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여복 터진 유수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온 세상에 물씬 풍긴다. 하지만 12월에는 크리스마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연말 시상식.
유수한 몸에 들어오기 전에는 항상 연말은 김대한에게 필요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특히 길거리에 나앉은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올해는 그렇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던 시상식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화려한 사람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만 알았다. 그렇기에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다.
“상 받는 기분은 어떨까.”
당연히 예전 유수한은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살다 보면 학교에서 자잘한 상 하나 정도는 받고 사는데, 유수한에게는 그런 것은 없었다.
제대로 학교생활이나 했으면 모를까.
어릴 때는 지독한 따돌림에 시달렸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학교에 다닐 여유도 없었다. 자립 지원금이라고 해 봤자 그리 큰돈도 아니었고, 어린 나이에 세상은 냉혹하기만 했다.
“자, 골라 보세요.”
보라는 시상식 두 달 전부터 의상 쟁탈전에 나섰다. 예전 유수한이었다면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달라진 유수한은 보라도 춤추게 만든다. 아니, 일하게 만들었다.
“의상이 되게 많네?”
행거에 걸린 수트가 최소 10벌은 넘었다.
“당연하죠. 우리가 지금 시상식 하나만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는 SBC 의상을 가장 신경 썼고 그다음은 KBC였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KBC보다는 SBC가 더 신경 써 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의상도 그에 맞추어 준비했다.
“여기는 SBC에서 입을 의상인데, KBC보다는 조금 더 화려한 디자인으로 준비했어요.”
준비된 의상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눈으로 볼 때는 다 비슷해 보였다. 의상을 입고 나온 유수한은 가장 몸에 잘 맞는 수트를 골랐다.
“자. 여기에 직접 손으로 만든 브로치.”
보라가 가방에서 직접 만든 브로치를 꺼냈다. 금색 별 모양의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보라가 나비넥타이에 브로치를 끼우며 말했다.
“남자 의상은 거기서 거기예요. 여자처럼 뭐 노출을 한다거나, 색을 화려하게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렇게 블랙 수트에 깔끔하게 포인트 하나를 집어넣는 게 가장 예뻐요.”
물론 예전이었으면 턱도 없는 일이다.
지금이니까 이렇게 브로치를 찾아다니고 성에 안 차서 직접 만들고 하는 거다. 달라진 유수한은 사람의 태도도 달라지게 했다.
“SBC는 별이에요. 뭔가 상을 두둑하게 줄 거 같으니까.”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KBC는 진주예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의상하고 잘 어울리니까.”
그냥 주는 대로 입는다. 전문가가 입혀 주는 대로 군말 없이 입는 게 가장 예뻤다. 특히 유수한은 옷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고 감각도 없었다.
물론 감각 없는 스타일리스트도 존재하지만, 보라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성격만큼이나 일에 있어서도 흠잡을 일 없게 만드는 스타일리스트였고 담당 연예인에 따라 수준이 달라졌다.
쉽게 말하자면 예전 유수한은 신경 쓰고 싶지 않게 만드는 연예인 중에 하나였다. 말도 많고 짜증도 많고 더운 날에 늘 시키는 게 부채질 셔틀이었다. 나중에는 손 선풍기를 들고 다녔더니 대뜸 하는 말이.
[너 일하기 싫냐? 이건 더운 바람이잖아.]
였다.
손으로 부치는 바람과 손 선풍기의 바람과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유수한은 기계에서 나는 우우웅- 거리는 소리가 싫다고 말했다. 더불어 더운 바람처럼 느껴진다며 짜증을 냈고 보라는 결국 그 더운 여름날 부채를 들고 다니며 바람 셔틀을 했다.
“그래도 오빠 요즘 먹는 거에 비해서 관리 잘했네요?”
의상 구하기 직전에 의상 피팅을 했지만, 조금 걱정하고 있던 보라였다.
“요즘 살 안 찌려고 용쓰고 있다.”
드라마 촬영을 가면 물론 가끔 안 먹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뭔가를 계속 먹는 장면이 많았다. 물론 아무리 음식 관련 드라마라고 해도 리얼하게 먹는 척을 하다가 컷 사인이 나면 뱉는 배우들도 많았다. 그렇게 촬영하는 현장이 많았지만, 이강은 피디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리얼하게 먹는 장면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여야 해요!]
