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36화 (36/175)

36. 촬영장 빌런의 결말

촬영장 빌런의 결말은 간단하다.

[HOT] 그거, SBC 시간 불화설 말이야. 문제는 유수한이 아니라 최은호임. +1007

스태프 한 명이 사원증을 인증하며 쓴 글의 파급력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반전.

많은 사람들은 반전을 좋아한다.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진실이 터졌을 때, 더 흥미를 갖고 지켜본다.

- 이럴 줄 알았다 최은호 좀 쎄했음

⌞2222

⌞⌞33333 최은호 눈빛 구림

⌞⌞⌞4444 존나 쎄함

⌞⌞⌞⌞5555 진심 하나도 안 놀라움 ㅋㅋㅋㅋㅋㅋ

늘 그렇듯 관상과 눈빛을 보는 쎄믈리에가 등장했고,

- 이거 진짜야? 믿을 수 있는 거 맞음? 난 일단 중립 기어 박음

⌞222 나도 아직은 중립 기어

⌞⌞뭘 못 믿어 ㅋㅋㅋㅋ 인증까지 싹 했는데

⌞⌞⌞맞아 사원증 인증하고 그것도 모자라다고 해서 대본까지 인증했잖아 ㅋㅋㅋㅋ

믿을 수 없다며 중립 기어를 박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 아니, 중립 기어든 가마니를 하든 처음부터 그러지 유수한 욕 먹을 땐 중립 타령 했냐고

⌞2222 ㅇㅈ

⌞⌞333333 유수한 까일 때는 3천플 기본으로 찍었음

⌞⌞⌞444444 유수한은 왜 중립 기어 안 박았는데 ㅋㅋㅋㅋㅋㅋ

⌞⌞⌞⌞5555555 이제 보니 최은호빠도 보통이 아니다

⌞⌞⌞⌞⌞6666 나 유수한 존나 싫어하는데 이쯤 되면 유수한이 불쌍할 지경 ㅋㅋㅋㅋㅋ

되레 중립 기어를 박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반응도 터져 나왔고,

- 저게 사실이면 최은호 진짜 실망이다... 건실한 이미지 아니었음?

⌞22 이미지 와장창

⌞⌞33333

⌞⌞⌞다 모르겠고 스태프 앞에서 욕 한 건 진짜 개에바 쌉에바

⌞⌞⌞⌞55555 진짜 갑질한 게 제일 치명타야

마지막은 역시 최은호에 대한 비난 여론이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현장을 물 흐리게 하는 최은호의 행동이 싫다고 해도 이렇게 자극적인 글을 쓰는 건 좋지 않았다.

상황이 커지자 이 글을 올린 스태프는 곧바로 삭제를 하며 사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이 감독은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범인은 찾았어요?”

유수한의 물음에 이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사를 요청할 수도 없으니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스태프가 경솔하게 현장 분위기나 스포일러를 글로 옮기는 일은 종종 있었던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소란이 일어났고 범인을 찾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이 감독이 저 멀리 촬영장에서 멍하니 대기 중인 최은호를 보며 말했다.

“기는 확실히 죽었네.”

촬영 현장에서 최은호는 제멋대로 굴었다.

이 감독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에게 오만방자하게 굴던 그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개인감정 탓에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했고, 결국 욕을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열등감.

최은호가 가진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유수한보다 자신이 몇 배는 낫다고 자신하던 최은호였다. 연기력으로 밀린 것이 아니라고 자부하던 그는 실제 유수한의 연기를 경험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유수한의 연기력은 묘했다.

발성이 짧은 사이에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발성 외에는 그다지 특출 난 장점은 없었다.

문제는 애드리브.

연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를 섞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수한은 자연스럽게 정유환이 되어 애드리브를 했다.

그 말은 캐릭터 연구를 제대로 했다는 뜻이었다.

최은호는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애드리브에 속절없이 당했다. 갑자기 톤을 높여 윽박지르질 않나, 그러다가 피식 웃으며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그 모든 애드리브가 정유환이라는 인물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최은호는 가끔 유수한의 애드리브에 대처하지 못하고 대사를 멈추는 실수를 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어느 때도.

최은호는 연기력으로 밀려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유수한의 연기력은 묘했다. 완벽한 연기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없지만, 캐릭터를 입은 듯한 기분이었다.

