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얼굴이 유잼
MBS ‘나의 하루’ 제작진은 생각보다 정적인 유수한에게 놀랐다. 이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인 강민주는 꽤 오랫동안 공들여 유수한에게 컨택했다.
물론 유수한이 사건 사고를 치며 몰락했을 때는 관심이 없었다. ‘나의 하루’에 나오려 하는 사람은 널렸다. 물론 탐이 나는 톱스타는 따로 있었지만, 그런 연예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야 한다. 강민주가 유수한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은 ‘시간’이 방영되던 시기였다.
재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유수한이 다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컨택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처음엔 막막했는데 편집하고 나니 괜찮네요.”
말 그대로 처음에는 막막했다. 유수한 컨택에 성공하고 구성을 짜기 시작했다. 매니저에게 연락을 해서 유수한에 대해서 짧게 인터뷰했다. 간혹 전화 인터뷰마저 꺼리는 배우가 많다 보니, 일차적으로 매니저와 접촉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인터뷰는 보통 서브 작가가 한다. 회의에서 어떤 방향으로 구성할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매니저와의 통화에서 건질 만한 게 없었다.
그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자면.
[배우님 취미가 있나요?]
그 질문에는.
[형님이요? 딱히 없는데. 아침에 운동하는 거 말고는 집에만 계세요.]
이런 답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배우님 친한 동료 배우 없을까요?]
서브 작가는 차분하게 노트에 내용을 정리하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아뇨? 예전에는 형님이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있긴 했는데, 요즘은 안 만나요. 술도 끊고 거의 수도승처럼 살거든요.]
아.
[그럼 혹시 반려동물 기르시는 거 있을까요?]
반려동물. 가끔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이 키우는 반려동물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취미도 없고 집에만 머물더라도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작은 분량을 만들 수 있다.
[아뇨? 혼자 사세요.]
통화를 이어 가던 서브 작가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진다.
[그럼 보통 쉬는 날 뭐 하세요?]
어떻게든, 뭐라도 건져 내야 한다.
[쉬는 날, 형님은 일찍 일어나서 운동 가시고요. 그다음에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대본 보시거나 텔레비전 보시거나. 그러다가 낮잠도 자시고요. 또 대본 보세요.]
낭패였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기에 작위적인 설정을 대놓고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좀 뜬 배우들은 협의라는 게 잘 안된다. 아니, 애초에 협의라는 걸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친히 나와 줬는데, 왜 이렇게까지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재밌게 해 줘야 해? 나 자체만으로도 재밌잖아?
보통 날고 긴다는 배우들의 생각은 이랬다.
[제가 생각해도 저희 형님이 그렇게 재밌는 분은 아니라서 걱정이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유수한 매니저 성격이 괜찮다는 점이었다. 가끔 톱스타를 상대할 때면 매니저마저도 톱처럼 구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매니저임에도 이런 인터뷰 전화를 받는 걸 귀찮아했고 가끔은 작가의 신분이 막내인지, 서브인지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에 고정 멤버는 가끔 막내에게 사전 인터뷰를 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톱에 가까운 게스트는 연차가 더 쌓인 서브가 담당하는 게 보통이었다.
[혹시 그럼 다른 배우분하고 만나는 모습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그 예능 ‘노예식당’에서 나왔던 분들이라도, 어떻게…….]
10년 차, 서브 작가 김은형.
이제 팀의 세컨드 작가로 호시탐탐 메인 입봉을 노리고 있는 김은형은 단 하나라도 건져 가려고 했다. 매니저에게 듣는 유수한의 성격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예전 유수한은 유흥도 좋아하고 뭔가 활달한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해 보였다. 그런 사람이 반려동물도 키우지 않고 취미라고는 운동뿐이다. 재밌는 그림이 없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형님 성격에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요.]
비밀?
[원래 형님이 예능 나가는 걸 싫어했거든요. 자긴 나가 봤자 재미없다고요. 저도 형님 설득한 거라 뭐라고 말 못 해요. 특히 이 프로그램은 자연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면 된다고 한 거거든요. 그래서 만약 상황을 만들어서 찍자고 하면 싫다고 하실 거예요.]
그게 비밀이었구나.
김이 팍 샌 김은형이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전화를 받는다. 10분 정도 더 통화를 이어 갔지만, 재밌는 구성을 할 만한 아이템은 전무했다.
그래도.
“당일에 약속이 생겨서 다행이야.”
메인 작가 강민주가 말을 이었다.
“우리 막내가 현장에서 고생했지?”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는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특히 공중파에서 막내는 최소 2년 차 이상, 입봉을 할 시기에도 막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중파 레귤러 프로그램에 알을 박고 있는 것만으로도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에 들어갈 기회가 오기 때문에, 막내를 하더라도 공중파에 머무르려는 작가가 많았다.
