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24화 (24/175)

24. 아임 홈리스 1

실시간 검색어 1위.

각 잡고 찍은 서울역 홍보 영상이 공개되고 조금씩 반응이 오더니, 점심시간에 검색량이 늘어나며 1위를 기어코 찍었다.

1위가 유수한.

2위가 한초원.

3위는 아임 홈리스였다.

전체적으로 반응은 좋았다. 특히 노숙자에게 거리낌 없이 커피를 대접하는 모습이 묘한 반응을 자아내고 있었다.

유수한은 데뷔하고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데뷔작이 운 좋게 흥행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모난 인성 탓에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즉, 유수한의 대외적 평가는 인성 쓰레기였다.

얼굴은 봐 줄 만하지만, 인성은 폐급.

하지만 그런 평가가 흔들릴 만한 영상이 나왔다.

반응은 두 가지였다.

- 유수한 쟤 요즘 이상함. 나 예전 유수한 빠였거든? 쟤가 저렇게 할 수 있는 애가 아님.

이런 반응이 있다면.

- 딱 보면 뒤늦게 이미지 관리하는 거지 ㅋㅋㅋㅋㅋㅋ 존나 가식. 인성이 어디 감?

이런 반응도 있었다.

두 가지 반응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다. 늘 한 방향으로 치닫던 악평에서 다른 방향의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유수한 본품을 구매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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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한은 돈이 차고 넘친다. 그가 배우 생활을 했던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 관심 종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수한은 과거 유수한의 돈을 이용했다. 기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연예인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타이밍은 좋았다.

딱 방송 날에 터지니 홍보 영상과 함께 시너지를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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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점점 더 헷갈릴 것이다. 어떤 모습이 진짜 유수한인지 가늠하고 파악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선은 단막극에 쏠렸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이제 단막극 ‘아임 홈리스’가 방송될 시간이었다.

* * *

KBC 단막극 시즌 2022.

신인 양성을 위한 단막극 제작을 기피한다는 비난을 받고, 공영 방송으로서 새롭게 단막극 프로그램을 단장하여 오픈한 것이 단막극 시즌이었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기존과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올해 단막극 시즌 최고 시청률은 4.6%였다. 줄곧 3% 미만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단막극 시즌은 ‘아임 홈리스’ 전주에 방송한 ‘빅샷’이 유명 아이돌 비주얼 멤버를 내세우며 처음으로 4% 벽을 깨부쉈다.

최근 전체적으로 시청률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 하락세는 OTT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제 텔레비전을 붙잡고 본방사수를 하지 않아도 손쉽게 여러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노트북 등으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번거롭게 다운로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바로 재생 버튼만 누르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니, 예전처럼 기를 쓰고 본방송을 볼 이유가 없어진 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청률은 대중성의 지표였다.

「이 대리님, 이번에 승진 대상자라면서요?」

밤 9시 1분.

방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실적 좋았잖아.」

핏된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이지호 뒤로 직원들이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지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왔어?」

이지호의 주 업무는 VIP 자산관리였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팀 활동을 위주로 하며 WM(자산관리)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이지호는 빠르게 회사에 적응했고 실적도 좋았다.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지호는 달랐다. 소액이라도 모두 플러스를 기록했고 그런 그를 모든 고객들이 신뢰했다.

「네, 부장님.」

「좋겠어? 과장 승진은 따 놓은 셈이잖아. 이러다가 내 자리도 넘보겠어?」

「아유, 과찬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부장님 자리를 감히 넘보겠어요.」

이지호는 너스레를 떨며 상사의 비위를 맞추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맞게 오만함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부장이 아니었다. 지금처럼만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임원까지도 오를 수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풀하우스. 풀하우스다.’」

장소가 바뀌고 이지호는 카지노를 방문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패를 확인하던 이지호가 카드를 내려놓았다.

「올인.」

그의 치명적인 약점.

이지호는 도박 중독자였다.

「내가 오늘 참 많이 잃었잖아?」

이지호는 패를 까기 직전, 양주를 마시며 히죽 웃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탐욕이 서려 있었고 일확천금을 손에 쥘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답하는군.」

패를 깐다.

「풀하우스.」

그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했다.

게임에서야 풀하우스는 쉽게 나오는 조합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네 사람이 모여 포커를 시작했고 한 사람은 원 페어로 빠르게 다이를 외쳤다. 두 사람은 투 페어로 간을 보다가 다이를 선언했고 이제 남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상대는 침착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과하게 배팅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이 이지호를 더 자극했다. 그렇게 상대의 패를 예상하고 올인을 외치게 한 거였다.

「내가 직전 판에서 풀하우스로 자네 돈을 쏠쏠하게 따냈지.」

음흉한 노인네.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한데,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기억은 강렬하다.

특히 돈을 잃은 기억이라면 더더욱.

이지호는 이 노인네가 직전 판에서 풀하우스로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심지어 카드 조합을 비교하면 지금 이지호가 더 월등했다.

‘10’ 세 장과 ‘A’ 두 장.

그러니 이 정도면 수월하게 판돈을 먹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노인네가 패를 뒤집는다.

그리고.

「말도 안 돼!」

이지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어떻게 풀하우스가 져! 이건 사기야!」

상대의 카드는 포카드.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연속으로 좋은 패가 나올 수가 있나?

