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75화 (75/175)

75. 유수한의 다정 모멘트

녹취록?

녹취록이 있었어?

[여기서 접고 병원부터 가는 게 어떻겠소?]

아찔하다. 설마 현장에서 녹음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음질은 또렷했고 기사와 다른 분위기였다. 허성학은 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캐디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아니, 왜 안 받아?”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식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다.

모든 눈이 허성학에게 닿아 있었다. 한바탕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허성학은 아직 유수한 측이 낸 반박 기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 파악이 안 된 얼굴이었다.

- 아, 해결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허성학은 큰소리 뻥뻥 쳤다. 어차피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캐디가 거짓말로 인터뷰했다고 발뺌하면 그만이었다.

“이, 이게 뭐야…….”

새로운 기사.

[연예뉴스][단독] “모두 허성학 기자가 사주한 일.” K모 캐디, 유수한 부친 갑질 논란 양심 발언

계속 캐디는 허성학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자, 허성학은 못내 불안해하고 있었다.

결국,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데일리연예][단독] L법무법인 이은영 변호사 “남편의 억울한 논란, 아들의 명예훼손 좌시할 수 없다.” 허성학 기자를 향한 법적 대응 예고

“망했다.”

이제야 실수했다는 걸 깨닫는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는 사실도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까지 유수한에게서 잡은 특종은 ‘사실’을 기반으로 둔 운 좋은 특종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사건 조작도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만 잡음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허성학은 뚝뚝 떨어지는 주가와 함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 * *

[HOT] 커뮤니티에서도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feat.Y모씨) +588

상황이 달라졌다.

유수한은 녹취본을 이성실 대표에게 전달했다. 이성실 대표는 문제의 캐디를 찾아가서 설득이 아니라 협박을 했다.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계속 버티고 있다면 허성학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협박이었다.

- 가마니 한다고 욕 박던 사람들 다 어디 감? ㅋ

└ 22222 가마니 한다고 유수한 팬몰이 함 ㅅㅂ

└└ 33333 아, 유수한 안 좋아한다고요! 그냥 이상했다고요! 그래서 중립 박았다고요!

└└└ 44 이게 실화냐? 욕 박던 인간들 싹 사라짐

└└└└ 55555 댓삭튀 존많

커뮤니티 여론도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HOT] K모 캐디 양심 발언 “전부 허성학이 시킨 거다” +242

뒤이어 K모 캐디의 발언도 대형 커뮤니티에 속속히 올라오고 있었다. 짧았지만, 유수한은 마음고생을 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될까 봐 못내 두려웠다.

- 결국 둘이서 짜고 친 건데, 뒤늦게 기레기한테 덮어 씌우는 거지? 지 살라고.

└ ㅇㅇ 같이 죽기 싫어서 도망친 듯

└└ 빼박 유수한한테 돈 뜯으려고 거짓말한 거 같은데?

└└└ 좆됐다 하고 튀는 거지 뭐

└└└└ ㅉㅉ 못났다 못났어

- 진단서 뭔데 ㅋ 팔 다친 거라며 ㅋ 얼굴 어떻게 된 건지 해명 좀 ㅋ

└ 그니까 ㅋㅋㅋㅋ 얼굴 맞았다며 ㅋㅋㅋㅋㅋ

└└ 진단서 제출도 그럼 허윈가?

└└└ 해당 병원 측 이야기는 얼굴이 긁혀서 오긴 했대

└└└└ 일단 한방병원에서 에바임

└└└└└ 22 한방병원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교통사고 나면 한방병원에 드러눕잖아

- 기레기 고소 당하니까 똥줄 탔나 보네 바로 기자 손절치는 거 봐 ㅋㅋㅋㅋㅋ

└ 222 돈 뜯으려다 좆됐다고 생각할 듯

└└ 3333333

- 아니, 내가 어제도 말했다니까? 진단서도 그렇고 입원하는 것도 그렇고 이상했다니까;;

└ 딱 봐도 연예인이니까 돈 뜯으려는 속셈 보였음 ㅇㅇ

└└ 연예인이 호구도 아니고... 유수한 고생했다;;

└└└ ㅇㄱㄹㅇ 연예인에게 한몫 단단히 뜯으려고 했던 모양

└└└└ 빨리 밝혀져서 다행이지 유수한이 뭔 죄냐 진짜

물론 K모 캐디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이성실은 모든 죄를 허성학에게 돌리려 했다. 이 상황을 모두 계획한 사람은 허성학이었고 가만두면 유수한을 끝까지 괴롭힐 기자였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물론 K모 캐디 역시 잘못이 크지만, 가만두는 이유는 냅두면 알아서 망할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사채까지 끌어 쓴 마당에 이번 일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그의 인생은 이미 떡락 중이었다.

