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59화 (59/175)

59. 아낌없이 주는 유수한

가끔 유수한은 참 신기했다. 팬이라는 존재를 볼 때면 드는 감정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는 일도 신기한데, 망가뜨려 달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걸까?

“소원 카드 번호는 106번입니다!”

번호가 불리고.

유수한은 객석을 바라보았다. 작은 소란과 함께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 올라온다. 유수한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걸어 나오는 여자를 보았다.

“응?”

그러다 점점 가까워지자 의아해진다. 생각보다 어렸다. 이런 발칙한 소원을 빌었기에 최소 20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수한의 눈에는 10대처럼 보였다.

‘요즘 애들은 무섭다니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온 이은빈이라고 합니다.”

최대한 표준어를 구사하려고 했으나 얼핏 느껴지는 사투리에 웃음이 나왔다. 비웃는 건 아니었고 귀여움에 나오는 미소였다.

“친구는 몇 살이에요?”

조은희의 물음에 이은빈이 대답했다.

“저는 고3입니다!”

역시 어린 친구가 맞았다. 그리고 다들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망가뜨려 달라는 발칙한 소원을 빈 사람이 아직 한참 어린아이라는 사실에 다들 웃고 있는 듯했다.

“친구가 이 소원 빈 게 맞아요?”

유수한이 조심스럽게 소원 카드를 보여 주며 말했다.

“네!”

“아직 한참 어린데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냥요!”

응?

“그냥?”

“네! 그냥 쓴 건데?”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아니면 생각이 있지만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어떤 방향이든 이은빈이 적은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이걸 어떻게 하면 될까요?”

유수한이 소원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조은희에게 조언을 구했다.

“마침 유수한 씨가 교복을 입고 있네요?”

“아, 그렇죠. 근데 제가 이 나이에 교복 입는 건 좀 그렇죠.”

“아니요. 은빈 양도 10대니까, 상대역으로 딱이지 않아요?”

“네?”

“10대 연기 한번 보여 주세요!”

이 나이 먹고 10대 연기?

물론 유수한은 고작 25살이었으니 10대 때의 기억이 나겠지만, 김대한은 아니었다. 졸업한 지가 한참이었고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하느라, 학교에서는 잠만 잤다. 추억도 없고 공부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교복이라, 교복 역시도 늘 얻어서 입었다. 누군가 입었던 낡은 교복을 입었고 가끔은 해져서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오늘 교복을 입은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우연이 이렇게도 연결되는구나.

“나쁜 10대 소년이라.”

작게 생각하던 유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일진 연기를 하면 될까요?”

일진이라, 유수한은 일진이 아니었다. 오히려 빵 셔틀에 가까웠다. 고아라고 소문난 건 물론이고 옷도 늘 추레했으며 얼굴도 못생겼으니, 일진들의 먹잇감이 되는 건 당연했다.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는 학교 대신에 돈 버는 길을 택했지만, 학창 시절은 그에게는 썩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써먹는 일이 생긴다.

유수한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단추 하나를 툭 풀었다. 의자에 털썩 건방지게 앉은 유수한이 뚱한 표정으로 이은빈을 보았다.

“야.”

나지막하게 이은빈을 부른다.

“뭐 하냐?”

어느 수준으로 보여 주면 될지 생각하며.

“빵 사 와.”

단숨에 이은빈을 빵 셔틀화 시켰다.

“1분 준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을까?

“미, 미안해.”

보통 팬이, 아니, 여자들이 생각하는 망가뜨려 달라는 말은 빵 셔틀 시켜 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미디어에서 보이는 나쁜 남자를 상상한 건데, 유수한은 그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지금 돈이 없어서 빵 못 사 오는데, 초콜릿은 안 될까……?”

이은빈은 유수한 장단에 맞춰 주고 있었다.

“초콜릿? 한심하긴.”

다리를 꼰 유수한이 발을 까딱까딱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수줍게 이은빈이 주머니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내민다.

탓.

앙칼지게 초콜릿을 낚아챈 유수한이 바로 까먹으며 말했다.

“와서 안마나 해 봐.”

주물주물.

이은빈이 안마를 시작하고 의미가 퇴색된 상황극이 계속 이어진다. 우습게도 그 상황극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딱 10대에게 맞춘 상황극이었고 유수한의 어깨를 주무르는 것만으로도 이은빈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너 돈 좀 있냐?”

유수한이 초콜릿을 오물오물거리며 말했다.

“내가 오토바이를 사야 하는데, 돈이 좀 모자라네?”

일진다운 말투. 껄렁거리는 모습에 팬들이 까마귀처럼 까악거리고 있었다. 지금 보는 광경도 희귀한 모습이었다. 유수한이 교복을 입고 일진 연기를 하는 모습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내가 말이야.”

일진 연기를 하면서 유수한은,

“조만간 영화에 나올 것 같거든.”

팬들에게 힌트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오토바이가 필요해.”

그리고.

그 힌트는 어렴풋이 눈치챈 사람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자, 여기까지!”

조은희가 적당한 타이밍에 상황극을 끊었다. 유수한이 씩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유수한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이은빈은 만족했는지 밝은 미소였다.

