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90화 (90/175)

90.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이게 말이 되냐?”

MBS ‘나의 하루’의 메인 피디 김성호는 뭔가 기분이 좋지 못했다. 집에서 맥주 한 캔 마시며 본방송을 챙겨 보고 있는데, 시청자 반응이 뜨거웠다. 메인 피디로서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이상하게 짜증이 난다.

“역대급 노잼이었는데, 이게 재밌다고?”

김성호는 유수한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전 인터뷰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뭔가를 만들어 보려고 제안을 해도 거절해서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지금 김성호는 프로그램 뽕이 차 있었다. 그 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하루’가 올해 히트 치면서 별 볼 일 없던 김성호도 자연스럽게 급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김성호는 자신을 굉장히 과신하고 있었다.

- 커피 마시는 거 화보다, 화보.

└ 존잘

└└ 진심 햇살 받으며 커피 마시는 게 이렇게 재밌을 일???

└└└ 영상 화보집 ㅇㅇㅇㅇㅇㅇ

김성호의 감정은 추악한 질투였다. 잘생긴 사람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남자로서 김성호가 봐도 유수한은 잘생겼다. 현장에서 유수한을 처음 보았던 김성호는 순간 넋이 나갈 뻔했다.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는데도 빛이 나는 듯했고 목소리마저 잔잔하며 좋았다.

“잘생긴 게 최곤가?”

예능 프로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기분이 축 처진다. 예능이라 하면 재밌을 만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연예인이 뛰어놀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얼굴이 모든 재미를 능가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오 피디 그 양반도 잘생긴 배우 데려다가 예능 찍나?”

오 피디도 주로 배우를 발탁한다. 물론 가끔 나이 든 중년 배우도 캐스팅하지만, 항상 그 옆에는 잘생긴 배우나 가수가 있었다.

-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잘생긴 게 최고야

└ 말 한마디 안 해도 얼굴 잘났으면 재밌음 ㅇㅇ

└└ ㅇㅈ 나 예전에 존잘하고 소개팅했는데 그냥 재밌더라

└└└ ㄹㅇ 잘생기면 아무 말 안 해도 웃겨 꿀잼임

그냥 기분이 나쁘다. 반응을 찾아보며 모니터링하던 김성호가 곰곰이 생각했다.

“하기야.”

그러다 납득한다.

“저렇게 생겼으니 얼마나 세상이 재밌겠어.”

저렇게 생겨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질투는 곧 부러움으로 번진다. 예능 피디가 되어서 잘생긴 사람은 자주 만나 봤지만, 그중에도 유수한은 특히 잘생겼다. ‘나의 하루’에 톱스타가 안 나온 것도 아닌데, 유수한은 유독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원래도 저렇게 잘생겼었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데뷔 초에도 잘생겼었나. 김성호는 맥주를 마시며 핸드폰으로 유수한을 검색했다. 데뷔 초를 찾아본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아우라는 없었다.

유수한의 데뷔 초는 근육 하나 없이 그저 마른 체형이었다. 지금은 관리를 통해 벌크업을 했고 그 덕분에 피지컬이 더 돋보였다. 얼굴도 작고 피부도 하얗다.

“아니, 무슨 남자 얼굴을 찾아보고 있어.”

쯧.

혀를 차던 김성호는 그러면서도 유수한의 얼굴을 계속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 화면을 보았을 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거 새끼, 잘생겼네.”

김성호의 질투는 유수한의 얼굴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패였다.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계속 힐끔거리며 보게 하는 외모였고 뭘 하지 않아도 빛나는 얼굴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김성호는 현재 입덕 부정기였다.

* * *

뭘 해도 잘 풀린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시기가 있다. 물론 김대한에게는 없었지만, 지금 유수한은 잘 풀리는 시기였다.

[연예뉴스]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나의 하루’ 11.7% …… 얼굴천재 유수한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 풀린다.

초반, 유수한이 되어 막막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주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다. 궤도에 오른 유수한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건 모든 연예인이 그랬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치명적인 사건이 아닌 이상,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농담이지, 보라야?”

“엥? 진심인데요?”

얘가 또 오버한다.

“그래도 속에 아무것도 안 입는 건…….”

