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45화 (45/175)

45. 흑역사 갱신

[HOT] 유수한 어색한 춤사위 ㅋㅋㅋㅋ 어느새 100만뷰 돌파 ㅋㅋㅋㅋㅋㅋ +258

‘신박한 연예뉴스’가 방송되고 Y튜브에 올라간 유수한의 ‘헤이파파’ 영상은 입소문이 퍼지며 조회수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 지금 150만뷰 돌파함 ^^

⌞곧 200만뷰도 돌파할 듯~

⌞⌞이 동영상을 유수한이 싫어합니다 ㅋㅋㅋㅋㅋ

그 말이 맞다.

유수한은 흑역사가 박제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물론 연예인이라면 그런 일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다.

“차라리 다행인가.”

요즘 스먼파가 인기라서 유수한이 춘 ‘헤이파파’가 인기를 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연예인이 ‘헤이파파’를 따라 추는 게 유행이었고 한결같이 반응이 좋았다.

좋게 생각하면 차라리 어색한 춤사위가 이슈 되는 게 나았다.

[HOT] 얘들아. 이걸 왜 빼 먹냐? 유수한 애교 3종 세트도 보고 가자. +105

물론 지우고 싶은 ‘애교 3종 세트’ 역시도 핫이슈 게시판에 올라왔지만, ‘헤이파파’보다는 관심도가 적었다.

아직 연예인으로서 경험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오늘의 데이트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또 생각해 보면 신박한 연예뉴스가 최악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리얼 버라이어티는 툭하면 개인기랍시고 춤추게 하고 성대모사도 하게 하니까.

“뭐랄까.”

한숨을 푹 쉬며 유수한이 중얼거렸다.

“어떤 직업이든 고충이 있구나.”

물론 뜨기만 한다면 연예인은 다른 직업에 비해 좋은 직업이다.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돈도 다른 직업보다 월등하게 벌 수 있다.

어린 나이에 톱스타가 돼서 건물 몇 채를 떡떡 사는 연예인이 차고 넘치니까. 물론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배우든, 아이돌이든, 개그맨이든 가장 중요한 건 유명해져야 가능했다. 물론 부정적인 유명이 아니라 긍정적인 유명이 되어야겠지만.

더불어.

[유수한 갤러리] 이거 완전 인간 스카이 에이드 아니냐? +206

스카이 에이드 광고 반응도 좋았다.

늘 그렇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팬들이었다. 이성실은 이 광고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 가자고 말했다.

촬영할 때도 좋았다. 짧은 분량에도 어떻게 하면 존재감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어진 지면 광고 촬영에도 그랬다. 어떤 얼굴을 해야 ‘스카이 에이드’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빛유/잡담] 오늘 스카이 에이드 포카 유수한 나왔어요! +2

[빛유/잡담] 반짝반짝 이은별에서 왔습니다. 혹시 포카 교환 가능할까요? +13

스카이 에이드는 모델 교체 이후에 포토카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스카이 에이드를 사면 랜덤 포카를 주는데 유수한과 이은별이 랜덤으로 들어가 있었다.

팬들은 모든 종류의 포카를 받기 위해 편의점에서 제품을 사고 있었다. 그리고 이은별 팬과 포카 교환까지 하며 활발히 팬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빛유/잡담] 포카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서 마치 아이돌 된 기분 ㅋㅋㅋㅋㅋ +6

요즘은 배우도 팬이 직접 포토카드를 만든다. 아이돌은 앨범에 심심찮게 포카가 들어가지만, 배우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스카이 에이드 이벤트를 더 반기는 분위기였다. 물론 스카이 에이드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유수한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판매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계약 연장 또는 메인 모델로 전환도 가능할 테니까.

“날이 더우니까 후딱 찍고 텁시다.”

야외 촬영.

오늘 유수한은 추격전을 벌인다. 도로를 통제해야 하는 촬영이라 어느 때보다 시간이 금이었다. 유수한은 가볍게 몸을 풀며 한여름에 뛸 준비를 했다.

“자, 촬영 시작합시다.”

주변에 몰린 인파를 정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승혁은 주위 분위기를 살피며 잠잠해질 때 즈음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레디!”

유수한이 심호흡을 하며 뛸 준비를 했다.

“액션!”

