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58화 (58/175)

58. 제발 날 망가뜨려 줘!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천애 고아였던 김대한이, 배운 거 없이 사람에게 배신당하며 거리에 나앉았던 김대한이 배우가 되다니. 게다가 팬미팅이라는 것을 하게 되다니.

오늘 오전에 리허설을 진행한 유수한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리허설 때부터 떨어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작은 공연장을 빌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손이 덜덜 떨렸다. 리허설을 마치고는 로비에 도착한 화환을 구경했다.

하나는 팬클럽 ‘빛나는 유수한’에서 보낸 쌀 화환이었고 또 하나는 ‘식사남녀’ 드라마 팀에서 보낸 화환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이거 치울 수 없냐?”

무려 부모님이 보낸 화환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들♡ 팬미팅 축하해!]

아이고, 문구도 가관이다.

“그래도 어머님께서 직접 보내셨는데…….”

“내가 이러니까 마마보이 소문이 나는 거야.”

유수한이 혀를 찼다.

예전부터,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기존 유수한 때부터 마마보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엄마가 나서서 처리했고 공식 행사 때마다 따라오거나 화환을 보내는 등 극성맞은 부모 노릇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유수한은 그런 부모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니, 조금이 아니었다. 아주 많이.

“그럼 좀 구석으로 옮겨 봐. 최대한 안 보이게.”

결국 화환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 타협한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유수한의 부모는 지나치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였다. 김대한이 유수한이 되면서 가장 당황했던 일이기도 했다.

모든 부모가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었지만, 유수한의 부모는 일반적인 부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자식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생각한다. 사랑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정말 아니지만, 아직도 어색하기만 한 유수한이었다.

대기실로 이동한 유수한은 초조한 마음으로 팬미팅을 기다렸다. 이미 매니저가 사다 준 청심환을 먹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지금 선물 나눠 주고 있어요.”

팬미팅 시작 1시간 전.

하나둘 보이던 팬들이 슬슬 몰리기 시작했다.

* * *

“와.”

티켓을 받고 인증 사진을 찍은 이경민이 종이 백에 담긴 선물을 확인했다. 상자 하나와 미공개 사진을 인화한 엽서 5종 세트, 그리고 스카이 에이드가 한 병 들어 있었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을 때.

“미쳤다, 진짜.”

티셔츠 브랜드도 브랜드였지만, 시선을 사로잡은 건 역시 친필 사인이었다. 혹시 사인이 프린트된 건 아닐까, 아니면 몇몇 개만 사인을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성덕?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이거, 이거, 이거 사인이지?!”

바로 옆에 앉은 팬이 까악까악 까마귀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거 직접 사인한 거 맞지?!”

믿기지 않는지 같이 온 친구에게 돼 묻기까지 한다. 그 말을 들은 이경민은 뒤늦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들 상자를 무릎 위에 놓고 티셔츠를 확인하고 있었다. 선명하게 보이는 유수한의 사인, 그렇다면.

“이걸 다 직접 사인해서 준비한 거야?”

미친놈, 정말 미친놈이다.

이경민은 더더욱 유수한에게 빠졌다. 보이는 모습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수한을 보러 왔을 것이다.

“온리유 님!”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재린 님!”

어차피 팬미팅이니 편하게 닉네임으로 부른다.

“자리 어디세요?”

“저는 조금 더 뒤에요.”

“배우 티켓팅은 처음인데 빡셌죠?”

“완전요. 최소 천 석은 있어야 했는데. 그래도 팬클럽 선예매가 있어서 겨우 잡았어요.”

“오히려 머글들이 더 많은 듯.”

“인정.”

팬클럽 선예매가 있어서 70%가 유수한의 팬이었지만, 일반 예매에서 유입된 머글, 즉 일반인들의 비중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물론 유수한은 아직 두루두루 좋아하는 머글 픽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티켓값이 너무 싼 터라 머글 유입이 그만큼 잘 되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입덕하는 머글들 생기지 않을까요?”

