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현실은 H게임-99화 (9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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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누나였기 때문이다. [스톱워치]로 인한 순간이동(?)과 갑작스런 누나의 기습에 어리둥절하던 경호원들은 뒤늦게 총으로 대응하려고 했으나 누나의 검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경호원들을 모두 쓰러뜨린 후 누나는 곧바로 예리의 목덜미에 검을 겨눴다.

“움직이지 마시죠, 아가씨.”

“큿..”

예리는 살기를 띈 눈으로 누나를 노려보았다. 누나의 검 끝이 목덜미에 살짝 닿았고 결국 예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눈을 깜빡이니 쇠사슬에 묶여있는 상황에 대해서 당황하던 예리의 할아버지는 누나의 활약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이려고 애를 섰다. 하지만 내가 철저하게 묶어두었고, 거기에 말을 할 수 없도록 입까지 막아놓아서 그런 움직임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누나의 무기가 총이 아닌 검이어서 모든 게 조용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방 밖에서 지금의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누나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그리고 왜 예리를 적대하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누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영준아, 네가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런 건 계획했던 그림이 아니야. 빨리 누나 뒤로 와, 일을 마친 후에 같이 돌아가자.”

다정하게 말하는 누나에게서는 나에 대한 적의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검을 겨누고 있는 예리에 대한 살의만큼은 엄청난 것이었고, 더불어 예리의 살기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강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노기를 띤 눈썹과 눈빛이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 찡그려졌다.

“아저씨,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배신자가 아저씨였어?”

예리는 뒤에 있는 누나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후, 다시 나에게 얼음장 같은 시선을 돌리더니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단호하게 말해주었지만, 예리의 눈은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누나에게 보내는 살기와, 나에 보내는 의심에 찬 눈빛. 그 모든 것이 내 몸과 마음을 떨게 만들었다.

“누나, 설마 누나는 이 노인네의 편이었어?”

내 말에 누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아, 누나의 사부님과 직접적으로 끈이 있는 건 어르신이야. 당연히 어르신께 고용되어 있었지. 그동안은 어르신의 대행을 하고 있던 아가씨의 의뢰를 들었던 것뿐이고”

“그..그런?”

당황은 되었으나, 생각해보면 누나가 이 집안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민유리 사건 때도, 정보유출에 관한 사건과 이 집안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대한 파일을 이미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모두 이 노인네와 계획한 일이라면 납득은 되는 사실이었지만, 매우 곤란했다.

“어르신의 부탁을 받고 여기에 와 있던 찰나였어. 모두 끝났어. 영준아. 아가씨를 어르신께 넘기면 내 부탁을 모두 들어준다는 약속을 받았어. 이 미친 세계에 더 발을 들이지마. 누나하고 떠나자.”

어쩌다 이런 일이 된 거지?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누나가 노인네의 편에. 그리고 반대편에는 예리가 있다. 가장 마음이 가는 두 여자가 원수와도 같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미칠 것 만 같았다.

여기선 당연히 예리를 도와야 하는 게 맞지만, 성급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예리가 누나를 죽이려고 날뛸 것이다. 그렇다고 예리가 죽게 될 걸 뻔히 알면서 노인네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단 손을 슬금슬금 움직여서 [무형검]을 불러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예리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누나와 나를 얼떨떨하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아아...웃겨, 너무 웃겨.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짜증나려고 하네.”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코트 주머니 속에서 권총을 꺼내 들어 나와 이야기를 하느라 살짝 방심하고 있던 누나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경호원들이 가지고 있는 권총은 아니고, 소형의 리볼버였다.

타아아아아앙

총구가 향하던 방향은 머리인 것 같았으나, 총을 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반동 때문인지 총알의 방향이 많이 빗나가서 누나의 배를 관통시켜 버렸다. 덕분에 즉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누나를 쓰러뜨리기엔 충분한 한발이었다.