막내 작가 김효주는 현장에서 구성이 틀어지는 걸 가장 싫어했다. 이런 촬영에서 변수는 최악이다.
갑자기 유수한에게 약속이 생겨서 급히 보드게임 카페를 섭외해야 했다. 다행히 프로그램 이름이 있어서 섭외가 어렵지 않지만, 카메라와 조명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업주와 트러블이 생긴다. 그럴 때, 누가 커버를 쳐 주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피디가 분명 3시간이면 될 거라고 말해서 넉넉잡아 4시간 협의해서 섭외해도 딜레이 되는 게 촬영이었다. 항상 피디는 그런 식이다. 본인이 섭외를 안 하니까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딜레이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니에요. 촬영 잘 끝나서 다행이죠.”
김효주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방긋 웃었다. 뭐 어쩌겠는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 중에 하나가 김효주였으니, 그저 웃을 수밖에.
“선공개 봐요.”
김은형이 빙긋 웃었다.
“뭐, 김 피디님이 유수한 재미없다고 왜 섭외했냐고 하더니. 선공개 반응 폭발하니까, 태도 싹 변하는 거 봐요.”
작가진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작은 회의실. 피디가 없을 때는 자연스럽게 뒷이야기를 한다. 항상 피디는 그런 식이다. 잘 안되면 작가 탓, 잘되면 피디 덕.
“네가 이해해. 한두 번이니. 배우는 괜찮던데, 뭐 그리 심통 나서는.”
“진짜요. 수한 씨 정말 스윗하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작가들은 유수한에게 푹 빠졌다. 촬영이 끝나고 고생했다며 커피 한 잔씩 사 주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까. 보통은 스태프를 똥으로 보고, 피디에게는 잘해도 작가에게는 얄짤없는 사람이 널렸다.
“그래도 이렇게 공중파에 있을 때가 좋은 거야. 여기 있을 때는 잘하다가, 갑자기 케이블 가면 얼굴 싹 변하는 애들 많잖아.”
“그렇죠. 그나마 tnV는 좀 나은데 그보다 낮은 급 가면 돌잖아요, 다들 눈이.”
“근데.”
잠자코 있던 막내가 입을 연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신 발언.
“잘생기면 그냥 재밌지 않나요? 전 솔직히 딱히 구성 없어도 재밌던데.”
그 말이 맞다.
“그래서 선공개가 지금 폭발한 거야.”
메인 작가 강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 잘하는데 몸도 좋아. 얼마나 재밌니? 이게 바로 예능이지. 안 그러니?”
* * *
전날 공개한 선공개 영상은 딱히 뭐가 없었다. 유수한이 샤워하러 갈 때 상의를 벗은 모습을 집중해서 편집한 내용이었다. 샤워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는데, 운동을 하고 난 직후라서 근육이 펌핑된 상태였다.
“내가 이렇게 많이 벗었던가?”
상의를 벗은 모습이 세 번이나 나왔다. 알고 봤더니 전날, 씻으려 들어갈 때 찍힌 장면도 넣었다.
자막으로.
[이건 정말 미공개 컷! 촬영 전날 카메라에 찍힌 근육!]
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노리고 옷을 벗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청결한 이미지를 추구해서 샤워를 더 했지만, 그렇다고 벗은 몸을 자랑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HOT] 얘들아, 벌써 재밌다. 유수한 성난 근육 좀 볼래? +333
반응은 뜨겁다.
- 야, 미쳤다. 벌써 존잼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얼굴이 유잼임 ㅠㅠㅠㅠ
└└ 얼굴만 유잼이냐? ㅋㅋㅋㅋ
└└└ 캬, 흉부가 기가 막혀~
└└└└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선공개에서 유수한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샤워를 하는 것만 보여 주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단다.
- 와, 진심 잘생겼다 왜 예능에서 광고 찍어?
└ ㅇㅈ 무슨 보디로션 광고 찍는 줄
└└ 저 얼굴로 살면 인생이 얼마나 재밌을까?
└└└ 22 그냥 보는 나도 재밌는데 인생 대유잼이겠지;;;;
항상 생각하지만, 얼굴의 힘은 크다. 김대한이었으면 있을 수 없는 반응. 물론 김대한도 이해한다. 유수한이 되었을 때 가장 기뻤던 건 이 얼굴이었으니.
만약 김대한이 1조가 있었어도, 유수한의 빚이 1,000억이었다고 해도 유수한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얼굴이 전부는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 잘생긴 게 백번 낫지 않나?
[빛유/자유] 아, 설레요. 나의 하루 넘 기대기대 +5
[빛유/자유] 오늘 예능 함께 달려요! 아자! +8
팬 사이트 반응도 좋다. 막상 찍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이성실의 말대로 쉬는 날 뭐라도 하면 좋은 일이니까.
