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치매 조심하렴
오 피디 예능은 말 그대로 사기다.
뭐랄까. 연예인에게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무한 버프를 넣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단 1회가 방송되었지만, 유수한에게 몰리는 관심도가 폭발하고 있었다.
“비드라마 TV 화제성 3위 찍었습니다.”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에 노예들이 모두 이름을 올렸지만, 가장 높은 순위는 유수한이었다. 오 피디가 작정했는지, 유수한에게 온갖 버프를 모아 주었다.
잘생긴 외모를 조명하는 건 물론, 여러 가지 사소한 모습을 매력적으로 담아 주었다. 그건 오 피디와 이수정 작가의 특기였다.
출연자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모습.
“특히 유수한의 모습이 순수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풉.”
그리고.
보고를 받던 이성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수, 순수우?”
당연히 웃길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사고를 치고 있지 않았지만, 예전 유수한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다. 성격 더럽다고 소문난 건 물론이고 사고란 사고를 다 치고 다녔다.
언론에 노출된 사고 외에 몇 개는 이성실 선에서 무마시킨 적도 있었다. 그랬던 유수한이 지금은 ‘순수 청년’이란다.
“참 대중들은 신기해. 그렇지?”
이성실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지만, 늘 대중이 신기했다. 눈이 불을 켜고 욕하다가도 어느 순간 바뀌는 경우가 숱했다.
유수한 역시도.
예전에 있었던 일을 대중들은 점차 잊어 가고 있었다.
“뭐, 좋은 일이지.”
이성실이 보기에도 유수한은 사람 자체가 변했다.
특히 ‘노예식당’은 특히 그랬다. ‘노예식당’에 나오는 유수한이라는 사람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유수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분명 예전 유수한이었다면 매니저가 공항에 두고 달아났다면 화를 냈을 것이다.
방송에서 쓸 수 없는 육두문자를 살벌하게 날리며.
“역시.”
이성실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머리를 크게 다친 게 틀림없어.”
* * *
‘스카이 에이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유수한의 예능 출연 이후 대중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치솟은 결과였다.
덕분에.
“재계약 성사했다.”
좋은 소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성실이 씩 웃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제는 메인 모델이다.”
역시 예능은 치트키다.
드라마 ‘시간’이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해도 유수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날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스카이 에이드’였다. 제품 특유의 순수한 이미지를 이용해서 기존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부 날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작 1회 나간 예능 ‘노예식당’은 유수한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그럼 기존 메인 모델은요?”
“재계약 안 할 모양이야.”
“아, 좀 미안하네요.”
함께 광고를 찍었던지라 정이 그만큼 들었다. 하지만 이은별에게는 미안하지만, 유수한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아마 앞으로 광고가 많이 들어 올 거야.”
“네.”
“이번에야말로 너에게는 좋은 기회다.”
“네?”
“분위기가 좋아. 드라마도 곧 방영할 테고 예능은 첫 방송부터-”
이성실이 씩 웃었다.
“시청률 10%를 찍었잖아.”
“그렇죠.”
“오 피디 예능의 특징은 전 세대를 아우른다는 거야.”
유수한이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너의 이미지를 싹 바꾸기 좋다는 뜻이다.”
“네.”
“하지만 돈독 올랐다는 소리 들을 수 있으니, 광고는 골라골라 한두 개 정도만 찍을 거다.”
“네.”
“아쉬워? 돈 벌 기회 놓치는 거 같아서?”
“아니요. 오히려 대표님이 돈 벌 기회를 놓치시는 것 같은데요.”
“내가?”
“네. 계약 조건 보면 제가 광고를 찍으면 찍을수록 대표님 돈이 쌓이잖아요.”
이성실의 생각을 유수한이 모르지 않았다. 이성실은 생각보다 더 유수한을 공들여 키우고 있었다. 이미지 소비를 최소한 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할 궁리를 했고 작품 선택 역시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처음과 비교하면 아주 달라진 모습이었다.
“대표님.”
그렇기에.
“감사합니다.”
유수한은 진심으로 이성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다만 아직도 이성실은 이런 유수한의 성격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늘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던 모습이 아직도 머리에 깊게 박힌 탓이었다.
해서.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 궁금증을 이제 그만 해소해야겠다.
“너 혹시 머리 크게 다쳤니?”
이성실은 생각을 거듭한 끝에 결론을 지었다. 유수한은 아무래도 술 마시고 수영하다가 크게 머리를 다친 것 같다고. 그래서 애가 뇌를 다쳐서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 같다고.
“네.”
