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42화 (42/175)

42.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여기서 저는 해맑게 할게요. 아직 먹어 보진 않았지만, 눈치가 없어서 맛있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촬영은 이어진다. 유수한은 대본을 들고 리허설을 진행했다. 민서온과 대사를 맞춰 보고 이승혁 감독의 디렉팅을 들으며 동선을 확인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장면에서 함께할 중년 배우가 등장했다.

유수한은 이번이 두 번째로 함께 호흡하는 배우였다. 충무로가 사랑하는 배우이자 화려한 경력을 가진 명배우 이순자였다.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이승혁 감독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럼, 우리 후배들 어떻게 연기하는지 보고 싶기도 했고.”

여든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연기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배우.

이승혁은 분량도 얼마 없는 역할에 이순자를 모시고 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이 역할만큼은 이순자가 해 주길 바랐고 패를 까 보니, 역시 말할 것 없이 명품 연기였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이순자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촬영 시작합시다.”

오늘 촬영은 계약 결혼 한 이은서와 정유환의 신혼집에서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결혼한 신분이었으나 각방을 사용한다.

정유환은 이은서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다가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은 있지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고구마 구간에 놓여 있다.

“레디, 액션!”

촬영이 시작되었다.

정유환은 앞치마를 입고 있다. 직접 끓인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려놓은 유수한이 밥솥을 연다. 사랑은 못 받았지만, 나름 재벌집 사람이라 요리는 처음 해 보는 정유환이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며 요리해 봤지만, 물 양을 잘못 잡아 거의 죽이 돼 버렸다.

“뭐 해?”

잠에서 깬 이은서가 나타났다.

코끝에 느껴지는 탄 냄새에 미간을 찌푸린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아, 그게…….”

목발을 짚고 조심스럽게 다가온 이은서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 엉성한 계란 프라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은 김치찌개였다.

계란 프라이나 김치찌개는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고 문제는 죽이 돼 버린 밥이었다.

“직접 만들었어?”

이은서의 물음에 정유환이 민망한 듯 목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사 먹는 게 조금 질릴까 봐…….”

거짓말이다.

그저 이은서에게 직접 요리를 해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예전 성환가에서 살 때, 일하는 아줌마가 쉽게 요리를 하는 것 같아서 요리를 쉽게 봤었던 유수한이었다. 그렇기에 인터넷을 보면서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재료는 모두 최상급이었지만, 맛은 보장할 수 없었다.

“잘 먹을게.”

식탁에 앉은 이은서가 수저를 개의치 않고 수저를 든다.

그 모습을 본 정유환은 마음이 한결 놓인 눈치였다. 이은서는 식탁에 놓인 밥을 본다. 담담하게 우선 찌개부터 맛을 보았다.

“…….”

맛에 기대는 없었지만.

“괜찮아?”

이게 대체 무슨 맛일까.

하지만 차마 내색할 수는 없다. 기대를 하고 있는 저 눈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먹을 만해.”

정유환의 표정이 밝아진다.

눈치도 없지. 이게 정말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난 역시 못하는 게 없나 봐. 그렇지? 밥은 좀 그런데, 다음에 하면 더 잘할 수 있어.”

혼자 자화자찬을 늘어놓던 정유환이 젓가락을 들던 그 순간.

정유환의 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 초인종 소리는 정유환만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벨 소리 들렸잖아.”

“어?”

“김 비선가?”

자리에서 일어난 정유환이 성큼성큼 현관문으로 다가간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이은서가 이상한 눈으로 정유환의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

인터폰을 확인한 정유환의 얼굴이 환해진다.

벌컥.

현관문을 연 정유환이 허공을 보며 밝게 웃었다.

“엄마!”

이 컷은 이순자 없이 진행한다. 나중에 촬영이 마무리된 후에 같은 장면을 찍을 예정이었다. 이순자의 역할은 정유환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오직 정유환에게만 보이는 사람이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정유환은 밝다.

마치 정말 친엄마를 본 듯한 눈빛이었다. 정유환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가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친엄마의 얼굴도 모르면서 친엄마의 존재를 만들어 냈고 그 존재는 이따금씩 나타나 정유환에게 애정을 주었다.

“정유환 씨.”

등 뒤로 이은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신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그 순간 정유환의 눈이 흔들린다.

다시금 홱 고개를 돌려 현관을 본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당황한 정유환의 손이 떨린다. 지금까지 본인조차도 속아 왔었던.

왜 순간순간 기억이 사라지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아, 아니야.”

정유환은 떨리는 눈으로 이은서를 보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혼란스러움에 정유환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은서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정유환이 뒷걸음질 친다.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정유환은 이은서를 만나 치료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았던 정유환은 병원에 갇혀 치료를 받아도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환각을 보는 횟수도 줄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그 즈음에 다시금 찾아온 것이다. 그립고 그리워하던 사람이. 버리고 갔어도 잊지 못했던, 얼굴조차 모르던 그 사람이.

“괜찮아.”

이은서는 침착하게 정유환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이미 두려움에 가득 찬 정유환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컷!”

모니터를 하는 동안 준비를 마친 이순자가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첫 회에 잠깐 등장했던 이순자는 유수한의 연기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젊은 배우를 보면 그저 귀여운 아이처럼 보이는 이순자였다. 젊은 배우와의 호흡은 언제나 즐겁다. 젊은 배우에게는 지나간 청춘을 기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유수한은 냉큼 자신의 의자를 양보했다. 그 행동에 이순자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서 있을 만해.”