이은서를 납치한 차량을 향해 뛰어간다.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발이 터지도록 뛰던 정유환이 인상을 찡그리며 숨을 몰아쉰다.

이윽고.

김 비서의 차가 도착하고 정유환이 그 차에 올라타는 것까지. 까다로운 촬영이라 호흡을 빠르고 짧게 끊어 들어가고 있었다.

“컷!”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유수한 역시도 다시 스타 반열에 올라서면서 야외 촬영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문낸 것도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하나같이 유수한을 보기 위해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어서 바로 갑시다!”

그리고 유수한은 메이크업을 고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유수한을 보려고 가던 길을 멈추었다. 생각에 잠기다가 손을 들어 흔드니 자지러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

“레디!”

다시 촬영이 이어졌다.

“액션!”

* * *

올해 SBC 최고의 드라마를 집필한 김우리.

현재 김우리 작가는 작업실에 박혀 대본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늘 그렇듯 글은 초반보다 후반이 어려웠다. 특히나 지금 더 고난을 겪고 있었는데, 이유는 역시 시청률이었다.

드라마 ‘시간’을 쓰기 전에 김우리 작가는 소소한 소박 정도의 작가였다. 시청률이 바닥을 기지 않지만, 중박이나 대박이 없었다. 항상 8-10% 초반대를 드나들던 작가였기에 더더욱 부담이 가중되었다.

[연예뉴스] 만년 유망주 김우리 작가. ‘시간’으로 날개 달아.

이럴 땐 핸드폰을 끄고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간교해서 그 사실을 알고도 쉽게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시청률은 대중 반응의 지표였다.

아무리 실시간 스트리밍 사이트가 뜬다고 해도 결국 성적표는 시청률로 받는다. 지금 드라마는 대중 반응도 좋았고 관련 연예 뉴스도 평가가 좋았다.

관심을 받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어떻게 써야 마지막이 아쉽지 않을지 고민하게 된다. ‘시간’은 16부작이었다. 14부까지 빠르게 탈고한 김우리는 마지막 문턱을 남겨 두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14부까지 완대본을 받은 상태라 집필을 닦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만.

“지금 15부를 며칠째 붙잡고 있는 거지?”

역시나 사람 마음은 쉽지 않다.

쓰고 지우고 수정하는 일을 반복한다. 차라리 수정에서 그친다면 다행이다. 아예 내용을 통으로 싹 지우는 일이 잦아졌다.

사실상 결말은 정리된 상태였음에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캐릭터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구난방, 튀어 나가는 인물들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님. 추가 PPL 명단 도착했어요.”

보조 작가가 조심스럽게 프린트된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어디 보자.”

이번에 유수한이 찍은 CF 스카이 에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이온음료 정도는 극에 쉽게 녹여 낼 수 있었다.

“3회 노출? 이 정도면 가뿐하지.”

가끔 드라마에서 PPL 때문에 부잣집 설정인데 인스턴트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제품이 각인은 될지언정 좋은 반응은 얻을 수 없었다.

만약 제품에 대해 말로 설명해야 한다면 더더욱 최악이다. 하지만 스카이 에이드에서는 3회 단순 노출만 걸었다.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한 음료였기에 그 이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었다.

“14부에 끼워 넣을 부분 있나?”

그 말은 아직 14부 촬영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알아서 자연스럽게 제품을 녹이라는 뜻이었다. 보조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PPL 리스트를 들고 홀연히 사라졌다.

“유수한이 이렇게 뜰 줄 알았나.”

처음 김우리 작가는 이승혁 감독이 남주 캐스팅에 ‘유수한’을 꺼냈을 때 사실 기분이 나빴다. 물론 캐스팅 권한은 감독에게 있었지만, 미니시리즈에 한물간 배우라니 탐탁지 않을 만했다. 하지만 아직은 스타 감독에게 어깃장을 놓을 위치가 아니었다.

물론 결과는 좋았다.

색안경을 끼고 유수한을 보았던 김우리는 그를 대면하자마자, 색안경이 서서히 벗겨졌다. 나름대로 조연 ‘조성운’을 운운하며 색안경 벗는 걸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유수한은 소문과 달리 소탈했고 말도 예쁘게 했다.

“포텐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빵 뜰 줄이야.”

유수한을 반대했던 지난날이 무색했다. 이승혁 감독은 대체 유수한에게서 어떤 장점을 발견했기에, 격렬한 드라마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캐스팅했을까.

