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유수한 효과
사실 유수한은 잘생긴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예전의 김대한은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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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렇게 얼굴로 찬사를 받는 게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 영화 볼 사람들은 스포 조심해라 진심 아무것도 모르고 봐야 함
└ ㅇㄱㄹㅇ
└└ 333333
└└└ 4444 절대 보면 안 됨
- 사냥개 안 본 눈 삽니다... 비주얼 쇼크 다시 느끼고 싶음..
└ 222 줄 서봅니다.. 안 본 눈 파세요
└└ 3333 안 본 눈 개부럽
└└└ 444444
└└└└ 5555555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잘생겼다는 말은 듣기 좋았다. 당연했다. 얼굴 잘생겼다는 말을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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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반응이 좋았다. 장현우 역할은 김승찬 감독이 준비한 히든카드였고 반응 역시 대체로 좋았다. 심지어 유수한 덕분에 영화 ‘사냥개’의 예매율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소리도 돌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유수한 효과였다.
역시 영화 출연은 특별출연을 감안하더라도 옳은 선택이었다.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준 건 물론이고 영화계에도 얼굴을 비추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연예토크] ‘사냥개’ 김승찬 감독 “유수한 고난도 바이크 액션 직접 소화했다”
서서히 유수한의 존재가 드러나자, 김승찬 감독은 유수한을 이용하여 새롭게 홍보를 시작했다. 유수한이 바이크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저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찐일까? 오토바이 액션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 감독피셜은 직접 했다는데 몰겠음
└└ 찐이면 존나 대박
└└└ 솔까 얼굴 깐 거 아니잖아 ㅋㅋㅋㅋ 양념 친 구라일 듯
김승찬 감독은 사실 그대로를 말했지만,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다. 단순한 액션도 아닌 바이크를 이용한 고난도 액션이었다.
- 유수한 밀어주기 오지네 ㅋㅋㅋ 하다 하다 이제는 오토바이 액션도 직접 했단다~
└ ㅇㅈ ㅋㅋㅋㅋㅋㅋ
└└ 그니까ㅋ 스턴트맨도 힘들어하는 걸 배우가 했다고???
└└└ 감독 유수한 덕 좀 보려고 빨아주는 거 보소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믿겠냐?ㅋㅋㅋㅋ
뭐, 직접 나서서 생색내는 건 성격에 맞지 않지만.
[HOT] 유수한 오토바이 연습 영상 떴다 +202
필요할 때는 생색을 내야 옳다.
이미 연습 영상은 K엔터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 특별출연이 반응이 좋자 연습 영상을 풀었는데, 사실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는 걸 믿지 않는 반응 때문에 더 서둘러 공개했다.
- 대박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
- 감독 립 서비스인 줄 알았는데 바이크 존나 잘 타는데???
- 저게 저렇게 쉽게 되는 거였음? 개 돌았네
- 저 얼굴로 사는 것도 부러운데 바이크도 잘 타네.. 무슨 기분일까?
└ 22 살맛 나겠다
└└ 3333
말로 할 때는 쉽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영상이 공개되자 바로 태세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요즘 유수한은 기분이 좋았다. 칭찬받는 것도 좋았고 영화가 개봉하면서 얻은 포인트도 좋았다.
[라이프 체인지]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705>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포인트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듯해 기분이 좋았다.
* * *
유수한은 ‘시한부 아빠’ 촬영을 위해 다이어트를 진행했다. ‘식사남녀’를 찍으며 행복하게 음식을 먹었던 지난날은 잊고 새로운 배역을 위해 몸을 만들었다.
주인공 ‘이진우’는 젊은 시절 복싱 선수였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혼자 살아온 이진우는 타고난 피지컬로 복싱에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는 복싱 선수로서 성공할 줄 알았지만,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이진우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발목이 으스러졌고 복싱 선수로서 재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미 포기에 익숙한 삶에서 또 포기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굉장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컷!”
유수한은 한창 드라마 촬영 중이었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액션 연기의 달인(S)]은 정말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복싱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진우는 복싱을 그만두었지만, 때때로 시비가 붙는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복싱 선수의 움직임이 나왔다.
“오빠! 수한 오빠아아악!!!”
요즘 유수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영화 ‘사냥개’는 어느새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초록빛 대본이었지만, 유수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사냥개’는 300만 관객 정도를 동원했을 것이다.
우습게도 유수한의 효과가 대단했다.
유수한을 보기 위해 재관람하는 여성 팬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고맙다, 수한아. 네 덕분에 500만 먹었다.
그래서 이정환은 가끔 이런 장난 섞인 문자를 유수한에게 보내곤 했다. 유수한은 인기에 취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야외 촬영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는데, 그 모습을 보는 건 여전히 신기하기만 했다. 어디서 소문이 나서 야외 촬영 할 때마다 찾아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레디, 액션!”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유수한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가볍게 잽을 날렸다. 오늘 촬영은 가벼운 액션이 가미된 장면이라 몰린 사람들이 더 웅성거리고 있었다.
