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23화 (23/175)

23. 실시간 검색어 1위 찍은 유수한 거리 홍보 근황

“헉!”

사무실에서 무료하게 일하던 이경민이 숨을 들이마셨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는데,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파랑새 알림이었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파랑새 팔로우는 조금씩 늘었지만, 아직 100명도 되지 않았다. 아이돌을 팔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숫자였다.

그러나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는 순간, 대수롭지 않던 감정이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온리유님. KBC 아임 홈리스 최인성 감독입니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인증이라고 보낸 사원증을 보는 순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경민은 유수한의 홍대 출몰, 그리고 강남역 출몰을 보며 계속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항상 덕질을 하다 보면 이렇게 비공식 스케줄이 생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배우는 그런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노숙자 차림을 하고 홍보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온리유님께서 올려 주신 사진들 잘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메시지를 보냅니다.」

보통 방송국에서 일하는 놈들은 팬을 막 대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아이돌이라면 더더욱. 팬을 우습게 보고 박하게 대우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최 감독은 한없이 정중했다.

「단막극 홍보를 위해 유수한 씨와 함께 거리 홍보를 이어 갈 계획입니다.」

메시지를 읽는 이경민의 눈이 점차 커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자리에 초대하려 합니다.」

실례요?

그럴 리가요.

「괜찮으시다면 메시지나 연락처 남겨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손이 떨린다. 유수한의 거리 홍보가 처음 떴을 때는 덕계못이라며 좌절했던 그녀는 지금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락처를 남기는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아이돌 덕질은 컴백하면 공개 방송을 뛰며 얼굴을 볼 수 있고 앨범 사재기를 하면 사인회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배우 덕질은 녹록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기회가 한정적이었기에, 이렇게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경민을 흥분케했다.

무엇보다 아직 팬은 나 하나.

이경민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며 생각했다.

“나 하나.”

온리 미.

아무래도 닉네임은 온리 미로 지었어야 했나 보다.

* * *

“그래서 오늘 예고를 여기서 찍고 그 후에 촬영을 하자는 말씀이죠?”

유수한의 물음에 최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지금 최 감독과 김 작가, 그리고 매니저 김민수에 유수한까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유는 지금 유수한이 카페나 식당을 갈 만한 옷차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게 더 편했다.

“좋아요. 나쁠 건 없죠. 저도 계속 시간 날 때마다 거리 돌아다니며 홍보할 생각이었거든요.”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최 감독의 계획을 자세하게 들으니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말 그대로 판을 키우자는 뜻이었다.

“저 궁금한 거 있어요.”

김 작가가 손을 들며 말했다.

“뭔데요?”

최 감독의 물음에 김 작가가 입을 열었다.

“수한 씨요.”

“저요?”

“네. 왜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째, 요즘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 것 같다.

“어떤 의미일까요?”

“그렇잖아요. 사실 저희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유수한 씨거든요?”

“제가요?”

“네. 인지도는 가장 높잖아요.”

“뭐, 부정적인 인지도도 포함된다면 그렇겠죠.”

씁쓸한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말 그대로 긍정적인 유명세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까요.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는 없잖아요? 왜 누더기 옷 입고 거리 홍보를 하세요? 더군다나, 원래 유수한 씨는…….”

“김 작가.”

흥분한 김 작가를 말리며 최인성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아니, 미안해요. 편견은 없어졌는데, 이렇게 할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서요.”

유수한이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김민수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김 작가의 말이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오늘 김민수도 생각하던 거였으니.

“편견 있으셔도 돼요. 제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묘하게 그 은은한 미소가 광기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소름이 끼치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 인간은 착한 척할 때가 가장 무섭다.

이제는 착한 척인지, 진짜 착해진 건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더 무섭다.

“달라지기로 마음먹었거든요.”

유수한이 김 작가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또 작가님 대본을 신뢰하니까요.”

그리고 그 말만큼 작가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이 없다.

대본을 신뢰한다.

그 말은 곧 작가를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한 씨는 정말 질질 흘리고 다니네요.”

“네?”

“매력이요. 매력.”

유수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남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끔 여자들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김민수와 최 감독이 동시에 떠올리고 있었다.

