋㅋㅋㅋㅋ

└└ 33 ㅇㅈ

└└└ 4444 피지컬이 우월하니까 착붙임 ㅇㅇ

└└└└ 55555 운동부 선배 같음 ㅠㅠㅠㅠㅠㅠ

반응은 전체적으로 좋다.

며칠 전만 해도 욕만 퍼먹었던 유수한이라, 이런 반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 일 때문에 100 포인트를 써야 했고 본품 구매를 뒤로 미루어야 했지만, 수습했으니 다행이었다.

“긍정적인 이미지 지키는 일도 힘들구나.”

비로소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유수한이었다.

[빛유/자유] 하늘에서 차기작이 마구마구 쏟아지네요! 최고 ㅠㅠㅠ +12

[빛유/자유] 한동안 우울했는데 영화 떡밥 떨어지니까 행복해짐.... +25

[빛유/자유] 올해 액땜 거하게 했으니까 좋은 일만 있을 듯!!!! +53

팬사이트를 둘러본다.

유수한은 그동안 힘들었을 팬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고난은 없을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본품 구매다.”

다시 목표를 재조정한다.

원하던 대로 영화 ‘내 심장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을 손에 넣었다. 올해 일정이 꽉 들어차 있었다.

우선 3월 말에 있을 ‘식사남녀’ 촬영이 첫 번째 일정이었다. 그때까지 유수한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1,000 포인트를 만들자.”

새로운 계획을 정리하고 유수한은 바로 소소한 포인트 적립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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