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학폭 가해자
시상식 다음 날.
유수한은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켠다. 오늘은 운동 약속이 없었다. 새해는 보통의 사람은 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별다를 게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유를 한 컵 마시고 가볍게 샤워를 한 후에 어제 받은 트로피를 구경했다. 하나둘, 진열장에 채워지는 트로피를 보자 웃음이 나온다.
그다음은.
“미팅이 이틀 남았네.”
영화 시나리오를 연구하는 일이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대본을 읽는다. 불안하거나 초조한 마음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잘 풀렸다. 마음은 편안했고 걱정도 없었다. 오전 시간이 지나고 슬슬 허기짐을 느낄 즈음.
[연예뉴스] 새해 첫날에 터진 학폭 논란 …… 최우수상 받은 Y모 배우는 누구?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수한은 상황 파악이 늦었다. 시상식이 끝난 후에 에이트판에 올라온 글은 묻히는 듯하다가 서서히 조회수가 늘어 가며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당연히 이 자극적인 소식을 기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하나둘, 대형 포털 사이트에 학폭 관련 보도 자료가 올라왔고 Y모 배우는 누가 봐도 유수한이었다.
“뭐지?”
유수한이 이상함을 느낀 건 점심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익숙하게 핸드폰을 보는데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찍혀 있었다. 대본을 볼 때는 집중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무음 상태로 돌리는 유수한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빗발치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어, 민수야. 무슨 일 있어?”
불안하다.
메시지를 확인도 하기 전에 매니저에게 우선 전화를 걸었다.
[형, 왜 이제야 전화를 받아요?]
매니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데?”
[형, 지금 학폭 떴어요! 모르고 있었어요?]
“학폭?”
학폭, 학폭이라면-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줄임말을 몰라도 학폭이라는 말을 모르지 않았다. 특히 연예인에게는 조심해야 할 사고였다. 요즘 톱 연예인이어도 ‘학폭’ 문제가 터져서 내리막길을 걷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다.
[형, 그거 진짜예요? 아니죠? 아무리 형이 막장이었어도 설마 그런 짓까지…….]
유수한은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직 문제의 글을 읽어 보지 못했다. 물론 확인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김대한은 유수한의 과거에 대해서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사실인지 아닌지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형, 무슨 말이라도 해 보세요!]
지금 유수한은 패닉 상태였다. 제대로 글도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과거 유수한 행적을 보아 거짓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야. 잠깐만…….”
해결 방법이 있나?
물론 학폭이라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반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기에 학폭이 터질 경우, 대다수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단…….”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도 상황 파악이 필요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모르거든.”
[형님, 고등학생 때 일진이었어요?]
“몰라.”
알고 있다면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나 머리 다쳤잖아.”
차라리 다행인가.
이렇게 핑계 댈 말이라도 있어서.
“고등학생 때 기억이 흐릿해.”
매니저는 유수한의 말에 쉽게 납득했다. 지금까지 매니저나 이성실 대표는 유수한이 머리를 다친 줄 알고 있었다. 머리를 다쳐서 기억 일부를 잃어버렸고 그 영향으로 성격도 달라졌다고 믿었다.
예전 김민수라면 유수한의 학폭설을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수한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의 유수한은 누굴 괴롭힐 사람이 아니었다.
[형, 일단 집에서 나가지 마세요. 기자들 깔렸으니까 조심하세요.]
지금 유수한은 모든 걸 던져 버리고 자연인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김대한은 유수한이 되어서 배우로서 차근차근 성장해 왔다.
어느 순간 노력이 통했다고 믿었고 이제야 편안히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기존 유수한의 업보는 끝도 없이 밀려왔다.
[근데 대표님이 계속 찾으시는데 어떡하죠?]
유수한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상황 파악하고 전화드릴게.”
비겁하게도.
“우선 사실무근이라고 보도 자료 준비해 달라고 말씀드려 줘.”
유수한은 학폭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을 선택했다.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했다.
지금 유수한은 김대한이었다. 지금까지 유수한의 업보를 수없이 마주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다.
“일단, 확인부터…….”
심호흡을 한다. 이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유수한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았다. 초조한 마음에 손이 덜덜 떨린다.
“어?”
[라이프 체인지] 지금 바로 돌발 퀘스트를 수행하세요!
처음으로 [라이프 체인지]에서 돌발 퀘스트가 도착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라이프 체인지]는 포인트 알림만 간간이 울렸을 뿐, 따로 퀘스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게 뭐야.”
상세 내용을 확인하던 유수한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라이프 체인지] 48시간 내에 학교 폭력 가해자 의혹을 해소할 것!
[라이프 체인지] 실패 시 –500 포인트 부과
“마이너스 500 포인트?”
이제는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일이 제대로 꼬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유수한은 [라이프 체인지] 시스템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포인트를 쌓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고 시간만 지나면 수월하게 본품을 구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이렇게 쉬울 리가 없었는데.
