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유수한이 원하는 거 다 해 드림
날이 춥다.
유수한은 몽클레스 패딩을 입고 홍대에 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대며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형님.”
매니저도 함께였다.
“저까지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있지.”
“왜요?”
“너는 내 매니저니까.”
“그게 무슨…….”
김민수는 스타일리스트가 따로 구해 준 의상을 입고 있었다. 남색 패딩은 구멍이 나서 하얀 솜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얼굴을 가리려고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별다른 분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거지 같았지만, 유수한은 끝끝내 김민수 얼굴에 숯검댕이를 묻혔다.
“좀 쪽팔리긴 한다. 그치?”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에요.”
김민수는 연예인이 아니다. 그러니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추레한 모습이니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비교된다.
같은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배우는 배우였다. 멀리서 봐도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으니까. 그래서 김민수는 더더욱 불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입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사이는 갑과 을이었다.
“시작해 보자.”
유수한은 판넬을 들고 숨을 들이마셨다. 창피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안녕하세요! 유수한입니다!”
크게 소리치고 판넬이 잘 보이도록 머리 위로 들었다.
「KBC2 아임 홈리스 3월 9일 밤 9시 방송!」
방송 정보가 간략하게 적힌 판넬.
그걸 들고 거리에 서 있으니 하나둘 유수한을 쳐다보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방송이라도 하는지 카메라를 찾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예능 찍나?”
“근데 카메라는 없는 거 같은데.”
“숨어서 찍는 거 아니야?”
“몰라. 방송은 맞는 거 같은데. 검색해 볼까?”
하나둘 유수한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가 들고 있는 판넬에 관심을 둔다. 도통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 단막극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생각한 홍보 방법이었다.
연예인이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면 싫어도 관심을 받게 된다. 한 명이라도 더 검색하게 만들고 단막극의 존재를 알리는 것.
오늘 이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유였다.
“민수야. 그거 들어.”
유수한의 말에 김민수가 입술을 삐죽이며 뒤에 숨기고 있던 팻말을 들었다.
「오늘 유수한이 원하는 거 다 해 드림」
사람들이 유수한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김민수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속 팻말을 든 채 유수한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팬서비스에 집중했다.
“오빠, 얼굴에 김 묻었어요!”
“네?”
“잘생김!”
처음 듣는 유머였다. 아니, 주접이라고 해야 하나.
유수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팬을 보았다. 이 사람이 유수한의 팬일 확률은 적었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나 호의적으로 다가오니 이 순간만큼은 팬이라고 봐도 괜찮을 듯했다. 또 여기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었다.
“어, 잠깐만요.”
“네?”
“등에 뭐가 있는데요?”
유수한이 자연스럽게 농담을 던졌다.
“날개가 있네? 혹시 천사?”
“그게 뭐예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뭐 그리 웃긴 말도 아니었는데, 이 역시도 얼굴이 주는 힘이었다. 사람들이 점차 몰린다. 추운 날씨에도 유수한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많았다.
“셀카 찍어도 돼요?”
“그럼요.”
같이 사진 찍는 건 기본이었고.
“저 안아 주세요!”
프리 허그 역시 쉬운 요청이었다.
“저 볼에 뽀뽀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럼 손에다가 해 드릴게요.”
자연스럽게 어려운 요청은 돌려가면서 진행했다. 일부러 김민수에게 과하게 사람들 접근을 막지 말라고 말했다.
오늘 거리 홍보의 포인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달라진 유수한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유수한도 한때 팬이 있었다.
촬영할 때면 커피차 같은 선물도 받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유수한이 팬의 존재를 감사히 여기지 않았다는 거였다.
한때나마 있었던 팬은 유수한의 사건 사고에 하나둘 지쳐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있었던 팬도 이제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걸 보며 유수한은 작은 것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렇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야 한다.
뭐든, 작은 사랑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대에 머무른 지 2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슬슬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단막극 ‘아임 홈리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 다음 주 수요일 밤 9시 잊지 마세요!”
유수한이 빠르게 사람들을 피해 차에 올라탔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옷이라 사람들의 손에 찢어져도 티 하나 나지 않았다.
“다음.”
“진짜 계속 이렇게 할 거예요?”
“강남역.”
매니저가 티 나게 한숨을 쉰다.
강남역 공영 주차장 주소를 찍고 이동한다. 김민수는 거지꼴로 돌아다는 게 아직도 창피한 눈치였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비교하는 것도 신물 난다. 연예인이 아니라서 얼굴 팔리는 일은 그 누구보다 싫은 김민수였다.
“그렇게 싫냐?”
유수한의 물음에 한숨을 쉬었다. 매니저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노숙자 차림으로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유수한에게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너 이번에 이사한다며?”
“네, 갑자기 왜요?”
“풀 옵션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
“냉장고면 되냐?”
김민수는 최근에 집 한 채를 샀다. 원래는 월세에서 전세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빠르게 오르는 집세를 보며 차라리 집을 한 채 미리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큰 집은 아니었다.
