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스카이 에이드(Sky Ade)
그토록 어렵게 진행했던 키스씬이었지만, 공개되고 나니 반응이 뜨거웠다. 중반부가 되도록 키스를 하지 않았던 은유 커플이었기에 더더욱 반응이 핫했다.
- 왜 이제야 했니 ㅠㅠㅠㅠㅠ 진심 고자인 줄 알았자나 ㅠㅠㅠㅠ
⌞222 베드씬도 폰베드씬이었잖아 ㅠㅠㅠㅠㅠㅠ 키스씬도 그냥 폰키스일 줄 ㅠㅠㅠㅠㅠㅠ
⌞⌞33333 우리 집 개새끼 드디어 각성했고요 ㅠㅠㅠㅠ 고자 아니구요 ㅠㅠㅠㅠㅠ
⌞⌞⌞4444 이 새끼도 할 줄 아는 새끼였어 ㅠㅠㅠㅠㅠㅠㅠㅠ
- 근데 왜 정유환 개새끼 됨?
⌞다른 여자에게도 껄떡대는 개새끼여서 개새끼 됨
⌞⌞다른 여자에게도 헤픈데, 정작 자기 여자한테는 안 헤퍼서 개새끼 됨
⌞⌞⌞근데 웃긴 건 이은서 만난 이후로는 한눈 안 팔았는데도 개새끼 됨
⌞⌞⌞⌞고자 아닌 게 어디임 ㅋ 솔직히 고자 소리 들었어도 쌉인정임
⌞⌞⌞⌞⌞222 고자 아닌 게 어디야 ㅋㅋ 별명 정고자될 뻔했는데 개새끼로 마무리 함
⌞⌞⌞⌞⌞⌞3333 섹텐 맛집인데, 정작 뭘 안 하니까 개새끼 되지
어느새 정유환은 개새끼가 되었다.
“고자보단 낫지.”
개새끼라는 말은 그 어감이 조금 불편했지만, 정유환을 향한 살가운 애칭이기도 했다. 말한 것처럼 고자보다는 개새끼가 백 번은 나았다.
[일간연예] SBC ‘시간’ 서로의 마음 확인한 키스 …… 최고의 1분!
역시 반응은 좋았다.
[OKEN] 주민하, 최은호를 향한 격한 분노! “유수한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유은하와 서정완의 동맹은 위태로워졌다.
[연예토크] SBC ‘시간’ 유수한에게 숨겨진 비밀 …… 그 진실은?
그리고 중요한 떡밥이 하나 터졌다.
바로 유수한의 출생의 비밀이었다. 물론 그건 이미 방송에서 못 박은 떡밥이었지만, 문제는 출생이 아니었다.
초반 유수한이 정신병원에 끌려갔을 때 나왔던 장면이 문제였다.
[HOT] 정유환 아무래도 환각 보는 것 같음 +201
초반부의 정유환은 철없는 도련님 그 자체였다.
과거 트라우마가 어렴풋이 표현되었지만, 점차 방송에서 대놓고 패를 깠다. 비정한 아버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정유환이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랐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 정유환 그럼 친엄마 없는 거잖아;;;
바로 엄마의 존재였다.
- 그럼 새엄마를 친엄마라고 착각한 거? 개 소름;;;
⌞그래서 애 끌려가는데 아무것도 안 했나 봐
⌞⌞맞아 아예 무표정으로 외면했잖아
⌞⌞⌞그땐 마음 아파서 아들 안 보는 줄 알았는데 ㄷㄷㄷㄷ
정유환에게 숨겨진 비밀은 뭘까.
* * *
연예인에게 이미지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얼마나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지에 따라서 인기가 달라진다.
때때로 연예인은 대중적 이미지와 실제 성격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그걸 속된 말로 ‘가식’이라고 말하지만, 이성실은 그걸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똑똑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 줄 아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직업은 좋은 이미지를 만들 줄 알아야 했다.