처음에는 이강은 피디가 드라마 출연을 영업하고자 공약을 날린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실제로 맛있게 먹어야 드라마도 빛나고 음식도 빛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실제 일류 셰프를 돈 들여 섭외하고 배우로서 첫 컷만큼은 음식을 즐기게 했다. 첫 컷은 대체로 타이트 샷.
배우에게 카메라를 붙이고 하나하나 동시에 찍는다. 배우들은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공복 상태로 현장에 도착했고, 하루 이상을 굶었기 때문에 더더욱 리얼한 얼굴이 나왔다. 그 과정이 즐겁기는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
“밤에도 뛰고 새벽에도 뛰고. 틈만 나면 뛰어, 요즘.”
갑자기 연예인이 살이 찌면 듣는 소리가 있다.
바로.
- 뭐가 그렇게 맛있었냐?
이거였다.
여기저기 글을 찾아보다 보면 살이 오른 배우에게 달리는 악플이었다. 뭐가 그렇게 맛있었느냐, 뭐가 그렇게 맛있어서 살이 쪘냐는 댓글을 보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게 된다.
음식 소재 드라마를 찍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살이 붙어서 수트발이 무너지면 유수한에게도 이런 조롱 댓이 달릴 게 분명했다.
“의상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그래도 보람은 있다. 멋진 의상을 제대로 소화했을 때 드는 성취감 때문에 몸 관리를 계속하게 된다. 예전에는 그냥 막 살았다면 지금은 목적이 뚜렷한 편이었다.
“이제 퇴근하자.”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올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1년이란 세월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가다니. 김대한 때는 아무런 성취감 없이 1년을 보냈다면 지금은 달랐다. 성취감을 가득 느낄 수 있는 한 해를 보냈다.
* * *
SBC 시상식 레드 카펫.
KBC와 SBC 양 방송사는 유수한을 두고 줄다리기를 했다. KBC 입장에서는 단막극으로 복귀 신호탄을 쐈고 단막극 자체가 예술성으로 호평을 받은 터라, 유수한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SBC에서 완벽한 부활을 선언하며 인기를 얻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반대로 SBC 입장에서는 그 누구도 유수한에게 주인공을 주지 않을 때, 선뜻 손을 내민 방송사였다. 물론 손을 내민 사람은 이승혁이었고 방송사는 거센 반발을 했지만, 어쨌든 소중한 기회를 부여했다.
특히 SBC ‘시간’이 큰 인기를 끌며 한해 최고의 드라마로 거듭난 이상, 주연 배우인 유수한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기에.
양쪽 방송사 줄다리기를 지켜보던 유수한은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레드 카펫은 SBC에서 걷겠습니다.”
이게 유수한의 결정이었다. 화제성으로 보나 극의 비중을 보나 당연히 SBC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KBC로서도 명분은 없었다. 복귀 신호탄을 날렸을 뿐 단막극을 미니시리즈에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지금 드라마 ‘시간’ 팀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레드 카펫의 하이라이트는 예상했던 대로 ‘시간’ 팀이 가져갔다. 당연했다. 올해 SBC 드라마는 내내 죽만 쑤다가 겨우 ‘시간’으로 공중파 존재감을 입증했으니.
포토월에 선 유수한은 눈이 부신 플래시 세례를 온몸으로 받는다. 눈을 최대한 감지 않으려 애쓰던 유수한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이 자리에 함께 선 민서온과 주민하는 미동도 없이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유수한은 무너졌으며 최은호는 눈부셔서 찡그리면서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올해 유수한 씨는 참 바빠요.”
인사를 시작으로 짧은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우리 민서온 씨와 합을 맞췄고 지금은 타 방송사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어요?”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SBC ‘시간’에서 메인 커플은 민서온과 유수한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tnV에서 주민하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유수한을 비롯한 여배우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민서온은 메인 롤이었고 주민하는 최근 유수한과 드라마를 찍고 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에서 밀려난 최은호가 입술을 삐죽이며 허공을 보다가 이내 표정 관리를 했다. 한번 욕을 미친 듯이 먹더니 조금 철들은 모습이었다.
