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46화 (46/175)

46. 정유환 활용법

김우리는 촬영이 끝나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듣기로 이후 촬영은 탄현 세트장으로 움직여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감독님.”

촬영을 마무리하고 이 감독은 대본을 뒤적거리며 다음에 찍을 컷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 잠깐 짧게 회의 괜찮으세요?”

이승혁은 현장에 김우리가 온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언제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김우리는 촬영에 피해가 갈까 봐, 멀리서 숨죽이며 촬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 무거운 이야긴가요?”

김우리를 보며 이승혁이 살짝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아니요. 전혀요! 아니, 조금 무거우려나?”

“중요한 이야기는 맞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14부 후반을 고쳐야 할 것 같아서요.”

“일단 차에서 이야기하죠.”

“네.”

차에 올라탄 이승혁의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자욱했다. 점점 촬영이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그의 살은 빠져가고 있었다. 바쁜 촬영 현장에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달리고 있으니 피곤이 쌓이는 것도 당연했다.

“제가 15부가 안 풀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승혁이 커피를 쪽 빨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촬영 스케줄 확인했는데, 아직 14회 후반부는 촬영이 들어가진 않았더라고요.”

“그렇죠. 14회 촬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만약 제가 14회 대본을 수정한다면 화내실 건가요?”

“어떤 방향인지에 따라 반응이 다르겠죠?”

타이트한 현장 속에서 갑자기 대본이 바뀌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 이미 머리로 어떻게 연출할지 생각해 두고 따로 정리해 둔 이승혁이었다. 하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수정된다면 다시 고생할 생각도 있었다. 뭐든, 작품이 더 중요하니까.

“사실 계속 정유환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이승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이건 감독님 탓도 있다고 봐요.”

이야기를 꺼내던 김우리가 살짝 억울한지 힐끔 이승혁을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구상했던 걸 무너뜨리고 정유환 캐릭터를 키웠잖아요. 그러다 보니 생각했던 스토리와 캐릭터가 맞지 않는 거예요. 원래 처음에는 이은서 원톱 드라마나 다름없었잖아요. 전체적인 스토리의 중심이 이은서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은서 원톱 드라마는 아니에요. 정유환에게 서사를 부여했고 이은서에게 의지가 될 만한 남자로 만들었으니까요.”

장황하다.

하지만 이승혁은 뱅뱅 돌려서 말을 이어 나가고 있는 김우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튼. 제 결론은요.”

이제 슬슬 카운터가 나올 모양이다.

“정유환에게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14부를 수정한다는 거죠?”

“제가 생각했던 건 정유환은 겁이 많지만, 처음으로 용기 내서 이은서를 찾으러 가죠. 지금 납치된 상황을 찍은 거잖아요?”

“그렇죠.”

“벌벌 떨면서 찾으러 간 정유환에게 나름 각성의 계기를 던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네.”

“그러니까. 사실 정유환이 각성을 하려면 그 정도는 모자라요. 정확히 말하면 임팩트요.”

이승혁은 다시금 커피를 쪽 빨아 마시며 김우리를 보았다.

“오늘 유수한 씨 연기하는 거 보면서 생각했어요.”

“뭐를요?”

“액션이요.”

“액션?”

“이은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정유환이요.”

김우리의 말을 듣는 이승혁의 눈이 굴러간다. 이승혁은 생각에 잠길 때면 눈을 굴리는 습관이 있었다. 약 5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좋네요.”

짧게 한 마디를 던지며 침묵을 깨뜨린다.

“괜찮은가요?”

“네. 지금까지 정유환이 주체적으로 한 건 별로 없었죠. 서사를 부여했지만, 결국 머리 쓰는 건 이은서가 했고 정유환은 기껏해야 도와주는 정도. 물론 그 정도도 나름대로 서사를 부여한 거였지만. 이쯤 되면…….”

이승혁이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유환도 이은서를 위해 뭔가를 할 때가 됐죠.”

대충 내용은 정리되었다. 이제는 결론을 물을 때였다.

“그래서 수정은 얼마나 걸리죠?”

“1시간.”

김우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1시간이면 돼요.”