까득.
선반에서 아몬드를 꺼내 왔다. 아몬드를 먹으며 채널을 고정한다. 방송이 어떻게 편집되었으려나.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말했던 것처럼 사생활이 깊이 드러나는 예능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방송을 위해 더 깨끗이 집을 치웠다. 자신만의 공간에 사람을 들이는 것이 싫어서 직접 청소하는 편인데, 방송 때문에 대청소를 강행했고 끝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방송쟁이가 드나들고 나면 집은 엉망이 된다.
“시작하네.”
방송이 시작되었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아파트가 눈에 보이고 서서히 화면이 바뀐다. 시작은 거실을 지나 안방에 잠든 유수한의 모습이었다. 곤히 잠든 유수한의 얼굴이 보이고 이내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하아. 벌써 아침이네…….」
이제 고작 시작이었다.
- 다들 박수 치고 시작하자! 자, 유수한 얼굴에 박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찬양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놈 ㅋㅋㅋㅋㅋ
└└└└ 진심 얼굴 경이롭다... 얼천이야 얼굴천재 ㅠㅠㅠㅠㅠ
그저 잠에서 깨어나 알람을 끄고 일어났을 뿐이었다. 유수한은 정적이었다. 일어나자마자, CG로 후광을 넣어 줘서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다음은 안방에서 나와 우유 한 컵을 마시고 상의를 벗으며 움직인다. 툭, 입었던 잠옷은 빨래통에 던져 넣고 그대로 욕실에 들어간다.
- 걸으면서 단추 풀기 있기 없기?
└ 이 순간 빨래통에 들어간 잠옷이 되고 싶다
└└ 와 잠 덜 깨서 단추 푸는 거 존나 섹시하다 ㅠㅠㅠㅠㅠㅠ
유수한은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다. 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소리라고는 모두 생활 소음이었다. 샤워를 하는 모습이라든가, 상의를 벗은 모습은 전부 선공개로 공개된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재밌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뭐 입을까?」
샤워하고 나와서도 유수한은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딱히 입고 나올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옷을 새로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벗은 상태로 로션을 발랐다. 몰랐는데, 그 모습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나 보다.
그동안 유수한은 운동을 열심히 했다. ‘식사남녀’ 촬영을 제외하고는 식단도 철저하게 지키던 그였다. 그렇기에 유수한의 몸은 다른 배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좋았다.
어깨가 딱 벌어져 있고 복근도 선명하다. 흉부를 물론이고 온몸에 과하지 않을 정도로 근육이 탄탄하게 잡혀 있었다. 요즘은 예전처럼 얼굴만 신경 쓰는 시대가 아니었다. 말랐던 배우들도 하나둘 몸을 키우며 자신의 매력을 키우고 있었다.
- 그렇게 옷 벗으시면 제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나 본데, 오예입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22 존나 오예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 3333333
└└└└ 444 나 자꾸 입꼬리가 안 내려가 ㅠㅠㅠㅠ 미쳐 ㅠㅠㅠ
그러니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배우는 보여 주는 직업이었다. 그렇기에 외적인 모습을 가꾼다. 유수한이 벌크업 했던 이유도 거기서 나왔다. 잘생긴 얼굴에 매력을 더하기 위해서.
- 모자 압수! 모자 태워버려!
└ 외모를 왜 가리나요? 모자 OUT!!
└└ 33 인정 모자를 왜 씀??
└└└ 44444
다음 장면은 옷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 쓰는 장면이었다. 운동 갈 때 항상 모자를 쓰고 가는 유수한이었다. 연예인이었기에 부스스한 모습이 신경 쓰였다.
- 와, 모자 쓰니까 훈내 지림 선배 같아 선배라고 부를까?
└ 2222 모자 써도 잘생김이 안 가려져 ㅇㅇ
└└ 33 선배, 나 열나는 거 같아
└└└ 감기약 먹어라
자연스럽게 파가 갈린다. 모자도 잘 어울린다는 모자파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반모자파가 속속히 나왔으며.
- 난 중립 얼굴이 잘나서 쓰든 안 쓰든 ㄱㅊ
└ ㅇㅈ 얼굴이 유수한인데요?
└└ ㅇㄱㄹㅇ 걍 얼굴이 빛남
└└└ 얼굴이 중하지 모자 따위가 중하겠느냐
└└└└ ㅇㅈㅇㅈㅇㅈㅇㅈ
더불어, 중립도 생겼다. 유수한은 피식 웃으며 반응을 확인했다. 하도 정적인 성격이라 재미없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쏟아지는 반응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참 다행이다.”
잘생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