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그 남자가 된 거야
커튼 틈으로 햇살이 스며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던 김대한은 제 얼굴 위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자 눈을 찡그린다. 뒤척이며 더 잠을 청하려던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
끔뻑, 흐린 눈으로 멍하니 벽을 보다가 다시금 눈을 감았다가 떴다.
“……?”
여전히 잠이 가득한 눈이었고 느낌이 이상했다. 멍한 눈으로 밝은 그레이 톤의 벽지를 보던 김대한이 더듬더듬 벽을 짚었다. 손끝으로 벽지의 매끄러우면서 까끌까끌한 느낌을 만끽하던 김대한의 눈이 커진다.
“헉!”
몸을 일으켰다.
“뭐야?”
제 몸 위로 보이는 폭신한 이불을 움켜쥐었다. 포근하고 따스하다. 멍한 눈으로 이불을 조물거리던 김대한이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려앉았다.
“폭신해…….”
침대가 폭신한 건 당연했다. 김대한은 지금 뭔가 나사가 빠진 얼굴로 주변을 바쁘게 돌아보고 있었다. 때가 타지 않은 깨끗한 그레이 벽지. 푸근한 침대. 이불은 오리털이 들어갔는지 폭신하고 따뜻했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김대한은 손을 들어 제 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 꿈은 아닌데.”
볼에 퍼지는 통증에 미간을 좁힌다. 다시금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아늑한 침대는 처음이었다. 한 번도 침대를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보육원에서도 바닥 생활을 했고 독립 후에 얻은 지하 단칸방에서도 그랬다. 그에게 침대는 사치품이었다.
“이렇게 실감 나는 꿈도 있구나.”
이건 그가 늘 바라던 세상이었다. 큰 침대가 있고 깨끗한 집이 있다. 신문지가 아니라 따뜻한 이불을 덮고 편하게 잘 수 있는. 그 작은 일이 그에게는 큰 꿈이었다.
“수한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처음 보는 중년 여자가 김대한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대한은 엉겁결에 몸을 일으키고 제 얼굴을 더듬더듬 만지는 중년 여자를 보았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그 여자는 유수한의 모친이었다.
“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의 김대한, 아니, 유수한의 눈이 당황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유수한의 모친은 제 아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얼결에 품에 안긴 유수한은 고장 나 버린 로봇처럼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다시는 술 먹고 수영하지 마. 알았니?”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직도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성이 느껴졌다.
유수한의 모친은 제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눈물겨운 모정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다 큰 성인 아들에게 하는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과했다.
유수한은 어색한 듯 웃으며 모친의 손길을 피했다.
“배고프지, 아들?”
그 물음에 유수한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굶주려서 죽었고 얼어서 죽었다. 유수한의 몸은 그다지 음식을 원하지 않았지만, 김대한의 영혼은 음식을 몹시 갈망했다.
“내려오렴. 일부러 몸에 좋은 보양식으로 준비했어.”
말만 들어도 침이 고였다. 유수한의 모친이 눈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방에서 나갔다. 유수한은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움을 이기려 마른세수를 했다.
이윽고 침대에서 내려온 유수한은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을 내려 보았다. 한눈에 보아도 부잣집.
걸음을 옮겨 전신 거울 앞에 선 유수한은,
“……그 남자!”
작게 탄식을 터트렸다.
거울에 비친 이 얼굴을 알고 있다. 이 남자를 김대한은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역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하던 남자. 밥을 퍼 주면서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 그리고 인적 드문 서울역 뒤편 골목에서 매니저를 드잡던 남자.
유수한.
“허.”
짧게 숨을 내뱉은 김대한이 거울에 비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본다. 움직이는 대로 거울이 똑같이 비추고 있었다.
“내가 그 남자가 된 거야.”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김대한은 유수한이 되었다. 그리고 잠옷 바람으로 식탁에 앉았다. 보양식을 준비했다더니, 말 그대로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식탁 가운데에 한우 갈비찜이 놓여 있었고 각 자리마다 삼계탕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밥 한 공기와 반찬으로 계란말이, 도라지 무침, 잡채, 장조림을 비롯해 각종 김치가 식탁 가득 놓여 있었다.
김대한은 지금 유수한이 되었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눈앞에 보이는 진수성찬에 영혼을 빼앗긴 눈치였다.
굶주림 끝에 죽었던 그였기에 음식을 거부할 힘이 없었다. 유수한의 모친이 갈비찜을 앞접시에 덜어 아들에게 주었다. 유수한이 수저를 들어 밥을 한술 크게 뜨고는 허겁지겁 갈비찜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수, 수한아?”
그 모습은 마치 짐승 같기도 했으며 더러운 거지 같기도 했다. 한 손으로 갈비를 들고 뜯으며 남은 한 손은 수저를 들고 삼계탕 국물을 뜬다. 고기가 입에 들어간 상태로 오물거리며 국물을 먹었고 뼈만 남은 갈비는 식탁 아무 곳에 내려놓았다.
걸신이 들린 듯 허겁지겁 식사를 하던 유수한은 이제 닭다리를 뜯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수한 모친과 눈이 마주친다.
“너, 너, 굶었니?”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다. 이렇게 잘 차려진 음식은 처음이라 순간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묻은 갈비 양념을 잠옷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그러자 유수한 모친이 기겁하며 뒤로 넘어갈 기세다.
“아, 아줌마! 부산댁!”
자지러지는 목소리로 입주 가정부를 부른 유수한 모친은 다시 고개를 파묻고 게걸스럽게 식사를 다시 이어 가는 아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미쳤나 봐!”
식사를 마치고 정신이 돌아온 유수한은 자책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음식 솜씨가 예술이었다. 갈비는 간이 그리 세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짭조름해서 질리지 않고 계속 입에 들어갔다.