“맞아요. 유수한 매력 넘치니까.”

이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아, 선물 봤어요?”

화제가 넘어간다.

“아직이요. 자리에 앉아서 보려고요.”

“대박이에요. 스포는 안 할게요.”

“이미 들어오면서 다 스포 당함.”

아, 그렇다.

이미 자리를 채운 팬들이 상자를 열어 선물을 확인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유수한이 무슨 선물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팬미팅 끝나고 봐요. 슬로건 챙기셨죠?”

“아유, 당연한 소릴.”

“이따 봐요!”

설렌다.

1시간 50분 정도 준비된 팬미팅. 팬미팅을 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은 매 순간 미친 듯이 뛰었다. 드라마가 끝나면 떡밥이 뚝 끊길 줄 알았는데, 유수한은 소인 게 분명하다.

일단 차기작이 결정되었다.

어제 출연을 확정 지은 ‘식사남녀’는 팬들 사이에도 화제였다. 초반에는 대부분이 ‘식사남녀’를 욕하는 분위기였지만, tnV의 병크가 잠잠해지면서는 내심 출연을 기대하기도 했다.

우선 웹툰이 유명해서 잠재적인 팬이 많았다. 거기다 ‘시간’에서 함께했던 주민하가 캐스팅되자 더 기대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식사남녀’ 출연이 좋은 점은 내년에도 유수한의 연기를 지켜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올해는 연말 시상식이 있다. 공교롭게도 지상파에서 드라마를 찍었기 때문에 SBC, KBC 모두 참석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기다리는 와중에 팬미팅까지.

완벽.

말 그대로 완벽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그리고.

“불타는 토요일!”

유수한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오늘 저와 함께 미친 듯이 놀아 봐요.”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 * *

춤을 춘다.

사실 유수한은 노래만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1시간 50분이라는 팬미팅 시간을 채우려면 조금 더 보여 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방송에서 짧게 췄던 ‘헤이파파’를 준비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춤 연습을 하며 느낀 건데, [액션 연기의 달인(S)]는 굉장히 유능한 아이템이었다. 설마 ‘액션’에 ‘춤’까지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몸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춤을 두 곡이나 준비했다.

그건 지나치게 충동적이었다. 몸치였던 유수한은 처음으로 리듬이라는 걸 탔다. 그렇기에 흥이 올랐고 마케팅 팀장이 하는 말을 덥석덥석 받았다.

물론.

이렇게 교복을 입고 춤추게 될 줄은 몰랐지만.

“끼야아아아아악!”

슬로건을 든 팬들이 일제히 익룡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픽미- 픽미픽미픽미픽미-」

유수한은 제법 춤을 그럴듯하게 췄다. 아니, 생각보다 완벽하게 리듬을 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춤 선도 제법 깔끔하고 예뻤다.

문제는.

“얼굴 봐. 너무 귀여워!”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긴장해서 연습했을 때보다 얼굴이 더 창백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애초에 유수한은 아이돌이 아니어서 사람 자체에 ‘끼’라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로봇 같다.”

춤 잘 추는 로봇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모습이 팬들의 마음을 저격하고 있었다. 애초에 유수한은 아이돌이 아니었다. 배우였기에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잘생겼다, 진짜.”

얼굴이 다 했다.

아마 춤을 못 췄더라도 얼굴 때문에 다들 흡족하게 그 재롱을 즐겼을 터였다.

“뭐지?”

이 자리에는 유수한의 열성팬도 있지만, 티켓값이 저렴해서 티켓팅에 참여한 머글 팬도 존재했다. 최근 드라마 ‘시간’이 히트 치면서 유수한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호감도가 대폭 올랐다. 이어진 팬미팅에 참전한 머글들은 긴장한 얼굴로 열심히 춤을 추는 유수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잘생겼네?”

역시 얼굴이 최고였다.

“너무 잘생겼다.”

