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26화 (26/175)

26. 남주는 어떠냐고

단막극 ‘아임 홈리스’의 시청률은 9.9%를 기록했다.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으나, 지난주에 방영했던 ‘빅샷’이 4.6%를 기록했기 때문에,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시청률이었다.

화제성도 괜찮았다.

보도 자료는 물론이고 대형 커뮤니티에서 유수한 거지 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나름 화제였지만, 방송이 된 직후에는 더 화제였다.

더불어, ‘아임 홈리스’는 ‘아시아 드라마 어워드’ 단막극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유수한은 단막극 출연으로 세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HOT] 삼각김밥 주워 먹는 유수한 (더러움 주의) +238

기존에 없었던 이미지였다.

지금까지 유수한이 배우로서 보여 준 모습은 번듯한 실장님 이미지가 전부였다. 인상적인 배역이라고는 첫 작품에 선보였던 연쇄 살인마가 전부였다.

망가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기에 늘 평이한 연기만을 보여 주었고 스펙트럼이 좁은 배우로 평가 받았다.

그랬던 유수한에게 또 다른 이미지가 생겼다.

엘리트 역할만 할 줄 알았던 그가 밑바닥 연기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보여 준 것이다.

[연예뉴스] 유수한, 이렇게 연기 잘하던 배우였나요?

두 번째는 바로 연기력이었다.

물론 이건 얻어걸린 셈이었다. 기존 유수한에 비해서 지금 유수한은 연기력이 없는 거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연기 수업을 성실히 받아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그가 노숙자라는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OKEN] 유수한, 단막극 ‘아임 홈리스’로 성공적인 복귀 신호탄 쐈다

사건 사고로 자숙하던 유수한이 다시 연예계 복귀를 해냈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했다. 대중 관심도가 낮은 단막극이었기에 소리 소문 없이 묻힐 수도 있었다. 물론 작품 보는 눈이라는 아이템을 믿고 있었지만, 이 작품이 언제 세상에서 빛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유수한은 성공적인 연예계 복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거리 홍보를 하고 기부를 하며 화제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진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달콤한 열매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SBC ‘시간’은 최근 편성을 마무리 지었다. 7월 방송 예정이었으며 민서온 합류가 확실시되었다.

유수한은 오디션 준비에 매달리고 있었고 단막극 방송 이후,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분명 유수한을 거절했던 이승혁 감독에게서 온 러브콜이었다.

“이승혁입니다. 단막극 잘 봤어요.”

가볍게 악수를 하며 이승혁이 미소를 지었다.

“김우리 작가라고 해요. 반가워요.”

상암동에 자리 잡은 횟집.

이 자리에는 이승혁 감독과 김우리 작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뒤늦게 주차를 하고 식당에 들어온 김민수가 인사를 꾸벅꾸벅하며 자리를 잡아 앉는다.

“일전에 이 대표님께 전해 들었어요. 조성운 역할에 관심 있다고.”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이승혁 감독은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우연히 대본을 봤는데 그 역할이 매력 있다고 생각해서요.”

“사실 조성운은 신인을 쓸 생각이었어요. 연극배우나.”

“그렇다면 저는 어떤가요?”

유수한 역시도 웃으며 욕심을 드러냈다. 이미 한번 거절당했던 상대였다. 그 상대가 다시 연락을 취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같은 소속사인 민서온이 주인공으로 합류했다고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민서온이 물망에 오른 상태에서 언질을 했고 그 상황에서 유수한을 깠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글쎄요. 천천히 먹으며 이야기해 보죠.”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신선한 제철 회와 사이드 메뉴가 테이블을 꽉 채웠다. 그리고 이승혁이 따로 주문한 정종도 테이블에 놓인다.

이승혁이 정종을 들어 유수한에게 권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끊어서요.”

그 말에 놀란 듯 이 감독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무래도 술 때문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은 끊었다. 정말 술이 먹고 싶을 때는 무알콜로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 유수한은 몸을 키우는 중이었다. 군살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요즘 트렌드에 몸을 맞출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술은 끊고 담배 역시도 피우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몸을 아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몸 관리를 해야만 했다.

“뜻밖이네요. 술 좋아한다는 소문 자주 들어서.”

이 감독은 남은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 주고 젓가락을 들었다.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순수하게 유수한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단막극 ‘아임 홈리스’를 본 이승혁은 유수한의 달라진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다. 꽤 오랫동안 방송 일을 했고 많은 연예인의 뒷소문을 들어 왔다. 당연히 유수한은 만나고 싶지 않은 배우 중에 한 명이었다.

현장에서 말썽 피우는 배우를 원하는 연출자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잘생겼든, 아무리 연기를 잘하든, 가장 베스트인 배우는 인성 좋은 배우였다.

유수한은 연기도 그닥이었으며 인성 역시도 글렀다. 하지만 단막극에서 보인 그의 연기는 이승혁이 가지고 있던 유수한의 이미지를 깨부수기 충분했다.

“근데 어쩌다가 꽃거지를 하게 된 거예요?”

가만히 정종을 홀짝거리던 김우리 작가가 물었다.

“꽃거지요?”

유수한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네, 다들 요즘 그렇게 부르잖아요. 꽃거지.”

김우리 작가는 요즘 돌아다니는 사진 하나를 보여 주었다. 유수한 머리에 분홍 꽃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아, 그거 저도 봤어요. 요즘 자주 보이더라고요.”

