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숙자, 천재 배우 되다-5화 (5/175)

5. 한 번만 더 기회를

차고가 꽤 넓다. 유수한은 과시욕이 있어서 차도 여러 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집 자체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다. 리모델링한 현대식 주택. 지하철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그랬기에 오가는 사람이 드물고 조용했다.

“멋지네.”

키홀더에 있던 것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들고 나온 유수한은 외제 중형 SUV를 보며 감탄했다. 차 종류는 여러 가지였다.

구석에 화려한 붉은색 스포츠카가 있었는데, 그 차를 고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스포츠카는 도심에서 끌고 다니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차에 올라탄 대한은 내비게이션에 K엔터테인먼트 회사 주소를 입력했다. 초행길이었다. 생각해 보면 34년을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어딜 가 본 적이 없었다.

김대한이 살았던 보육원은 강북이었고 자연스럽게 독립해서도 그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강남은 가 볼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인생 처음으로 부자 동네를 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유수한은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평소 액세서리를 착용할 일이 없던 그였지만, 반짝이는 것들을 보니 순간 눈이 돌아갔다.

슥.

선글라스를 쓰고 거울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만족스러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풍족해진 환경뿐만 아니라 잘생긴 외모 역시도 매우 흡족했다.

본래 김대한의 얼굴은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여드름 때문에 고생했고 커서는 작은 키와 더불어 지나치게 큰 얼굴 때문에 힘들어했다.

이렇게 날렵한 턱선에 하얀 피부는 처음 경험해 보는 김대한이었다. 보잉 선글라스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니.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지만, 얼굴만 보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좋군.”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인다. 지금까지 트럭이나 봉고차 같은 차만 몰아 본 유수한이었기에, 멋진 차를 끄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노래를 튼다. 요새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가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과 히터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공기를 동시에 느끼며 밝게 웃었다.

“캬, 이게 사는 맛이지.”

그는 잠시 포인트에 대한 압박은 잊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 *

“형님, 오셨어요?”

대한은 마중 나온 김민수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키는 유수한보다 작았고 얼굴에는 살집이 있다. 그때도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지금도 후드티를 입고 있다. 가만 생각하던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역에서 봤던 남자였다.

“응, 춥다. 들어가자.”

“예. 형님.”

조폭도 아니고 기합이 빡 들어가 있었다. 김민수는 K엔터 입사 3년 차 로드 매니저였다. 유수한이 군대에서 나오자마자 그를 맡게 되었는데, 다들 입을 모아 1년도 채 버티지 못할 거라고 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수한은 이미 사내에서 악평이 자자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 잡는 건 익숙한 일이었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자주 해 왔다.

한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강약약강 스타일이었다. 드라마를 찍을 때도 감독이나 작가에게는 허허실실 잘했고 같은 급이라 생각하는 주연 배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연 배우나 여타 스태프에게는 가차 없이 행동하던 그였다.

김민수는 유수한 로드 매니저 최초로 1년을 넘긴 사람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회사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근데 형님, 여긴 무슨 일로…….”

유수한은 쓴 커피를 마시며 미간을 좁혔다. 아직 커피 맛을 모르는 그였다. 막노동하던 시절에는 커피보다 저렴한 자양강장제를 주로 마셨던 유수한이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졌으니 이 쓴 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무엇보다 기존 유수한은 아침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입맛을 가진 모양이었으니.

“내가 여기까지 왜 왔겠냐?”

“아…….”

“나 뭐 들어온 거 없어?”

유수한은 어색하지만, 기존 유수한 흉내에 최선을 다했다.

유수한을 직접 본 건 서울역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봉사활동을 한다고 밥을 퍼 줄 때는 사람 좋은 척 웃었던 그였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매니저에게 욕을 찍찍 하면서 툭툭 어깨를 밀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그것만 보아도 유수한이 어떤 인간인지 느낄 수 있다.

앞과 뒤가 다른 사람. 강약약강.

“그 이야기 주고받던 건 있었는데, 형님 응급실에 실려 간 후에 파투 되었어요…….”

눈치를 보면서도 전해야 할 말은 눈 딱 감고 말하는 김민수였다. 그 성격 탓에 유수한은 그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도 했고 침을 뱉기도 했었다.