[라이프 체인지] 47:58:31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48시간이라면 이틀이었다. 그 시간 동안 의혹을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의 선물인 줄 알았는데.”
문득 씁쓸함이 번진다. 만약 유수한의 학폭이 사실이라면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고도 아니고 학교 폭력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피해자에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유수한의 나락은 시간문제였다. 더군다나 500 포인트까지 차감당한다. 아직 체험판 연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본품 구매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다.
배우가 아니라면 다시 김대한은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정신 차리자.”
이제는 화도 안 난다. 그럴 기운도 없었고 상황 파악이 급선무였다. 유수한은 대형 커뮤니티에 올라온 학폭 의혹 글을 읽었다.
“고등학생 때라.”
김대한이 알기로 유수한은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고등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던 해에 영국 유학을 갔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유수한은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영어를 쓸 일이 있으면 미국식보다는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었다.
“일단 오류가 하나 있군.”
이미 시간이 꽤 흘렀기에 피해자라고 해도 기억상 오류가 있을 수 있었다.
“고2 때는 유수한이 한국에 없었는데?”
유수한은 다시 말하지만, 18살이 되던 해에 영국으로 떠났다.
마저 글 내용을 읽었다. 주된 내용은 유수한은 일진이었고 잘생긴 얼굴로 인기가 좋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유수한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이 이 글쓴이의 주장이었다.
“폭행.”
하나하나 큰 줄기의 괴롭힘을 정리해 본다.
“성추행.”
유수한은 이 글쓴이를 폭행한 것도 모자라 학생들 앞에서 옷도 벗긴 모양이다. 그 치욕을 견딜 수 없어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품 갈취.”
사실 유수한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김대한 역시도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왔다. 고아였고 제대로 몸을 챙길 여력이 없었기에, 늘 볼품없었던 그였다. 지금 학폭 의혹 글을 올린 글쓴이만큼 당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쓰레기 새끼.”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마음이 복잡했다. 김대한이 보기에 유수한은 이런 행동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서 정황상 맞지 않는 이야기도 있었다.
첫 번째, 앞서 말했던 것처럼 기억의 오류가 있었다. 두 번째는 금품 갈취였다. 유수한은 유명한 금수저였다. 배우가 되고 나서도 유명했던 것이 그의 집안이었다. 돈에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는 그였기에, 코 묻을 돈을 탐할 이유가 없었다.
유수한이 고등학생이어서 돈이 없었을까?
그깟 돈 몇 푼 뜯는 게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싫다.”
유수한으로 살기 위해서 이 글의 허점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기존 유수한은 분명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만약 김대한이 이 몸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배우로 재기하는 일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유수한에게는 죽음이 옳은 결말이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결말이 맞다.
유수한 같은 쓰레기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옳았다. 늘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외면해 왔다. 되레 유수한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딛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빛유/자유] 전 오빠 믿어요. 우리에게 했던 모습은 늘 진실한 사람이었으니까요. +28
[빛유/자유]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봐요. 저는 우리 배우님 믿어요... +35
또 팬들은 무턱대고 유수한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조롱을 당하면서도 유수한을 믿는다고 말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냉정해져야 한다. 감정에 동화되지 않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옳았다. 지금 유수한의 어깨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예전처럼 잃을 거 없는 폐급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후우.”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뜬 유수한이 숨을 깊게 내뱉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바로 [라이프 체인지] 앱에 들어간 유수한은 바로 [아이템] 칸에 들어갔다.
“적어도 진실을 알고 판단하자.”
그게 유수한이 내린 결론이었다.
“왜 이런 아이템이 있을까 했는데,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둔 모양이군.”
유수한은 틈만 나면 아이템 리스트를 구경했다. 포인트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탐나는 아이템을 선뜻 살 생각을 못 했지만, 눈이 가는 아이템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일부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도 있었다.
[시간 여행자(S)]
이제는 알겠다.
“왜 이 아이템이 있는지.”
[시간 여행자(S)] 아이템은 유수한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보통 S급 아이템은 일회성 아이템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일회성에 불과했다. 원하는 시간대의 기억을 모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1년.”
기존 유수한의 과거를 궁금해하면서도 이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았던 이유는 엿볼 수 있는 과거가 고작 1년이었기 때문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알기 위해서 S급 아이템을 사기에는 효율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충분해.”
하지만 1년이라도 지금 유수한에게는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을 구입하시겠습니까?]
[YES][NO]
심호흡을 하며 [YES] 버튼을 눌렀다.
[100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순식간에 포인트가 사라지고 [시간 여행자(S)] 아이템 카드가 눈에 보였다.
[김대한 씨, 어느 시간대로 여행을 떠나실 건가요?]
알림창이 눈에 보인다.
유수한은 말없이 시간대를 고른다. 유수한이 고등학생이 되던 시기, 즉 17세. 기존 유수한의 17세 기억을 여행할 참이었다.
[유수한(체험판)의 17세의 기억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좋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즐거운 시간 여행 되세요.]
자, 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