유수한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저 그때 머리를 세게 부딪혀서 최근 기억이 다 날아갔었어요. 지금은 서서히 돌아오고 있고요. 대표님께서 놀라실까 봐 쉽게 말씀 못 드렸습니다.”
그냥 그 장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이성실은 유수한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눈치였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이성실은 계속 속이 답답했고 유수한의 명쾌한 대답을 듣는 순간, 속이 후련해졌다.
그래, 그랬구나.
“치매 조심하렴.”
그 말을 끝으로 이성실과의 짧은 미팅이 끝났다.
* * *
[연예이슈][단독] 영화 ‘사냥개’ 유수한이 나온다? …… 김승찬 감독 “NO”
요즘 김승찬 감독은 머리가 아프다.
영화 주인공 이정환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건 별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오 피디 예능을 반겼다. 이정환이 알아서 조이수를 엮어서 방송에 출연했고 덕분에 영화도 주목받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정환은 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
“아니라니까요. 왜 자꾸 이럴까? 다 우연, 우연이래도!”
처음 유수한에게 특별출연을 제안했을 때는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유수한이 미니시리즈로 재기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직 톱에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김승찬은 유수한을 히든카드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영화에 특출 나게 잘생긴 사람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극 후반, 중요할 때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장현우는 김승찬이 생각하기에 중요 포인트였다.
그렇기에.
잘생기고 액션도 잘하며 얼굴도 잘난 유수한을 캐스팅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밀이었다. 유수한은 극장에서 첫 공개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등장해야 그 임팩트가 빵! 하고 터진다. 그렇기에 스태프는 물론 배우에게도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는데, 우리의 주연 배우님이 사고를 크게 치셨다.
“형.”
지금 김승찬은 이정환을 만나러 왔다.
“이럴 거야?”
이정환보다 한참 어린 김승찬이었지만, 위치가 감독과 배우였다. 평소에는 편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역시 서로의 위치가 확고한 사이기도 했다.
“글, 글쎄다.”
“형.”
“말해.”
이정환은 속으로는 떨고 있으면서도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하려 연기하고 있었다. 김승찬은 가끔 독사 같은 눈빛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역시 몸 사리는 게 최고다.
“유수한 씨, 어때?”
난데없는 질문에 이정환이 순간 당황해 눈을 끔뻑거렸다.
“어떠냐고.”
“뭐가. 정확히 말해 봐.”
“더 뜰 것 같아?”
김승찬은 유수한이 이렇게 단기간에 주목받는 배우가 될 줄 몰랐다. 발 빠르게 차기작을 선점했지만, 다소 문제가 있던 드라마였다. 더군다나 과거가 좋지 못하니 다시 올라간다 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다.
“그게 궁금하냐?”
이정환이 이제 조금 긴장이 풀린 듯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쓴맛 사이에 느껴지는 오묘한 단맛을 느끼던 이정환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싹은 확실히 보이지.”
“그래?”
“애가 괜찮더라.”
“그 친구 소문은 안 좋았잖아.”
“그렇지. 근데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물론 유수한이 사고 친 건 명백하다.
소문도 좋지 않지만, 술과 엮인 범죄가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이정환은 두 눈으로 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실수를 했으나 그 죗값을 받았고 반성했다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반성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싫어하지만, 반성하는 사람을 그리 싫어하진 않았다.
이정환이 본 유수한은.
“성실해. 일도 잘하고, 예의 바르고. 기특해.”
마지막 말이 가장 진심이다.
기특하다는 말. 예능 현장에서 본 유수한은 흠잡을 게 없는 배우였다. 스태프에게도 살갑게 대했고 함부로 입을 열어 실언하는 경우도 없었다.
촬영을 하면서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진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도 있었는데, 제법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번에는 이정환이 질문했다.
“단시간에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사이즈가 커 버렸어.”
“그게 문제야?”
“흥행으로 보면 문제는 아니지. 오히려 감사하지.”
김승찬이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근데 특출에게 작품이 가릴까 봐, 그게 무서운 거지.”
아직 후작업 중인 작품인데, 작품의 포커스가 유수한에게 닿아 있었다. 유수한이 영화에 출연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기자들이 몰려오고 인터넷에서는 수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야.”
이정환이 마른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넌 존심도 없냐?”
“뭐요?”
“감독이라는 자식이 네 작품에 자존심 없냐고.”
“아니, 그게 무슨.”
오징어로 김승찬을 가리키며 이정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
“넌 내가 우스워 보이냐?”
“예?”
“내가 이제 싹 틔우는 애 하나 못 잡겠냐고.”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걔가 나와 봤자 10분이야. 고작 10분.”