또 삼계탕은 푹 고았는지 국물이 깊었다. 배가 찢어질 듯 부르면서도 쉽게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하게 할 만큼 맛있었다.
“아들. 요즘 엄마한테 속상한 일 있니?”
“아니요.”
“근데 왜 그래? 왜 안 쓰던 존댓말을 쓰는 거니! 응?”
유수한의 모친은 과하다. 마치 연극 무대에 선 배우 같았다. 과장된 표정, 풍부한 감수성, 그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다.
유수한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맛을 느꼈다는 건 유수한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렇다면 유수한은 제 몸에 들어가 있는 걸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김대한이 이 몸에 들어와 있다는 게 중요하지.
“나 이제 쉬러 갈게.”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마친 김대한이 너스레를 떨며 유수한을 연기했다. 그건 생존 본능이었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갈팡질팡할 수도 있었지만, 살아야 한다는 밑바닥 본능이 먼저 터져 나왔다. 늘 그랬듯이 김대한의 목표는 언제나 살아남는 것이었다.
유수한은 2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그 2층을 둘러보고 있었다. 방에서 복도를 지나오면 넓은 거실이 있는데, 큰 통창이 인상적이었다. 소파에 앉아 바깥을 구경하던 유수한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존 유수한은 자기애가 투철한 사람이었는지 곳곳에 자신의 사진이 가득했다. 2층에는 방이 총 세 개였는데 한 곳은 침실, 다른 한 곳에는 큰 스크린과 안마 의자가 있었다. 아마 영화 따위를 보는 방인 듯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드레스룸이 수용하지 못한 옷과 액세서리, 가방 따위가 정리되어 있는 방이었다.
“차도 겁나 많네.”
장식장에 줄지어 정리된 키홀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리문을 열고 키홀더를 살펴본다. 총 세 개였다. 유수한 소유의 차가 총 세 대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모두 외제차.
유수한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키홀더를 꺼내 유심히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돌려놓는다.
운전 경험은 막노동하면서 트럭이나 봉고차를 몰아 본 게 전부였다. 이렇게 좋은 차를 몰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방으로 돌아온 유수한은 충전해 놓은 핸드폰을 들었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압축되어 있는 물건은 역시 핸드폰이었다. 김대한도 노숙자 신세가 되기 전에는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용했었다.
“지문…….”
핸드폰의 보안을 푸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손가락 지문을 통해 잠금을 푸니, 자기애가 강한 성격답게 유수한의 화보 사진이 눈에 보였다.
쯧, 짧게 혀를 차고 이것저것 확인해 본다.
“문자가 꽤 쌓여 있네.”
유수한은 시간 개념 없이 산 지 꽤 오래되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잊을 때가 많았다. 그저 밥을 얻어먹기 위해 급식소가 오는 요일만 머리에 새기고 있었다.
[라이프 체인지] 김대한 님, 주문하신 상품 <유수한> 체험판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쌓인 문자 내역을 확인하던 유수한의 눈이 커졌다. 이건 유수한의 핸드폰이었다. 유수한의 핸드폰에 김대한에게 보내는 문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라이프 체인지] <유수한> 상품은 체험판으로 유효기간 <2022년 1월 31일>입니다.
심지어 문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라이프 체인지] <유수한> 체험판에 만족하셨다면 유효기간 내에 본품 구입 바랍니다.
[라이프 체인지] 출석 포인트 적립! <현재 총 누적 포인트 : 1>
유수한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유수한의 몸으로 눈을 떴을 때 느꼈던 혼란과는 차원이 달랐다.
솔직히 생각해 보면 마주한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돈 많은 유수한이 되었으니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를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라이프 체인지]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이 모든 게 장난일 확률은?
없다.
유수한이 미간을 좁히며 문자 내용을 정신없이 읽고 또 읽었다. 결론이 쉽게 나왔다. 유수한의 몸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신의 선물도 아니라는 것. 이 몸에서 계속 살고 싶다면 아래 첨부된 링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떨리는 손으로 링크를 눌렀다.
팟.
핸드폰이 꺼졌다. 당황한 유수한이 핸드폰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이윽고 검은 화면이 밝아지며 흰색 화면이 액정을 가득 채웠다.
[체험판 안내]
[체험판 유효기간 연장]
[본품 구매]
[아이템 구매]
[포인트 적립 현황]
마치 1990년대에나 볼 법한 촌스러운 디자인의 사이트였다. 유수한은 핸드폰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게 사이트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핸드폰이 꺼진 후에 새롭게 열리는 시스템 같았기에.
우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유수한은 체험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으며 왜 유수한을 상품이라 표현하는지 의아했다.
하여, 제일 먼저 [체험판 안내]부터 확인해 보았다.
⌜인생을 바꾸고 싶습니까? ‘라이프 체인지’를 경험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프 체인지’라는 이름은 너무 대충 지은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체험판을 구입할 수는 없습니다. 합당한 조건을 채울 시 체험판이 자동 구입됩니다.⌟
유수한은 진지한 눈으로 글자를 읽어 내렸다.
⌜첫 번째, 죽기 직전 강렬한 염원이 있을 것. 두 번째, 같은 시각에 당신의 염원을 풀어 줄 조건을 갖춘 자가 죽음을 맞이할 것.⌟
계속 막혀 있던 해답이 풀린다. 김대한은 이 몸에 들어와 풍족함을 즐기면서도 왜 유수한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일. 당신은 체험판을 경험하고 만족하셨습니까?⌟
진지한 눈으로 문구를 읽어 내린다.
⌜만족하셨다면 본품 구매를 서두르십시오. 기회는 한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