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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현실은 H게임-100화 (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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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매사에 저렇게 맘에 들지 않는 건 모두 죽여서 해결하려는 예리를 도무지 더는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젠 진심으로 나도 죽이려고 하겠지.

호감도가 100이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인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확실한 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거라는 거였다. 여기서 누나를 살려 내봐야 예리의 성격상 끝까지 죽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다. 지금은 도무지 예리의 앞에 더는 있을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점점 식어만 갈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끝까지 자기를 선택한다고 했는데도 듣지도 않고 죽이라고만 하는 예리에게 너무 큰 실망감이 찾아왔다.

아마도 생각하기에 이미 히든미션과 공략미션 모두 해결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포기해 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스톱워치]와 각종 [스킬]들이 있으면 그녀에게서 달아나거나, 게임을 클리어 할 때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자신감도 있었다.

신기한 건 누나를 안고 집을 나서는 나에게 총알이 날라 오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의외였다. 광분해서 둘 다 죽이겠다며 날뛸 줄 알았는데, 이러면 [절대방어]도 무의미했다. 아까울 정도였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아무런 추격이 없었고, 누나를 나의 단칸방으로 옮길 때까지도 아무런 방해도 없었던 것이다. 아예 감감 무소식이었다. 일부러 놔준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일단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누나가 문제다. 하지만 침대에 눕혀놓은 누나는 쉽게 깨어나지를 못했다. 상처는 말끔했다. 흉터하나 생기지 않았는데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짧은 의학적 지식으로 생각하면 살짝 숨이 끊어져 가던 게 문제인 것 같긴 했다. 제발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뜬눈으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데려가는 건 무리였다. 예리의 마수가 언제 뻗어올지 모른다.

모든 게 최악이다. 마음이 지쳐갔다. 여전히 상태창은 불능이었다. 히든미션의 클리어 소식도 나오지 않았다. 예리의 할아버지를 처리했으니 히든미션을 공략한 줄 알았는데 아니란 말인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로드]만이 정답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망설여졌다.

[로드]를 하면 그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만약에 예리의 기억도 또다시 똑같이 돌아온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내가 배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예리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로드]를 하면 더 최악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은 하루이틀정도 누나의 상태를 더 지켜보고 결정을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남은시간창과 상태창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다. 어쩌면 이미 배드엔딩의 루트로 들어서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답답해져서 밖으로 나왔다. 누나를 두고 멀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냥 집 앞에서 바람이나 쐴 생각이었다. 그런데 맨션 앞에는 놀랍게도 익숙한 모습의 한 여자가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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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른 여자를 안고 사라졌다.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창으로 달려가서 떠나가는 뒷모습을 봐라봤다.

놀랍게도 죽이라는 명령도, 잡아오라는 명령도, 그 어느 명령도 내릴 수 없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아저씨가 날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손이 떨리고, 몸이 떨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얼마나 그렇게 멍하니 있었는지 몰랐다. 꿈틀거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가까스로 말을 짜내 입을 열었다.

“지하실에 할아버지를 가둬”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쉽게 일어나지지 않았다. 아저씨와 섹스를 한 후, 그곳에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아파왔지만, 그것마저도 아저씨와 나눴던 사랑을 실감나게 해줘서 오히려 마음은 즐거웠었다. 적어도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와 길고도 길게 나눈 키스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었다. 그만큼 소중했다.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배신당하면 미쳐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했다.

그래, 아저씨가 배신하면 나는 미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돼버렸다.

웃기게도, 아저씨의 배신은 나를 너무나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아 대충 마무리를 지시하고, 침대로 돌아와서 누웠다. 나오는 건 분노보다 그저 눈물이었다.

나, 이렇게 잘 우는 애가 아니었는데.

벌써 아저씨 때문에 우는 게 몇 번째 인지.

나를 너무 약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하지만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배신한 그 사람을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터무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제 날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오직 이것뿐이었다.

아저씨가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세상이 모두 암흑으로 바뀌어버린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후회라는 걸 해버렸다.

처음 하는 후회는 너무나도 격렬한 후회였다.

이전처럼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아무리 싫어도 그 여자를 그냥 용서해 버렸으면 되는 거였다.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아저씨가 날 사랑한다며, 날 선택한다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저씨한테 그 여자를 죽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살려주고, 아저씨의 마음을 차지하면 되는 거였다.

아저씨가 그 여자와도 섹스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이상한 감정이 눈앞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방안에서 한참을 울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당연히 아저씨의 집이다.

물론 죽이려고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보고 싶었다.

아저씨의 집 앞에는 너무나 빨리도 도착해 버렸다. 떨리는 심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랑을 속삭여주던 아저씨가 떠올라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또 사랑받고 싶었다. 너무나도 간절했다.

하지만 도저히 더 이상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만나면 정말로 아저씨가 이별을 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서 발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두려웠다.

망설이고 망설이며, 벽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밤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까지 서 있다가 결국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몰려드는 건 고독뿐이었다. 아저씨가 주던 온기를 알아버린 나는, 그 고독을 견뎌낼 수 없었다.

똑같은 밤.

그저 언제 나와 똑같은 밤일뿐인데.

마친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기나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이 되자마자 아저씨의 집 앞으로 달려왔다. 그렇지만 역시나 발을 내딛을 수는 없었다.