요즘 방송은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합해서 하지 않은 말을 만들어 내고 말 그대로 인성 폐급인 사람으로 만든다. 하다못해 사전 인터뷰에서 원하는 대답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디는 악편을 통해 재미를 만들어 낸다. 악편으로 인해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 비난 역시도 화제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이성실은 항상 소속 연예인에게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항상 생각을 하고 움직이라고. 표정, 말투, 하다못해 목소리까지 계산해서 움직이라 말했다.
방송은 전쟁이다.
특히나 예능은 더더욱.
처음부터 ‘톱’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그 모든 이미지 관리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대본만 보며 ‘연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실질적으로 ‘신인’이 ‘톱’처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예능을 나가야 하고 가끔은 진솔한 입담을 뽐내며 대중적 호감도를 끌어내야 한다.
그걸 잘하는 배우는 연기와 무관하게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고 그걸 못하는 배우는 이미지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드라마 반응이 좋아서 민서온은 기존 광고 모두 수월하게 연장 계약할 듯 보입니다. 추가로 가전제품 광고가 들어왔는데 확인 중입니다.”
유수한은 그 이미지 관리를 못하는 배우였다.
“유수한은 지면 광고가 주로 들어오고 있는데, 드라마 후광을 톡톡히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진입했고 현재 긍정적인 분위기입니다.”
이성실은 정리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드라마 ‘시간’이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유수한의 주가 역시 상승하고 있었다. 민서온은 ‘시간’이 시작하기 무섭게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상위권에 안착했다. 그리고 유수한 역시도 이번 주에 10위권 안에 들어서며 좋은 흐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지금 그나마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광고가 샌드위치인가?”
“네, 그렇습니다.”
생각에 잠긴 이성실이 팔짱을 끼며 골몰히 생각에 생겼다.
유수한은 단막극을 시작으로 미니시리즈까지 연달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대중적 호감도도 자연스럽게 오르고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광고 하나도 조심히 접근해야 했다.
지금 유수한에게는 기존 부정적 이미지를 지울 수 있는 광고가 필요하다.
“스카이 에이드.”
“예?”
“그거 모델 교체한다는 소리 돌지 않았나?”
갑작스러운 이성실의 질문에 마케팅 팀장이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이온음료 브랜드 ‘스카이 에이드’는 전통적으로 여성 모델을 고집한다. 푸른 하늘처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라이징 스타를 발탁하는데, 지금까지 남성 모델을 쓴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의 무리수라고 생각했던 마케팅 팀장이 미간을 좁혔다.
“이례적으로 남성 모델을 발탁한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래. 서브라도 좋으니 모델만 된다면 이미지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에 마케팅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카이 에이드는 말 그대로 청량한 이미지였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쾌청한 하늘과 어우러져 뛰어오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순수한 소녀.
스카이 에이드는 그 이미지를 지금까지 고수해 왔다.
이온음료 특유의 청량한 이미지.
지금 유수한에게 가장 필요한 이미지였다.
“미팅 한번 잡아 볼까요?”
이성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야.”
“네. 그렇죠.”
“서브든 뭐든. 발탁만 된다면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거야.”
K엔터가 유수한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처음 정유환 역을 손에 거머쥐었을 때는 순수하게 좋았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들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수한은 지금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물론 그건 난관이 아니었다.
배우라면 으레 찾아오는 혼란이었다.
배역에 젖으면 젖을수록 그 감정에 동화되는 일.
“형. 잠 못 잤어요?”
“좀.”
유수한이 한숨을 쉬며 커피를 마셨다. 요즘 잠에 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정유환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 감정에 동화되어 끝없이 눈물이 쏟아진 적도 있었다. 정유환이 가여웠고 무거운 진실을 목도한 그가 가여웠다.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네.”
당연히 처음일 수밖에.
이번이 고작 두 번째 작품이었으니까.
“그러게요. 형, 연쇄 살인마 할 때도 잘만 잤잖아요.”
