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44화 (44/175)

44. 이미지 변신

스카이 에이드(Sky Ade) 15초 버전 광고가 본격적으로 송출되기 시작되었다.

유수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스카이 에이드 광고주를 직접 대면했던 이성실은 대중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연예이슈] 유수한, 스카이 에이드 첫 남성 모델 발탁! …… 신예 이은별과 호흡 맞춰

광고 계약 체결하자마자 부지런히 보도 자료를 뿌렸다.

거의 헐값에 광고 계약을 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스카이 에이드 광고는 개런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한 첫 작업이었다.

「라라라 라라라라라라-」

특유의 스카이 에이드 배경 음악이 흘러나왔다.

장소는 푸른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야외 인공 암벽장. 이윽고 클라이밍을 하는 이은별이 나타났다.

“음.”

이미 확인했던 영상이지만, 한 번 더 꼼꼼하게 모니터링한다.

주로 매체에 보일 영상은 15초 분량의 짧은 광고였다. 그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언론 플레이를 할지 고민했다.

「앗!」

클라이밍을 하던 이은별이 힘이 빠져 그대로 추락하고.

끈에 매달린 채 낙담하고 있으면 이온음료를 들고 유수한이 나타난다.

「자.」

스카이 에이드가 화면에 들어오고.

「이거 마시고 힘내!」

유수한의 티 없이 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낙담할 필요 없어.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내레이션과 함께 시원하게 음료를 마신 이은별이 힘차게 다시 암벽 등반을 시작했다.

「내 몸에 수분 완벽 충전!」

이은별과 유수한이 나란히 서서 스카이 에이드를 시원하게 마시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스카이 에이드!」

15초 버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메인 모델인 이은별의 분량이 압도적이지만, 유수한이 스카이 에이드를 내미는 모습이라든가. 시원하게 음료수를 들이키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대표님께서 좋아하시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그 말에 이성실이 눈살을 팍 찌푸린다.

“내가 언제 좋아했어?”

“지금 되게 흐뭇하게 모니터 하셨잖아요.”

“마지못해 보는 거야. 돈 몰라? 소속 배우가 잘돼야 돈을 벌지.”

직접 광고를 따 온 사람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애초에 유수한에게 광고가 들어왔음을 말했을 때도 ‘스카이 에이드’ 광고는 직접 따 왔다고 말하지 않은 이성실이었다.

“됐고.”

이성실이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홍보 포인트는 이미지 변신이다.”

이미지 변신.

그동안 엉망진창이었던 배우 유수한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짧은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마케팅 팀장이 뭔가 생각난 듯 이성실을 보았다.

“아, 대표님. 오늘 신박한 연예뉴스 방송 날입니다.”

“근데.”

“유수한 나오거든요.”

그걸 이성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 * *

놀리는 건가.

「유수한! 애교 3종 세트 해 줘!」

왜 대기실에 저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는 거지.

「저 애교가 없, 없어서 진짜 3개나 해야 하나요?」

유수한이 당황한 나머지 말 더듬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이 대기실에는 주민하와 민서온이 있었고 함께 드라마에 나오는 조연 배우 몇몇도 함께 있었다.

“난 진짜 애교 시키는 게 제일 싫어.”

주민하가 몸서리를 치며 중얼거렸다.

“근데 남이 하면 또 재밌더라.”

그것도 잠시 바로 유수한을 놀리는 주민하였다.

유수한은 죽을 맛이었다. 다른 방송으로 돌리자니, 저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 방송을 틀어 놓은 이유도 놀리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래서 저희가 편하게 애교 보여 주실 수 있도록 예시를 준비했어요.」

유수한은 말리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정신 놓고 함께 보자.

「첫 번째는 이거 사 주세요. 두 번째는 수한이는 이거 먹고 싶은데. 세 번째는 사랑의 총알 쏘면서 아잉!」

와.

다시 봐도 토할 것 같다.

“내가 저래서 저 프로는 안 나가잖아.”

