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데스패치
“아, 좆됐다.”
데스패치 소속 기자 허성학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주식을 보고 있었다. 허성학은 작년부터 주식은 물론 코인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수익은커녕 마이너스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시발, 오를 때가 됐는데.”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는 소소하게 시드머니 100만 원으로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워 담았던 종목이 상한가를 치며 쉽게 돈을 벌었던 허성학은 점차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초반에는 말 그대로 큰 욕심 없이 시작했기에 돈이 생각보다 쉽게 붙었다. 하지만 욕심이 생기고 시드머니가 커지면 커질수록 손해가 나기 시작했다.
“어, 그럼. 내가 이번 주 내로 돈 갚을게.”
슬슬 돈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월급쟁이로 시시콜콜한 연예계 기사나 내며 살았을 때는 그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다.
물론 지금이라도 주식과 코인을 정리하면 빌린 돈은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잃은 걸 보니 눈이 계속 돌아간다.
다시 만회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리게 된다.
허성학이 주식에 빠진 이유는 간단했다. 분에 넘치는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돈 역시도 정상적인 루트로 벌게 된 돈이 아니었다.
데스패치.
연예계 전반적인 소식을 다루지만, 사실 중점으로 두는 건 연애설이었다. 톱스타의 일상을 따라붙으며 특종을 건져 낸다.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손에 쥐여지는 대가는 커진다.
허성학 역시도 그런 부류의 기자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열애설이 아닌 다른 기사로 입막음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
“약해.”
올해 데스패치는 성과가 영 없었다.
특종이 어떻게 매일 나올 수 있을까. 데스패치 소속 기자들이 톱스타들을 따라붙고 있었지만, 나오는 건 딱히 없었다.
“허성학!”
이미 잃은 돈 생각에 정신없던 허성학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네 전담이 유수한이었잖아.”
그랬었다.
“요즘 뭐 없냐?”
유수한의 사건 사고에 대한 특종은 모두 허성학의 작품이었다. 유수한의 병역 비리는 물론, 음주 운전에 이성실과 딜했던 음주 수영 파문까지. 모두 허성학이 유수한을 전담 마크하며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물론 운도 좋았다.
허성학이 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수한을 맡게 되었는데, 사실 뭘 한 건 없었다. 알아서 유수한이 터트려 주었을 뿐.
“뭐 없냐고.”
없다.
이성실과 딜한 후에 다시는 유수한을 따라붙지 않기로 약속을 했었으니까. 물론 그런 약속 따위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성실은 유수한에게서 손을 뗄 생각이었고 허성학 역시도 유수한이 다시 재기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유수한.
유수한이라.
“없지만.”
순간 죽어 있던 허성학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지금부터 집중 마크 들어가겠습니다.”
잃은 돈을 다시 메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그 방법이 유수한이었다.
“인센티브 확실히 준비해 주세요.”
늘 그랬다.
유수한은 그 존재만으로도 허성학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을 주었다. 허성학에게 유수한은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데스패치에 입사하자마자 유수한이라는 행운을 맞이해서 그 누구보다 눈부신 성과를 보였고 돈 역시도 두둑이 벌었다.
“이번엔 쉽지 않을걸?”
회의를 마치고 나온 허성학이 입사 동기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나도 이미 캐 봤거든, 유수한?”
허성학은 동기의 말을 무시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켜고 유수한에 대해 생각한다. 사는 곳은 동일할 터였고 예전처럼 주변에 서성거리기만 해도 알아서 특종이 굴러올 것이다.
“내 말 듣고 있냐?”
“어.”
“요즘 유수한이 좀 떴냐? 나만 유수한 캐려고 한 줄 알아? 다 캐려고 했어. 근데 아무것도 나온 게 없다니까?”
유수한 덕분에 승승장구한 허성학을 봤으니, 동료 기자들이 유수한에게 군침을 질질 흘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새 이렇다 할 기삿거리가 없다 보니 하나둘 유수한에게 접촉했는데, 건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
허성학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유수한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렇겠지.”
허성학은 자신감이 있었다. 유수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주로 어디에 다니는지, 밤 문화를 어떻게 즐기는지, 친구 관계는 또 어떤지. 요즘 유수한이 이미지 관리를 하며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요새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 알겠는데, 개 버릇 남 줄 수 있나.”
지금 허성학이 보고 있는 기사는 기부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유수한이 또 선행을 했다며 칭찬하는 기사였다.
“이제 슬슬 버릇 나올 때 됐어.”
허성학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동기를 보았다.
“딱 일주일 안에 특종 가져온다, 내가.”
* * *
유수한 집중 마크 1일 차.
“음, 일찍 나오네?”
오전 9시.
집에서 나온 유수한은 운동복 차림으로 차에 올라탔다. 바로 따라붙는다. 유수한이 도착한 곳은 헬스장이었다. 방송에도 나오는 유명 헬스 트레이너가 운영하는 헬스장이었다.
“나름 관리를 하는 모양이지?”
예전 유수한에게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유수한은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항상 술에 취해 들어왔고 자기 관리는 하지 않는 배우였다. 나름 남의 시선을 생각한다고 놀 때는 최대한 조심하기는 했지만, 허성학이 마음만 먹는다면 여자를 끼고 노는 문란한 모습도 잡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무서우니까.”
괜히 술집이나 클럽까지 따라붙었다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유수한은 눈이 돌면 사람을 엉망진창으로 패는 놈이었다. 특히나 허성학의 허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이 유수한이었으니.