“요즘 오빠 피지컬 좋다는 사람 많잖아요. 그래서 나름 준비한 건데.”

“내가 싫어.”

유수한이 딱 잘라 거절했다.

지금 유수한은 보라가 준비한 시상식 의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처음 보라가 보여 준 의상은 재킷 안에 아무것도 없는 의상이었다. 보라는 ‘나의 하루’를 유심히 지켜보았고 시상식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재킷 단추를 잠그면 그렇게 야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입고 싶지는 않았다.

“잘생긴 몸 왜 가린담.”

“아무튼 다음, 다음 보여 줘.”

다음은 정상적이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의상을 살펴보았다. 깔끔한 블랙 정장. 역시 뭐든 깔끔하고 흔한 의상이 좋다.

유수한은 의상을 입고 나왔다. 몸에 딱 맞았고 잘 어울렸다.

“역시 오빠는 피지컬이 깡패네요.”

“응?”

“다리도 길고. 얼굴도 작아서 입히는 재미가 있어요.”

“아, 그래?”

“중간에 잠깐 배 나와서 재미가 없었는데, 다시 흥미 돋음.”

“고맙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보라도 사람인지라, 옷걸이가 좋은 사람을 담당할 때가 더 일할 맛이 났다. 유수한은 옷걸이가 제법 좋은 사람이었다. 다리도 길었고 어깨도 넓어서 뭘 입어도 태가 났다. 무엇보다 얼굴이 잘생겼다.

“전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보라의 말에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첫 시상식을 경험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 해에 유수한은 상을 쓸어 담았다. 덕분에 포인트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라이프 체인지]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904>

요즘은 포인트를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지가 다다르자 유수한은 소소한 포인트 사냥을 곁들였다.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확률이 높았고, 포인트도 그만큼 넝쿨째 굴러올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요즘 웃음이 절로 나오는 유수한이었다.

“형, 무슨 즐거운 일 있어요?”

차에 타서 혼자 실실 웃는 유수한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그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은 일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말한들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민수는 백미러로 유수한을 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따 대표님이 하실 말씀 있으시대요.”

“무슨 얘긴데?”

“그 영화 관련이요.”

“아.”

그러고 보니,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성실은 현재 기획 단계라 조금 더 기다리자고 말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캐스팅 물망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고, 현재 주인공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네.”

영화 ‘내 심장을 쏴라’를 연출할 고운영 감독은 독립 영화계의 샛별이었다. 이미 실력이 검증된 감독이었기에 제대로 된 투자자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현재 물망 오른 배우만 하더라도 하나같이 톱이었다. 분명 고운영은 차례로 배우와 미팅을 가지며 간을 보고 있을 것이다. 누가 이 배역에 어울릴지 생각하며.

“네, 대표님.”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도 계속 핸드폰을 보게 된다. 이성실의 전화를 받은 유수한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 그 영화 건 말인데.

“네.”

- 일단 미팅은 잡아 놨다. 생각보다 경쟁이 심해져서 미팅 따는 것도 꽤 오래 걸렸어.

유수한은 드라마 ‘시간’ 이후에는 경합 없이 배역을 따냈다. 지금까지는 원하는 배역은 손쉽게 얻어 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렇기에 더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다.

- 우선 대본은 확실히 숙지해 놔. 그 감독 완벽주의자야. 연기할 때, 작은 숨소리도 신경 쓰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어떤 질문 할지 모르니까, 진짜 이 영화가 하고 싶으면 철저히 준비해라.

이왕 덤비는 거, 다른 배우를 제치고 역할을 거머쥐어야 의미가 있다. 그걸 유수한도 알고 있었고 이성실도 알고 있었다. 처음 이성실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직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가볍게 보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일단 고운영 감독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독립 영화를 하면서 눈도장 찍었던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려던 고운영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을 마주하고 방향을 틀었다.

키우고 싶은 배우가 있다고 한들, 아직 고 감독에게는 힘이 없었다. 먼저 본인이 먼저 성장해야 다른 사람도 끌어 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경쟁이 없었다면 지금은 있다. 확실한 투자를 받았고 제작사 역시도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니지먼트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배우를 밀고 밀어내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주 남았군.”