커피를 마시던 민서온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화면 속 유수한을 보며 말했다. 유수한도 저런 프로라는 걸 알았다면 처음으로 거절이라는 걸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데이트’에서 시키는 건 모두 하겠다는 말을 한지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이, 이거 사 주떼요!」

“푸하하하하하! 이거 사 주떼요래!!!”

유수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얼굴은 새빨개진 채로 문으로 다가가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가 문을 막는다. 스타일리스트 보라였다.

“나와.”

유수한의 말에도 보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빠. 모니터링은 같이 해야죠.”

그리고.

「수한이느은…… 이거 먹고 시픈데…….」

모든 사람들이 유수한 놀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지금 고통스러운 사람은 오직 유수한 뿐이었다.

“제발 나 나가게 해 줘!”

유수한이 사랑의 총알을 쏘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며 소리쳤다.

「아, 아, 아잉!」

* * *

“캡쳐 각. 보정 각. 플짤 각. 움짤 각.”

지금 이경민은 중얼중얼거리며 방송을 보고 있었다.

처음 시작부터 이온음료 광고 스케치 영상으로 시작해서 눈 호강을 했는데 그다음 이어진 내용이 덕후의 마음을 울렸다.

애교 3종 세트는 어색해하는 모습이 미친 듯이 귀여웠고 그다음에 이어진 노래는 어김없이 또 잘 불러서 사람 미치게 했다.

물론 이번에도 버즈였다.

유수한의 최신곡은 아무래도 버즈에서 멈춘 모양이다.

「1위는요.」

심장이 두근거린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그 말대로 지금 유수한은 긴장하다 못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생각보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뭘 시키든 일단 하고 보는 게 귀여웠다.

이경민은 예전에는 유수한을 말 그대로 싸가지 없는 날라리 정도로 봤다. 술 먹는 거 좋아하고 여자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그러다 보니 내향적인 성격이라고는 예상조차 못 했다.

실제로 본 유수한은 여러모로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반되었다. 물론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그 갭 차이에 더 치이는 거였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타 방송국이긴 한데요. 요즘 핫한 예능 하나 있어요.」

「예능이요?」

「네. 스먼파라고 아세요?」

설마.

이경민이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을 지켜보았다.

「스먼파요?」

역시나.

유수한은 요즘 핫한 예능 프로그램을 모른다.

「역시 모르시는구나.」

「네. 제가 요즘 유행하는 건 잘 몰라서요.」

「춤 경연 프로그램인데, 거기서 유명한 댄스가 있어요.」

「아.」

유수한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이쯤 되면 직감한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춤추는 거라는 걸.

「‘헤이파파’라고 들어 보셨어요?」

「아니요.」

「그럴 줄 알고 영상 준비했습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거든요. 물론 지금 수한 씨도 드라마로 대한민국 여심을 뒤흔들고 계시잖아요?」

이윽고.

‘헤이파파’를 추는 스먼파 리더즈의 자료 영상이 흘러나왔다.

“미친, 미친, 미친! ‘헤이파파’ 추는 유수한이라니!”

그리고 이경민은 전율에 차 스스로 박수를 크게 치며 ‘헤이파파’ 춤을 엉성하게 추고 있었다. 아무리 유행에 둔감한 유수한이었다지만, 귀에 들리는 노래를 모르지 않았다. 요즘 어딜 가나 이 노래가 나온다 하더라니. 이 춤 때문에 그랬나 보다.

「제가 이걸 바로 출 수 있을까요?」

어두워진 안색으로 유수한이 진지하게 물었다.

「한 번 더 보여 드릴까요?」

「한 번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은데…….」

「영상 보면서 추셔도 돼요.」

「그, 그럼 한 번 더 보고 영상 보면서 열심히 춰 볼게요.」

이미 유수한은 해탈한 눈치였다.

나름대로 생각은 애교 3종 세트보다는 노래가 낫고 노래보다는 춤이 낫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해 본 게 가장 낫다고. 유수한은 노래가 가장 쉬웠다.

「Be my woman, girl, I’mma Be your man~」

노래가 흘러나오고.

「와아아아아!」

유수한이 최선을 다해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꺅!”

이경민은 소리를 질렀고.

화면 속 유수한은.

