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네, 저요?
- 역시 유수한일 줄 알았어
- 아까 SBC에 있지 않았냐? 유수한?
⌞ ㅋㅋㅋㅋㅋ 그니까 ㅋㅋㅋ
⌞⌞ 인터뷰까지 하더니 KBC 포기한 줄 ㅋㅋㅋㅋㅋ
⌞⌞⌞ 상주니까 왔나 봄 ㅋ
SBC에서 레드 카펫을 걷고 인터뷰까지 했다. 축하 공연까지 보고 움직이는 일정이라, 유수한은 마음 편히 공연을 보지도 못했다. 부리나케 달려서 KBC에 도착했고 아슬아슬하게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목소리가 떨린다.
“아, 되게 많은 생각이 드네요.”
손에 든 트로피가 낯설게 느껴졌다.
“제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또 이 무거운 상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사실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여기 와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유수한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좋은 디렉팅으로 절 이끌어 주신 최인성 감독님, 좋은 대본을 써 주신 김은정 작가님 감사합니다. 지금 집에서 보고 있을 부모님 감사하고요. 사랑하는 팬분들.”
작은 지분이지만, 객석에 앉아 있던 팬들이 슬슬 까마귀 소리를 낼 시동을 걸고 있었다.
“빛유 여러분. 모자란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꺄악, 꺄악, 꺄아아아악!
유수한은 메아리치듯 몰려오는 함성소리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 목소리에 떨림이 점차 멎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는 민수와 우리 보라에게도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한초원 씨, 제가 연기로 힘들어할 때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아, 이성실 대표님. 보고 계시죠?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부끄러운 배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트로피를 받고 무대에서 내려온다.
왼쪽으로 이어진 출구로 나오니 작가가 큐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같이 시상하실 분은 이승연 씨예요.”
미리 나와서 준비하고 있던 이승연이 유수한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유수한은 KBC에서 이미 받을 상은 다 받았다고 생각했다. 시상식 참여 자체를 SBC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기에 상만 받고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과 다르게 KBC는 시상자 명단에 유수한을 올렸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놓겠다는 뜻인 듯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단막극 부문과 뉴스타상 시상이 바로 이어져 있었다.
“어서 대본 읽어 보시고요. 지금 단막극 부문 마무리 지으면 바로 들어갈 거예요.”
지금 무대에서는 같은 상을 받은 한초원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한초원은 극중 비중이 낮았지만, 단막극이 호평을 받아 운 좋게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유수한이었다. 한초원은 상을 받을 만한 실력이 있었다.
공동 수상이었기에 다행히 숨 쉴 틈이 있었다. 유수한은 상을 매니저에게 맡기고는 큐카드를 정신없이 읽어 내렸다.
“신호 드릴게요.”
수상자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뉴스타상 시상에는 올해 KBC 단막극 시즌 2022 ‘아임 홈리스’에서 리얼한 노숙자 연기로 호평을 받은 배우 유수한 씨와 내년 KBC 대하 사극 ‘왕의 여자들’의 장희빈 역할을 맡은 이승연 씨가 함께 하겠습니다.”
작가가 손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준다.
이승연이 가볍게 유수한의 팔짱을 끼고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카메라가 앞에서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팔로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유수한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떨리지도 않았고 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시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뉴스타상은 말 그대로 라이징 스타를 위한 상이었다. 후보도 없었고 소소한 담소를 나눈 후에 바로 발표를 한다.
“혹시 수한 씨는 뉴스타상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아, 저요?”
대본에는 답변은 짧게 한 줄로 예시만 적혀 있었다.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지만, 오늘 벌써 상을 하나 받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KBC에서 우스갯소리로 인기상도 주는 거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인기상 부문이 나올 즈음에는 이미 유수한은 SBC로 떠난 후였다. 애초에 인기상에는 후보에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상은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이승연이 수상자가 적힌 봉투를 열었다.
“네, 뉴스타상 수상자는요. 총 다섯 분입니다.”
유수한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승연 입에서 하나둘 수상자가 호명되고 유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배우들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마지막은…… 축하합니다.”
이승연이 유수한을 바라보았다.
“유수한 씨.”
여전히 유수한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눈으로 이승연을 보고 있었다. 짧게 정적이 흐르고 이승연이 웃으며 수상자가 적힌 카드를 보여 주었다.
