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오늘의 데이트 2
오늘의 데이트.
개그우먼 조은희가 진행하는 SBC 장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초창기에는 소소한 토크쇼로 영화나 드라마 홍보를 위한 방송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Y튜브가 생기면서는 조금 더 신선한 아이디어로 토크쇼를 진행한다.
출연하는 연예인에 따라 스튜디오 콘셉트가 달라지며 때때로는 야외 촬영도 불사한다. 여러 가지 인기 요인이 있겠지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시아 파워였다.
심지어 할리우드 스타까지 내한할 때 찾는 프로그램이 ‘오늘의 데이트’였다. 최근 한국 문화가 아시아 전역은 물론 미국까지 퍼지며 자연스럽게 관심도가 올랐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유수한이 출연했다.
「요즘 꽃거지 합성 사진이 유행이에요.」
유수한도 여러 번 보았던 사진이었다.
조은희가 준비한 사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합성이라고 하지만, 고작 여기 꽃 한 송이 귀에 꽂은 거밖에는 없거든요.」
뭔가 주섬주섬 꺼낸 조은희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래서 실제 꽃을 준비했습니다!」
심지어 합성에 사용한 꽃과 흡사한 분홍 꽃이었다. 생화는 아니었고 조화였다.
「지금 한번 귀에 꽂아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근데 의상이 오늘은 말끔해서 꽃거지 느낌은 안 나겠네요.」
「아쉽지만, 번듯한 꽃거지 콘셉트라고 하죠, 뭐!」
유수한이 웃으며 귀에 꽃을 꽂았다.
사실 이 꽃거지 짤이 인터넷에 퍼지는 걸 보며 늘 의아했다. 자신은 단막극에서 굉장히 추레한 모습이었고,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꽃’이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니 그 콘셉트를 지금은 충실히 즐기기로 했다.
「어우, 꽃이 너무 잘 어울린다, 정말!」
너스레를 떠는 조은희를 보며 유수한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여기 사진하고 비교해 볼까요?」
자료 사진과 함께 얼굴이 비추어진다.
“안 되겠다. 이거라도 마시자.”
치익.
방송을 보던 유수한은 결국 무알콜 맥주를 찾았다. 요즘 박스로 사다 놓은 무알콜에 제로 칼로리 맥주였다.
「요즘 유행하는 게 MBTI잖아요?」
「그게 뭐예요?」
자막으로 유수한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요즘 유행하는 거 모르세요?」
「아, 잘 모르겠어요.」
「전 ENFP거든요!」
「EN…… 그게 뭔데요?」
멍청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유수한의 얼굴이 화면이 비추어지고 이내 자막이 크게 떠올랐다.
「MBTI를 모르는 꽃거지를 위한 MBTI 검사 시간」
이윽고 집중해서 MBTI를 검사하는 유수한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는 ISTP 나왔어요.」
「내향인이시네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I가 내향이고 E가 외향이거든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간단하게 ISTP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실 MBTI 자체는 흥미로웠다. 처음 듣는 소리였고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옛날에는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판단 내렸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해서.
「요즘은 혈액형으로 판단 안 하나 봐요.」
이런 말도 나왔다.
「어우, 옛날 사람!」
「아, 저는 예전에 혈액형으로 많이 얘기했었거든요. 하하.」
「라떼, 나왔다. 라떼.」
「라떼요? 커피?」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라떼는 말이야~ 이거 모르세요?」
「네?」
「젊은 사람이 왜 그래요. 나보다 젊은 양반이!」
덕분에 옛날 사람이 돼버린 유수한이었다.
이어서 붙은 자막이 마치 유수한을 놀리는 듯했다.
「여기서 꽃거지를 위한 ‘라떼는’ 유행어 설명!」
현장에서 조은희에게 따로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결국에는 꼰대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굳이 ‘나 때는’을 ‘라떼는’이라고 바꿔 말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놀림당할 만했다.
아직 유수한은 20대였고 요즘 유행에 뒤처지지 않을 나이였다. 다만 지금의 유수한 속에는 20대가 아니라 30대 김대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빚어진 해프닝이 꽤 오래 이어진다.
“뭐, 재밌으면 됐지.”
그렇게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유수한 씨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뭔가요?」
「SBC 드라마에 출연하신다면서요?」
조은희는 짐짓 모르는 체하며 말을 이었다.
「그, ‘시간’이라는 드라마 아니에요?」
「네, 맞아요. 제가 SBC 미니시리즈 ‘시간’에서 정유환 역할을 맡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홍보로 이어진다. 아직 촬영도 들어가지 않은 드라마였지만, 같은 SBC 방송사였으니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듣기로 정유환 역할이 노출증 환자라고 하던데요?」
「노출증은 아니고요. 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예요.」
「유수한 씨는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정유환은 뭔가 외향적인 느낌이 나네요?」
「음, 글쎄요. 내향적이면서도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려움이 큰 친구라, 되레 외향적인 척하면서 그 상처를 감추려는 인물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 순간이 가장 편안했다.