14부 전체를 수정하는 게 아니었다. 추격전 끝에 이은서가 납치당하고 정유환이 홀로 찾아가는 그 스토리만 정리하면 된다. 전체 줄기는 같았고 세부적인 장면이 달라지기에 수정하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저 여기 근처 카페에서 글 쓸 테니까, 걱정 말고 촬영하세요.”

“갑자기 의욕이 엄청 넘치나 봐?”

이승혁이 피식 웃으며 장난을 걸었다.

“그럼요. 작가는 말이에요. 막히던 글이 탁 터지는 그 순간, 그때 가장 희열을 느껴요.”

“오.”

대단한데?

이승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씩 웃었다.

“아무튼 쓰는 건 1시간. 전달되는 건 아마 넉넉잡아 3시간 잡아 두세요.”

“뭘. 전체 출력 하지 말고 쪽대본 날리세요.”

“쯧, 싫어요.”

“소문날까 봐?”

“네. 괜히 기자들이 쪽대본 날린 걸 알아 봐. 바로 실시간 촬영이다, 초치기로 촬영 중이다 이러지.”

자극적인 걸 찾는 기자들에게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사실 14부 대본은 진작 나왔고 그저 일부를 수정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쪽대본’이라는 자극적인 말에만 집중할 것이다. 그렇기에 김우리는 현장에 ‘쪽대본’ 날리는 걸 싫어했다.

“아무튼! 오늘 촬영 수고하세요!”

김우리가 힘차게 차 문을 닫았다.

* * *

유수한은 대기실에서 새롭게 날아온 ‘시간’ 14부 대본을 읽어 보고 있었다. 오늘 진행할 촬영은 끝났고 집에 돌아가면 되지만, 이제 막 도착한 대본이 궁금해서 엉덩이를 들 수가 없었다.

“액션?”

수정 대본을 확인한 유수한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대본상 내용은 가벼운 액션 수준처럼 그려졌지만, 아직 한 번도 액션 연기를 해 보지 않은 유수한이었기에 걱정이 큰 얼굴이었다.

“형.”

유수한이 진지한 눈으로 대본을 읽고 있을 때, 김민수가 대기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조만간 액션 스쿨 가야 할 것 같아요.”

“응?”

“아무래도 합을 맞추고 본 촬영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요.”

“감독님께서?”

“네.”

현재 이승혁은 급히 무술 감독을 호출했다.

극 흐름상 무술 감독이 필요한 회차가 많지 않았다. 원래 14부는 정유환이 혼자 이은서를 구하러 갔다가 되레 얻어맞는 장면이었다. 액션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이었고 다음 흐름은 김 비서가 사람을 끌고 정유환과 이은서를 구하는 장면이었다.

해서, 이미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가 끝난 상태였지만, 장면이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뼈대를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알았어.”

걱정이 태산이다.

연기를 하다 보면 이제야 좀 괜찮아지나 싶을 때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본래 김대한은 몸치였다. 당연히 싸움도 못하는 사람. 그렇다면 기존의 유수한은 어땠을까? 지금 유수한은 본인 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은 벌크업 위주라서 딱히 운동 신경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에 자세를 바르게 잡지 못한다고 고생했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액션, 너무 과하게 걱정하는 걸 수도 있지만, 본래 김대한 자체도 운동 신경이 없던 사람인지라 계속 자신감이 떨어졌다.

“흠.”

집에 도착한 유수한은 전신 거울을 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 몸에 액션 못하면 좀 그런데.”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 놨기에 더더욱 그랬다. 더 걱정되는 건 김우리 작가가 대본을 수정한 이유는 정유환 때문이었다.

남주인 정유환을 극에서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손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가 당연히 잘 받아먹어야 마땅했다.

“일단 자자.”

몸을 괜히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발차기 하듯 다리도 올려 보던 유수한이 침대에 몸을 맡겼다. 어차피 지금 연습한다고 몸을 움직인들 달라지는 게 없었다. 더군다나 어떤 액팅을 원할지도 모르니. 지금은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자고 개운한 마음으로 액션 스쿨을 가는 게 더 나았다.

이틀 후.

“오셨어요?”

무술 감독이 웃으며 유수한을 반겼다. 그리고 주변 스턴트맨이 눈에 보인다. 아직도 촬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주 단시간에 유수한을 단련시킬 생각이었다.

“어우, 근육 좋네.”

너스레를 떠는 무술 감독 최홍식의 반응에 유수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디, 뭐 태권도 같은 거 해 봤어요?”