“바람은 아니구요. 드라마 ‘시간’에서 전 이은서밖에 모릅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오그라드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예전 김대한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지금은요?”
되묻는 물음에 유수한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연기니까요. 지금은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질문을 넘긴다.
그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민서온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고 주민하는 장난기 어린 눈빛이었다.
“그래서요? 오빠는 지금 여기서 고르라고 하면 누군데요? 저예요? 아니면 역시 서온 언니?”
얘가 또 왜 이래.
“그러게. 나도 궁금해지네?”
말도 별로 없는 민서온도 장난에 참전한다.
“이거 약간 방송사 싸움 아니에요?”
좀처럼 분위기에 끼지 못하던 최은호도 용기를 내서 맛소금을 촥촥 뿌렸다.
“일리 있어요. 여긴 지금 SBC거든요.”
민서온이 한마디 덧붙이고.
“에이. 언니, 요즘 세상은 방송사 경계 별로 없어요. 요즘은 타 방송국 프로그램도 편하게 부르고 그러잖아요.”
지금 여주로 ‘식사남녀’를 찍고 있는 주민하는 은근슬쩍 팔이 tnV로 굽고 있었다. 첫 메인 여주 롤이었으니, 주민하의 마음이 ‘식사남녀’로 향하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가장 난감한 사람은 유수한이었다.
“지금 저는 정유환 입장이니까, 유환이는 아무래도 은서를 사랑하죠?”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 대답에 민서온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주민하는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장난이었다. 드라마가 잘된 만큼 배우들도 들떠 있는 상태였다. 다들 상 하나씩을 기대하고 있는 터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 올해 대상 민서온각?
⌞ 222 이변이 없는 한 민서온
⌞⌞ 33333
⌞⌞⌞ 444 민서온이 침 발라 놓은 수준임
대상은 자연스럽게 민서온을 예상하고 있다.
- 유수한 우수상이냐, 최우수냐?
⌞ 우수 줄 확률 높음 ㅇㅇ
⌞⌞ 모르는 거임 최우수 가능성 농후
⌞⌞⌞ 222 모르는 거야 올해 SBC 드라마가 뭐가 있다고
⌞⌞⌞⌞ 333333 시청률 압살에 연기력도 준수했는데 최우수 쌉가넝
⌞⌞⌞⌞⌞ 복귀하자마자 최우수 준다고? 에반데
⌞⌞⌞⌞⌞⌞ 4444 그만큼 올해 SBC 드라마 존나 없음 ㅋ 빈집털이
유수한은 최우수냐, 우수냐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사실 본인은 별생각 없었다. 상을 받는 게 중요했지, 다른 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올해 유수한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 유수한 레카 봤는데, KBC는 안 옴?
⌞ 레카 걷고 바로 KBC 건너간다고 함
⌞⌞ 그럼 계속 KBC에 있는 거?
⌞⌞⌞ ㄴㄴ 상만 받고 올걸
⌞⌞⌞⌞ 올해 유수한 개 바쁘네
자연스럽게 타 방송국 KBC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비중은 역시 SBC였다. 드라마 성공에 따라 유수한 언급 빈도수가 나누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HOT] 갈팡질팡, 두 여자 사이에 낀 유수한(feat.여복터진유수한) +102
자연스럽게 인터뷰 내용에 대한 글도 올라왔다.
- 자자, 민서온파 손 듭시다.
⌞ 22222222 은유커플 못 잊어~~~~!!!!
⌞⌞ 3333333
⌞⌞⌞ 아, 올해는 당연 은유커플이지!
⌞⌞⌞⌞ 4555 SBC하면 은유커플 은유커플하면 SBC 스은은스임
⌞⌞⌞⌞⌞ 66666 스은은스 그건 좀 오버 아니냐 ㅋㅋㅋㅋㅋㅋ
⌞⌞⌞⌞⌞⌞ 어차피 베커상은 은유커플 ^^
- 신흥세력 주민하파 지금 당장 일어나
⌞ 222 냉미남X냉미녀 조합 개 존맛이고요?