지금도 김민수는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날아올 폭력이든 욕설이든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유수한인 척하는 지금의 유수한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었으니.

“네?”

당황한 김민수가 고개를 들어 유수한을 보았다. 유수한은 가만 생각에 잠긴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 가득 맴도는 쓴맛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 몇 가지 부탁이 있는데.”

“부탁이요?”

유수한은 부탁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보통은 그냥 명령을 내린다.

“하나는 연기 수업을 받고 싶어.”

“연기를요?”

“그래.”

유수한은 본격적으로 배우로 나설 준비를 할 생각이다. 더군다나, 연기 수업을 받는 것만으로도 티끝이지만 태산이 될 포인트가 쌓인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네? 다이어트요?”

김민수의 작은 눈이 놀라 커진다.

“어. 그리고 마지막은 작은 역할이라도 괜찮으니까, 대본 좀 줘.”

“대본이요? 비중이 작아도 괜찮다고요?”

“응. 생각해 봤는데, 단막극 같은 거면 좋을 거 같은데.”

“……이제 곧 단막극 시즌이긴 하죠.”

이상하다.

지금 김민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1년 넘게 유수한의 성격을 받으며 살아왔던 김민수였다. K엔터에서 김민수만큼 유수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 자부할 정도였다. 김민수가 유수한의 로드 매니저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었다.

유수한을 감당할 수 있는 근성, 그것 하나만으로도 회사 대표의 눈에 들었고 유수한이 자숙하느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배우를 커버하게 되었다.

올해가 지나면 4년 차였고 조금만 견디면 자연스럽게 로드 매니저에서 벗어날 김민수였다. 아직 이르지만, 유수한을 감당했다는 업적 하나만으로 고속 승진을 예약한 셈이었다.

그래서 김민수는 유수한에게 잘하려 노력한다. 그는 언젠가는 K엔터에서 사라질 배우였고 아마 연예계에서도 은퇴 아닌 은퇴를 당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 인성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바닥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유수한은 조금 낯설었다.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 눈만 봐도 치를 떨게 했던 그 얼굴은 여전하다. 하지만 뭔가 낯설었다.

분위기가, 특유의 오만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근데 단막극은 신인들이 주로 해서요.”

김민수는 다른 생각은 접고 일적으로 대했다.

“알아. 내가 할 만한 거 있는지 보려고.”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 보는 눈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유수한은 매니저를 만나 작품 종류를 딱 집었다. 이건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처음부터 장편 드라마를 찍기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연기 문외한이 어떻게 처음부터 어려운 걸 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단막극이었다. 가끔 단막극에도 호평을 받는 작품이 있었고 그걸 아이템을 통해 건져 낼 생각이었다.

“언제까지 해 줄 수 있어?”

김민수가 미간을 좁힌다. 여전히 이상했다. 항상 유수한의 화법은 명령 내지는 통보였다. 언제까지 해 줄 수 있느냐는 물음은 던지지 않는다.

보통은 ‘지금 당장 해!’라고 윽박지른다. 이렇게 곱게 착하게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계속 머리가 복잡해진다.

괴롭히는 방법을 바꾼 걸까.

“형님.”

“왜?”

“어디 아프십니까?”

“아니.”

“그 제가 응급실 도착했을 때, 형님 심장이 멎었었거든요.”

“왜, 내가 죽기라도 바랐냐?”

“아뇨!”

당황한 김민수가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제가 설마 그랬겠어요?”

사실 뜨끔했다.

유수한 심장이 멎는 걸 보던 그 순간에는 적잖이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언제나 유수한은 입이 걸었고 어깨나 이마를 툭툭 칠 때마다 모멸감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쌓인 감정이 있었기에 유수한이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그였다.

“그, 연기 수업은 선생님과 스케줄을 조율해야 해요.”

“가급적이면 빨리.”

“내일 수업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래.”

“운동은 헬스 트레이너 붙여 드리겠습니다.”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 한 번 할 때마다 1 포인트. 연기도 배울 때마다 1 포인트씩 쌓인다. 지금은 한 푼이 아까우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단막극 대본은 팀장님과 상의해야 해서요.”