- 나 저 캐디 알아 ㅋㅋㅋㅋㅋㅋ 쟤 존나 양아치임 ㅋㅋㅋㅋㅋ

└ 헐 ㄹㅇ임?

└└ ㄱㅆ) ㅇㅇ 쟤 학교 다닐 때 일진이었음

K모 캐디는 네티즌의 집요함 덕분에 신상이 밝혀졌고 주변인에게 이미 소문이 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더 하지 않아도 그 죗값을 받고 있었다.

[HOT] K엔터 이성실 대표 “악플 법적 대응 진행 중 …… 선처 없다” +169

그리고.

이성실 대표는 악플 자료를 정리해 신속하게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 덕분에 대형 커뮤니티에 달렸던 유수한의 악플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었지만, 예외는 없었다. 이미 자료는 K엔터에 남아 있는 상태였으니.

- 으이그 또 고소 메이트 나타나겠네

└ 22 같이 고소 당하려고 유수한 예전 병크 끌고 올 듯

└└ 333 또 모르고 손 놀리다가 고소당할 인간 존많문

└└└ 44444444 모르는 것도 죄다 죄

└└└└ 55555 어지간히 이해가 안 간다 왜 악플을 쓰냐?

고소 메이트.

연예인이 악플 처단을 위한 법적 대응을 하면 일어나는 일이었다. 같이 함께 경찰서로 갈 사람을 구한다고 해야 하나. 해당 연예인의 지난 사건 사고를 끌고 와 악플을 달게끔 유도하는 일이었다.

즉, 나 혼자 죽진 않을 거라는 못된 마인드였다.

- 아, 사이다 먹은 기분임! 내 돌도 이렇게 좀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좋겠다 ㅅㅂ

└ 22 진심 선처해 주면 안 됨 악플러는 선처해 주면 정신 못 차리고 또 쓴다

└└ 3333 내 돌도 악플 개 심한데 선처는커녕 고소도 안 해...

└└└ 4444444444 악플다는 새끼들은 고소길만 걸어야 함!!!

└└└└ 555 소속사가 일 잘하네

참 기분이 묘했다.

한순간에 여론이 달라진 걸 보니 입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익명이라 해서, 모니터로 보이는 세상이라고 해서 현실과 다른 점은 없었다. 모니터 너머 사람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늘 망각하며 산다.

유수한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왔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짧게 생각을 한다. 어제 유수한은 차마 팬사이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글이 올라왔을지 분위기는 어떤지 겁이 나서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빛유/유수한♡]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유수한은 장문의 글을 팬사이트에 올렸다.

* * *

한 처먹은 팬은 강력하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출근한 이경민은 굉장히 피곤한 얼굴이었다. 왜 잠을 못 잤느냐 하면 유수한 때문이었다. 갑자기 터진 병크는 이경민을 몹시 괴롭게 했다. 일단 유수한 자체의 병크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가족과 관련된 거라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각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악플과 싸웠다. 갑질 논란이 사실이라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적나라한 악플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마음 아파…….”

오늘 유수한의 글이 올라왔고 이경민의 눈이 촉촉해지고 있었다.

전날, ‘빛나는 유수한’ 팬사이트도 들썩거렸다.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유수한을 믿겠다는 반응과 못 참고 탈덕하겠다는 반응이 뒤섞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그로까지 몰려와 유수한을 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경민은 정신이 하나 없었다.

운영자로서 팬과 어그로를 구분하고 글을 삭제했지만, 삭제하는 것만으로도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소중한 여러분이 제 개인 일 때문에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죄스러웠습니다.]

유수한의 글은 흩어지던 팬들을 하나로 다시 뭉치게 했다. 그리고 그의 글은 팬이라면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늘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그 생각과 다르게 저는 아직도 모자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이경민은 눈물을 훔치며 유수한의 글을 마저 읽었다.

[더 노력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오늘 이경민은 잠도 포기하고 악플러와 싸웠기 때문에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마음은 다시 가벼워졌다. 소속사의 신속한 대응이 마음에 들었고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악플러도 사라졌다. 거기에 진심을 담은 유수한의 글까지.