“그랬냐.”
“그 작품이 좀 잔인했어요? 형, 사람 그렇게 죽여 놓고 두 다리 잘 뻗고 주무셨잖아요.”
“야. 누가 보면 내가 진짜 사람 죽인 줄 알겠다.”
“그렇다고요.”
이것도 처음이기에 겪는 일일 것이다.
유수한은 퇴근 후 바로 회사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성실 호출 때문이었는데, 듣기로 좋은 소식이라 해서 궁금증을 품에 안고 회사로 향했다.
“네? 광고요?”
“몇 개 들어왔어.”
이성실이 팸플릿을 테이블에 하나하나 놓으며 말했다.
“도움 안 되는 건 싹 치웠고.”
“네.”
“골라 놓은 건 이 정도.”
하나는 의류 브랜드 전속 모델 제안이었고 하나는 이온음료 광고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광고였다.
“내가 가장 추천하는 건 음료다.”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계약 조건을 보면 알겠지만, 3개월 단기 광고야.”
유수한은 뒤늦게 계약 조건을 확인했다.
음료 광고는 3개월 단기였고 의류 브랜드는 1년, 샌드위치 역시도 3개월이었다. 다른 점은 음료와 샌드위치는 매체 광고에 뜬다는 점이었고 의류 브랜드는 매체 광고 없이 전속 모델이었다.
“이걸 다 찍으면요?”
사람 욕심은 원래 끝도 없는 거다.
“그건 반대야.”
“아.”
“의류 같은 경우는 나중에 더 좋은 제안이 들어올 수 있으니 보류가 낫고. 샌드위치는 말 그대로 이미지 소비가 될 수 있어서 반대한다.”
“그럼 답은 정해져 있네요?”
후보를 골라 놓았지만, 사실 이성실의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사실 그렇지.”
스카이 에이드 광고.
여름날, 시원하게 이온음료를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기존 이미지를 일부 없앨 수 있다. 유수한에게 필요한 것은 신선함이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신선함.
“일단 너에게도 이렇게 광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서 보여 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요즘 드라마 ‘시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민서온뿐만 아니라 유수한에게도 광고 제안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유수한은 음료 광고 제안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어서 팸플릿까지도.
“스카이 에이드는 개런티는 적지만, 네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될 거다.”
스카이 에이드(Sky ade).
이 제품은 유수한도 들어 본 브랜드였다. 왜 이성실이 이 제품 광고를 추천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유수한은 이런 문제는 소속사에 맡길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성실은 개인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광고가 들어오는 대로 찍으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유수한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진행하나요?”
“계약 후에 협의해야지.”
“네.”
“아마 드라마 스케줄과 겹치지만 않는다면 바로 찍게 될 거다.”
“좋네요.”
사실 광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얼핏 들었다.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요즘 드라마는 10%만 넘어도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수준이다. 15%면 대박이나 다름없었고 20%는 쉽게 말해 신드롬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계단을 밟아 가며 신드롬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대표님께 맡기겠습니다.”
“넌 날 믿니?”
“네, 그럼요.”
“…….”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다. 이제 가 봐.”
유수한이 대표실에서 나가고 이성실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유수한에 대해서 뭔가를 정의 내리는 걸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날 믿는다고?”
뭐만 하면 믿을 수 없다며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의심하던 놈이 이렇게 쉽게 믿는다?
“허.”
사람이 달라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달라진 수준이 아니었다. 드라마 따위에나 나오는 소재였지만, 마치 영혼이 바뀐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이성실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유수한은 예전과 달라졌고 동태 눈깔 같던 눈빛도 사라졌다.
그것뿐일까.
가장 달라진 것은 말투였다. 마치 사람을 아래로 보는 듯한 권위적인 말투가 사라졌다. 틈만 나면 욕설을 찍찍 내뱉던 것도 없어졌다.
“머리라도 다쳤나.”
역시 그게 가장 현실성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