“이대로 가면 아쉽지?”

그 말을 하며 유수한이 팔을 벌렸다. 팬서비스를 좀 해 준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다. 유수한은 이은빈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와, 씨.”

그리고 이은빈은.

“진짜 존나 잘생겼어.”

상기된 얼굴로 속으로 말했어야 할 가벼운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이번에도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무슨 말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덕후의 심정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 좋아하는 배우가 있으니 무슨 말을 하든 행복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더군다나.

존나 잘생겼다는 말은 팬들 모두 공통적으로 생각하던 부분이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정말 종잡을 수 없죠? 저는 일진과 모범생의 로맨스를 생각했는데, 이건 뭐. 그냥 일진과 빵 셔틀이었네요.”

첫 번째 소원이 끝나고 조은희가 상황을 정리했다. 다시 추첨통이 나타난다. 조은희가 힘차게 추첨통을 흔들었고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과연 두 번째 당첨은 누가 될까요?”

소원 카드 한 장을 꺼낸 조은희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도 참 재밌는 소원이 나왔네요.”

여러 팬미팅을 경험해 봤지만, 이렇게 연달아 독특한 소원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기껏해야 안아 달라거나 손잡아 달라는 게 보통인데.

“수한 씨가 직접 발표해 주실래요?”

조은희가 소원 카드를 유수한에게 주었다. 뒤늦게 카드를 확인한 유수한이 밀려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저 이제 품절남 되는 걸까요?”

유수한은 요즘 조금씩 요즘 말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신조어 따위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연예계 일을 하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품절남’이라는 소리에 팬들이 다른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떤 소원인지 어렴풋이 알아챈 듯.

“두 번째 소원은요.”

유수한이 소원 카드를 공개했다.

전광판에 보이는 소원 카드에 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두 번째 소원 카드는,

“수한아, 나랑 10분간 결혼하자!”

였다.

* * *

서류 봉투를 들고 당당히 걸어오는 한 여자.

나이는 30대 중반 같았고 당첨됐다는 설렘과 긴장감, 그리고 들뜸이 섞인 얼굴이었다.

“저는 나이는 노코멘트! 서울에 사는 최지영이라고 합니다!”

씩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유수한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 서류 봉투를 든 채로 입틀막을 한 최지영이 발을 동동 굴렀다.

“수한 씨랑 10분간 결혼하게 된 기분이 어떠세요?”

조은희의 질문에 최지영이 봉투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준비한 게 있어요!”

만나게 될지, 이걸 보여 줄 수 있을지, 이걸 작성해 줄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챙겨 왔다.

“여기요!”

바로 혼인 신고서였다.

서류를 받은 유수한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이분이 혼인 신고서를 가지고 오셨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경민이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가끔 아이돌 팬 사인회에 혼인 신고서를 가지고 오는 팬이 더러 있었다. 민감한 개인 정보는 빼고 작성해서 돌려주는 팬서비스를 하기는 하지만, 배우 팬덤에서 볼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아이돌에서 넘어온 애들이 많나 보네.”

묘한 경쟁심이 생긴다.

이경민은 같은 생각을 스치듯 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팬덤마다 분위기가 있었고 유수한 팬덤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뭔가 화기애애하면서도 선은 칼같이 지키는 분위기였는데, 확실히 요즘 팬이 늘기는 했다. 다양한 팬들이 몰리는 걸 보면 유수한의 인기가 실감됐다.

“그리고.”

최지영은 다시 봉투에서 서류 하나를 더 꺼냈다.

“공식적으로 갈라서야 하니까요.”

바로 협의 이혼 서류였다.

그 서류가 전광판에 보이자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철저히 상황을 준비해 온 팬의 준비성에 다들 감탄하고 있었다.

두 서류를 확인한 유수한이 미소를 지었다. 스태프가 부리나케 볼펜을 챙겨 주었고 서로를 마주 보며 앉은 유수한이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자기야, 우리 이제 혼인 신고 하는 거야.”

작성하면서도 이 상황에 몰입해 준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주는 유수한이었다. 그러다, 당황스러운 순간이 생겼다.

유수한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몰랐다. 신분증을 보았을 때, 한자가 있었던 걸로 보아 한글 이름은 아니었다.

툭.

고민하던 유수한은 아예 한자로 이름을 쓰는 걸 포기했다.

“자, 우리 10분 동안 뭐 할까?”

긴장하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굉장히 쫄리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부분은 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유수한에게는 아니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유수한은 사실 유수한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는 것.

작은 틈 하나로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거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맞았다. 유수한 몸에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믿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 그럼 나 손잡아 줘!”

유수한이 냉큼 손을 잡아 준다.

최지영은 여러 가지 요구를 했다. 손을 잡고 안아 달라는 말도 했고 나만을 위한 세레나데를 불러 달라는 요구도 했다. 뭐, 다 수용할 수 있었다. 노래는 조금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1분 남았어요!”

어느새 시간이 흘러 단 1분 남았다.

“나 사랑한다고 말해 줘!”

참 똑똑하다.