유수한은 유수한의 인생을 살지 않았기에 지나간 세월을 알지 못했다. 조은희가 유수한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차라리 일 이야기를 할 때가 마음이 편했다.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뭔가 끝나 간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네요.」
그리고.
「수한 씨 보내기 전에 개인기 한번 봐야죠?」
「갑자기요?」
말 그대로였다.
갑자기 생뚱맞게 개인기 요청이라 진땀을 흘렸다. 이게 지금 맥락이 있나? 갑자기 개인기 요청이라니, 이게 지금 방송상 개연성이 있나? 하지만 예능에서 개연성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즉 재밌으면 그만이었다.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비트박스 할 줄 아시잖아요.」
「네? 제가요?」
「데뷔 때 종종 하셨잖아요, 수한 씨.」
그랬나.
당연히 모른다.
유수한이 신인 시절에 방송에서 뭘 했는지 지금의 유수한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비, 비트박스는 제가 다 잊어 먹어서…….」
방송을 보는 유수한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화면에서 보이는 유수한의 얼굴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얼굴이 빨개졌고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대신 노래로 할게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걸.
비트박스는 할 줄 모르고 춤은 당연히 출 줄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게 노래였다.
다만 노래를 해 본 지 오래됐다는 것.
더불어 유수한이 노래를 잘 부르는지 모른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와, 여러분! 우리 지금 유수한 씨 노래 듣는 건가요?」
조은희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우와. 그래서 무슨 노래 부르실 거예요?」
「어, 겁쟁이? 그거 어때요?」
「거어어업쟁이요?」
놀리듯 조은희가 말을 늘리며 유수한을 쳐다보았다.
「나온 지 10년은 넘은 그 노래요?」
「어, 그렇게 오래됐는지 몰랐어요.」
「수한 씨, 혹시 나이 속인 거 아니에요?」
「네?」
당황한 유수한의 얼굴이 점차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달아오른 얼굴은 목까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니, 무슨 내 동년배 같잖아.」
조은희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유수한의 영혼은 지금 30대 중반이었으니.
「아니, 그, 그게 아니고요.」
당황해서 손부채질을 하며 유수한이 말했다.
「명곡이라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그리고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유수한의 얼굴도 붉게 물든다.
「그럼 한번 들어 볼까요?」
「죄송한데, 10초만. 저 너무 떨려서요.」
진심이었다.
가사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허둥대며 가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 가사 보고 불러도 될까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조은희가 쿨하게 핸드폰으로 가사를 찾아 유수한에게 주었다. 핸드폰을 든 유수한은 이윽고 들려오는 반주 소리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고작 나란 사람이……」
“부르지 마. 으악!”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유수한이 쿠션에 얼굴을 박으며 발버둥 쳤다. 배우로서 연기하며 노래를 부를 때는 아무 생각 없을 것이다.
다른 인물이 돼서 부르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달랐다. 날것의 목소리. 생각보다 목소리는 좋았고 노래 역시도 못하지도 않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날 사랑해 줘요. 날 울리지 마요.」
심지어 저 날, 노래를 통으로 모두 불렀다.
좀처럼 커트할 생각이 없는 듯 보였고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노래를 불렀던 유수한이었다. 지금 화면에서는 고개가 점점 숙여지다 못해, 핸드폰에 파묻힌 유수한이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지금 유수한도 마찬가지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을 살짝 벌려 화면을 훔쳐보고 있었다.
「와. 너무 멋있어요!」
대체 뭐가.
「노래 잘 부르시네요?」
뚝.
참지 못하고 화면을 껐다.
* * *
다음 날.
유수한은 오전에 화보 촬영을 마치고 이동 중이었다. 차에는 운전하고 있는 김민수와 유수한 뒤에 앉은 스타일리스트 보라가 있었다.
그리고 유수한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전날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반응을 찾아보고 있었다.
[HOT] 유수한 ‘오늘의 데이트’ 겁쟁이 같은 모습.jpg +218
개인기 소리에 손 떠는 거 개웃김
실시간으로 얼굴 빨개짐 ㅋㅋㅋㅋㅋㅋ
근데 반전 노래 개존잘
- 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한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ㅋㅋㅋㅋㅋ
⌞ 마이크 든 손 떠는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
⌞⌞ 유수한 싫은데 이건 진짜 귀여움 ㅋㅋㅋㅋㅋㅋ
⌞⌞⌞ 성격 개씹덕 ㅋㅋㅋㅋㅋ
- 플짤 퍼옴 노래 존나 잘함 ㅇㅇ
⌞ 잘하는 편은 아님 그냥 배우치고 잘하는 거
⌞⌞ 배우치고 잘하는 거면 잘하는 거지 ㅋㅋㅋㅋㅋ 존내 태클 뭐여 ㅋㅋㅋㅋ
⌞⌞⌞ 요즘 유수한 호감임 ㅋㅋㅋㅋㅋ 노래 잘하는 게 더 웃겨 ㅋㅋㅋㅋㅋ
⌞⌞⌞⌞ 발성 탄탄해서 뮤지컬 해도 될 듯 ㅋㅋㅋㅋ
⌞⌞⌞⌞⌞ 뭐래, 뮤지컬에 유수한 묻히지 마라
[HOT] 유수한 씹덕 모먼트 모음 +248
씹덕은 뭐지?
