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70화 (70/175)

70. 밥에 진심인 남자

[HOT] 노예들의 밥솥 광고(feat.노예식당) +127

‘노예식당’의 인기는 거침없다.

상업 광고였으나 노예들이 다시 뭉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메이킹 영상이 커뮤니티에 퍼지고 ‘노예식당’에 푹 빠진 사람들은 광고 하나에도 좋아했다.

확실히.

인기 아이돌 그룹 멤버와 요즘 뜨고 있는 잘생긴 배우의 조합은 강력했다. 더불어 가장 강력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이정환까지 있으니 더더욱. 물론 조이수 역시도 여러 예능에 나가며 친숙한 이미지였기에 멤버 구성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노예들아!」

광고의 내용은 간단했다.

「주인님 왔다!」

이정환이 밥솥을 들고 집에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놀고 있던 노예들이 고개를 돌려 이정환을 본다.

「내가 오늘 기가 막힌 물건 하나 가져왔다.」

탁.

식탁에 밥솥을 내려놓는다.

밥솥을 구경하는 노예들과 착착 밥을 하는 이정환. 탁, 뚜껑을 닫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노예 하면 뭐냐?」

이정환의 질문이 이어지고.

기다렸다는 듯 노예들이 입 모아 대답한다.

「밥!!」

이윽고.

식탁에 둘러앉은 노예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놓여 있다. 그리고 반찬은 딱 하나, 김치뿐인 초라한 밥상이었다.

「아무리 노예여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요?」

조이수가 불평을 시작하고.

「맞아요. 삼촌, 김치밖에 없잖아요.」

철없는 딸처럼 윤지우가 투정을 부린다.

「일단 먹어 보죠. 주인님이 괜히 저걸 가져왔겠어요?」

유수한이 슥 밥솥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이윽고.

노예들이 수저를 든다. 밥을 크게 떠서 입에 넣는 노예들.

「음-」

짜고 치는 것처럼 다들 불만이 쏙 들어간다.

밥알을 하나하나 음미하듯 맛보던 유수한이 눈을 뜬다.

「맛있다! 김치가 필요 없어요!」

에라이.

저 사기꾼.

「밥만 먹어도 맛있다!」

반찬 투정을 부리던 노예들이 김치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밥을 퍼먹기 바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정환이 밥솥을 쓰다듬는다.

「스마트 보온을 시작합니다.」

기계음이 들리고.

이정환이 잘 먹는 노예들을 보며 말한다.

「맛있지? 코코만 있으면 반찬은 필요 없어.」

신제품 밥솥의 성능을 알려 주는 영상이 나오며 성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반찬 없이도 맛있는 밥. 그게 바로 코코니까.」

- 난 봤다 자본주의에 찌든 노예들을

└ 봐주자 돈 벌어야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밥만 퍼먹는 거 광기 ㅋㅋㅋㅋㅋ

- 오 피디가 일주일 굶긴 줄... 너무 맛있게 먹어서;;;;

└ ㅇㅈ

└└ 뭔 밥 하나로 먹방을 찍냐;; ㅋㅋㅋㅋㅋ

└└└ 개 웃겨 ㅋㅋㅋㅋㅋ

└└└└ 웃긴 게 진짜 맛있어 보였음;;;; 위꼴 오져ㅋㅋㅋㅋㅋ

두 번째 광고 촬영은 즐거웠다.

밥만 잘 먹으면 되는 촬영이었고 까다롭지 않았다. 윤지우 외에는 모두 배우였기에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성실이 두 번째 CF로 밥솥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스카이 에이드는 순수한 이미지를 위해서 선택했고 밥솥은 친근한 이미지였다.

밥솥이라고 하면 무시하기 쉽지만, 사실은 달랐다. 밥솥은 톱스타가 주로 찍는 CF였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친근한 이미지는 물론, 밥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자에게 잘하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유수한은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성실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예들과 함께하더라도 밥솥 CF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유수한이 앞치마 두르고 밥해 주는 상상함 ( ͡° ͜ ͡°)

└ 와 존맛이다 아니, 밥이요 밥 ^^

└└ 유수한이 해 주는 밥이면 세 그릇도 뚝딱

└└└ 개존맛 저도 밥이요 ^^

반응을 찾아보던 유수한이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밥솥 CF가 끝나고 드라마 ‘식사남녀’의 오프닝이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목요일이었고 오래 기다렸던 드라마 ‘식사남녀’가 첫 공개 되는 날이었다.