“…….”
“그거 하나로 작품이 흔들릴 정도면 네가 감독이냐?”
이정환은 가끔 돌직구로 신랄하게 말을 내뱉는다. 김승찬은 정곡에 찔린 사람처럼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걱정 마라.”
물론 이정환도 유수한을 인정한다. 겪어 보니 아주 호랑이 새끼였다. 하지만 새끼는 새끼일 뿐, 그래 봤자 아직 어린놈이었다. 성장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유수한이 잘될수록 작품에 플러스가 될 거야. 마이너스가 될 일 없어.”
정확히 팩트만을 짚어 주는 이정환이었다.
“또.”
걔는 된다.
“유수한, 그 녀석은 ‘사냥개’를 통해 톱이 될 거야.”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네 작품이라서 가능하단 소리야.”
“혀어어어엉!”
감동한 듯 김승찬이 이정환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사내놈은 딱 질색인 이정환이 질색하며 김승찬을 밀어 냈다.
“저리 안 꺼져?”
이 미친놈이.
“술 취했냐?”
* * *
11.8%
예능 프로 ‘노예식당’은 2회에서 또다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말 그대로 순항 중이었고 유수한은 드라마 ‘식사남녀’의 첫 방송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요즘 유수한은 차기작을 물색 중이었다. 이번에는 ‘식사남녀’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여유를 갖고 작품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이야, 우리 유수한이 밖에서 보니 노예 티가 안 난다? 귀티 나네? 이 자식!”
오랜만에 유수한은 노예들을 다시 만났다.
“삼촌! 저는요?”
“우리 지우, 요 녀석. 너도 인마, 밖에서 보니 걸그룹 같다잉?”
“형. 나는?”
“응, 넌 그냥 조이수.”
물론 사적 친목을 다지기 위해 만난 건 아니었다. 예능 ‘노예식당’은 현재 2회차 방송되었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을 씹어 먹었고 재방송은 끝도 없이 나왔다.
그렇기에.
“우리 노예들이 광고 찍는다!”
광고가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성실이 선택한 CF는 ‘노예식당’ 콜라보였다. 3개월 단기 계약이었고 어차피 방송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 소비가 크게 되지 않는다. 어차피 예능과 겹치는 이미지로 촬영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이수야. 너 CF는 처음이지?”
그 말에 조이수가 미간을 좁힌다.
“왜 이래요? 나도 CF는 찍어 봤어.”
“맞아요. 저 이수 오빠 CF 알아요.”
두통! 치통! 생리통엔!
“그만. 이제는 나 모델 아니야.”
조이수가 지우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냈다. 유수한은 그 사이에 둘러싸여 허허실실 웃고 있었다. 이정환, 윤지우, 조이수는 외향형이었지만, 유수한은 확고한 내향형이었다.
“그래, 인마. 네가 언제 이렇게 간지 나는 촬영을 하겠어.”
오늘 찍을 CF는.
“아니, 밥솥이 언제부터 간지 나는 거였는데.”
그랬다.
노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밥, 그렇게 들어온 CF가 밥솥 브랜드였다.
“당연히 노예에게는 밥솥이 최고지!”
이정환의 말에 유수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끼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만 간간이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있으니, 마치 다시 대만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맞아요.”
윤지우가 덧붙였다.
“노예 생활 벗어났다고 잊은 거예요?”
“우리 지우가 역시 뭘 아네.”
유수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세 사람에 비하면 유수한은 고생한 것도 아니었지만, 처음 아무것도 없이 끌려왔을 때를 생각하면 밥은 굉장히 중요했다.
“수한아, 그렇지?”
시선이 유수한에게 닿는다.
“그럼요.”
유수한이 어색하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노예는 밥심으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름대로 내향인은 노력했다.
“이 새끼, 어색한 거 보소.”
물론.
특유의 뚝딱거림을 숨기지 못했다. 유수한은 시무룩해져서 자신의 드립이 어디서 실패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냥 어색하지 않게 장단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저 재미없어요?”
그 진지한 물음에 윤지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전 사실 수한 오빠가 제일 웃겨요.”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못하고 늘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수한을 윤지우는 귀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수한과 윤지우는 비슷한 터울이었다. 나이 차가 3살이다 보니, 오 피디는 두 사람을 비주얼 남매로 엮었다.
그리고.
“쟤 안 웃겨. 인마.”
이정환은 유수한을 놀리는 데 집중했고.
“수한이가 웃긴 편은 아니긴 하죠.”
조이수는 이정환을 거드는 시누이 역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노예들은 일터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무섭게 노예들은 프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