의구심이 들었으나 증거는 없었다.

「젊은 사람이 쉽게 올인을 외치면 쓰나.」

하도 이지호가 당당하게 폼을 잡고 있어서 판을 키우지 못한 게 아쉬웠으나, 그래도 상대는 자만심에 빠져 올인을 외쳤다.

덕분에 이렇게 오늘은 손을 털어도 될 만큼의 돈을 따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이지호가 서류 가방을 들고 자리를 뜨려는 노인네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딜 가? 따고 배짱이야?」

이미 이지호의 눈은 뒤집힌 상태였다.

「한 번 더 해! 돈, 가져오면 되잖아!」

그건 이지호의 실수였다. 거기서 멈춰야 했다. 이미 도박에 빠진 상태였지만, 그날 잃은 돈은 어마어마했다. 거기서 멈추었다면 이지호가 추락하는 속도를 아주 조금이나마 늦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화면이 바뀌었다.

중년 배우, 이지호의 부친이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설명해.」

「아, 아버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다.」

차가운 목소리.

이지호의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채무 상환 독촉장을 던졌다. 종이가 나풀거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이지호의 눈이 가늘게 떨린다.

「아,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저 재작년에 집, 집 샀잖아요.」

이지호는 아버지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유년기 시절부터 이지호는 아버지가 정한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 공부를 치열하게 했던 것도 증권사 에이스로 자리 잡은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차가운 눈길이라도 한 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예요. 제가 이번에 계좌에 돈이 없다는 걸 깜빡해서…… 지, 지금 바로 상환할 거예요, 아버지.」

더듬더듬, 자식의 변명을 듣던 아버지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어디서.」

차가운 목소리.

「어디서!」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는 이지호를 주눅 들게 했다.

「지금 어디서 감히 거짓말을 해!」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장갑을 주섬주섬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보던 이지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털썩, 무릎을 꿇은 이지호가 아버지 다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가죽 장갑을 끼는 이유를 알고 있다.

「골프채.」

이지호는 발에 걷어 차여 바닥에 나뒹군다. 이윽고 아버지의 손에 골프채가 쥐여지고 그 모습을 본 이지호의 눈이, 말 그대로 뒤집혔다.

「또 때리려구요?」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반항 한 번 해 보지 못한 그였다.

「아버지.」

그가 서러운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팰 거면 돈 주고 패세요. 네?」

도박을 하면 사람이 이상해진다고 한다. 사고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돈과 직결된다. 돈을 잃어도 돈만 있으면 다시 잃은 돈을 찾을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게 되고 끝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어쩌다 돈을 따서 미약하게 올라가면 어김없이 다음 코스는 내리막길이었다.

우습게도 그 순간의 쾌락 때문에 이지호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휘익!

바람을 가르고 골프채가 휘둘러진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숙이는 이지호. 이윽고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파열음 소리가 울렸다.

「횡령? 미쳤나 봐.」

「연봉도 많으면서. 이제 경찰 조사 받나 봐.」

「못 들었어? 이 대리 집안 빵빵하잖아. 아버지가 다 막았대.」

「진짜?」

「횡령한 돈 그대로 메꾸고 이런저런 거래도 했나 봐.」

「잘사는 집은 좋네. 뭔 짓을 해도 다 수습해 주니.」

뭘 안다고.

이지호가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 나오며 중얼거렸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얼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지만 평소대로 회사에 출근했다.

아무것도 몰랐다.

횡령한 것을 들킬 줄은 몰랐으니까.

「지호야!」

멀리서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 왜 그래? 괜찮아?」

아직 여자 친구 김선영은 이지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까지 쉬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아.」

이지호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너와 결혼하지 말래.」

「뭐?」

「조건이 안 맞는다고 하시더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를 악물며 이지호가 말했다.

「나 아버지에게 약한 거 알잖아. 내 얼굴 좀 봐.」

「지호야.」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그리고 한없이 비겁하다. 이 모든 책임을 여자 친구에게 덮어씌운다. 모든 잘못은 이지호 본인이 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헤어지자.」

1부가 끝났다.

중간 광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공중파에서도 중간 광고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반발이 심했음에도 적자를 메꾸기 위한 광고였다.

그 시간을 이용해 반응을 확인했다.

[자유] 유수한 생각보다 연기 잘한다 잘생긴 찌질이 같음 ㅋㅋㅋㅋㅋㅋㅋ +11

[자유] 아임 홈리스 보는 사람? ㅋㅋㅋㅋ 유수한 잘또같음 잘생긴 또라이 +2

[온에어] 아임 홈리스 막 꿀잼은 아닌데 보게 된다 도박이 무섭긴 하네 +4

[온에어] 이지호 아빠 개무섭다 ㄷㄷㄷ 골프채로 아들 팰 때 내가 지릴 뻔 +3

이 정도면 무난하다.

사실 2부가 진짜 시작이었다. 결말이 충격적이었고 이지호의 추한 모습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유수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무알콜 맥주를 가져왔다. 술을 마시고 싶을 때, 가끔 찾는 음료였다.

따악.

캔을 따고 소파에 등을 기댄다.

이윽고 2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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