“컷!”
결국 중간에 촬영이 중단된다.
“죄송한데, 촬영할 때는 조금만 조용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여기저기서 진행팀이 몰려든 사람들을 자제시키고 있었다. 유수한은 그 모습에 멋쩍은 듯 웃었다. 야외 촬영은 늘 까다롭다. 허가를 받고 촬영하는 거라고 해도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드라마 콘셉트상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기 때문에 199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겨야 했다. 지금 촬영하는 동네는 개발이 되지 않아 유동 인구가 없는 지역인데도, 유수한이 나타났다 하면 사람들이 몰려왔다.
다시 촬영이 이어진다. 유수한은 최대한 빨리 촬영을 끝내기 위해 실수 없이 움직이려 노력했다. 얼굴 표정에도 신경 썼고 움직임은 날렵했다.
“컷! 좋습니다!”
드디어 OK 컷이 나왔다.
날씨는 날이 갈수록 추워지고 있었다.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고 촬영은 어느새 막바지에 돌입했다.
[연예이슈] 유수한 효과, 과연 MBS ‘시한부 아빠’에도 통할까?
첫 방송 날짜가 다가오자 관련 보도 자료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수한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과 달랐다. 드라마 ‘식사남녀 시즌1’도 성공했고 오 피디 예능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심지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 ‘사냥개’에서도 특별출연으로 빛을 보니,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부담이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 욕만 먹는 배우가 되어서 직접 거리 홍보를 뛰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감지덕지였다.
[연예뉴스] MBS ‘시한부 아빠’ 첫 방송 임박 …… 관전 포인트는?
시간이 성큼성큼 흐른다.
[온에어/불판] 얘들아~ MBS <시한부 아빠> 같이 달리자~ ٩( ᐛ )و
MBS ‘시한부 아빠’ 첫 회가 방송되었다.
* * *
유수한은 커피를 마시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 가장 떨리는 순간은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꿀꺽.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시고 화면에 집중했다.
「다 먹었으면 차 한잔하겠소?」
허리가 살짝 굽은 중년 이진우는 길에 쓰러진 노숙자를 집에 데리고 왔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에 모은 돈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지냈던 이진우는 못내 씁쓸함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길에 쓰러진 게요?」
이진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과 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허기져서. 이 나이 되면 시도 때도 없이 허기지다 보니, 힘이 쭉 빠져서 그대로 넘어졌지. 일어날 기운은 없고 이대로 얼어 죽나 하던 찰나에 당신이 날 구해 준 거지.」
「구해 주기는. 그저 보잘것없는 밥 한 끼인 것을.」
유수한은 집중해서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역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 가야 한다. 젊은 이진우의 톤이 달라진다고 해도 감정의 곁은 같아야 했다.
촬영하면서 그 부분에 가장 신경 썼다. 젊은 이진우만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든 이진우의 모습도 조화롭게 표현되어야 했다.
「원하는 것이 있소?」
그 물음에 이진우가 옅은 미소를 짓는다.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이진우는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손에서 늘 빠져나갔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 여자를 밀어냈던 사람이 이진우였다.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욕심도 사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후회스럽고 욕심만 늘어간다.
「내 몸은 수척해져 가는데,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욕심만 드글드글 찼지.」
이 속에.
이 가슴속에…….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도 눈길이 가고. 다른 걸 얻게 되면 또 다른 걸 탐하게 되는 것이 사람 욕심이니.」
노인의 말에 이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고 싶다. 시한부 인생을 넘어서 가지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더 잘 살 수 있는데. 그때 그 여자를 이 손에서 놓지 않았을 텐데. 소중한 가정을 꾸리고 지금처럼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원하는 것이 계속 사는 것이오?」
이진우가 피식 웃는다. 주름진 손으로 찻잔을 매만지던 이진우의 눈빛이 차츰 가라앉았다.
「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든 이진우가 노인을 보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마 사랑이겠지.」
「사랑?」
「날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
「가족.」
노인이 은은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를 골몰히 바라보는 듯했고 느릿하게 따뜻한 모과차를 마셨다.
「차 잘 마셨네. 찻값은 내 꼭 보답하지.」
툭.
찻잔이 내려앉는다.
「자네는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길 바라네.」
어느새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빈 찻잔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노인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공간이 달라졌다. 부엌이 딸린 단칸방에서 생활했던 이진우였다. 그리고 노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허.」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가 귀에 들린다. 이진우는 분명 집에 있었는데, 지금은 집이 없었다. 바닥에 앉아 있고 남아 있는 거라고는 작은 앉은뱅이 식탁과 찻잔뿐이었다. 가장 그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노인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죽어 가니 이제 헛것까지 보는 건가.」
지금 이 자리에는 젊은 이진우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