역세권에 실평수 15평형 작은 아파트였고, 다른 곳에 비해서 저렴하게 나온 집이라 더 생각하지 않고 결정지었다.
대출을 꼈지만, 월세나 전세가 아닌 내 집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지던 김민수였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아파트는 풀 옵션이 아니었기에, 텔레비전이나 냉장고는 기본으로 사야 했다. 다행히 세탁기는 옵션에 포함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
“싫으면 넌 하지 마.”
고민은 짧았다.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강남역으로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역시 사람 구슬리는 데는 돈이 최고다.
김민수가 달라진 태도로 최선을 다해 운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수한은 핸드폰으로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있다.
[HOT] 지금 유수한 거지꼴로 단막극 홍보 중임! +488
순조롭다.
관련 기사도 나오고 있었고 파랑새에도 실시간으로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흥미로워하는 이유는 유수한이 몸을 사리는 배우였기 때문이었다.
망가지는 걸 싫어했던 그가 스스럼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불어 유수한은 이미 한물간 배우였다.
그런 그가 예전이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단막극을 홍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조소를 날리는 반응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했다.
- 얘 돈 떨어짐? ㅋㅋㅋㅋㅋㅋ
⌞ 22222 금수저 아니었음? ㅋㅋㅋㅋㅋㅋㅋ
⌞⌞ 333333 갑자기 집이 망했나 봄 ㅋㅋㅋㅋㅋㅋㅋ
⌞⌞⌞ 444444
뭐, 다 괜찮다. 비웃든 말든. 그것도 관심으로 이어질 테니.
“다 왔어요. 형!”
판넬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유수한은 방송 직전까지 이 홍보 방식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 홍대에서 진행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반응이 찾아왔다.
이것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유수한은 능숙하게 판넬을 들고 다녔고 어느새 입소문이 퍼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유수한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건 오랜만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긍정적인 내용으로는 더더욱 그랬다.
가장 최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것이 음주 수영 논란이었으니 말 다 했다.
그리고 3위는 ‘아임 홈리스’였다.
노렸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품 홍보로 이어졌다.
“아, 네. 감독님.”
김민수가 갑자기 걸려온 최 감독의 전화에 유수한을 보았다. 강남역에서 홍보를 마치고 차에 올라탄 직후였다.
“아, 네. 지금 형님 바꿔 드리겠습니다.”
김민수가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최인성 감독님께서 할 말이 있으시다고 하세요.”
“감독님께서?”
요즘 부쩍 최 감독이 연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제작 발표회 직후에는 조급증 때문이었다. 이제 수한이 꽤 익숙해졌는지, 자주 전화를 걸어서 술 한잔하자는 말도 했고 작품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유수한의 위로를 원했다.
그런 전화가 두 차례 있었고 그다음은 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
무슨 이유로 전화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네, 감독님.”
그리고 최 감독은 꽤 괜찮은 아이디어를 유수한에게 내놓았다.
“좋습니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유수한은 선선히 최 감독의 제안을 받았다.
* * *
KBC 드라마국.
가편집을 마친 최인성 감독은 시사를 앞두고 단막극 반응을 찾아 보고 있었다. 당장 다음 주가 방송임에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나마 이슈를 끌고 있는 사람이 유수한이라 검색을 주로 유수한 위주로 했던 최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는 소식이 있었다.
“감독님, 그거 보셨어요?”
김 작가가 편집실 문을 열고 요란하게 나타났다.
“지금 보고 있어요.”
이제 방송국에 자주 오지 않아도 될 김 작가는 뭘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자주 드나든다.
이번 단막극이 입봉작인 최 감독만큼이나 김 작가에게도 이 작품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수십 번 인터넷을 드나들며 작은 소식이라도 없는지 찾아 본다.
“좀 감동이지 않아요?”
김 작가가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유수한 씨가 이렇게 홍보에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요. 근데 이렇게 해 주니까 뭔가 되게 마음이 뭉클하고…….”
그런 마음은 최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도 찬밥 신세라서 매일 푸념만 하고 있었는데, 정작 배우가 나서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직전까지도 일당백 홍보 효과를 내던 사람 역시 유수한의 팬이었다.
가끔 최 감독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매사 열심히 하는 배우를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쳐 낼 뻔했다. 그렇게 했다면 이렇게 소소하게 화제가 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나 지금 생각난 게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
“그게 뭔데요?”
“유수한 씨에게는 말했는데, 궁금하면 따라와요.”
최 감독은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최 감독이 야속한지, 김 작가가 눈을 흘리며 말했다.
“그니까, 그게 뭔데요.”
“급하게 보채지 말고.”
“아니, 궁금하니까요.”
“가면서 설명할게요.”
이윽고 편집실 문이 벌컥 열리며 조연출이 들어왔다.
“감독님, 준비 끝났습니다.”
“그래, 가자.”
방송국을 나서며 최인성 감독이 핸드폰을 보았다.
후배에게 시킬까 하다가, 갑자기 촬영 준비 때문에 바쁜 게 보여서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디는 @onlyyou_soohan.
닉네임은 ‘온리유’.
유수한 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