“그래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힘들면 그때 빌릴게.”

“네, 선생님.”

이순자가 등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촬영은 계속 이어진다. 이미 카메라와 조명이 세팅된 상황이라 갑자기 컷 순서를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이순자의 등장 장면은 현관 밖이었고 따로 조명 세팅이 필요하다.

언제 촬영이 시작할지 모르지만, 이순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현장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콜타임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이순자는 이렇게 사람들 틈에 있는 걸 좋아했다.

작년 SBC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던 이순자는 수상 소감으로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였다.

“레디, 액션!”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유수한은 실수 없이 매끄럽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이 드라마를 시작했을 때는 여유가 없었다. 치밀하게 대본 연구를 하고 애드리브를 준비했기에 매 순간 머리를 굴리며 연기했었다. 지금은 철저한 계산 없이도 물 흐르듯이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컷!”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가 좋다.

딜레이 없는 현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특징이었다. 배우가 잘 따라오면 보조하는 스태프도 덩달아 흥이 오른다.

“수한이 저 녀석 연기가 더 늘었네?”

이순자의 말에 이승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연기할 때 나쁜 버릇도 없고.”

“어떻게 저런 녀석을 데려왔을까, 우리 이 감독이?”

“반대 심했어요. 국장님이 절 죽이려 했다니까요.”

이승혁이 혀를 찼다. 유수한을 남주로 캐스팅하겠다고 했을 때,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승혁은 유수한에 대해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캐스팅 반대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타 방송국에 가 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다. 사실 유수한을 직접 캐스팅한 이승혁도 나름 모험이었다.

유수한이 남주로서 어느 수준까지 보여 줄지는 미지수였다. 다행히 유수한은 기대 이상의 발전 속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잘 조련하면 더 나아질 것 같네.”

“이제 최애 갈아타신 거예요?”

“최애?”

“그 가장 애정하는 후배요.”

“아아. 서온이는 늘 잘하지. 매주 주말만 되면 안부 인사 꼬박꼬박 하는 애야.”

이순자는 제자는 없지만, 예뻐하는 후배는 있었다. 주로 젊은 배우를 좋아했는데, 민서온도 이순자가 예뻐하는 배우였다.

민서온 같은 경우는 이순자와 주말 드라마를 함께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는 젊다 못해 어렸다. 교복을 입고 촬영장을 다니는 민서온을 보며 이순자는 마치 손녀처럼 귀여워했다.

“서온이도 참. 언제 저렇게 자랐담?”

가끔 아이들을 보면 왜 저렇게 빠르게 자라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이순자였다.

“자네도 그렇고 말이야.”

“저 말입니까?”

“그럼. 자네 조연출 할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해.”

“아이고, 선생님. 너무 가셨습니다.”

조연출 시절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승혁이었다.

짧은 잡담을 마치고 다음 촬영을 위해 세팅이 시작되었다. 유수한은 조심스럽게 이순자에게 다가갔다. 처음 이순자와 함께 촬영했을 때 많은 것을 배웠다.

조금씩 연기가 익숙해지고 있지만, 초반만 하더라도 최은호에 대한 경쟁심이 불타서 온갖 고민을 거듭하던 유수한이었다.

이순자는 그런 유수한에게 딱 한마디를 했다.

‘너 연기할 때 생각 많이 하는구나? 지금은 그럴 때지만, 나중에는 그게 독이 된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유수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그 말의 의미를 알아 가기 시작했다. 가끔은 계산이 아니라 마음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

정유환이 되어 그 순간에 몰입해야만,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 식사는 하시고 오셨어요?”

민서온이 살갑게 이순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유수한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늘 무뚝뚝한 사람이 저렇게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를 내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넌 왜 그런 눈으로 보니?”

그래.

저 차가운 눈빛이 민서온이지.

“아니요.”

“아닌 게 아닌데?”

“그냥 선배가 달라 보여서요.”

“내가 뭐.”

말은 그렇게 하지만 두 사람은 꽤 친해졌다. 드라마 하면서 같이 있는 시간도 많아졌고 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둘이 잘 어울리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순자가 툭 말을 건넸다.

“잘해 보렴.”

당황한 유수한과 민서온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선생님!”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 * *

배우 이순자는 인자한 어머니 같다.

그 나이에도 관리를 꾸준히 해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였고 덕분에 아직도 어머니 역할을 해 나갈 수 있었다.

“레디, 액션!”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유환의 침실에서 촬영이 이어진다. 정유환은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문 앞에 주저앉은 정유환이 거친 숨을 내뱉는다.

투두둑.

입고 있던 셔츠를 거칠게 쥐어뜯자 단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유환아.”

끝없이 들려오는 목소리.

정유환이 만들어 낸 환각의 목소리였다.

“엄마가 미안해.”

이제는 알고 있다.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은 그저 거짓된 존재라는 것을. 정유환이 만들어 낸 친엄마는 듣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었다는 말.

언제나 미안했다는 말…….

“싫어.”

모두 정유환이 듣고 싶던 말이었다.

“이제 사라져…….”

환시를 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아득한 옛날. 정유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환각을 만들어 냈다. 부족한 애정을 스스로 채우려 발버둥 친 결과물이었다.

“엄마가 미안해.”

귀를 틀어막는다.

모든 것을 마주한 정유환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지독한 환시가 사라질까 봐 못내 두렵다는 사실이었다.

“유환아.”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엄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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