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92화 (92/175)

92. 바퀴벌레도 널 끌어내릴 수 있으니까

눈앞이 아득해진다.

순간 어지러움이 찾아왔고 유수한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는다.

[유수한이다.]

서서히 17세의 유수한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 한 대가 교문 앞에 선다. 그 차에서 내린 유수한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소문대로 잘생기긴 했다.]

유수한은 이미 얼굴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3월,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고 유수한은 그때도 키가 크고 얼굴도 준수했다. 일부러 김대한은 시간대를 3월부터 시작했다.

학교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3월부터 시작해서 그다음 해 3월까지 보는 게 나았다. 그 전의 기억은 사실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야.]

입학식을 마치고 유수한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일진이라고 했으나 유수한은 그 어떤 것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무신경한 표정이었고 손목시계를 보며 집에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너 진짜 연습생이냐?]

유수한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유수한은 다른 학생과 거리를 두며 혼자 앉아 있었다. 무료한 표정이었고 갑자기 나타난 양아치 무리가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아닌데.]

짧은 대답.

[너 그럼 나중에 연예인 할 거냐?]

[그건 왜 묻는데?]

[그럴 거면 친구 하게.]

그 대답에 유수한이 피식 웃는다. 그 웃음은 긍정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상대를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투였다.

[웃어?]

그 웃음의 의미를 이 양아치가 모를 리가 없다. 유수한은 입을 다물고 상대의 명찰을 보았다. 명찰이 없다. 미간을 좁힌 유수한이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너 따위하고 친구를 해야 하지?]

유수한은 학교에서 친구 따위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학교생활에는 큰 감흥이 없었고, 내년에 영국으로 유학 갈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이 학교에서의 인맥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더군다나 일진 놀이나 하는 애들?

더더욱 관심 없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냐?]

[알아야 하나?]

[아는 게 좋을 텐데.]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꼬리 잡지 마, 새끼야.]

점차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유수한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수많은 일진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은 그들이 괴롭히는 대상이 아닌, 그들의 일진 생활을 빛내 줄 좋은 먹잇감이었다.

잘생겼다는 건 권력이었기에, 그 권력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지려는 속셈인 것이다. 그 사실을 유수한 또한 알고 있었기에 권력을 나눠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잘생겼다고 좀 봐주려 했더니, 심하게 기어오르네?]

쾅!

책상을 걷어찬다. 유수한은 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다가, 결국 허리를 굽히며 끅끅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뇌 없는 새끼들 하고는 말 섞고 싶지 않다니까.]

유수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름이 뭐냐?]

[뭐라고?]

[나는 유명해서 네가 내 이름을 알지만, 난 너 따위 이름을 모르거든.]

[이 새끼가!]

순식간에 덤벼든 양아치가 유수한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변에 서 있던 양아치 두 명이 달려와 뜯어말린다. 그 순간마저도 유수한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종혁아, 참아! 네가 참아!]

참긴 뭘 참아.

[네 이름이 종혁이냐? 성은 양이려나? 양아치니까, 양종혁?]

유수한은 그냥 말장난을 했을 뿐이었다.

[헐, 어떻게 알았지?]

[맞아? 양아치라 진짜 양 씨였나 보네?]

[좋은 말 할 때 그 입 다물어라.]

착 가라앉은 목소리.

유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양종혁의 눈을 마주했다.

[너 나 못 때리잖아.]

유수한은 이미 예전부터 유명했다.

얼굴이 잘생겨서 걸어 다닐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고 때때로 길거리 캐스팅도 당했다. 이 근방에서 유수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유수한을 알았고 더불어 그의 집안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나 건드는 순간 네 인생 종 치니까.]

아니.

[네 가족도 함께 종 치니까?]

유수한은 알고 있다. 얼굴만큼 권력을 주는 건 돈이라는 것을. 태어나자마자 유수한은 손에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다.

잘생긴 외모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부모의 힘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유명한 변호사였다. 돈이 되는 사건이라면 모두 맡았고 승소를 가져오는 유능하고 무자비한 변호사. 아버지 역시 무시 못 할 직업이었다.

[뭐 이 새끼야?]

양종혁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면서도 유수한의 멱살을 잡고 흔들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유수한이 깊은 한숨을 쉰다.

