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66화 (66/175)

66. 돈에 미친 노예들

“우릴 5분 안에 이긴다고요?”

당연히 오 피디가 비웃는다.

수적으로도 열세였고 심지어 윤지우는 여자였다. 오 피디는 그동안 편집된 분량을 다른 공간에서 확인하느라 노예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들었다고 해도 비웃었을 것이다. 1명이 적은 상태에서 5분 안에 끝낸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

“5분 안에 끝내면 뭐 줄래?”

오 피디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정환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이정환의 성격을 파악한 오 피디였다. 이정환은 일단 늘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다가 깨지고 나면 다혈질답게 승부욕에 불타올랐고 그럴 때마다 오 피디의 미끼에 걸려 수렁에 빠지는 사람이었다.

방송에 특화된 사람.

그림을 딱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5분 안에 끝나면 500 대만 달러 더 줄게요.”

어차피 5분 안에 족구가 끝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작진팀을 이길 수 있다고 거는 게 더 현명했겠지만, 그랬어도 열세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환이 씩 웃었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에서 걸려든 건, 오 피디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5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서브는 제가 넣을게요.”

선 공격은 노예 팀에게 주어졌다.

유수한은 공을 들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빈 곳을 찾는다. 5명이나 코트에 들어가 있었지만, 빈틈은 있기 마련이었다.

휘익.

공을 가볍게 위로 던진 유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점프하며 발등으로 공을 가격한다. 초보자는 쉽게 할 수 없는 강서브였다.

“어라?”

유수한이 발등으로 공을 정확히 가격하는 그 순간, 오 피디는 놀라 눈이 커졌다.

“!”

투우웅!

공은 거침없이 날아가 바닥을 찍고 튀어 올랐다. 원체 잘 맞은 서브라 공이 멀리 날아갔고 코트 안에 있던 스태프는 그 서브를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시작한 지 10초 만에 1점을 따냈다.

“?”

오 피디는 점점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수한은 틈을 주지 않았고 가까스로 스태프가 서브를 받아 내도 기다렸다는 듯 대응했다.

비겁하게 윤지우를 노렸으나 그마저도 유수한이 커버한다.

가볍게 스파이크.

투웅-!

“아니, 이게 뭐야!”

오 피디가 당황한다.

최대한 재미있게 끌고 가야 하는데, 실수가 나오기도 전에 유수한이 모든 걸 처리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단 1분.

이번에도 서브권은 유수한에게 주어졌다.

“1점 남았네요?”

유수한이 기분 좋은 듯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노예팀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오 피디와의 승부에서 판을 뒤집는 것. 지금까지 노예들은 오 피디에게 속수무책이었으나, 족구만큼은 판을 뒤집는 결과를 만들 생각이었다.

“으쌰.”

공을 힘차게 던진 유수한이 점프를 한다. 처음보다 더 높이 점프한 유수한은 허리를 틀며 발등으로 힘차게 공을 내리찍었다.

휘이이이익-

투웅!

공은 선과 맞물리며 땅을 찍었고 코트 밖으로 튀어 올랐다. 눈으로 보고도 쫓을 수 없는 강서브였다.

“이겼다!”

이 게임에 걸려 있던 대만 달러는 1,000.

그리고 오 피디를 살살 긁으며 추가로 얻어 낸 대만 달러가 500. 총 1,500 대만 달러를 쓸어 담았다. 신난 윤지우가 까마귀 소리를 질렀고 이정환은 속이 시원한 듯 유수한의 등을 후려쳤다.

“잘했다! 우리 예쁜 유 노예!”

기가 막힌 노예를 제대로 사 왔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하던 조이수가 힐끔 오 피디를 보았다. 오 피디는 여전히 얼떨떨한 눈치였고 그 뒤에 서 있던 메인 작가 이수정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씩, 입꼬리를 올려 웃던 조이수가.

“아, 이제 보니 수한이 혼자 해도 이기겠는데요?”

슬슬 판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게? 아니, 5명이서 우릴 못 이겨? 우린 귀여운 지우도 있는데?”

이정환까지 실실 웃으며 오 피디에게 미끼를 던지고 있었다.

“유수한 씨 혼자 해도 우릴 이긴다고요?”

이미 혈압이 오른 오 피디가 눈앞에 보이는 미끼를 덥석 물고 있었다. 유수한은 고개를 돌려 오 피디를 보며 말했다.