* * *

- 드라마 위꼴일 것 같아서 닭발 시킴

└ 한입만

└└ 나도 한입만!!!

- 난 피맥임 부럽지? ㅎㅎㅎㅎㅎ

└ 피맥??? 맥주는 치킨이지

└└ 또 치킨빠 왔네 맥주는 피자임 ㅋ

└└└ 맥주이즈뭔들! 치킨이든 피자든 맛있으니 된 거 아님??

tnV ‘식사남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마는 결국 사장이 잘리고 연출진도 갈아엎으며 새 출발을 했다. 이강은 피디 필두로 새롭게 시작한 ‘식사남녀’는 사전 제작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분히 작품을 만들어 갔으며 올해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한국의 매운맛은 곧 세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강한 중독성. 미진식품의 ‘맵달볶음면’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을 휩쓸고 미주,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유수한은 이제 외국어에 겁먹지 않는다.

[라이프 체인지]의 시스템은 언제나 신기했다. 아이템의 효과를 온 몸으로 느낄 때마다 이게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러면서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유수한은 [라이프 체인지] 덕분에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좋은 배우가 되어가고 있었다.

- 유수한 영어 뭐임? 개 잘하네

└ 그러게;;;

└└ 완전 원어민 발음인데??

└└└ 역시 내 남자 영어도 잘하네 ( ͡o ͜ʖ ͡o)

└└└└ ?? 누가 네 남자임????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유수한이 사실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던 사람이라는 걸. 그만큼 유수한의 영어 실력은 완벽했다.

「팀장님, 오늘 식사-」

「따로 먹겠습니다.」

사무실.

맵달볶음면을 개발한 강인한 팀장은 젊은 나이에 초고속으로 승진한 인재였다. 냉정한 성격에 곁을 쉽게 주지 않는 강인한은 점심에 그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는다.

「역시 이번에도?」

「네, 이번에도요.」

주민하가 맡은 역할 이윤수는 미진식품 입사 3년 차 사원이었다. 대리 승진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후배가 들어오지 않아 여전히 막내였다.

「계속 이렇게 물어 봐야 해요? 매번 무안하다고요.」

강인한 팀장은 항상 점심을 혼자 먹는다. 어딘가 바쁜 약속이 있는 사람처럼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자리를 뜨는 강 팀장이었다. 그런 강 팀장에게 점심 식사에 대해 묻는 사람이 이윤수였다.

「그래도 상사잖냐.」

「제가 입사하고 매일 물어봤지만, 같이 점심 먹은 적 없잖아요.」

「어쩌겠어. 그게 사회생활인 것을.」

라면 개발팀에서 가장 높은 직급인 강 팀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늘 점심에 약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예의상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막내 이윤수가 해야 했다.

「오늘 뭐 먹을까?」

이윤수가 지갑을 챙기며 말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요.」

솔직히 무의미했다.

팀장에게 식사 함께하겠느냐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이윤수는 입사해서 팀장과 함께 밥을 먹은 적이 별로 없었다.

강인한이 개발한 맵달볶음면이 히트 치고 직접 사장님이 찾아와 점심 회식 했을 때가 끝이었다. 말 그대로 강인한은 개인주의의 끝판왕이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최연소 팀장이 되었는지 의아했지만, 능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빨리 가야 해.」

택시를 잡아탄 이윤수는 어딘가 초조한 눈치였다.

오늘은 수요일.

이윤수는 수요일만 되면 약속 핑계를 대고 따로 식사를 한다. 혼자만의 약속이었다. 수요일이 되면 맛있는 걸 먹겠다는 자신만의 약속.

「안녕하세요! 지금 백반 되죠?」

오늘의 맛집은 백반이다.

회사원이라면 점심에 자주 먹는 음식이 백반이었지만, 이 집은 특별했다. 점심 식사 위주로 돌아가는 식당답게 오후 2시면 문을 닫지만, 사실 2시가 아니라 그 전에 준비한 재료가 소진된다. 그만큼 맛있는 집이라는 뜻이었다.

「아가씨, 운 좋네? 딱 하나 남았어.」

「진짜요?」

「고등어가 딱 한 마리 남았거든.」

「아싸!」

이윤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를 돌아본다. 음식은 먹게 되었지만, 이 식당은 협소한 크기였다. 자리는 딱 봐도 만석이었고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가-

「헐.」

이윤수의 얼굴이 구겨진다.