[참아! 종혁아, 네가 참아!]

[뭘 참아, 또라이들아.]

유수한이 같잖다는 듯 양종혁의 멱살을 뿌리치며 말했다.

[양아치 양종혁이가 이 꽉 깨물고 참는 거 안 보이냐?]

[뭐라고?]

[양종혁이가 나 건들면 좆 되니까 꼬리 말고 바들바들 참고 있잖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대한은 감탄하고 있었다. 유수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다. 유수한을 간접적이나마 마주했던 기억은 서울역이 끝이었다.

유수한은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양종혁이 얼굴을 붉히고 수치심과 분노에 벌벌 떨 만큼 조소를 잘 날렸다.

[종혁아.]

유수한이 구겨진 셔츠를 정리하며 양종혁에게 다가갔다.

툭툭.

씩씩거리는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양종혁은 이를 악물고 유수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일진 짓 하든 말든 그건 상관없는데.]

[…….]

[상대는 가려 가며 하자.]

[…….]

[날 때릴 용기도 없으면서 나대지 마.]

김대한은 상황을 지켜본다. 지금까지 유수한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사실 김대한은 유수한이 일진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한다. 여기서 일진은 누가 봐도 양종혁이었다. 그렇다면 양종혁이 앙심을 품고 유수한을 끌어내리기 위해 거짓된 글을 쓴 걸까?

아직 확실치 않다. 김대한은 양종혁을 유심히 지켜보며 유수한의 기억을 따라갔다.

[야, 우현이 고추 좀 볼까? 어디 얼마나 실하나 까 보자.]

어느 학교든 일진은 존재했고 그 일진에게 눌려 사는 피해자 역시도 존재했다. 유수한의 반에도 피라미드 권력 구조가 있었다.

양종혁은 유수한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유수한은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수한이 아무것도 아닌 중산층이었다면 힘으로 짓눌렀을 테지만, 그의 집안은 상류층이었다.

양종혁이 차마 건드릴 수 없는.

[이, 이러지 마…….]

이 학교에서 양종혁의 먹잇감이 된 사람은 최우현이었다. 키도 작고 볼품없는 체구였으며 안경을 쓴, 전체적인 분위기가 음울한 아이였다.

부모의 욕심 탓에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최우현의 집안이 그리 풍족한 편은 아니라는 건 이미 소문이 퍼졌다.

볼품없는 외형과 돈이 없다는 것은 때때로 약점이 된다. 최우현은 그 약점을 극복할 만한 힘이 없었다. 차라리 공부를 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의 성적은 중간에 살짝 못 미쳤다.

[야, 여자애들 지나간다!]

드르륵.

교실 문이 활짝 열린다.

[뭐야, 더러워!]

양종혁은 최우현의 자존감을 박살 내고 있었다. 일부러 문을 열어 여자애들이 보게끔 했다. 다행히 속옷까지 벗긴 것은 아니었지만, 최우현에게 수치심을 줄 만한 순간이었다.

김대한은 말없이 최우현을 바라보았다. 유수한을 저격했던 학폭 피해자는 최우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가 당했다는 모든 괴롭힘은 유수한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서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있는 사람은 양종혁이었다. 물론 유수한은 그런 양종혁을 짓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수한은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누굴 괴롭힐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왜 최우현은 유수한을 저격한 걸까.

‘더 찾아 보자.’

기억을 따라간다. 가끔 빨리 감기를 하며 불필요한 내용을 넘겼다. 아직은 확실한 정황이 나오지 않았기에 섣불리 스킵은 누르지 않았다.

[뭐야?]

유수한은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 쉴 생각이었다. 양종혁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학교를 탈출했다. 평소라면 최우현을 붙잡고 가지고 논 후에 돌아갔을 테지만, 오늘은 급한 약속이 있어 보였다.

[잠,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 줄 수 있어……?]

유수한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최우현이었다. 초조한 듯 손을 가만 두지 못하는 모습이 유수한의 눈에도 보였다.

[짧게 해.]

한숨을 쉬며 유수한이 최우현을 보았다.

[내가 정, 정말 죽을 것 같아서 그, 그러는데, 네가 이런 일 싫, 싫어한다는 것도 아는데…….]