정유환이었지만, 유수한 같은.

유수한이지만, 마치 정유환 같았던.

“힘들죠?”

대기실에서 유수한은 최은호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욕먹는 거.”

최은호가 고개를 들며 유수한을 보았다.

“나도 많이 먹어 봐서 잘 알아요.”

물론 여전히 최은호는 괘씸하다. 하지만 계속 벽을 둔 채 촬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케케묵은 감정은 풀 수 있을 때 풀어야 한다.

“내가 욕먹어서 좋겠네, 그쪽은.”

기가 한풀 꺾인 최은호가 유수한을 응시했다.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에 잡음 생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유수한이 사적 감정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드라마였다. 아무리 금빛 대본이라고 해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시간이 없다.

이 몸으로 계속 살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쌓아야 하고, 제게는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생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유수한이 최은호 옆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난 은호 씨가 욕먹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네요.”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릴.”

“근데 내가 경험해 보니까, 욕 안 먹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유수한이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배우답게.”

“…….”

“그저 연기를 잘하면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건 유수한의 경험이었다.

처음 유수한이 되었을 때는 암담했다. 인터넷에는 온통 유수한을 향한 비난뿐이었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벗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물론 지금도 아직 모자랐다. 아직도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었고 조금씩 여론을 바꾸는 중이었다. 하지만 경험했다.

배우답게 연기에 집중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욕은 안 먹는다는 걸.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데?”

최은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저는 이 작품이 소중하거든요.”

“…….”

“그리고 최은호 씨 연기 잘하잖아요.”

“뭐라고?”

“그쪽 덕분에 나도 이를 악물고 준비했거든요.”

하루하루 유수한은 늘 배운다.

연기를 조금 더 잘하기 위해서,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위해서 매 순간 노력해 왔다. 최은호는 그런 유수한에게 경쟁심을 심어 주었고 덕분에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지금의 최은호가 진짜 최은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금 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잘해 봐요.”

유수한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함께 명품 드라마 만들자고요.”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은 그렇지 못했다. 연출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힘이 필요했고 배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제 역할을 해 주어야 작품이 빛난다.

슥.

망설이던 최은호가 유수한의 손을 붙잡았다.

처음 악수를 청했을 때 악감정이 들어가 있던 손이 아니었다.

* * *

SBC ‘시간’의 티저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간 참 빠르네.”

유수한은 날짜를 확인하며 체험판 만료 기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느새 6월 중순이었고, 7월 말이면 또 체험판 기간이 끝난다.

그 말인즉슨.

또 체험판 기간 연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체험판 연장은 계속할 수 없다. 구매 제한이 되어 있었기에, 모두 통틀어 계산해 보면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 쌓인 포인트는 97 포인트.

단막극 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인적인 스케줄 탓에 포인트를 쌓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금이로군.”

말 그대로 지금 유수한에게는 시간이 곧 금이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영화관을 찾았다. 졸린 눈을 애써 부릅뜨며 영화를 관람했고, 그렇게 티끌 같은 1 포인트를 챙겼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시작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단막극으로 상 하나를 받을 예정이었고 이번 차기작 역시도 반응이 제법 좋았다. 방송사에서도 기대하는 작품이라 공격적인 마케팅을 보여 주었고 첫 방송이 코앞이었다.

[HOT] 예사롭지 않은 드라마 ‘시간’ 티저 반응 +128

촬영장으로 이동하며 유수한은 계속 반응을 체크하고 있었다.

티저가 공개되었고 그렇기에 대중들의 반응을 기민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 유수한 진짜 쌩양아치 같음 ㅋㅋㅋㅋㅋ

⌞222 진짜 입 터는 거 보면 때리고 싶을 정도 ㅋㅋㅋㅋ

⌞⌞33333 머리도 존나 쌩양아치임 ㅋㅋㅋ

고개를 끄덕인다.

초반부 정유환은 일부러 날티 나는 양아치 콘셉트로 잡았다. 기존 유수한을 참고했고 그대로 흡수해 연기에 녹였다.

- 근데 유수한 원래 발연기 아니었음? 연기 개 돌았는데?

⌞발연기 맞음 근데 요즘 좀 발전한 듯?

⌞⌞맞아 유수한 얼굴로만 연기하는 배우였음.. ㅇㅇ

연기에 대한 반응도 좋다.