그 안에 보이는 익숙한 이름.
“어?”
유수한이었다.
“저요?”
* * *
[빛유/잡담] 뉴스타상 ㅊㅋㅊㅋ +7
[빛유/잡담] 뉴스타상 예상 못 했나 봐요 ㅋㅋㅋㅋ 뚝딱거리는 거 존귀 +11
단막극상에 이어서 뉴스타상까지 KBC에서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상을 받으러 가는 와중에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좋아하고 있었다.
[HOT] 상 받을 거라 예상 1도 못한 얼굴 +109
수상 소감은 이미 단막극상을 받을 때 다 해 버린 터라, 더 할 말도 없었다. 간단하게 수상 소감을 마치고 KBC를 빠져나왔다.
이번에도 다시 SBC 의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한 벌로 다녔어도 괜찮을까 했지만, 보라는 시상식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유수한 댕청미 치인다 ㅋㅋㅋㅋㅋ
⌞ 존나 귀여움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댕청미 ㅇㅈ
⌞⌞⌞ 44444444 존나 치였음 ㅋㅋㅋㅋ
- 저요? 할 때 현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니 진짜 1도 예상 못 했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짧게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반응을 찾아보았다. 나쁘지 않은 반응, 하지만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를 일이다.
어느새 손에는 트로피가 두 개였다. 굴러 들어온 포인트도 짭짤했다. 시상식 참석만으로도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상까지 두 개나 수확했으니 벌써 30 포인트 가까이 번 셈이었다.
“다 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유수한은 기다렸다는 듯 모여드는 팬들을 보았다.
“어휴,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오빠, 상 축하해요!”
이미 KBC를 빠져나올 때도 팬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던 유수한이었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이따 또 상 탈 건데, 미리 축하해요!”
상은 유수한이 받았는데, 오히려 팬들이 받은 것처럼 더 좋아한다. 유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상 못 받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건 너무 우스운 일이다. 누가 봐도 상 하나는 턱 안겨 줄 텐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카페라도 가요. 추워.”
날이 추우니 집에 가라고 한들,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팬들은 재잘거리면서도 괜히 시간 뺏는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라는 듯 손짓하는 팬도 있을 정도였다. 유수한은 추운 날에 팬들을 두고 가는 게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희 따뜻하게 입고 왔어요. 그리고 오빠가 들어가야 우리도 카페 가거든요?”
“아, 그래요?”
“네! 그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알았어요.”
늦은 시간이다.
1부가 이제 막 끝났고 2부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새해 전날에 진행하는 시상식은 기본이 새벽 1시였다. 그 전에 끝나면 감사한 일이고 그 이후에 끝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팬들은 늦은 시간에도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유수한을 한 번 더 보려고 할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수한이 말했다.
“꼭 카페 가요. 알았죠?”
그러더니 패딩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돈 쓰지 말고.”
오늘도 유수한은 팬들의 지갑 사정을 걱정했다.
“내 돈 써요.”
* * *
“왔어요?”
다시 현장에 도착하니 테이블에 트로피가 놓여 있었다.
“나 신인상 받았어, 오빠.”
제일 먼저 주민하가 자신의 상을 자랑한다. 그리고 최은호도 수줍게 자신의 트로피를 스윽 내밀고 있었다.
“오.”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유수한이 말했다.
“조연상 타셨네요?”
최은호가 뿌듯한지 고개를 끄덕인다. 상복이 별로 없는 최은호는 꿀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의 트로피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 괜한 심술을 부렸지만, 그 속은 딱 그 나이에 맞는 성격이었다. 질투가 많고 생각이 어린.
그래서 이제는 밉게 생각하지도 않는 유수한이었다.
“다음은 베스트 커플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시상식.
이제 어디 가야 할 일도 없었기에 유수한은 편한 마음으로 시상식을 즐겼다. 베스트 커플 후보에는 유수한과 민서온이 올랐고 이변 없이 은유 커플이 받았다. 베스트 커플상인 만큼 이벤트성이 짙어 공동 수상이었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라이프 체인지] 첫 베스트 커플상 포인트 적립!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147>
베스트 커플상의 포인트는 3 포인트.