이경민은 연신 카메라로 유수한을 찍으면서도 생각했다. 혼인 신고서와 이혼 서류를 작성하게 해서 새로운 굿즈를 만들어 냈다. 그것도 자신만을 위한 유일한 굿즈를.

거기다가 결혼에 10분이라는 제한을 걸어서 그 10분 동안 원하는 걸 모두 이룰 수 있었다. 아마 하루 이틀 덕질한 게 아닐 것이다. 뉴비였다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촤라라라라락-

그거나 저거나. 지금 이경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촬영이었다. 홈마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진, 그리고 영상이었다. 어쨌든 지금 보이는 유수한은 몹시 귀여우니까.

“지영아, 사랑해.”

저 달콤한 보이스.

이 세상 모든 지영이가 부러운 이경민이었다.

* * *

팬미팅 분위기는 점점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유수한 팬미팅의 부제 ‘불타는 토요일’에 맞는 열기였다. 어느새 1부가 끝났다. 유수한은 ‘아낌없이 주는 유수한’ 코너를 마치고 잠시 무대 뒤로 퇴장했다.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고쳤다. 춤추느라 흐트러진 머리도 가볍게 정리한다. 무대에서는 조은희가 진행을 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이윽고.

스태프의 신호를 받은 조은희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수한 씨가 준비한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됩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유수한이 나갈 준비를 했다.

“유수한 씨가 부릅니다! 겁쟁이!”

환호 소리가 귀에 울린다.

늘 생각했다. 사랑받는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

다시 무대에 서자 다양한 색상의 종이비행기가 날아왔다. 무대에 날아와 떨어지는 종이비행기를 보다가 노래를 할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미안합니다. 고작 나란 사람이.”

기분이 묘했다.

어두운 객석을 비추는 화려한 핸드폰 불빛, 끝없이 날아오는 종이비행기, 군데군데 보이는 슬로건. 이렇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고 순간 울컥했다.

“울지 마! 울지 마!”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나갔다.

무대 바닥에 떨어진 종이비행기를 줍는다. 떼창을 바란 것도 아닌데, 다들 한마음이 돼서 유수한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또 울컥한다.

외로움에 지치고 사랑받는 기분 한번 느껴 보지 못하고 죽은 김대한이 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랑이었다.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아직 팬미팅이 끝나려면 멀었고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팬미팅을 마저 진행할 수는 없었다.

“참 이상하네요.”

노래를 마치고 유수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더 많이 사랑해 드리겠다고 결심하는데, 항상 주는 만큼 돌려받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얻어 가는 것 같아요.”

기분 좋게 심장이 뛰었다.

“감사합니다. 모자란 저를 사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

팬미팅이 끝나고 유수한은 텅 빈 무대 위에 서 있었다. 팬들이 주고 간 플래카드와 슬로건, 그리고 작은 편지들을 챙겼다.

어떻게 하면 아무 조건 없이 사람이 사람을 이토록 좋아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받은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 책임감이 생긴다.

“수한아!”

그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유수한의 부모님이 서 있었다. 유수한은 아직도 김대한이라는 자아가 강했기 때문에 그들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늘 복잡한 마음이었다. 몸은 그들의 아들이 맞지만, 영혼은 아니었기에 때때로는 죄짓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유수한이 못된 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엄마, 오늘 너무 감동받았어.”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 아니면 아들 일에만 없는 감수성이 생기는지 알 수 없지만, 얼굴을 보니 진심이 가득했다.

유수한은 자신을 끌어안는 모친을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

골프광 부친도 오늘은 어디도 가지 않고 아들 팬미팅을 보기 위해 시간을 모두 뺐다. 유수한은 사랑받는 아들이었고, 그 사랑을 지금의 유수한이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지나치게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었다.

이제 김대한은 없었다.

유수한이 되었기에 그 인생을 충실히 살아야 마땅했다.

“가요. 맛있는 거 사 드릴게.”

원해서 이 몸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실해야 한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기에, 그 사랑에 보답해야 마땅했다.

오늘 유수한은 가족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마음의 벽을 치지 말고 조금 더 용기 내어 다가가기로 그렇게 결심했다.

* * *

미처 몰랐지.

[언어 능력의 달인(S)]

왜 이런 아이템이 있는지.

“이, 이건 어떻게 읽는 거지?”

하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연기를 하다 보면 외국어를 능숙하게 해야 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을. 하필 ‘식사남녀’에서 유수한이 맡은 ‘강인한’ 역할은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최연소 팀장 자리까지 오른 인재였으며 일에 실수 하나 없는 능력자였다. 그랬으니, 자연스럽게 외국어도 술술 나와야 하는데.

“This ramen is spicy but very delicious.(이 라면은 맵지만, 아주 맛있습니다.)”

심지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영어마저도 어렵다.

어떻게 따라 읽을 수는 있다고 쳐도 문제는 억양이었다. 학창 시절, 김대한은 공부와 벽을 쌓았다. 영어는 물론 당연히 일본어나 중국어도 할 줄 몰랐다.

불행히도 강인한은 3개 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기본으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발음을 단시간에 잡아 볼까, 했지만.

“미안한데요. 알파벳은 읽을 줄 아시죠?”

그러기에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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