거머쥔 검을 놓친 누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아무리 검술이 강해도, 방심하다가 날아온 총알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누나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나조차도 그녀가 총을 숨기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

집에서 나올 때 입혀놓은 코트주머니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권총을 챙길 기회라면, 아마도 경호원들과 조우했던 그 때 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는 아니다. 나는 누나에게 뛰어갔다. 누나의 배에서 피가 무지막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준아..? 미안, 누나가 방심을 해버렸어... 그렇지만, 저 여자는 위험해, 더 이상 가까이 하면 안 돼...”

몸 안의 피가 역류하는지 입에서 피를 통하면서 말하는 누나를 향해서 나는 급하게 [붕대]를 터치했다.

[붕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알았다고! 다급하게 터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스킬]을 터치했다.

[대회복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이 순간에 누나는 이미 정신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아니, 이미 숨이 끊길 걸 수도 있었다. 그건 곤란하다. 아무튼 정신없이 [대회복]을 터치했다. 그 와중에 총소리를 들었는지 밖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다.

예리는 어느 샌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총구를 머리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달려 들어온 경호원들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 꼼짝 마. 승부는 끝났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할아버지는 죽어. 그리고 당신들에 의해서 나까지 죽으면, 당신들도 좋을 건 하나 없다는 거 알아? 섬기던 주인을 모두 죽게 한 경호원을 대체 누가 다시 고용해 줄까?”

몰려들어온 경호원들을 서로를 바라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계산을 하고 있는 거겠지.

“얌전히 나를 도우면 섭섭지 않은 대우를 약속할게. 나나, 할아버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신들은 선택을 잘못했을 뿐이지, 결과는 바뀌지 않아. 현명한 선택을 바래. 그리고 아저씨, 저 사람들 총을 모두 수거해.”

다행히 누나는 숨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었고 덕분에 대회복으로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으나 아직 기절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나를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얼떨결에 예리의 명령에 따라서 [무형검]을 사용 중인 상태로, 경호원들에게 다가가 모든 총기를 회수하였다.

경호원들은 그때야 백기를 들고는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현했다. 집안에 있는 경호원들의 상당수는 집 앞거리의 매복에 차출되어서 그렇게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예리 본인에게 반감이 있었는지, 노인네에 대한 충성이 강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경호원 하나가 갑자기 예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더는 상황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달려든 경호원을 포함한 모든 경호원을 기절시켜버렸다. 진즉에 이랬어야 하는데 총에 맞은 누나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너무 지체한 게 사실이었다.

누나를 쏜 건 사실이지만, 예리를 사랑하는 건 변함없었다. 도저히 위험에 처하는걸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후훗, 아저씨 대단하네?”

예리는 태연하게 쓰러진 경호원들을 툭툭 건드리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서운 미소를 지으면서 누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우와. 총알이 관통했는데, 벌써 다 회복했어? 아저씨 뭔가 괴물 같아. 능력이 한 두 개가 아니구나?”

“으응..그렇지 뭐..”

“흐음, 뭐 상관없나? 그보다 잠깐 핸드폰 좀 빌려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예리의 행동에 나는 얼떨결에 핸드폰을 넘겨주었고, 예리는 그걸 받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후후, 안녕하신가요? 서예리입니다. 지금 할아버지를 지원하고 있는 특수부대를 움직여 주신 건 감사드려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 가셨습니다. 물론 달라질건 없어요. 할아버지가 해주던 지원의 2배를 약속드릴게요.”

“네네, 영상통화를 눌러보세요. 할아버지의 시체, 보여 드릴게요.”

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권총으로 가격해버렸다.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노인네였고, 권총의 무게까지 더해져서 곧바로 바닥으로 쓰러져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예리는 쓰러진 자신의 할아버지를 짓밟더니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내주었다.

“잘 보이세요? 물론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정보, 저한테도 모두 있으니 부탁을 들어 주실 거라고 믿어요. 바로 부대를 철수시켜주세요, 물론 철수하기 전에, 현장에 있는 경호원들도 모두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같은 편에게 뒤통수를 가해 달라는 말이에요.”

“네, 다음에 만나 뵐게요.”