아저씨가 날 여전히 사랑한다면, 다른 여자든 뭐든, 모두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아저씨가 원한다면 모든 걸 들어줄 수 있었다.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 벽에 기대서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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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션 벽에 기대어 그냥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 말이다. 옆쪽에는 경호원들이 그런 그녀를 지키고 서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면, 왜 다짜고짜 쳐 들어와서 난사를 한다 던지, 위협을 가하지 않고 그저 벽에 기대 서 있는 거지?

솔직히 이미 그녀가 우리 집을 알고 있으니 죽음은 각오하고 있었다. 쫓아와서까지 죽이려 한다면 그냥 죽어버리자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했으므로 지금 그녀의 행동은 그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올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녀의 호감도가 말이다. 배신감을 느꼈으니 크게 하락하거나, 아니면 100을 돌파해서, 게임시스템이 경고했던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스카우터]를 사용해서 정보를 스캔하였다. 하지만 표시된 호감도는 여전히 100이었다. 여전히 100이었다. 하락도 상승도 하지 않고 그저 100이었다. 전과 똑같이 변함없이 고정된 모습이다. 뭐지 이 수치는?

하지만 그런 의문에 대해서 생각할 틈은 없었다. 이미 이 시점에 나와 예리는 눈이 마주쳐 있었기 때문이다. 얼떨떨해하는 나를 발견한 예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장 나에게 뛰어들어 왔다. 손에 칼이라도 들었나? 괜히 쫄아서 [무형검]이라도 불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손을 움직이는데, 맥이 빠지게도 예리는 내 품에 안겨들더니 곧바로 울어버렸다. 엥?

“아저씨.....아저씨.......흐윽..흑...아저씨이...”

“예, 예리야?”

당황해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떼어내자, 계속해서 말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아줘... 왜 떼어내는 거야? 이제 내가 싫어졌어..?”

“그, 그게 상황을 이해할 수가...”

당연한 거 아닌가. 죽인다고 날뛰던 여자가 갑자기 왜 울면서 내 품에 못 안겨서 안달이란 말인가. 그것도 매몰차게 버리고 왔던 남자에게 말이다.

“그냥 그렇게 가버리고....너무해... 흐윽..흣...”

“내가 얼마나 혼자서 울었는지 알아?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날 이제 사랑하지 않아? 싫어, 그런 거 싫단 말이야...”

그렇게 웅얼거리면서 다시 내 품에 안겨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안겨 들어서도 그녀의 울부짖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저씨가 돌아가고, 나 너무나 무서웠어. 혼자가 돼버린 기분이 이렇게 무서운지, 예전에는 몰랐어. 아저씨가 사랑이란 걸 가르쳐 줬으니까!”

“처음에는 내가 한 말 그대로 아저씨를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생각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도저히 아무 명령도 내릴 수가 없었어. 아저씨를 죽이는 거 불가능해. 나, 아저씨를 못 죽이겠어. 죽이라고 명령을 하는 것조차 할 수가 없어. 아저씨가 죽는 거 싫어..”

진심일까? 그녀가 울면서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닐 리는 없다. 함정이라면, 이게 연기라면, 정말로 소름 돋는 일일 것이다. 나는 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일단 다독여 주었다. 죽이러 온건 아닌 거 같으니 대화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누나를 죽인다고 하지 않을 거야?”

“,,,,,,,,,,,,,”

하지만 이 질문에는 결국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를 안아든 그녀의 손이, 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것이 느껴졌다.

“예리야?”

반복된 질문에 예리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다시피 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나 사랑해..? 싫어진 거 아니야?”

“그래.. 물론 아직도 사랑해.. 하지만...”

“그럼 됐어. 더 말하지 마”

“뭐?”

“그 여자까지만 용서할게. 또 다른 여자는 절대로 안 돼. 대신에 언제나 우선은 나야.”

나는 예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서예리가 맞는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만큼 모든 행동이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파격 그 자체였다.

“이정도로도 안 돼? 왜 아무 말이 없어..? 우우...아저씨?”

볼을 잔뜩 부풀리고 얼굴을 들어 나를 올려다보더니, 불안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이 모든 게 너무 비현실적이서 나는 말을 쉽게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내 앞에서 한발 물러나서 아예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비비면서 이 세상의 귀여움이란 귀여움은 모두 내보이고 있었다.

“그 말 진심이야 예리야?”

“흑흑...흐읏....아저씨가 없으면 너무나 불안해.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숨도 못 쉬겠단 말이야. 아저씨가 날 싫어하게 하는 짓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아. 정말이야! 진짜란 말이야.....”

사람의 가슴 떨리는 말을 연발하는 예리의 얼굴을 들어서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격한 키스는 상당히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예리는 나를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부서질 듯이 나를 안고는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한참 후에 늘어진 타액과 함께 입을 때었을 때 예리의 눈가는 여전히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사랑해...”

그리고 그녀 입에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뱉어졌다. 나는 몇 번이 말해준 적 있었지만, 예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히든미션이 완료되지 않았을까?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에 기대를 안고 상태창을 터치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상태창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렇다면 예리의 히든미션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걸까? 뭐가 더 남아있단 말이지?

안겨있는 예리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마음속은 점점 차가워져 가고 있었다. 무슨짓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히든미션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100화!! 아직 끝은 아닙니다. 본편이 몇편정도 더 있고 그이후에 이어질 엔딩은....

아래와 같습니다.

엔딩목록 얀엔딩 / 노멀엔딩 / 누나엔딩 / 진엔딩 / 끝

노멀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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