“나왔다.”
현재 시간은 10시 30분.
운동하고 샤워를 했는지 유수한의 머리칼이 젖어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까. 허성학이 부리나케 유수한을 쫓았다.
“음, 집에서 옷 갈아입고 나오려나?”
이제 시작이다.
평소 알고 있던 모습과 달라서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사람의 본성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유수한은 30분 후에 집에서 나왔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매니저의 차에 올라탄다.
스케줄이 있나?
허성학이 바로 따라붙었다.
“이게 뭐냐?”
유수한이 차에서 내린 곳은 서울역이었다. 유수한은 자원봉사를 하러 서울역에 온 것이다. 물론 이건 허성학도 알고 있는 정보였다. 유수한이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서울역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는 사실을 허성학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할 이유가 없는데?”
지금 유수한에게는 딱히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유수한이 기부를 하거나 자원봉사를 할 때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이미지 타격을 받고 자숙을 하고 있을 때나 하던 일이 자원 봉사였다.
해서, 지금 허성학은 당황하다 못해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최근 유수한의 기부 소식은 본성을 숨기고 톱스타로 거듭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일단은…….”
촤라라락.
숨어서 현장을 카메라에 남겨 둔다. 이미 유수한을 집중 마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작은 정보라도 허성학의 귀에 들어왔을 텐데, 유수한이 자원봉사를 한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 말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찍어 두자.”
촤라라라라라라라락!
허성학이 사진을 정신없이 찍고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동영상까지 돌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수한을 따라붙으며 부정적인 이슈가 아닌 긍정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건 허성학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 이게 아닌데…….”
늦은 시간.
회사로 복귀한 허성학은 건진 사진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존심이 구겨졌다. 며칠 동안 유수한을 따라다녔지만, 얻은 건 없었다. 고작 유수한의 이미지를 살려 줄 기삿거리만 건졌다.
“방향을 틀어야 하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유수한에게는 얻어 낼 만한 떡밥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방향을 틀어야 옳다.
“어디 보자.”
기본으로 돌아간다.
“어디부터 털어 볼까.”
본디 취재의 기본은 주변인을 탈탈 털어야 한다. 유수한은 금수저 집안으로 유명하다. 있는 집의 자식. 병역 비리도 부모님의 손에서 탄생되었으니.
“옳지.”
우선은 좋은 기사로 시작한다.
“그래야 후폭풍이 심하겠지?”
좋아.
인센티브는 내 거다.
* * *
[데스패치][단독] 유수한, 쉬는 날 뭐 하나 봤더니 …… 자원봉사 하는 모습 포착!
이성실은 기사 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성실을 짜증 나게 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허성학이었다. 유수한을 밀착 취재 하며 이성실을 괴롭혔던 기자. 이성실에게서 돈을 수없이 뜯어간 기자였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처음이네.”
그 말을 들은 마케팅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처음이죠.”
“허성학, 이 인간이 이런 기사를 낸 건 처음이야.”
“네. 지금 비상 상태가 아닌 것도 처음이고요.”
“됐고.”
이성실이 턱을 괴며 말했다.
“이 새끼는 언제부터 따라붙은 거야?”
“수한 씨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수요일부터 따라다닌 것 같습니다.”
“음.”
이성실이 미간을 좁히며 짧게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건질 만한 게 없었다는 거네?”
“네.”
“지긋지긋하네, 허성학. 그리고 데스패치.”
기자가 사생 팬처럼 따라붙는다는 건 좋은 소식은 아니다. 물론 성실한 연예인일수록 먹을 떡밥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겠지만, 허성학은 달랐다.
몇 번 이성실에게서 입막음의 대가를 얻어먹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유수한의 행실에 대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유수한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고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역시 찝찝하네.”
더 이상 유수한에게는 나올 만한 기사가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허성학이었다. 일단 두고 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유수한이 아니라 그 주변이라도 단속에 들어가야 할까.
“왔니?”
좋은 기사였지만, 허성학이었기에 유수한을 호출했다.
유수한은 회사에 오면서 허성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더불어 데스패치가 어떤 곳인지도.
“네, 대표님.”
지금까지 유수한의 사건 사고를 집중 취재 한 기자가 허성학이었다. 데스패치는 연예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언론사였다. 물론 언론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적절한 기레기 집단이었다.
요즘 유수한은 일이 잘 풀렸다.
드라마는 물론 예능까지 히트를 쳤고 영화 ‘사냥개’도 개봉일이 정해졌다.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포인트 역시도 착착 쌓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느슨해졌다.
일이 잘 풀리다 보니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앞으로 좀 조심해야 할 거야.”
“네. 주의하겠습니다.”
“교활한 인간이거든? 이런 좋은 기사 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라.”
“네.”
알고 있다. 매 순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의 유수한은 걱정할 일이 없었다. 애초에 놀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 클럽 같은 곳에 가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술도 끊은 상태였다.
일 외에는 집에 머물러 있었고 집에 있더라도 주로 혼자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돈이 충분히 있다 보니 혼자서도 놀 만한 게 넘쳐흘렀다.
“걱정 마세요.”
그렇기에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었다.
“조심할게요.”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데스패치][단독] “사람을 개돼지 취급했다” 유명 배우 Y모씨 부친 갑질 논란 …… 캐디 심각한 부상에도 라운딩 이어 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여파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