소소했지만, 유수한에게는 전혀 소소하지 않았다. 이제 테이블에는 4개의 트로피가 놓여 있었다. 1부도 그랬겠지만, 2부 역시도 별별 상을 다 만들어 냈다. 다른 배우들은 늦은 시간에 지친 듯 보였지만, 유수한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지루함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아마 올해의 마지막 상이 아닐까요? 지금 시간이 딱 20분 정도 남았거든요.”
시상식 MC의 목소리가 들리고.
“올 한해 KBC 드라마를 빛내 주신 배우분들이 참 많죠? KBC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 달간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바로 팬이 주는 영광의 상, 인기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이번에도 후보 영상은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내년으로 넘어갈 시간이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상을 위해 무대를 오른 전년도 수상자가 봉투를 열었다.
“네, 시간 관계상 빠르게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소를 씩 지은 시상자가 입을 열었다.
“드라마 ‘시간’의 유수한 씨, 최은호 씨. 축하드립니다.”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고 의외의 결과이기도 했다. 드라마 ‘시간’의 팬덤은 물론 유수한의 팬덤까지 최은호에게 투표를 보냈다. 중복 투표가 가능했기에 상부상조를 한 셈이었다.
투표 결과는 유수한이 압도적 1위였고 최은호가 3위를 아슬아슬하게 제치며 2위를 가까스로 거머쥐었다.
“유수한! 유수한! 언제나! 빛나는! 유! 수! 한!”
아이돌이야, 뭐야.
시상식에 있던 배우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유수한이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팬덤이 무서울 정도로 단합력이 좋을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물론, 유수한도 몰랐다.
사실은 감사하기도 했지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제 올해가 15분 남았다고 하네요. 제가 지금 시계를 차고 있는데, 정확히 14분 18초 남았습니다.”
유수한이 먼저 트로피를 들고 운을 뗐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하겠습니다. 올해는 잊지 못할 한 해였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빛유 여러분, 사랑해요.”
꺄아아아악!
우렁찬 까마귀 소리에 유수한이 싱긋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최은호 차례였다. 어부지리로 인기상을 받은 최은호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빨리 소감을 말하라는 FD의 성화에 최은호도 짧고 굵게 소감을 마쳤다.
뒤이은 여자 인기상 수상은 또 ‘시간’ 팀이 휩쓸었다. 민서온은 물론 주민하도 팬덤이 탄탄한 배우였던지라, 수상에 이견은 없었다.
“우리 부자다.”
주민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테이블에 트로피를 내려놓았다. 올해 SBC는 미니시리즈 ‘시간’이 먹여 살렸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1부에서 극본상을 받은 김우리 작가도 있었다. 상을 아주 포클레인으로 퍼 담은 수준이었다. 심지어 아직 본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카운트다운을 하겠습니다!”
전광판에 숫자가 나타난다.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고작 10초밖에 남지 않았다.
“3!”
“2!”
“1!”
미리 준비해둔 폭죽이 사방에 터진다. 사실 아직도 한 해가 지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유수한은 박수를 치며 허공에 날아다니는 연기와 폭죽 잔해들을 바라보았다.
- SBC는 시간이 다 휩쓰네
⌞ 빈집털이라 ㅋㅋ
⌞⌞ 빈집털이라고 후려치기에는 시청률이 20% 이상 나옴 ㅋ
⌞⌞⌞ 뭐래 타 방송국이랑 비교해도 시간이 압살임
- 유수한 코디 누구냐? 옷 존나 잘 입히네 내 새끼는 이상한 거적때기 입혀놨더만
⌞ 혹시 내 배우냐?
⌞⌞ 의상 두 개 준비했는데, 두 개 다 예쁜 거 뭐냐 사기냐?
⌞⌞⌞ 네가 파는 배우 내 새낀 거 같은데 ㅅㅂ
⌞⌞⌞⌞ 네 배우 내 배우인 듯 ㅋ
시상식이 진행될수록 실시간 반응들이 줄지어 터져 나온다. 유수한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축하 공연을 보았다.
머리로는 상을 받았을 때, 어떤 수상 소감을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드디어 유수한이 내심 기다리고 있던 시상이 이어졌다.
“네, 다음은 우수상 시상이 있겠습니다.”
과연.
우수상이냐, 최우수상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