뚝딱뚝딱.

말 그대로 뚝딱이였다.

“세상에! 벽 뿌셔. 지구 뿌셔. 그냥 막 뿌셔. 미쳤어!”

팔을 위로 올리고 휘젓휘젓.

아래로 내리고 휘젓휘젓.

열심히 뚝딱거리며 따라 하다가 크게 박수 칠 때는 세상 열심히 한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고 한편으로는 너무 열심히 해서 귀엽기도 했다.

“내 새끼 존나 귀엽다!”

스물다섯 먹은 내 새끼 유수한은 예능 방송에서 현타를 느끼며 세상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유수한은 영혼이 털린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너무 잘 추시는데요?」

아나운서의 립 서비스가 이어진다.

「노래도 잘 부르시고 춤도 잘 추고. 아이돌 하셔도 되겠어요!」

이미 유수한은 기가 다 빨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벌써 끝났어?”

아쉬운지 이경민이 입맛을 다신다.

신박한 연예뉴스의 마지막은 유수한이 멋지게 광고를 찍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자막에는.

「다음에 또 만나요!」

라며 다시 재회를 희망하는 제작진의 메시지가 나왔다.

이경민 역시도 이번 방송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새로운 떡밥이 충전되었으니 노트북을 켜야 마땅하다.

[리뷰] 오늘 신예 보셨나요? 진짜 이건 빛유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 해요!

신예는 ‘신박한 연예뉴스’, 빛유는 ‘빛나는 유수한’의 줄임말이었다.

이경민은 방송에서 좋았던 점을 세세하게 적었다. 주로 유수한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는 말이 전부였다. 특히 마지막에 팬을 향해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제가 여러모로 많은 분들께 실망을 안겨 드렸는데, 앞으로는 팬분들을 위해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마지막으로 ‘빛유’ 여러분 사랑해요.」

완벽한 마무리.

거기에 수줍은 손가락 하트까지.

유수한은 날이 갈수록 아이돌화 되어 가고 있었다.

* * *

다시 SBC 탄현 세트장.

꾸준한 운동으로 탄탄해진 몸매를 가졌던 유수한은 지금 마치 종이 인형 같았다. 사방으로 유수한이 했던 애교를 따라 하는 사람들과 유수한이 춘 ‘헤이파파’를 따라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실시간으로 영혼이 빠지는 중이었다.

“나중에 인터뷰 들어오면 꼭 시청률 공약 해 주세요!”

뒤늦게 핸드폰으로 영상을 확인한 제작 PD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20% 넘으면 촬영장에서 ‘헤이파파’ 추는 걸로!”

네? 저만요?

“그럼 단체 군무 어떠세요?”

발끈한 유수한이 소리를 크게 내었다.

“배우는 물론, 스태프 전원 함께요! 예전 플래시 몹처럼요!”

유수한은 그냥 던진 말이었다.

SBC ‘신박한 연예뉴스’가 방송된 이후로 계속 놀려 대는 사람들에게 지쳤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같이 하자고 하면 다시는 공약으로 뭘 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 줄 알고.

그런데.

“그럼 마지막 회에 단체 군무 넣는 거 어때요? 아님 팀별로 나누어서 찍어도 재밌을 것 같고요!”

어라.

이게 아닌데.

“엔딩 스크롤 올라갈 때 편집 영상 넣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유수한은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 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견을 내고 있었다.

아마 이것도 바쁜 촬영 현장 탓일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생각하지 않을 일들을 정신 빠지도록 바쁜 나머지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듯했다.

쉽게 말해 제정신이 아니다.

“우선 비주얼부터 시작하죠. 배우팀이 먼저 하고. 그 다음은 연출팀. 그리고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순서로!”

“제작부는요?”

“연출부하고 함께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 외 소품팀이나 매니저, 코디들도 함께 하죠?”

제정신이 아닌 스태프 전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보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팔로 크게 엑스 자를 그리고 있었다. 보라는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춤추는 건 사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너도 해야지.”

유수한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보라 춤추는 거 너무 기대된다.”

어디 너도 한번 카메라 앞에서 춤춰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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