사실 2층이었기 때문에 유수한은 면봉처럼 보였다. 하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잘생김에 두 눈이 반응했다. 큰 스크린에 보이는 유수한은 말할 것도 없이 잘생겼다. 피부도 좋았고 춤을 추다가 본인 스스로가 멋쩍은지 씩 웃는 그 찰나의 순간은,

“헉!”

쿵,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게 했다.

「나야 나!」

촤악!

뿌려지는 꽃가루. 유수한은 분홍 꽃잎 사이로 한결 풀어진 얼굴로 춤을 춘다. 처음에는 이 춤을 이 무대에서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얼굴이 자꾸만 굳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받아들였다.

흐린 눈을 하고 객석을 바라본다.

팬들이 슬로건을 흔드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최대한 매직 아이를 하며 열심히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안녕하세요.”

야심 차게 준비한 무대가 끝나고.

“유수한입니다.”

차마 이길 수 없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겨우 산 하나를 등반했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이윽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유수한이 오늘 팬미팅을 위해 직접 섭외한 ‘오늘의 데이트’ MC 조은희가 등장했다.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그래도 친근한 사람을 섭외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팬들이 좋아했던 개그우먼이었다. 조은희는 활달하게 달려와 유수한 옆에 섰다.

“제가 뒤에서 훔쳐봤는데, 춤이 왜 이렇게 늘었어요?”

“아, 연습 많이 했습니다.”

“거기 ‘신박한 연예뉴스’에서는 몸치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랬다.

그랬었지.

“아무래도 팬을 위한 사랑이 제 몸을 고쳐 준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객석에서 익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유수한은 다짐한 게 있다. 팬을 위한 자리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평소라면 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팬미팅 진행을 해 볼 텐데요. 일단 앉을까요?”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무대에 세팅이 된다. 자리에 앉은 유수한은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오늘 여기 팬분들을 위해 유수한 씨가 준비한 게 굉장히 많아요.”

조은희가 객석을 바라보며 능숙하게 진행을 이어 나갔다.

“그건 앞으로 조금씩 수한 씨가 보여 줄 거구요. 일단 가볍게 근황 토크를 해 볼까요?”

오프닝 무대를 끝내고 지금 유수한은 한결 마음이 편해진 상태였다. 마케팅팀에서는 오늘 대략적으로도 뭘 하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무대를 꾸미는 시점만 유수한에게 일러 주었고 그다음은 모두 비공개였다.

그렇기에 긴장하고 있지만, 근황 토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 ‘시간’의 남자 주인공 정유환을 연기하셨잖아요? 아쉽게도 드라마가 끝났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무난한 질문.

“일단 쉬었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쉬면서 영화도 보고 운동도 열심히 했구요. 그다음은 차기작을 물색하고 팬미팅 준비도 했습니다.”

무난한 질문을 받아 평이한 대답을 했다.

“차기작 하니까, 생각나는 따끈따끈한 소식 있잖아요?”

“네.”

“식사남녀!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봤는데 먹을 거에 진심이시더라고요?”

“네, 제가 진짜 먹는 걸 좋아합니다.”

유수한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요즘 몸 관리 때문에 거의 건강한 식단 위주로 생활하고 있어요. 술도 끊었구요. 그러다 보니, 인생의 낙이 좀 없어진 기분? 아, 물론.”

미소를 씩 지으며 유수한이 말했다.

“제 인생에서 제일 큰 낙은 ‘빛유’ 여러분들입니다.”

팬 서비스를 잊지 않았지만, 유수한의 웃음은 어색했다. 다행히 팬들은 좋아해서 까마귀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유수한은 오그라드는 손발을 슬그머니 숨기고 있었다.

“아무튼 못 먹으니까 음식에 대한 갈망이 커졌거든요. 근데 이 피디님께서 일류 셰프를 섭외했다고, 무조건 따뜻한 음식으로 먹게 해 주겠다고 하시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유수한은 군침이 싹 돌았다.

“배우로서 합법적으로 먹방 할 수 있는 기회더라고요.”

그 대답을 들은 조은희가 말했다.

