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서울역 무료 급식소.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무료 급식소는 준비한 음식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이 몰려왔다.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추레한 차림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에는 집이 없는 노숙자가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구걸을 하거나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술을 사 마셨고,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랬기에 주마다 돌아오는 급식소가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급식소가 열리기 하루 전날 밤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 말은 제시간에 도착해도 제대로 밥을 얻어먹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대한이 있었다.
오전 9시. 배급이 시작되었다. 김대한은 급식소가 열리는 날에는 동이 트기 전에 몰래 기차역 화장실에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아껴 쓰고 있는 면도칼로 수염을 깎았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또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멀끔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악취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옷은 갈아입지 못한 지 오래였으니까.
“이제 음식 다 떨어졌어요! 죄송합니다!”
김대한은 가까스로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대한이 배급을 받기 무섭게 음식이 떨어졌다며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한은 음식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동전 하나하나를 주워 편의점에서 사 먹은 삼각김밥으로 이틀을 견뎠기에.
“누나, 어떡해?”
식판을 들고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간이 식탁에 앉으려는 순간, 김대한의 귀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내가 조금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고소한 밥 냄새에 허기가 몰려오는데, 좀처럼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언제나 김대한은 어린아이에게 약했다. 가난한 아이들, 마치 예전의 제 모습을 보는 듯해서.
“얘들아.”
식판과 수저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네?”
아이들은 손을 붙잡은 채, 추레한 행색의 아저씨를 경계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이거 먹을래? 아직 손 안 댔어.”
대한은 자신이 들고 있는 식판이 깨끗하다는 걸 표현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추레한 아저씨를 올려 보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내려 보았다. 꿀꺽, 배가 많이 고팠는지 침을 삼키는 목울대가 눈에 보였다.
“아저씨는요?”
남자아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여자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저씨는 괜찮아. 여기서 오래 기다렸지? 이거 먹어.”
사실 괜찮지 않았다. 굶주림을 견디며 오직 오늘만을 기다렸기에.
“그래도…….”
“받아. 음식 식겠다.”
김대한의 채근에 망설이던 여자아이가 손을 뻗었다. 대한은 식판을 누나로 보이는 아이에게 주고 수저는 옆에 서 있는 남자아이에게 주었다.
“하나라서 미안해. 내가 밥이라도 많이 받을 걸 그랬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아이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표현한다. 김대한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다 음식에 미련이 남기 전에 걸음을 옮겼다.
꼬르륵-
칼바람을 이겨 내며 걸음을 옮기던 대한의 배에서 허기짐의 소리가 울렸다. 가끔 선의를 후회할 때가 있었다. 굶주림에 지쳐 수돗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배가 차지 않을 때. 추운 날씨에 몸이 덜덜 떨릴 때, 허기져서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을 때.
그때마다 내가 왜 음식을 양보했는지 후회하고 후회할 것이다.
우습게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후회해도 김대한이 가지고 있는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야 이, 시발.”
인적이 드문 서울역 뒤편으로 향하던 대한의 귀에 경박스러운 욕설이 들려왔다.
“나 이 짓거리 언제까지 해야 하냐?”
멀리 보이는 하얀 얼굴에 키가 큰 남성. 오늘 봉사자 중에 한 명이었다. 아마 밥을 퍼 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남자로 기억한다.
“내가 올해 봉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남자는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누군가를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대한은 더 다가가지 못하고 벽에 기댄 채 앉았다.
“형님, 대표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하얀 얼굴에 키가 큰 남성은 배우 유수한이었다. 잘생긴 얼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 갈 즈음에 터진 병역 비리와 폭행 사건으로 휘청거렸다. 병역 비리는 뒤늦게 병역 이행을 하면서 문제가 가라앉았지만, 폭행 사건은 아니었다.
“얼마나? 어? 내가 지금 1년 넘게 쉬고 봉사를 시발, 몇 번을 했는데. 야, 너 내 매니저잖아. 말 좀 해 봐.”
유수한은 툭툭 매니저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말했다.
“또 기부는 내가 얼마를 했게?”
유수한의 성질을 받아 내던 매니저 민수는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유수한은 올해 보육원에 1억 기부를 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사실 세금 공제 이득과 함께 폭행 사건으로 흐트러진 이미지를 다시 바로잡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걸.
“야, 억이 우습냐?”