[빛유/자유] 팬이라면 유수한 믿어야 함 +17

[빛유/자유] 오늘은 다른 의미로 속상해요. 오빠가 상처 많이 받은 거 같아서... +29

[빛유/자유] 수한 오빠가 팬에게 얼마나 진심인지 모름? 탈덕할거면 조용히 해라 +59

[빛유/자유] 이제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평소로 돌아와요. 빛유 분위기 정화 시급! +16

한 처먹은 팬들이 다시 하나로 뭉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수한 글을 바로 커뮤니티로 옮긴다. 뭐든 분위기 싸움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바로 이 분위기를 굳히고자 하는 마음과 유수한의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유수한이 뭘 잘못했냐 그게 사실이었어도 부모 잘못이잖아

└ ㅇㅈ

└└ 가족까지 단속해야 함? 심지어 사실도 아니었음

└└└ 앞뒤 안 가리고 욕 박은 인간들이 문제 ㅉㅉ

이제야 사이다를 마신 기분이다.

- 저 기레기 유수한 스토커라며?

└ 유수한 밀착 취재하는 기자로 유명 ㅇㅇ

└└ 유수한 잘 되니까 다시 붙은 거 같음

└└└ 진짜 연예인도 힘들겠다 기자가 사생짓 하네 ㅋ

└└└└ 아니 집 앞에서도 대기하고 있었다며 진심 사생짓함

자연스럽게 기자 이야기가 나오며 과거사까지 나오고 있지만, 지금 순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유수한이 최근 달라진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었고 글 역시 진심이 담겨 있어서 다른 말이 나오기 쉽지 않았다.

이경민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덕질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일이 생긴다.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수한은 믿고 가야지.”

지금까지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이경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병크에도 탈덕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빛유/자유] 탈덕? 그게 뭐임? 먹는 거임? 우걱우걱. +31

그리고.

그건 다른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 * *

“후우. 한시름 놨네.”

오 피디는 지난밤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방송하다가 출연자의 사건 사고 때문에 재편집을 하는 일은 몇 번 있었다. 그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된 과정이었다.

편집 방향을 바꿔야 하는 건 물론이고.

어쩔 수 없는 장면은 하나하나 일일이 그 출연자를 지워야 한다. 편집하는 사람은 물론, 작가도 붙어서 어떻게 편집 구성 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하고 CG팀 역시 불나도록 일해야 했다.

유수한 측으로부터 이번 갑질 사건에 대해서 무관하다고 전달받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일단 기다리면서 혹시 모르니 재편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데일리연예][단독] 과연 이번 갑질 논란은 ‘허성학’ 기자 개인의 문제인가? …… 자극적인 연예 가십만 쫓는 ‘데스패치’는 어디로 숨었나

상황은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유수한을 향한 동정 여론도 형성됐다.

“다행이야.”

오 피디가 기사를 찾아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걱정하던 이수정 작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비상이 걸려서 지난밤, 방송국에서 보냈던 작가들이었다.

“이렇게 된 거 유수한 위주로 가죠?”

이수정 작가의 물음에 오 피디가 말했다.

“어차피 이번 회차는 유수한 위주 아니에요?”

“더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미 여론은 유수한 편이었고 이수정 작가는 그 흐름을 그대로 타고 갈 생각이었다.

“유수한 코인 타 보자고요.”

어제는 시청자 게시판을 닫을 정도로 유수한 하차 운동이 전개됐지만, 지금은 유수한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빗발쳤다.

어제는 ‘노예식당’을 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겠다고 난리였다. 시청률로 유수한의 마음을 달래 주겠다나, 뭐라나.

“유수한 코인이라-”

어제만 하더라도 오 피디는 유수한을 캐스팅한 것을 후회했다. 현장에서 본 유수한은 생각보다 괜찮은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연출자로서 출연자 병크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럼 선공개 영상 바꿉시다.”

이제는 미안함이었다.

아니라고 해명하는 배우를 쉽게 믿지 못했던 그 감정에서 오는 미안함이었다. 오 피디는 작가들과 함께 편집 구성 방향을 다시 생각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고 크게 스케줄에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의 소소한 수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공개 포인트는.”

이수정 작가가 촬영 프리뷰 문서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유수한의 다정 모멘트.”

그리고.

방송 하루 전.

[노예식당/7회 선공개] 유수한 다정 모멘트 대폭발! 이 남자, 설렌다... (∗❛⌄❛∗)

3분 남짓으로 편집된 ‘노예식당’ 7회 선공개 영상이 Y튜브에 업로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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