“그럼 먹방 때문에 출연을 수락하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죠. 대본이 정말 잘 빠졌어요. 정서진 작가님 글발이 정말 대단하시거든요. 그뿐만이 아니라 이은강 피디님이 각 잡고 준비하고 계세요. 사전 제작인 만큼 저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황 토크는 진땀 흘릴 일 없이 술술 진행되었다. 조은희는 큐카드를 넘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그녀는 유수한에게 선물 하나를 거하게 받았다. 팬미팅 MC를 맡아 줘서 고맙다며 유수한은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고, 조은희는 아무 생각 없이 청소기가 고장 났다고 대답했다.

“여러분.”

조은희가 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다음 토크로 진행해야 하는데, 제가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런 미담은 자랑해야 옳다.

“제가 이번 팬미팅 MC를 하면서 수한 씨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아니 글쎄, 청소기가 고장 났다고 하니까 L사 아시죠? 무선 청소기로 유명한 국내 기업이요. 거기 신제품 무선 청소기를 딱!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로봇 청소기까지 선물해 주셨다니까요?”

조은희는 가끔 팬미팅 MC를 진행한다. 따로 대가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인맥을 통해 무료로 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상부상조였다.

한번 이렇게 도와주면 나중에 방송에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그우먼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방송에서 쓸 에피소드였다.

“진짜 수한 씨는 볼수록 진국이에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의 마음이었다. 유수한은 직접 연락해서 팬미팅 MC를 부탁했고 따로 식사까지 대접했다. 사실 방송에서 딱 한 번 만났던 사람이었기에 이렇게 신경 써 주는 것에 고맙기도 했었다.

더불어 출연료는 기본이고 값비싼 선물까지 받으니, 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유수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조은희가 점점 무르익는 현장 분위기를 느끼며 마이크를 들었다.

“가끔 수한 씨를 보면 이런 말이 생각나요.”

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슬슬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커다란 추첨통이 등장한다. 조은희는 추첨통을 보다가 다시 객석을 바라보았다.

“아낌없이 주는 유수한!”

이 코너는 마케팅팀에서 준비한 코너였다. 유수한은 팬에게 진심이었기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모티브 해서 만든 코너였다.

쉽게 말하자면 ‘이거 해 줘, 유수한’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오늘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이 이걸 보셨을 거예요.”

조은희가 화답하는 팬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카드에 소원을 적어서 이 통에 넣었죠?”

처음 듣는 코너였던지라, 유수한도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여기서 무작위로 소원 카드를 뽑을 겁니다.”

대충 감이 잡힌다.

“한마디로, 뽑힌 팬은 오늘 계 타는 날인 거죠!”

소원 카드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혹시나 동일한 소원을 빌었을 때, 겹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소원 카드 번호표를 따로 챙겨 주었다.

“하지만 그런 무리수 소원이 있어요. 집을 사 달라든가, 차 사 달라든가. 그런 재미도 없는 무례한 소원은 제 선에서 컷할 거구요. 첫 소원이니까, 수한 씨가 먼저 뽑아 보는 걸로 할게요!”

조은희가 추첨통을 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유수한은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추첨통을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이 쑥 손을 넣은 유수한이 뒤적거리다가 손끝에 걸리는 카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어……. 이 소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원이었다. 왜 이런 소원을 비는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조은희는 궁금한지 소원 카드를 훔쳐보았다. 짧게 생각을 한 조은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이죠?”

“가끔은 나쁜 남자에게 호되게 당해 보고 싶거든요.”

“네?”

“물론 수한 씨처럼 잘생긴 분에게 말이에요.”

조은희의 생각은 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다들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고 유수한은 멋쩍은 듯 웃으며 소원 카드를 공개했다.

소원 카드가 전광판에 뜨고 웃음소리와 함께 익룡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네! 첫 번째 소원은요!”

조은희가 타이밍 맞춰 진행을 이어 간다.

“수한 오빠, 제발 날 잔인하게 망가뜨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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