[짧게 말하라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최우현이 어깨를 움찔한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말이 길어져서…….]

유수한은 귀찮았다. 최우현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며 말을 건네는 것도 귀찮았고, 무슨 말을 할지 알 듯해서 더더욱 귀찮았다.

[양, 양, 양종혁 말이야…….]

최우현은 양종혁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지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날, 날 너무 괴, 괴롭히는데, 좀 도, 도와줄 수 없, 없을까……?]

하아.

유수한이 다시금 한숨을 쉰다. 의자에 앉은 채로 팔짱을 낀다. 유수한은 고개를 푹 숙인 최우현을 보았다. 애석하게도 유수한은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유수한에게 보이는 최우현은 그저 힘없는 개미였다.

콱, 밟으면 터져서 죽어 버리는 힘없는 개미.

[내가 만만하냐?]

유수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따위가?]

양종혁이 주제도 모르고 친구 하자며 다가왔을 때보다 더 기가 찬다. 이미 유수한의 머리에서 최우현은 벌레나 다름없었다.

유수한은 이 교실 안에 놓여 있는 피라미드에서 양종혁 머리 위에 앉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최우현은 제일 밑바닥이었다. 그 밑바닥이 감히 상류층에게 부탁을 한다. 유수한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가 왜 그러고 사는지 알아?]

유수한은 차분하게 독설을 날렸다.

[넌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니까. 아무것도 없잖아, 넌?]

그 말에 최우현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지금 최우현은 최선의 방법을 강구했고 그게 유수한이었다.

[난 바퀴벌레 도와주는 취미 따윈 없다.]

유수한은 양종혁을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다.

그가 도와준다면 최우현은 이 진창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용기를 낸 것이다. 선생님에게 말한다고 해서, 부모에게 말한다고 해서 쉽게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잠깐만……!]

걸음을 옮기던 유수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뒤돌아보니 최우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너 연, 연, 연예인 될 생각 있어?]

그 물음에 유수한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난 네가 꼭 연, 연예인이 되었으면 좋, 좋겠어.]

[뭐라는 거야.]

유수한은 최우현을 무시하고 교실에서 나갔다. 김대한은 이다음 순간을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유수한은 이미 교실에서 나갔기 때문에 최우현을 더 볼 수가 없었다.

17세 유수한이 모르는 기억, 최우현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야 바퀴벌레도 널 끌어내릴 수 있잖아.]

* * *

팟!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환해졌다. 유수한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심호흡했다. 유수한의 17세 기억이 여전히 선명했다.

1년이란 세월을 모두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기억이 밀려오는 듯하면서도 지난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되감기나 빨리 감기 같은 기능이 있었고 잠시 정지를 한다거나 스킵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최대한 모든 순간을 보기 위해서 스킵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곤했다.

“유수한은 일진이 아니었어.”

물을 마시고 숨을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최우현.”

17세의 기억을 보아 학폭 의혹 글을 쓴 사람은 최우현이 확실했다.

“그 글의 내용은 유수한이 한 짓이 아니야.”

최우현이 나열한 학폭 내용은 양종혁의 짓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양종혁을 비롯해 그와 함께 다니던 박현석, 이호태의 짓이었다. 하지만 최우현은 그 모든 책임을 유수한에게 돌렸다.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그런 말도 하지 말지.”

한숨을 푹 쉰다.

해결 방법을 생각한다. 다행히 유수한은 일진이 아니었다. 최대한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고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운 좋다면 그를 흠모하던 그 당시 여학생들이 두둔하는 글을 써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불확실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유수한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최우현이 유수한에게 바라는 건 뭘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역시.”

답이 나온다.

“최우현을 만나야 해.”

유수한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1년이라는 기억을 둘러보고 왔음에도 시간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체인지 라이프]는 알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유수한은 차분히 노트에 생각을 정리했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최대한 빠르게 학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네, 대표님.”

그리고.

유수한은 바로 이성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일진 아니었습니다. 그 글 쓴 사람 최우현이라는 애고요. 그 최우현을 괴롭히던 일진은 따로 있었습니다. 일단 그 학폭에 대해서는 저는 무관하구요. 일단 글 내용과 그때 당시 제 상황이 맞지 않아요. 이 내용은 정리해서 메일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최우현.”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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