「왜 하필…….」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는 달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평일에 매일 만나는 남자, 늘 무표정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남자. 눈치 보는 일 하나 없이 상사든 뭐든 독설을 날리는 남자. 사회성이 없어서 팀장 자리에 오른 것도 신기한 남자.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큼 출중한 능력을 가진 남자.

「아가씨. 정신 사나우니까 얼른 앉아.」

「자리가 없어서요.」

「없긴 뭐가 없어? 여긴 합석이 국룰이야.」

「국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우리 아들이 알려 줬어. 아무튼 서빙하는데 정신없으니까 저기 가서 앉아.」

아.

아줌마가 등 떠미는 곳은 강인한이 앉아 있는 테이블이었다. 이곳에 혼자 와서 식사를 하는 사람은 강인한뿐이었다. 매일 어딜 그렇게 가나 했더니, 약속이 아니라 밥을 먹으러 갔던 모양이다. 누가 보면 밥도 안 먹고 살게 생겼는데.

「팀장님.」

결국.

이미 주문은 들어갔고 여기서 돌아갈 수 없는 이윤수가 불편한 식사를 감행한다. 지금까지 강인한은 이제 막 세팅된 밑반찬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카메라를 들고 찰칵 사진을 찍는 순간, 불청객이 찾아왔다.

「집착광공인 줄 알았는데, 식사는 하긴 하시나 봐요?」

강인한이 고개를 들었다. 이윤수를 보는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 집착광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겉만 보면 집착광공 맞음 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한 정갈하게 먹을 준비 하고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 개웃김 ㅋㅋㅋㅋㅋ 진지하게 음식 사진 찍는 거 ㅋㅋㅋㅋㅋㅋ

└ 아니 무슨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

└└ 연기 존잘 ㅋㅋㅋ 무표정인데 눈빛이 반짝반짝

「여긴 무슨 일입니까?」

그 물음에 이윤수가 의자를 뒤로 빼며 말했다.

「밥집에 무슨 일이겠어요. 밥 먹으러 왔지.」

「거긴 왜 앉습니까?」

「자리 없어서요. 이모가 여기 앉으래요.」

「저는 합석 허락한 적 없는데요.」

「모르셨어요?」

이윤수가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하며 말했다.

「여긴 합석이 국룰이래요.」

강인한이 크게 한숨을 쉰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그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다. 이 백반집은 계속 벼르고 있던 식당이었다.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에 가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불청객이 입맛을 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고등어 나왔습니다.」

마침 메인 메뉴가 등장했다.

심지어 이윤수 몫의 고등어까지 함께 식탁에 놓였다. 혼자 밑반찬을 독점하려던 강인한은 잔뜩 심통 난 얼굴이었다.

이윤수는 젓가락을 들고 제일 먼저 시금치무침을 맛보았다.

「음.」

싱싱하다. 적당히 짭조름하고 고소한 참기름 향이 코끝에 느껴진다. 이윤수는 고슬고슬한 밥을 한술 뜨고 고등어자반을 공략했다. 우선 상추에 고등어를 싸 먹지 않고 그대로 맛본다. 과한 맛이 아니라 정갈한 한식이라 좋았다. 부담스러운 맛도 아니어서 점심에 먹기 딱이다.

「맛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윤수가 어깨춤을 춘다.

이미 눈앞에 강인한이 있다는 걸 잊은 눈치였다. 이윤수가 먹는 모습을 심기 불편한 눈으로 보던 강인한도 뒤늦게 수저를 들었다.

제일 먼저 된장국을 맛본다.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된장국으로 입가심을 하고 다음 반찬을 먹으려던 강인한이 미간을 좁혔다.

「잠깐.」

메인 메뉴 고등어 외에도 중요한 반찬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시지를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닙니까?」

소시지 야채볶음이었다.

「네?」

「여기 소시지는 총 여섯 개 나옵니다.」

「그래서요?」

「지금 두 개 먹었죠?」

그걸 또 세어 봤어?

「이윤수 씨 몫으로 남은 소시지는 단 한 개입니다.」

「아니,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치사하게.

「아니요. 이 집은 리필 안 됩니다.」

강인한은 그 누구보다 먹을 거에 진심인 남자였다.

* * *

- 유수한 영어 진짜 못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날.

드라마 ‘식사남녀’ 1화를 본 선영은 참지 못하고 댓글 하나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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