“잘생긴 사람은 분장해도 눈에 띈다니까.”

이 감독이 툭 말을 얹었다.

“그래서 그 역할은 어쩌다가 하게 됐어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왔다. 유수한이 물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대본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평이한 대답을 내놓았고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제 복귀작이잖아요.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물론, 애초에 좋은 배역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선했어요.”

이 감독이 방어회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연출자로 살다 보면 배우를 그냥 물건으로 볼 때가 있어요.”

“물건이요?”

“김 작가님,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요. 일단 내 얘길 계속 들어 보라니까.”

흠, 이 감독이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배우는 이런 걸 잘하겠다, 이 배우는 이 용도겠다. 아무튼 그렇게 보여요.”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승혁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유수한 씨는 조성운 역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그 역할 만큼은 임팩트를 보여 줘야 하거든요. 극 초반에 비중 있게 나왔다가 퇴장하는 인물이니까. 그 어떤 배역보다 연기력이 중요해요.”

그 말은 유수한은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였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다고 너무 큰 배우를 쓰는 것도 위험해요. 자칫 잘못하면 주인공을 잡아먹으니까.”

이승혁은 말하면서 잘도 먹었다. 방어회를 연거푸 입에 밀어 넣던 이승혁이 정종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신인 배우나 연극배우를 염두에 뒀다는 게 거기서 나와요. 연기력은 좋지만, 빛 보지 못한 배우들. 네임 밸류가 크지 않아서 주인공을 잡아먹지 않을 만큼의 존재감.”

이승혁 감독은 이미 수차례 히트작을 낸 스타 감독이었다. 그리고 김우리 작가는 30대로 나이는 작가치고 젊은 축이었지만, 두 작품 연달아 중박 이상을 치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작가였다.

김우리 작가는 아직 대박을 치지 못했다. 믿고 보는 작가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한 끗이 모자란 상태였다.

그렇기에 SBC에서는 이승혁 감독과 김우리 작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승혁이 한 끗 차이로 믿보작이 되지 못한 김우리를 경험으로 끌어 줄 거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유수한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수한 씨는 잘생겼잖아.”

이 감독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 계약 직전인 남주보다 잘생겼어.”

“잘생기면 좀 곤란할까요?”

유수한이 분위기를 풀어 보려 슬몃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런 뜻 아니에요. 잘생긴 게 배우한테는 최고지. 잘생기면 장땡 아냐.”

“그럼요?”

“남주 어때요?”

슬슬 돌려 말하던 이승혁이 돌직구를 던졌다.

“네?”

“남주.”

“…….”

“어떠냐고.”

전혀 뜻밖의 말이라 지금 유수한은 정신이 조금 혼미해졌다. 순간 물 대신 술을 마셨나 해서 자기도 모르게 물 잔을 확인했다. 다행히 물이었고 이승혁은 지금 자신의 입으로 ‘남주’를 내뱉었다.

“방금 계약 직전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응, 맞아요.”

“근데 왜…….”

“재밌을 거 같아서요.”

“…….”

“남주 역할 이름이 정유환인 건 알죠?”

“네. 대본 읽었으니까요.”

“정유환이 찌질한 면이 좀 있거든.”

이 감독의 말을 들으며 유수한은 김우리 작가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야기가 된 말인지 살펴볼 요량으로.

김 작가는 묵묵히 회를 집어 먹고 있었고 표정을 보아, 이미 이야기가 오간 내용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갑자기?

이게 지금 개연성은 있나?

“겁도 많고 찌질한데, 자기 여자는 지키고 싶어 하고. 그러다 다쳐서 또 겁먹고. 아무튼 막 그렇게 멋있는 역할은 아니에요.”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 본능도 이끌어야 하고.”

이 감독은 유수한이 출연한 단막극을 보고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다. 계속 이승혁은 ‘시간’의 남주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다양한 배우와 미팅을 가졌지만, 딱 정유환에게 맞는 배우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예 생각도 없었던 배우가 눈에 들어온 거였다.

망가질 줄 알면서도 연기도 곧잘 하는 배우.

거기다가 잘생겼다.

“아, 물론 확정은 아니에요.”

이승혁이 한발 빼면서 말했다.

“테스트는 봐야지.”

“아, 네.”

“일단 오늘은 마음 편하게 들어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까.

유수한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김민수를 보았다. 매니저 역시도 뜻밖의 말에 놀란 듯 눈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민수야.”

정신없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게 지금 실화냐?”

여전히 유수한은 오늘 있었던 일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운전하던 김민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대표님에게 오늘 ‘시간’의 작감을 만날 거라고 들었고 단순히 ‘조성운’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러게요.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남주 역할은 이성실 대표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뒤늦게 김민수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이성실 역시도 쉽게 믿지 못하고, 자신에게 도착한 문자를 보고 또 보았다.

“테스트라.”

유수한이 창밖을 보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얼른 가서 대본 봐야겠다.”

오늘 유수한은 ‘조성운’ 역할을 탐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준비도 조성운 위주로 했었다. 이렇게 뜻밖의 제안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질 않았다.

애초에 남주는 배제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잡아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

다시 대본을 본다.

처음 조성운만 나오는 대본 2회차까지만 보았던 유수한은 나머지 받은 대본도 책상에 놓았다.

심장이 뛴다.

처음으로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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