이승혁 감독에게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데려올 리가 없었다.

“솔직히 짜증 났는데.”

글이 안 풀리니 나오는 건 혼잣말이다.

보조 작가가 있다고 해도 글 쓰는 일은 혼자만의 사투였다. 그러다 보면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잦다.

계속 말했던 것처럼 처음 유수한은 싫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떤 계기로 사람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언제고 다시 터질지 몰랐다. 애초에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건 사고를 연달아 터트리지도 않았을 테지.

“제발 사고를 쳐도 드라마 끝나고 쳐라.”

간절한 바람이다.

물론 진짜 간절함은 지금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진실된 본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드라마 주인공 ‘정유환’이 그렇듯 예전의 모습은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

자꾸 잡생각에 손에 글이 잡히질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우리는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았다. 처음 글을 썼을 때는 작업실조차 없었다.

작은 원룸에서 수많은 단막극을 써 내렸던 지난날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조금씩 능력을 인정받고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김우리는 숱한 마음고생을 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음을 다잡는다.

유환 : 만약에 말이야.

타닥타닥.

경쾌한 키보드 소리가 울렸다.

유환 : (머뭇거리며) 내가 당신 곁에 계속 있고 싶다면…….

15부 집필을 다시 시작한다.

처음 정유환 캐릭터의 비중은 지금보다 턱없이 낮았다. 애초에 이은서 역할을 필두로 계획했던 드라마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유환의 비중이 커진 건 이승혁 감독의 고집이었다. 늘 생각하지만, 이승혁 감독의 감은 무서울 정도였다.

유수한을 무턱대고 믿었던 것도 그랬으며 정유환 캐릭터를 살려 달라고 부탁이 아니라 요구를 한 것도 그랬다.

덕분에 정유환은 조금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단순히 망나니 캐릭터에서 벗어나도록 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캐릭터 구성을 다시 짜며 고생했던 김우리였다.

유환 : (은서 눈치를 보며) 나 그래도 되나?

타닥타닥.

“아휴.”

글을 쓰던 김우리가 한숨을 쉬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쓴 것을 다시 지운 김우리가 턱을 괴며 가만 생각에 잠겼다.

“정유환을 어떻게 한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비중이 높아진 정유환이었다. 그렇다면 그만큼 걸맞은 분량이 주어져야 마땅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김우리가 날짜를 확인했다. 아직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루 정도는 글에서 손을 떼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었다.

핸드폰을 손에 든 김우리가 조연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나 김우리 작가인데요. 촬영은 잘 돼요?”

사실 작가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김우리는 촬영장에 찾아가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글이 풀리지 않을 때, 촬영 현장에 찾아가 감을 찾는 작가도 있었다.

“그럼 나 잠깐 촬영장에 가도 괜찮을까요? 아니요. 그냥 글이 잘 안 풀려서요. 일단 감독님께는 제가 말해 놓을게요.”

언제나 일의 순서는 중요하다. 가장 먼저 조연출에게 촬영 상황을 살펴본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촬영 현장이라면 작가가 갔을 때 분위기만 흐려질 뿐이었다. 어쨌거나, 감독과 작가는 동업자이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였다.

“네, 감독님.”

바로 이어서 김우리가 이승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제가 오늘 혹시 촬영 좀 구경해도 될까 하고요. 아무래도 요즘 글이 안 풀려서. 배우들 연기 좀 참고하려고요.”

다행히 요즘 이승혁 감독은 기분이 좋았다. 시청률도 좋았고 작가와의 트러블도 없었다. 이승혁은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하는 성향이었기에, 그걸 싫어하는 작가도 더러 있었다. 김우리는 유연한 성격이었고 이승혁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면 적극 반영하는 작가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 지금 바로 갈게요.”

오늘 오후 촬영은 탄현 세트장이었다.

김우리는 노트북을 가방에 챙기고 집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작품을 시작하면 담배 피울 때 말고는 나갈 일이 없는데, 오랜만에 차 끌고 멀리 나가는 김우리 작가였다.

그리고.

“어.”

김우리는 열심히 촬영장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작업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현재 추격전 촬영은 마무리 단계였고 열심히 뛰고 있는 유수한을 볼 수 있었다.

“액션?”

그리고.

그 순간 새로운 정유환의 모습이 머리에 딱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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