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43화 (43/175)

43. 애교 3종 세트

[연예토킹] 18.3%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 드라마 ‘시간’의 인기 비결은?

정유환의 비밀이 밝혀진 ‘시간’의 10회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동안 오름세가 없었던 시청률은 3%가 올라 18.3%에 육박했다. 지금 유수한은 따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왜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 구김살이 없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김대한이었던 시절에는 사랑도 받지 못했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급급했던 삶이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돈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고 분에 넘치는 사랑도 받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존 유수한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타고난 조건이 좋은 사람이었다. 잘생긴 외모는 물론 신체 조건도 좋았다. 더불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그 누구보다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저.

사람답게만 살았더라면 그가 죽음을 맞이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형, 피곤하진 않으세요?”

새벽 공기가 차다.

광고 스케줄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지난 이틀간 유수한은 잠을 제대로 잘 시간이 없었다. 촬영 장소는 남양주에 있는 인공 암벽장이었다.

직접 유수한이 암벽 등반을 해야 할 장면은 없었고 음료수만 건네주면 되는 간단한 촬영이었기 때문에 메인 모델에 비해서 꿀이었다.

“여기 커피요.”

“고마워.”

유수한도 피곤하지만, 함께 스케줄을 소화하는 매니저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간중간 촬영장에서 쪽잠을 잔다고 하지만, 편히 쉴 수는 없었다.

“아침은 드셨어요?”

“우유 한 잔 마시고 나왔어.”

요즘 바쁜 스케줄 탓에 체력 보충을 위해 가끔 치팅 데이를 갖고 있지만, 언제나 관리를 하게 된다. 가끔은 늦은 시간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치킨 한 마리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예전처럼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몸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못 먹는다. 물론 굶주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그래도 기름진 치킨은 자꾸만 생각났다.

“그럼 오늘 스케줄 다시 정리해 드릴게요.”

유수한이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오늘 광고 촬영 있고요. 신예팀에서 인터뷰 요청 들어와서 광고 진행 전에 가볍게 토크하게 될 거예요.”

말없이 스케줄을 듣던 유수한이 미간을 좁혔다.

“신예?”

“신박한 연예뉴스요.”

또 줄임말이다.

“웬만하면 내 앞에서는 줄임말 쓰지 마라.”

“왜요?”

“몰라서 묻냐?”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물론 이미 전날에 ‘신박한 연예뉴스’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걸 듣기는 했지만, 줄임말을 들으니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 두 개가 끝이지?”

“네. 오늘 스케줄은 이게 끝이에요.”

“오랜만에 여유롭네.”

“잠도 못 자고 이틀 동안 촬영만 했잖아요.”

“그랬지.”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고 촬영은 처음이라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수면 시간이 보장되어 있다.

다음 날 콜타임은 8시였다.

아무리 늦게 끝나도 최소한 5시간은 잘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단막극 때는 일주일 촬영이라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확실히 미니시리즈는 일정이 타이트했다.

밤샘 촬영은 기본이었고 정신없이 촬영하다 보면 감정선이 꼬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대본을 보며 극 흐름을 다시 잡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몸도 정신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 또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다른 드라마를 할 때는 지금보다 더 경험이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촬영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또 뭘 시키려나?”

이른 시간이라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보라가 부스스한 눈으로 유수한을 보았다.

“뭘 시켜? 그냥 인터뷰잖아.”

인터뷰 요청이라고 해서 가볍게 인터뷰 정도를 하는 줄 알았던 유수한이 미간을 좁혔다.

“그냥 인터뷰면 이렇게 일찍 출발하겠어요?”

“응?”

“그냥 인터뷰였으면 한 시간이면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일찍 나가겠어요?”

그 말에 순간 흑역사가 떠올랐다.

바로 ‘오늘의 데이트’였다. 처음 경험했던 예능은 유수한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래는 시키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던 중에.

“그 프로그램 말 그대로 신박한 거 시키잖아요.”

보라가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SBC ‘신박한 연예뉴스’는 말 그대로 신박한 연예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타 연예 뉴스 방송과 별다를 게 없었다.

“뭐. 말만 신박하지, 막상 그렇지도 않아요.”

그 말을 들어도 유수한은 긴장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랬다. 유수한이 핸드폰을 들었다. 뒤늦게 ‘신박한 연예뉴스’를 찾아본다.

광고 스케줄 때문에 미리 촬영을 몰아서 하느라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최근 방영분을 찾아보던 유수한이 이내 한결 마음이 놓인 듯 한숨을 쉬었다.

보라 말대로 요구가 조금 까다로워 보이지만, ‘오늘의 데이트’만큼은 아닐 것 같았다. 주로 팬들의 질문을 받아 스타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주였다.

“그래도 오늘의 데이트보단 낫겠지.”

핸드폰을 내려놓은 유수한이 애써 불안한 마음을 지웠다.

* * *

남양주에 위치한 인공 암벽장.

CF 촬영은 야외 암벽장에서 진행된다. 유수한은 ‘신박한 연예뉴스’ 인터뷰를 위해 따로 마련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 현재 시간은 새벽 6시였고 본격적인 광고 촬영은 아침 9시였다.

현장에 일찍 도착한 유수한은 촬영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미리 준비를 마친 유수한은 콘티를 보며 ‘신박한 연예뉴스’ 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유수한 씨!”