- 유수한 몸 개존맛임 ㅋㅋㅋ 조증 오면 옷 벗는 설정이던데... ( ͡° ͜ʖ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조증 맨날 와야 함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여기 변태들 존나 많네 ㅋㅋㅋㅋㅋㅋ

⌞⌞⌞⌞자주 벗겼으면 좋겠다 ┌(° ͜ʖ͡°)┘

몸에 대한 반응도 역시…….

“좀 부끄럽네.”

작게 중얼거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형, 오늘 촬영 끝나고 인터뷰 있어요.”

첫 방송이 다가오며 점차 다른 스케줄도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연예 뉴스 공식 인터뷰가 있었고 내일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요즘 촬영장 분위기도 좋아졌다.

최은호는 폭로 이후 잠잠해졌고 사소한 불화 역시도 없었다.

서로가 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유수한 역시도 연기에 집중했다.

“아, 맞다.”

운전하던 매니저가 백미러로 유수한을 보며 말했다.

“오늘 커피차 오는 거 아세요?”

“커피차?”

“팬분들이 보냈어요.”

“뭐?”

유수한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 회사 조공 금지 아니었어?”

K엔터는 서포트 금지였다. 그리고 유수한은 그 조항이 좋다고 생각했다. 왜 팬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존재였고 오히려 반대로 선물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형 보고 싶은데 볼 기회가 없다고 성화여서…….”

“난 좀 그렇다. 차라리 자리를 한번 만드는 게 낫지, 커피차는 좀…….”

“이해해 주세요. 요즘 회사가 팬에게 시달리는 모양이에요.”

유수한이 소리 내어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사랑을 받는 건 감사한 일이었고 행복한 일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해 커피차를 보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감동을 받고 말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돈 쓰지 마세요.”

유수한은 커피를 받아 마시면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드라마 끝나고 제가 자리 만들 테니까, 저한테 돈 쓰지 마세요.”

요즘 유수한 팬은 이경민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다. 유수한을 만나기 위해서 커피차 서포트를 준비했고 시간 나는 팬을 데리고 촬영장에 나섰다.

매니저에게 몇 명이나 들어갈 수 있느냐고 확인했지만, 너무 많이 데리고 온 건 아닌가 눈치도 보였다. 하지만 유수한은 인원수에는 관심 없었고 오직 돈이었다.

“다음에는 이러지 마세요. 알았죠?”

끝까지.

이경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돌 덕질을 주로 했던 그녀는 돈 쓸 때마다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들을 주로 보았다.

이렇게 돈 쓴다고 타박하는 연예인은 처음이었고 그 모습이 또 좋았다.

“알았고요.”

이경민이 유수한 돈 이야기를 차단하며 미리 준비한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사인이나 해 주세요.”

“몇 장이든, 손가락 부러지는 일이 있어도 다 해 드릴게요.”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펜을 들었다.

“이거 추첨해서 나눠 줄 거예요. 코팅하고 굿즈 포장해서.”

주섬주섬.

이경민이 미리 만들어 놓은 굿즈를 보여 주었다. 귀여운 유수한 캐릭터 키링과 금속 배지가 인상적이었다.

“이거 나 주는 거예요?”

“네. 선물.”

“고마워요.”

유수한은 웃으며 키링을 유심히 보았다. 배지도 귀여웠고 상자 가득 들어 있는 손 편지도 좋았다. 유수한은 선물을 챙기며 말했다.

“다른 건 난 필요 없어요. 그냥 손 편지.”

또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손 편지면 돼요.”

다들 잔소리에 지친 듯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수한은 자연스럽게 팬들과 대화했고 차를 뒤져 소장품을 가져왔다.

“이거 내가 종종 입는 티셔츠인데, 깨끗해요. 어제 빨았거든.”

흰 티셔츠에 사인을 하고 모자에도 사인을 했다. 차에 있는 모든 물건에 사인을 해서 선물할 기세였다.

“오빠, 이러다 거덜 나요!”

이경민 옆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팬이 소리치듯 말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

유수한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촬영 시작 직전까지 사인을 했다.

지금까지 김대한으로 살면서 사랑받은 경험이 별로 없었다. 늘 암울한 인생이었기에,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것이 낯설면서도 행복했다.

“이건 내가 종종 읽는 시집.”

그리고.

그런 유수한을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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