* * *

거리 홍보 예고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KBC 공식 Y튜브에도 업로드되었고 발 빠르게 이경민이 영상을 퍼 갔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찍은 유수한 거리 홍보 근황 +327」

적절한 제목.

- 나 진짜 유수한 팬 아니거든? 근데 유수한 진짜 존잘은 존잘이다

⌞ 22222 ㅇㅈ

⌞⌞ 솔직히 얼굴은 ㅇㅈ 못생겨 보이려고 발악했는데도 외모를 못 숨김

⌞⌞⌞ ㅇㅇ 인성만 아니었음 이미 덕질 함

⌞⌞⌞⌞ 개존잘 쌉인정 ㅋㅋㅋㅋㅋㅋ

⌞⌞⌞⌞⌞ 얼굴만 잘생기면 다냐? ㅉㅉ

⌞⌞⌞⌞⌞⌞ 몰랐음? 얼굴만 잘생기면 장땡임

적절한 반응.

- 하도 글이 많아서 궁금해진다 그거 아임 홈리스

⌞ ㄹㅇ 제목부터 노숙자여서 얼마나 망가지는지 궁금해

⌞⌞ 333333 짤만 봐도 그냥 꽃거지여서 ㅋㅋㅋㅋ

⌞⌞⌞ 444 단막극인데 이렇게 본방 기다리는 건 처음임

⌞⌞⌞⌞ 5555 솔직히 유수한 어디까지 가나 그게 궁금한 거지 ㅋㅋㅋㅋㅋㅋ

자연스럽게 단막극으로 관심이 이어진다. 거리 홍보 예고를 했고 그동안은 당분간 셀프 홍보는 없었다. 여기서 어쭙잖게 거리로 나가 봤자, 관심만 분산된다. 기를 모아서 에네르기파를 쏘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기다렸다가 크게 한 방 터트린다.

“시간이 빠르죠?”

“그러네요. 내일이 벌써 방송이니.”

단막극 ‘아임 홈리스’ 방송 전날.

모든 시간은 온리유, 그러니까 이경민의 스케줄에 맞춰 저녁 7시에 서울역에 모였다. 미리 서울역에 촬영 협조를 구했고 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경민 씨.”

유수한이 반갑게 달려오는 이경민을 반겼다. 그리고 경민의 얼굴이 화색이 돈다. 오늘 하루, 회사에서 상사에게 까이고 밀려오는 일을 해내느라 정신없었던 이경민은 자신만의 배우를 보는 순간,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걸 느꼈다.

“이렇게 뵙네요, 온리유 님!”

최 감독이 버선발로 달려와 이경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기, 닉네임은 좀 부끄러워서요.”

“아, 그러세요?”

“네. 그냥 이름 불러 주세요. 이경민입니다.”

파랑새에서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좀 그렇다. 누군가 닉네임으로 부르면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특히나 정신없이 일하고 왔을 때는 더더욱.

그리고 팬이 아닌 사람에게 불렸을 때도 그랬다.

“안녕하세요. ‘아임 홈리스’ 대본 쓴 김은정 작가입니다.”

이경민이 반가운 건 김은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메인으로 쓴 작품을 홍보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작가는 없었다.

“사진 너무 잘 찍으시더라고요.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여러모로 이경민은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 방송 관계자들이 이렇게 잘해 주다니. 심지어 유수한의 매니저가 데리러 왔다. 그 차에 타는 순간, 정말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유수한이 타고 다녔던 차.

그 사실만으로도 지금 이경민은 날아갈 듯 행복했다.

“경민 씨.”

유수한이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도와주는 게 고마워서요. 작은 거니까 받아 주세요.”

미쳤다.

이경민이 쇼핑백을 받고 입을 틀어막으며 생각했다.

‘미친, 나 오늘 죽어도 여한 없다.’

* * *

서울역 홍보 행사는 공식적으로 1시간 동안 계획되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브이온 중계 중이었다.

행사는 본격적이었다. 커피차까지 대동되었고 유수한은 팬서비스를 하며 커피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초대 손님이 하나 있다. 또 다른 주연 배우 한초원이었다.

한초원이 커피를 내리고 유수한이 배달한다. 길게 계획된 행사가 아니었기에 메뉴는 통일이었다.