“네. 저 혼자 해도 이길 것 같아요.”

이유 있는 자신감은 상대의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한다.

“그럼 1,000 대만 달러 걸고 갑시다!”

유수한의 도발에 오 피디가 그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이수정 작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렸지만, 오 피디의 눈에는 오직 유수한 밖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에이, 고작 1,000 달러로 되겠어? 우리는 한 명인데?”

이정환이 히죽히죽 웃으며 오 피디의 심기를 살살 긁었다.

“좋아요. 1,500 달러! 대신 제작진이 이기면 500 대만 달러는 회수하겠습니다!”

오 피디 역시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1,500 대만 달러를 거는 대신 추가로 지급했던 500 대만 달러를 회수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오 피디도 바보가 아니었고 아무리 유수한이 잘해도 5 대 1로는 승산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직전 게임을 생각하면 유수한은 서브를 잘 넣었지만, 수비를 할 때는 조이수와 이정환의 도움을 받을 때도 많았다.

“오케이! 우리가 이기면 1,500! 지면 500 대만 달러 내놓을게!”

오 피디가 몰랐던 사실.

유수한은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판을 뒤집기 위해서는 오 피디가 방심하게끔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이정환과 조이수의 실력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수비를 맡길 수 있었고 유수한은 주로 윤지우를 커버하며 경기를 이끌었다.

“5명인데 못 이기겠어? 10점 먼저 딴 팀이 이기는 겁니다!”

오 피디가 실실 웃으며 유수한의 서브를 지켜보았다.

“갑니다!”

휘익!

공을 던진 유수한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을 발등으로 가격했다. 처음부터 강 서브를 날린다. 공이 위에서 아래로 격렬하게 내리꽂혔다. 5 대 4로 경기했을 때는 서브를 살살 넣었기에 지금이 진짜 실력이었다.

투웅!

공이 거세게 튀어 오른다.

“!”

그 모습을 보던 오 피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깔깔깔깔, 제대로 걸려들었네!”

귀에 꽂히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배를 붙잡고 웃는 이정환이 보였다. 그 순간,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오 피디님…….”

왕 작가, 이수정 피디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 망했네?”

오 피디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 *

다음 날, 오전 9시.

‘노예식당’이 정식 오픈했다.

“옷 너무 예쁘죠?”

족구 게임으로 번 3,000 대만 달러로 노예들은 시장에서 번듯한 옷을 샀다. 서빙 담당은 하얀 셔츠에 여름 슬랙스를 유니폼으로 준비했고 주방 담당은 검은색 티셔츠에 여름 슬랙스였다.

“깔끔하니 보기 좋다.”

지금까지 싸구려 옷으로 버티던 노예들은 그럴듯한 옷 하나로 외모마저 빛나고 있었다. 유수한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셔츠 소매를 접어 걷어 올렸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유수한은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성들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눈부신 빛에 걸음을 멈춘다.

“저 사람 누구야?”

유수한은 낯선 언어를 모두 귀로 듣고 있었다.

그렇기에 힐끔거리며 보는 사람들에게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건 유혹이었다. 여기 와서 음식 좀 먹고 가라는 유혹.

“들, 들어가자.”

유수한의 눈부신 외모에 홀린 여성들이 들어왔다. 외국인이었고 쓰는 언어를 보아, 스페인 사람으로 보였다.

“올라.”

그렇기에 유수한은 메뉴판을 가져다주며 그 나라 언어를 내뱉었다. 물론 유창한 스페인어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유수한은 일을 잘했다.

기본적으로 능숙한 영어로 응대했고 사람을 끌고 오는 능력도 탁월했다. 가끔은 윤지우와 함께 문 앞에 서서 사람을 끌어당겼다. 윤지우는 주로 남자를 끌고 왔고 유수한은 여자를 줄줄이 낚아 왔다.

그야말로.

비주얼 남매의 눈부신 활약이었다.

“어? 유수한 아니야?”

그리고.

많지는 않았지만 한국인 관광객도 눈에 보였다. 유수한이 익숙한 한국어에 더 밝게 웃는다. 손을 흔들며 이리 오라는 듯 유혹한다.

“한국분이세요?”

넉살 좋게 말을 건네는 유수한에 발걸음을 멈춘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유수한이 직접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 띈 먹잇감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식사하셨어요?”