미팅은 2주 후였다.

그리고 그 전에 시상식이 있다. 작년 MBS는 12월 30일에 연기대상을 했지만, 올해는 31일에 열린다. 즉, 올해 마지막 날을 기분 좋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올해 MBS 대상 누가 탈 것 같음?

└ 오지철이 탈 듯

└└ 오지철 22

└└└ 유수한은?

└└└└ 장편 아니라서 유수한은 힘들어 ㅇㅇ

└└└└└ 유수한은 최우수각

아직 시상식이 시작도 안 했는데 커뮤니티가 부산스럽다. 올해 MBS는 좋은 드라마가 제법 나왔다. 오지철 주연의 ‘10억’은 도둑맞은 10억을 되찾기 위해 벌어지는 미스터리 추리극이었다. 로그라인은 단순하지만, 오지철의 능청맞은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꽤 좋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외에도 유수한의 ‘시한부 아빠’가 있었다. ‘시한부 아빠’는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유수한이 가세하면서 다른 분위기를 띄게 되었다. 시청률 역시 준수했으며 작품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새로운 대상 후보로 유수한이 부각되었다.

“삼촌!”

오랜만에 유빈이를 본다.

“우리 유빈이 오랜만이네?”

유빈이는 딱 나이에 맞는 의상이었다. 레이스가 달린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유빈이는 한층 더 큰 느낌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서진 씨.”

유수한이 앞에 서 있는 명서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시한부 아빠’ 주연 배우가 시상식에 모두 모였다. 유빈이는 아역상 후보였고 유수한과 명서진은 최우수상 후보였다. 그리고 유수한은 대상까지 후보에 올랐다.

“오늘 수한 씨 대상 받는 거 아니에요?”

명서진이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건넨다.

“아유. 제가 무슨 대상이에요.”

하지만 유수한은 김칫국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수한은 대상에는 관심도 없었다. 지금을 대상을 탈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단계를 밟아 가며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다. 큰 욕심은 가지고 싶지 않았다.

“왜요. 수한 씨 정도면 올해 대상 충분한데.”

“서진 씨, 그만 비행기 태우세요. 저는 대상은 꿈도 안 꿔요.”

유수한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시상식이 시작되고 유수한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상식을 즐겼다. 유빈이가 아역상을 받는 것을 진심을 다해 축하했고 올해도 인기상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차곡차곡 쌓이는 포인트를 보는 재미도 있었고 오늘 찾아온 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기분 좋았다.

어느새 올해가 지나가고 있다. 문득 유수한은 올해, 아니, 작년에 있었던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해였다. 특별 출연이지만 처음으로 영화를 경험해 보았고 ‘식사남녀’와 ‘시한부 아빠’도 찍었다. 더불어 고정 예능까지 생겼던 한 해였다.

[라이프 체인지]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930>

유수한은 쌓인 포인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 어느새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제 최우수상을 시상할 텐데요.”

어느새 최우수상.

유수한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심장이 뛰었다. 상을 받을 때는 언제나 기분 좋게 가슴이 뛰었다.

“축하합니다. ‘시한부 아빠’의 유수한 씨.”

일이 잘 풀린다. 유수한은 요즘 그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리고 앞으로 장애물은 없을 것 같았다. 성큼성큼, 화려한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유수한은 자신의 손에 들린 최우수상 트로피를 보았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에 미소를 짓는다.

“우선 솔직하게 말하면 상을 받아서 기쁩니다. 이런 상을 받아도 되나, 그런 생각도 하면서도 너무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손에 든 트로피의 무게를 느끼며 유수한이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유수한이 되면서 김대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매 순간, 찾아오는 행복에 감사하며 살았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일이 계속 잘 풀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상 소감을 마친 유수한은 잠시 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상을 손에 든 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90도로 굽힌 허리를 펴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인사를 한 유수한이 천천히 허리를 편다.

“감사합니다!”

늘 차분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유수한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순간, 힘껏 소리치고 싶었다. 그건 알 수 없는 확신이었다. 이제 유수한으로서 사랑만 받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에이트판] 어제 최우수상 받은 Y모 배우는 학폭 가해자입니다.

그리고.

유수한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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