“이왕이면 오늘 바로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김민수에게 볼일은 모두 끝났다. 유수한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회사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해서.

가장 궁금한 사람은 역시.

“지금 대표님 회사에 계시냐?”

K엔터의 수장 이성실이었다.

“네. 계십니다.”

“잘됐네.”

유수한은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 한 장을 민수에게 내밀었다.

“커피 잔뜩 사서 직원들 돌려.”

“예?”

“대표님은 뭘 좋아하시냐?”

“…….”

지금 김민수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유수한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커피와 주전부리를 사서 직원들에게 돌리고 바닥난 인심을 좀 살려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유수한은 돈이 아쉽지 않은 놈이었다. 배우로 벌어 둔 돈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집이 잘살아서 계좌에 쌓인 돈이 꽤 된다. 거기다 증여받은 건물도 있었다.

내가 번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 것도 수월했다.

그저 못된 놈 카드 좀 쓰자는 심보.

“나 먼저 회사 올라간다.”

쿨하게 카드를 맡기고 카페에서 나가는 유수한이었다. 그리고 홀로 남은 김민수는 멍한 눈으로 유수한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 * *

K엔터테인먼트 대표실.

유수한은 이성실 대표가 즐겨 마신다는 아이스 카푸치노를 들고 있었다. 김민수는 대표실에 같이 들어가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유수한이 손을 저어 물러 세웠다.

똑똑-

경쾌하게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문고리를 돌렸다. 대표실에는 비서실장이 대표와 함께 있었고 불청객의 등장에 잠시 적막감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언제나 그렇듯, 돌아가는 방법은 모른다. 늘 그렇듯 정면 돌파를 감행하는 유수한이었다. 이성실 대표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유수한와의 관계 역시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친밀하게 지내야 할 사람이 이성실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패가 너무나 많았기에.

“김 실장, 이만 나가 봐.”

비서실장이 대표실에서 나가고 유수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카푸치노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성실의 시선이 카푸치노에 닿았다가, 이내 유수한에게 향한다.

“커피에 독 탄 건 아니겠지?”

이성실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왜 갑자기 하지도 않는 짓을 하느냐고 돌려 말하는 것이다.

유수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성실을 보았다. 역시 회사 사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딱 봐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럴 리가요. 대표님.”

“앉아라. 마침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

책상에서 일어난 이성실이 소파에 앉으며 유수한을 보았다.

“네가 술 마시고 수영장 물에 뛰어들지만 않았어도, 차기작이 정해졌을 텐데.”

이성실이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참 아쉽구나.”

지금 이성실은 미소를 지으며 선선하게 말하고 있었다. 애초에 유수한에 대한 분노는 정리했다. 어차피 오래 함께할 소속 연예인도 아니었고 화를 내는 것도 이제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그건 죄송합니다.”

유수한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건넸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난 계절이 겨울이었지. 1월, 그때가 가끔 참 기억나. 잘생긴 얼굴, 괜찮은 피지컬. 딱 톱배우가 될 재목이라고 생각했지.”

“…….”

“그렇게 만들 자신도 있었고.”

“……”

“내가 틀렸다.”

이성실은 유수한을 계속 끌어 보려 했다. 끝없이 실망만 안기는 유수한을 보며 많은 직원들이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간청했다. 함께 일하기도 싫다는 듯 몸서리를 치며.

그래도 계속 그 끈을 붙들고 놓지 못했던 건, 처음 만났을 때 전율을 느꼈던 얼굴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인성을 보지 못한 내 탓이다.”

5년의 계약기간. 그리고 그 계약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가 지나고 3개월만 버티면 계약 만료였다. 이성실은 이제 그만 유수한을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유수한에게도 절실히 느껴지고 있다.

“대표님.”

유수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하지만 이성실의 눈에는 감정 따위는 없었다. 이미 버린 패로 분류한 소속 배우에게는 그 어떤 일말의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유수한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를 발굴해서 나름 짧게나마 톱 자리에 앉힌 사람이 이성실이었으니까.

“……!”

하지만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유수한이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유수한은 이성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가 맨바닥에 무릎을 꿇는 그 의미를, 이성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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