“어, 네, 아니요?”

사실 밥을 먹은 상태였지만, 유수한의 물음에 일단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저희 ‘노예식당’에서 식사하고 가실래요?”

“네?”

“콜라 서비스 드릴게요.”

“그, 그럼 먹고 갈까?”

“오세요. 잘해 드릴게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유수한의 얼굴이 충분히 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예식당’은 장사가 잘됐다. 메뉴도 단일화했고 이정환과 조이수는 밀려오는 사람들을 잘 커버했다. 두 사람 모두 무명 시간이 길어서 아르바이트에 도가 텄기 때문에 일머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더불어 윤지우도 설거지를 후딱 끝내고 서빙도 착착 해냈다.

“장사가 너무 잘되는데?”

오 피디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유수한은 계산도 착착 해냈고 손님도 잘도 끌고 왔다. 게다가, 윤지우가 바빠 보이면 식탁 정리하는 것도 도와주고 있었다.

4명의 노예들은 호흡이 잘 맞았다. 버는 돈은 모두 노예들 차지였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점차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유동 인구 없어서 걱정했는데, 장사 잘됐네!”

이정환이 돈을 새며 껄껄 웃었다.

오 피디는 다 무너져 가는 가게를 이정환에게 주었고 이정환은 보수하느라 꽤 고생했다. 조이수가 합류하고도 답이 없었는데, 이렇게 성과가 나고 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지우가 열심히 전단지 돌려서 그런가 보다.”

그 이유도 있었고.

“아니에요. 수한 오빠 얼굴 덕분이에요.”

유수한의 외모 덕분도 있었다. 유수한은 따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타고난 피부가 좋았다. 그저 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였고 때때로는 지나가려는 사람들까지 잡아 왔다.

제작진이 바란 건 파리 날리는 분위기였지만, 외국인에게도 통하는 외모 덕분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전단지 더 있지?”

“네!”

윤지우가 부리나케 숙소에서 전단지를 가져왔다.

“생각보다 잘 만들었네요?”

“지우가 직접 약도 그려서 만든 거야.”

윤지우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가게 위치를 그렸고 직접 복사해 가지고 왔다. 이정환은 전단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따 시장 갈 때, 이거 들고 가자.”

“아, 가면서 홍보하게요?”

“그래. 홍보하고 도착해서 다시 오픈 준비하면 돼.”

그 말을 듣던 유수한이 입을 열었다.

“제가 오전 장사를 하면서 생각한 건데요.”

“응. 말해 봐.”

“시장에서 용기 사서 포장하는 건 어때요?”

“포장?”

“네. 1인분씩,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게요.”

“오! 괜찮은데?”

다시 머리를 맞대고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오 피디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계획한 기획은 다 무너졌다. 돈에 미친 노예들은 스스로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편집 방향을 바꿔야 할 판이었다.

“포장 손님은 50명으로 제한하죠. 너무 많으면 우리가 힘들어져요.”

“그래. 체력 안배가 필요하지.”

“시장 가서 먹기 편한 용기를 구하고 일회용 포크도 사면 될 거 같아요.”

“포장은 5명 단위로 해서 한꺼번에 조리해서 나가는 걸로.”

“네. 어차피 웨이팅 있을 거라, 그 시간 정도는 기다려 줄 거예요.”

지금까지 오 피디는 일에 서툰 배우들과 일해 왔다.

물론 한 명 정도는 일 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몸 쓰는 일에 서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노예들은 일머리도 좋았고 몸 자체가 날렵했다.

심지어 머리가 좋다.

포장도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진행하고 있었다. 메뉴 자체를 단일화하여 회전력을 높이는 것도 이정환 생각이었다.

오 피디는 고난을 주기 위해 메뉴를 늘리자고 했으나, 이정환은 딱 잘라 거절했다.

뭐라 했더라.

[하나를 하더라도 맛있게 해야지. 메뉴가 많아지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수도 생겨. 아무리 예능으로 식당 하는 거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음식을 내놓는 게 중요한 거 아니야?]

말도 잘한다. 할 말 없게.

“저기요. 여러분.”

오 피디가 어떻게 하면 장사를 더 잘할지 궁리하는 노예들을 보며 말했다.

“점심은 안 드세요?”

이 사람들아.

돈 벌 생각 하지 말고 밥이나 좀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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