“아니요.”

“복싱도? 아니면 뭐 무술 종류 배워 본 적 없어요?”

“네, 전혀.”

“흠. 일단 몸 풀고 봅시다.”

무술 감독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유수한이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은 운동하면서 꾸준히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앞차기 가볍게 해 볼래요?”

그 말에 유수한이 자세를 잡았다.

두 손을 가볍게 주먹을 쥔 채로 오른 다리를 뒤로 뺀다. 남자라면 보통 어릴 때 태권도 학원 정도는 다닌다. 하지만 김대한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이렇게 발차기를 하는 것도 처음. 긴장한 유수한이 심호흡을 하며 준비를 마쳤다.

휘익.

최대한 높게 발을 뻗는다.

“음.”

무술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우선 정말 발차기라는 걸 해 본 적 없다는 건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연성은 좋은데 자세를 잡는 건 좀 시간이 걸리겠네요. 아무리 스턴트맨이 대역을 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움직임은 배우가 할 줄 알아야 자연스러워요. 뭐, 이 감독님과 작업해 봐서 알겠지만, 이 양반은 배우가 모든 걸 연기하길 바라거든요? 특히 스릴러든 뭐든, 액션이 나오면 배우가 많은 부분을 소화하기를 원해요.”

유수한이 긴장한 눈으로 최홍식의 말을 들었다.

“이것도 대본이 바뀐 거잖아요? 아마 수한 씨가 잘 못 따라온다 싶으면 아예 예전 버전으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유수한은 입이 바짝 말랐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요. 시범 보여 줄게요.”

이홍식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팀원에게 건넸다.

오른 다리를 뒤로 뺀 이홍식이 가볍게 무릎을 접어 허리 위로 올렸다.

“자, 보세요. 모든 발차기는 이렇게 무릎이 접은 채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종아리를 쭉 뻗으며 발등을 굽히죠.”

완전히 다리를 쭉 펴고 1초간 버틴 이홍식이 이내 다리를 내리며 말했다.

“이게 기본. 모든 발차기는 무릎이 나간 후 종아리가 그다음에 올라간다.”

“아, 네.”

“돌려차기는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몸을 틀고 그다음에 종아리가 뻗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골반.”

최홍식이 가볍게 동작을 보여 주었다. 앞차기를 하듯이 무릎을 굽히고 그다음 지탱하고 있는 왼발을 가볍게 틀면서 몸을 튼다.

“자, 보이죠? 엉덩이가 바깥으로 빠져나오면 안 돼요. 골반을 넣어서 허벅지와 엉덩이가 거의 일자처럼 보이게 해야 해요. 이 상태에서 종아리를 펴면.”

최홍식이 다리를 쭉 펴며 돌려차기를 가볍게 보여 주었다.

“이게 돌려차기.”

모든 발차기의 기본은 앞차기였다.

“단시간에는 힘든데, 이게.”

차례로 앞차기를 가르치고 그다음에 응용 동작인 돌려차기를 가르친다. 이게 말이 쉽지, 근육이 기억하려면 꽤 시간이 걸렸다.

“일단 액션도 연기니까 그럴듯하게 만져 봅시다.”

팡! 파앙-!

미트에 발등이 닿는 소리가 울린다.

“몸친가?”

“그런 거 같은데요.”

“근육 보고 기대했는데…….”

“근육과 운동 신경은 별개죠.”

최홍식이 고개를 끄덕인다.

“돌려차기 할 때, 차는 방향의 팔은 아래로 내려야 해요. 너무 뒤로 빼면 볼품없어요. 적당히 편하게 밑에 털어 놓는다고 생각해요. 아니, 안쪽으로 넣으면 더 이상하죠. 바깥, 골반쯤.”

어차피 단시간에 완벽하게 발차기를 완성하는 건 무리였다. 그저 카메라 앞에서 엉성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소화하면 된다. 모두 편집이든, 카메라 기술이든 뭐든 비비면 되니까.

“그만.”

벌써 1시간 가까이 지났고 계속 발차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마 내일 근육통 올 거예요. 안 쓰던 근육을 썼으니까.”