예리는 통화를 끝내더니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저씨 말대로 할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아저씨 차례야”

“뭐?”

예리는 나에게 한발 한발 매우 천천히 걸어오더니 들고 있던 권총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여자를 죽여줘. 나를 할아버지에게 넘기려고 했던 여자인거 알지? 능력을 써서 기껏 살렸는데 아쉽겠지만 나, 저 여자가 살아있는 꼴은 볼 수 없어.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나를 나두고 그 여자 살리겠다고 뛰어든 거...잊지 못할 거야. 나, 그 엄청난 죄를 그저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용서해준다고 말하는 거야.”

“그게...가능할리 없잖아?”

“어머? 정말로 저 여자가 중요 한 거야? 나보다도? 나를 사랑한다며? 복종한다며? 아저씨, 이건 명백한 배신인데..?”

“미안해 예리야. 하지만 누나는 나한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사람으로서 죽이는 건 절대로 할 수가..”

실제로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누나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방아쇠를 당겨서 눈앞에서 죽어버리는 걸 보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강제력을 발생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예리의 명령은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내 말에 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대치상황이 몇 분이나 흘러갔다. 누나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먼저 입을 연건 예리였다.

“아저씨...그럼 그 총으로 나를 쏴”

“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누나를 쏘라는 이야기보다 더더욱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아저씨한테 배신당하면, 나, 미칠 거라고 했었어? 그러니 지금밖에 기회는 없어. 살고 싶으면 날 죽여. 그럼 저 여자와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물론.. 날 죽이지 않는다면, 난 아저씨를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나도 죽을 거야. 어차피 모두가 행복해 질 수는 없잖아? 나, 아저씨가 다른 여자와 사랑을 속삭이는 거 절대로 살아서 보고 있을 수 없어”

“예리야, 널 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네 아저씨.. 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난 누나의 목숨을 살리려는 것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건...”

“시끄러!”

예리는 내 말을 끊어버리더니 냅다 소리를 내질렀다. 귀까지 막으면서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전부터 그 누나 누나, 하는 것도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언젠간 처리하려고 했는데 빨라진 것뿐이야. 아저씨, 그 여자와 깨끗한 관계라고 정말로 말 할 수 있어? 내가 저 여자를 쏘자마자 아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아저씨의 표정 똑똑히 봤어. 그러니까 웃기지마 아저씨.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모두 죽는 거야 모두!”

그런 그녀에게 힘을 보태주듯이, 사방에서 아가씨를 외치면서 그녀의 편이 분명한 경호원들이 안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집밖의 전투가 종료되어 버린 듯 했다.

“정말로 사랑하는 건 너야.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누나와 너 중에, 너를 선택한다는 뜻이야. 그게 중요한 거 아니야?”

“시끄러워! 시끄러 시끄러! 그럼 죽여. 저 여자를 죽이란 말이야!”

예리는 부들부들 떨더니, 결국 눈물까지 떨구면서 외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보였다.

“됐어. 내가 죽일 거야. 저 여자부터 죽여 버리고 이야기 하자. 아저씨..”

결국 방에 들어온 경호원들에게 예리는 입을 열어 명령을 날렸다. 이미 그들의 손에는 총이 당연하게 들려있었다.

“저 여자를 죽여 버려.”

그 말과 동시에는 나는 [스킬]로 들어가서 [무형의 검날]을 재사용했다. 하지만 계속 밀려드는 경호원들은 조금 귀찮았다.

그래서 일단 [절대방어]를 사용한 후, 누나를 안아들고 안채에서 걸어 나와 버렸다. 그런 나의 뒤에 대고 예리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아저씨....거기서 나가면 정말로 끝이야. 가지 마! 더 이상의 기회는 정말로 없으니까...”

“예리야. 모든 건 죽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일단 오늘은 돌아갈게. 네가 끝까지 날 죽이러 온다면, 뭐 죽음을 달게 받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나왔다. 마지막으로 본 예리의 모습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음이 약해지려고 하였으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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