문이 열리며 ‘신박한 연예뉴스’ 팀이 등장했다.

“최지은 아나운서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광고 촬영장에 미리 협조를 구한 ‘신박한 연예뉴스’ 팀은 말 그대로 활발하게 등장했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방송사에서 알아서 홍보를 해 준다는데 촬영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증거로 지금 인터뷰 장소에는 유수한이 모델이 된 ‘스카이 에이드’가 쫙 세팅되어 있었다.

오늘 유수한의 의상은 편안한 캐주얼이었다. 흰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요즘은 평소 촬영할 때는 주로 셔츠를 입었던지라, 오랜만에 입는 캐주얼 차림이 마음에 들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유수한이 살갑게 웃으며 가볍게 목 인사를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오늘의 데이트’처럼 갑자기 와락 안겨드는 일이 없었다.

세팅된 카메라는 총 4대였다.

테이블에 세팅된 ‘스카이 에이드’가 환한 조명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큐카드를 보던 최지은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보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 오늘은 드라마 ‘시간’의 남자 주인공! 유수한 씨를 만나기 위해 광고 촬영 현장에 왔습니다.”

시작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오늘 신박한 연예뉴스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두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유수한에게 뽑을 건 다 뽑아 갈 생각일 터였다.

신박한 연예뉴스는 여러 연예인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기 때문에 할당되는 분량이 정해져 있었다.

물론 가끔 특집도 하지만, 오늘 유수한은 아마 20분 정도의 분량이 주어졌을 것이다.

“요즘 어떠세요? 많이 바쁘시죠?”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드라마 촬영 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또 이렇게 광고 촬영도 하시고요.”

“네, 그렇죠.”

“라이징 스타만 찍는다는 이온음료 광고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광고는 처음.

기존 유수한은 광고를 찍어 봤지만, 지금의 유수한에게는 처음이다. 오늘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콘티를 다시 확인하고 의상을 갈아입었다.

서브 모델이나 다름없어서 까다로운 촬영은 아니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콘티를 뒤적거리게 된다.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드라마 ‘시간’ 덕분에 이렇게 좋은 광고를 찍게 돼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좋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유수한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광고 촬영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없이 살았던 김대한인지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하는 거지, 처음에는 야망도 없었다. 연기를 하다 보니 마음에 들었고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원체 기존 유수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기에 이렇게 빨리 광고가 들어 올 줄은 몰랐다.

“요즘 드라마 ‘시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렇죠?”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SBC 방송사답게 자사 드라마 홍보를 잊지 않았다.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되나요? 서정완은 언제 망하나요? 정유환이 성환그룹의 실세가 될 확률이 요만큼이라도 있을까요? 최근 방영분 보면 정유환이 환각을 본다는 비밀이 밝혀졌는데, 혹시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사람이 정유환일까요?”

따발총처럼 이어지는 질문을 들으며 유수한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 비밀입니다.”

“조금만 어떻게 말해 줄 순 없어요? 아주 조금만요. 제가 진짜 애청자거든요.”

“저도 정말 말씀드리고 싶은데 조심해야 하거든요. 드라마가 너무 잘되고 있어서, 괜히 제가 잘못 말했다가 큰일 날 수도 있어서요.”

“그래도 아주 작은 거라도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역시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그럼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되도록 스포일러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유수한이라 입을 굳게 다물 생각이었는데, 뭔가 하나를 던져야 할 분위기였다.

머리를 굴린다.

어떤 걸 말할지 짧게 생각하던 유수한이 입을 열었다.

“정유환이.”

“네.”

“굉장히 멋있어집니다.”

나름대로 위트 있게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최지은 아나운서가 유수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싹둑.

흐름을 끊어 낸 최지은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보며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

최지은이 다시 유수한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광고 촬영도 하셔야 하고.”

“네.”

“이렇게 붙잡아 둘 수는 없잖아요.”

미리 준비한 판넬을 제작진이 최지은에게 주었다.

최지은은 판넬이 유수한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리며 빙긋 웃었다.

“저희가 인터뷰 준비하면서 팬들에게 신청을 받은 게 있어요.”

SBC 신박한 연예뉴스는 말 그대로 신박한 연예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계속 불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방송분에서는 무리한 걸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해서.

계속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했지만.

“이름하여!”

계속 몰려오는 불안함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이거 해 줘! 유수한!”

뭘 해 주는데.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지은이 판넬을 유수한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그, 제가 오늘의 데이트 봤거든요. 뭐든지 다 하실 거라고 하셔서.”

카메라 한 대가 인서트 컷을 따기 위해 최지은이 들고 있는 판넬을 비추었다. 판넬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공개할 때마다 하나하나 뜯는 방식이었다.

[이거 해 줘! 유수한!]

판넬 상단에 크게 적혀 있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아, 네. 그럼요.”

아직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유수한은 우선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우선 팬이라고 했으니, 이상한 걸 시킬 리 없다는 순진한 믿음이었다.

“그럼! 3위부터 공개할게요.”

하지만.

“유수한! 애교 3종 세트 보여 줘!”

그 믿음이 조금 깨졌다.

“잠깐만요.”

유수한은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3위라고요?”

왜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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