혼자 중얼거리며 글을 읽었다. ‘오늘의 데이트’에서 유수한을 따로 편집한 영상이 주르륵 올라와 있었다.
밑에 사족으로 하나같이 귀엽다는 말이 붙어 있었고 유수한은 여전히 의아한 눈치가 역력했다.
- 제일 씹포은 유수한은 씹덕이란 말 모를 거 같다는 거 ㅇㅇ
⌞ 222 ㅇㄱㄹㅇ
⌞⌞ 33333 백퍼 모름 ㅋㅋㅋㅋㅋ
⌞⌞⌞ 씹덕이란 말 들으면 혼자 막 검색할 거 같아 ㅠㅠㅠㅠㅠㅠ 졸귀...
⌞⌞⌞⌞ 진심 씹덕 모먼트 지림 ㅠㅠㅠㅠㅠㅠㅠ
⌞⌞⌞⌞⌞ 번포 ㅋㅋㅋㅋㅋㅋ 진짜 요즘 유수한 돌았음 내 꽃거지 ㅠㅠㅠㅠ
⌞⌞⌞⌞⌞⌞ 꺼져라 내 꽃거지다
뜨끔했다.
실제로 씹덕이라는 말을 잘 몰라서 검색하려던 찰나였으니까.
- 갈수록 얼굴 빨개지는 거 진짜 존나 귀엽다 ㅋㅋㅋㅋㅋㅋ
⌞ 22222 인간 홍당무 ㅋㅋㅋㅋㅋ
⌞⌞ 33333 목까지 빨개져서 손 떠는 거 왜 이렇게 귀엽냐 ㅠㅠ
⌞⌞⌞ 444444 이 글에 갇혀서 못 나가고 있음 살려 줘!!!!
⌞⌞⌞⌞ 55555555555 미안 나도 갇혔어
늘 사람들은 의외의 모습을 좋아한다.
번듯한 모습도 좋아하지만, 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숨은 매력을 찾는 걸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유수한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늘 의문이 생겼다.
“이걸 왜 좋아하지?”
사람들은 늘 완벽한 모습보다는 어딘가 허술한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꽃거지도 그래서 유행했다. 늘 번듯한 모습이나 사고 치는 모습만 보였던 유수한이 처음으로 망가지는 연기를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좋아했고 즐거워했다.
지금도 그랬다. 예능에 출연해서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로 푹 고개를 숙인 채, 자신 없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좋아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좋아하긴요.”
보라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오빤, 늘 밉상이었잖아요.”
요즘 보라는 말하는 화법이 제법 날카로워졌다.
아마 그게 원래 성격인 듯했다. 유수한의 지랄 맞은 성격 탓에 그 날카로운 말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일 뿐, 본래 솔직한 성격이었다.
“예전에 오빠 예능 나왔을 때 허세 장난 아니었잖아요.”
“내가?”
“네. 돈 자랑 무지 하고. 망가지는 거 싫어해서 시키는 건 대충 하고. 신인 때나 했던 비트박스가 전부잖아요.”
“그랬었나.”
나중에 시간 나면 유수한이 나왔던 예능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예능은 생각하지 못했던 거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튼. 사람들은 소탈한 걸 좋아해요. 요즘 오빤, 좀 변한 것 같기두 하고.”
그야, 영혼이 다른 사람이니 당연히 변했겠지.
“혹시 몰라요.”
보라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유수한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수한 오빠 속에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역시 보라는 생각보다 예리하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한 이야기겠지만.
“쓸데없는 소리.”
뜨끔한 유수한이 그 말을 차단했지만,
“맞아. 나도 가끔 형님 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영혼이 진짜 바뀐 것 같아.”
김민수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요즘 우리 차에서 대화 많이 하는 거 알아요? 형?”
민수가 살가운 목소리로 유수한을 불렀다. 그리고 지금은 그 관심이 버겁기만 한 유수한이었다.
“예전에 차에 타면 우리 다 입 다물고 있었잖아요. 형이 걸핏하면 화만 내서.”
할 말이 없었다.
예전의 유수한을 지금의 유수한은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유수한의 모습을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달라지는 게 없었다. 예전의 유수한은 못된 사람이었고 그걸 따라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본래의 모습대로 행동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혼이 바뀌었다는 그런 말을 농담 삼아 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믿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니까.
“그땐 내가 미안했다.”
유수한의 과거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 몸을 가지겠다고 결심한 이상, 과거의 유수한을 포용해야만 옳았다.
“앞으로 내가 잘할게.”
그 말이 터져 나오자 동시에 보라와 김민수가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형님! 미친 듯이 오그라들거든요?”
“맞아! 진짜 수한 오빠 요즘 진짜 존나 오그라들어. 미쳤어요.”
그 반응에 혀를 차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늘 유수한은 혼자였다. 혼자서 살아남는 것이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영원히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평생 모은 돈을 들고 튀었던 친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곁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까.
그 말의 의미를 요즘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오늘도 잘해 보자.”
시트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오늘은 드라마 ‘시간’의 출연자 사전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