아메리카노.

“저기, 나도 한 잔 먹을 수 있소?”

추운 날씨.

서울역을 배회하는 노숙자가 찾아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유수한도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음에도, 진짜 노숙자가 찾아오자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그를 피했다.

조연출이 제지하려는 그 순간, 유수한이 나섰다.

“당연하죠.”

얼어붙은 분위기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시럽도 넣어 줘.”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이가 지긋한 노숙자는 반말을 지껄였지만, 유수한은 개의치 않았다. 한때 자신도 저들과 다르지 않았다. 유수한은 따뜻한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맙소.”

이후에도 노숙자들이 찾아왔고 유수한은 당연하단 듯 그들을 응대했다.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막극에서 노숙자를 배타적으로 취급한다면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 외에, 유수한이 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다.

과거 그들과 같은 존재였는데 지금 그들을 혐오한다는 것은 본래의 자신, 김대한을 혐오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추운 날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당초 행사는 1시간으로 계획되었지만, 늘 그렇듯 촬영이 들어가면 딜레이가 따라온다. 또 이 추운 날씨에 찾아온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 잔 더, 한 분 더, 하다 보니 30분이 딜레이 되었다.

“저희 단막극 ‘아임 홈리스’ 많이 사랑해 주세요. 내일 방송입니다!”

유수한이 밝게 웃었다.

마이크를 한초원에게 넘기고 자신을 열심히 찍고 있는 이경민을 보았다.

저 커다란 카메라.

좋아하는 배우를 위해 들고 오는 저 카메라의 크기를 보면 엄숙해진다.

뭐랄까.

조금 더 진지하게 팬서비스에 임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유수한은 웃으며 손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 * *

이경민의 활약은 이제부터였다. 최 감독은 그냥 빈손으로 이경민을 부릴 수가 없어서, 상품권을 챙겨 왔다.

이경민은 좋아하는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양했지만, 집요한 최 감독에 밀려 상품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유수한은 택시 타고 가라고 5만 원권 지폐까지 손에 쥐여 주었다. 여러모로 이경민은 유수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돌 덕질 하면서 택시 타고 가라고 돈을 주고 선물까지 준비했던 아이돌이 있었던가?

기껏해야 막대 사탕 정도였다. 기껏해야.

“돌았다, 진짜.”

뒤늦게 택시 안에서 유수한의 선물을 확인한 이경민이 입을 틀어막았다.

선물은 향수였다.

조말란 향수.

심지어 향도 좋았고 크기도 크다. 아쉬운 건, 아까워서 쓸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역조공이었다. 쪼롬한 막대 사탕 따위를 역조공이라고 고마워하던 지난날이 모두 부질없어졌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직접 쓴 편지였다.

“나 탈덕 가능?”

솔직히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유수한 덕질을 시작해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유수한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배우였기에 떡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오랜 덕질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떡밥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그 사람의 인성.

사실 덕질을 시작했을 때, 유수한의 인성은 포기했다. 수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그였기에 기대하지 않았던 덕목이었다.

“그렇게 착한데, 왜 그런 사고를 친 거지?”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가 사그라들었다.

“너무 착해서 당했나 보다!”

그야말로 이상한 방향의 결론이었다.

이경민에게는 오늘 하루는 완벽했다. 뜻하지 않은 오프가 생겼고 좋은 사진도 여럿 건졌다. 집에 가서 사진 하나하나를 만질 생각에 즐거웠다.

끼이익, 탁.

탈덕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 * *

수요일이 왔다.

괜히 잠이 오지 않아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유수한은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영상이 올라오는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아마 지금 최 감독과 조연출이 밤을 새워서 편집 중일 터였다.

그리고 이경민의 사진은 벌써 업로드되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남은 건 이제 방송뿐이다.”

짧았지만, 지독하게 노력하고 덤벼들었던 단막극 ‘아임 홈리스’가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

기존 유수한의 데뷔작은 영화 ‘어둠이 온다’였지만, 지금의 유수한에게는 ‘아임 홈리스’가 데뷔작이었다.

초조한 듯,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던 유수한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잘될 거야.”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최선을 다했으니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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