“아닙니다, 형님.”
유수한은 성질을 못 이기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쾅, 세게 발을 구르며 담뱃불을 꺼뜨린다.
김대한은 최대한 저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꼬르륵, 여전히 배는 울려 대고 있었고 고소한 밥 냄새가 잊히질 않는다.
“뭐야? 저 사람 언제 왔어?”
몸을 틀어 골목에서 나가려던 유수한이 미간을 좁히며 작게 속삭였다.
“잘 모르겠습니다.”
“넌 매니저라는 새끼가…….”
짜증을 내던 유수한이 추레한 행색의 김대한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됐다. 거지 새끼가 무슨 소문을 내겠냐.”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는 대한의 귀에 꽂혔다. 그들이 지나가고 김대한이 고개를 들었다. 죽어 있던 눈이 순간 생기가 돌았다. 그건 아마 분노였을 것이다.
거지 새끼.
그 말이 귀에 맴돌아 대한을 지독히 괴롭혔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역.
김대한은 불이 꺼지고 있는 지하철역 안을 돌아다니며 몸을 뉠 공간이 있을지 찾아 보고 있었다. 노숙자에게도 서열이 존재했고 대한은 그리 서열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출구가 가까울수록 더 춥다. 그리고 언제나 대한의 자리는 출구와 가까운 곳이었다. 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얻은 종이 박스를 바닥에 깔고 몸을 뉘었다. 신문지로 몸을 감싸지만, 몸이 덜덜 떨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거지 새끼가 무슨 소문을 내겠냐.
그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경멸 어린 목소리. 그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 처지가 한스럽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살았다. 성인이 되기 직전 적은 돈을 받고 독립했고, 그 돈은 작은 방 한 칸을 얻는 데 그쳤다.
월세를 내기 위해 막노동을 시작했고 때때로는 공장에서도 일했다.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해서 34살이 되던 해에 3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초.
평생 모은 그 돈을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들고 달아났다. 허겁지겁, 은행에 찾아가 잔액을 확인했지만, 이미 돈은 날아간 뒤였다.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슬픔, 평생 모은 돈을 잃었다는 분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어느 순간, 길거리에 덩그러니 버려졌다.
춥다.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솜만 가득한 겉옷을 여미며 몸을 웅크렸다. 무엇 하나 뜻대로 할 수 없는 삶이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후회만 가득한 삶이었으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삶이기도 했다.
이렇게 잠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적어도 다시 깨어난다면 조금은 따뜻한 삶이 찾아오기를, 부질없는 소망도 빌어 보았다.
그의 영혼이 옅어지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기에 그의 영혼 역시도 빈약했다. 겨울은 집이 없는 자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계절이었다. 거리에 죽어 가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기사 한 줄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무력한 죽음이었다.
그의 혼이 사늘하게 식은 몸에서 빠져나온다. 이 세상에 미련이 남은 듯 텅 빈 눈으로 죽은 제 몸을 내려 보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이 혼백은 하늘로 올라가 신의 뜻에 따라 새로운 삶을 부여받거나 소멸에 이른다. 죽음에 이른 혼백은 점차 감정이 사라지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사라졌기에 무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악귀라는 것은 생의 집착이 강해질 때, 혹은 원한이 깊어질 때 생겨난다. 다행히 유수한은 원한이 없었다. 잃은 돈에 대한 미련은 있었으나, 이번 생이 너무나 혹독하여 이제 그만 쉬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했다.
해서, 그를 쉽게 다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눈을 감은 혼백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갔다. 투명한 혼백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흘러가던 혼백은 물에 흠뻑 젖은 채,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사람 앞에 멈추었다.
삐이이이이이익-
심장이 멎었다. 심정지 상태에 이른 환자에게 의사들이 달려든다. 의사들이 달라붙어 심장을 압박하고 살려 보려 하지만, 젖은 몸에서 투명하지 못한 어두운 혼이 흘러나왔다.
그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고 싶어 했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김대한의 혼백이 기다렸다는 듯 그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경악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검은 혼백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승천하고 있었다. 미련이 남았는지 제 몸을 향해 손을 뻗지만, 죽은 자는 한없이 무력하다.
이내 검은 혼백이 축 늘어진다. 눈을 감은 채로 승천하던 혼백이 점차 자욱한 검은 연기가 되어 소멸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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