⌞⌞ 33333 남주X섭녀로 시작해서 지금은 남주X여주로 이어진 서사 존맛탱
⌞⌞⌞ 4444444 신흥세력 무시 ㄴㄴ
자연스럽게 커플 싸움도 이어진다. 재밌는 사실은 ‘시간’이 방영하는 동안 서브 여주였던 주민하 팬들이 기를 못 펴다가, ‘식사남녀’ 캐스팅을 통해 요즘 부쩍 말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옷 갈아입고 올게.”
유수한은 바빴다.
축하 공연까지만 자리에 착석했던 유수한은 급하게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바로 KBC로 출발하면 좋겠지만, 팬들이 추운 날에도 야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면할 수 없었던 유수한은 가기 전에 짧게라도 인사를 했다.
“오빠! 그 의상은 뭐예요?”
유수한 팬은 자연스럽게 SBC와 KBC로 나뉘었다. SBC에서 레드 카펫만 보고 KBC로 넘어간 팬도 있지만, SBC는 목동에 있었기 때문에 여의도에만 머무르는 팬도 많았다.
“이거 KBC 시상식 의상이에요.”
빠른 속도로 대화를 나눈다.
“다들 너무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요!”
매니저가 시상식 티켓을 일부 팬에게 전달했지만, 전부 다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KBC와 SBC로 나뉘어서 팬들 역시도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이렇게 추운 겨울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도 안 추워요! 오빠 얼굴 봐서요!”
그 살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차에 올라탔다. 팬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의도로 무섭게 달렸다. 오늘은 말 그대로 매니저가 고생하는 날이었다. 매니저는 유수한이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바로 시동을 걸었다.
“좀 밀리네요.”
매니저가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한 듯 말했다. 오늘 유수한은 시상도 하나 해야 했고 단막극 부문 상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늦진 않을 거예요.”
매니저가 예상 소요 시간을 보며 말했다. 그러길 바랐지만, 시간은 훅훅 지나간다. 겨우 여의도에 진입해서 KBC 본관에 도착하자 아슬아슬하게 예상된 시간을 7분 넘기고 있었다. 유수한은 주차를 하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보라가 그 뒤를 따랐고 매니저는 주차하는 대로 따라갈 예정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로비에 유수한을 데리러 온 막내 작가가 예의상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지금 바로 가면 시간 맞출 수 있어요.”
보라가 따라가며 유수한의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고 스튜디오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간 유수한이 설명을 들었다.
“저기 위치 보이시죠?”
“네.”
“카메라 안 걸리게 허리 숙이시고 최대한 빨리 가셔서 착석하시면 돼요.”
“네.”
“그리고 오늘 시상하실 부문은 ‘뉴스타’ 상이잖아요?”
“아, 네.”
“단막극 수상하시고 바로 이어지는 게 뉴스타상이거든요? 상 받으시고 바로 그냥 나오세요. 출구가 이어져 있어요. 거기에 저희 다른 작가님 계시니까 바로 안내해 주실 거예요.”
사실 이런 부분은 시상식 시작 전에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윽고 스튜디오 후문이 열리고 유수한이 마른침을 삼키며 발을 내디뎠다.
화려한 조명이 눈에 보인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현재 단막극 상 후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저는 아버지 자식이 맞아요?]
유수한의 걸음이 멈췄다.
[제가 이렇게 된 건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 안 해요? 아버지가 날 쥐고 흔들지만 않았어도! 제가 도박에 빠질 일은 없었어요!]
멍했다.
별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연기대상 시상식에 와 있다는 사실이 이제야 비로소 느껴져서.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순간 넋이 나갔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순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막막했던 지난날에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올해 KBC에는 ‘단막극 시즌 2022’가 큰 화제였는데요. 작년만큼이나 올해는 더 좋은 단막극이 KBC를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저 멀리서 작가 한 명이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준다.
“자! 이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수한은 멈칫하다가 무대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2022 KBC 연기대상. 단막극 시즌상 남자 수상자는…….”
자리에 앉은 유수한은 떨리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유수한 씨.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