최홍식은 미리 짜 둔 스턴트 액팅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정유환이 저벅저벅 걸어와 발로 배를 걷어찬다. 한 명이 바닥에 나뒹굴고 바로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면 그걸 가볍게 막으며 주먹으로 턱을 가격한다. 다음 액팅은 우르르 사람들이 모여들면 스텝으로 뒤로 빠진 후 탐색전을 펼친다.

여기서 중요한 국룰은 보통 한 명씩 덤벼든다는 거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함께 동시에 우르르 덤비면 쪽도 못 쓰고 끝나거나 할 텐데.

“발로 배를 걷어차고 뒤 이어서 주먹질을 오른팔로 막으며 턱을 툭 가격. 여기서 진짜로 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이거 다 연기예요. 주먹질하는 척만 하면 상대가 알아서 뒹굴 거예요.”

“네.”

“그럼 여기까지만 한번 해 봅시다. 아주 느리게.”

여기까지가 겨우 10초 분량이었다.

아니, 10초도 안 될 터였다. 유수한은 나름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주먹을 날리는 법이라든가 몸을 쓸 때 어떻게 해야 멋지게 나오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연습도 했지만, 계속 엉성한 모습이었다.

“후우…….”

유수한이 허리를 굽히며 숨을 몰아쉰다.

알고 있다. 거울로 얼핏 보이는 자신의 모습만 봐도 얼마나 엉성한지 알고 있었다. 귀로 듣는 설명은 이해는 되는데 몸으로 하려니 쉽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싸움을 해 본 적 없어서 더더욱 그렇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진다. 이 정도면 대역을 써야 할 수준이었다.

“잠깐 10분만 쉽시다!”

이승혁 감독은 최홍식에게 가장 어려운 주문을 했다.

쉽고 간단한 액션이지만, 배우가 했을 때 멋지게 나올 만한 액션을 원한다고.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승혁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최대한 쉽고 간결하면서도 빨리 터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유수한이 운동 신경이 없는 배우였다.

“발차기 들어가기도 전에 지금 힘든 상탠데?”

“합이 안 맞아요. 되게 삐거덕거리는 느낌이에요.”

“이거, 아무래도 이 감독님에게 대역 쓰자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심지어 뒤후리기도 하잖아요. 저분, 절대 뒤후리기 못해요.”

“뒤후리기는 대역을 쓴다 치고.”

“그래도 안 될걸요.”

작게 구석에서 소곤소곤 회의를 하고 있지만, 예민해진 유수한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액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어쩌면 유수한의 몸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대한 자체가 몸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걸출한 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남은 시간이 고작 1시간인데 될까?”

최홍식의 물음에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감독님께 전화하는 건 어때요?”

망했다.

“민수야. 핸드폰.”

“네?”

“빨리 내 핸드폰 줘!”

지금까지 촘촘하게 세운 좋은 이미지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뭐든 열심히 하고 실력이 평균은 되는 배우로 만들었는데. 확실한 건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라는 거였다.

“여기요.”

덥석.

김민수가 내민 핸드폰을 받은 유수한이 [체인지 라이프] 앱에 들어갔다. 쌓인 포인트는 대충 눈으로 훑고 [아이템]에 들어간다.

주루룩.

아이템 리스트를 훑던 유수한이 손가락을 멈추었다.

[액션 연기의 달인(S)]

아까워!

내 돈! 아니, 내 귀한 포인트!

[이 아이템을 구입하시겠습니까?]

[YES] [NO]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YES]을 눌렀다.

[100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그렇게 또다시 아이템을 지른 유수한이 성큼성큼 최홍식에게 다가갔다.

“저, 감독님께 연락하시는 거 조금만 미뤄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차례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생하기 전에 아이템을 질렀겠지만, 포인트가 아까워서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가끔은 노력으로도 힘들 때가 있었다. 노력은 곧 시간이었고 시간이 없을 때는 노력을 한들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좀 감을 잡은 것 같아요.”

천천히.

아주 서서히 의심 가지 않도록 변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

“아, 그래요?”

핸드폰을 들고 있던 최홍식은 썩 믿지 않는 눈치였다.

“후우.”

심호흡을 한 유수한은 가볍게 오늘 여러 번 반복했던 돌려차기를 보여 주었다. 너무 의심하지 않도록 가볍게, 자세를 보여 주듯이 느리면서도 부드럽게.

촤악.

“응?”

그 순간, 최홍식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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