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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현실은 H게임-95화 (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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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서부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총을 겨눴다. 그 순간 모든 게 정지된 기분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나는 죽는 걸까?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혈육이라는 사람이 이 모양이다. 후후후. 너무 재미있다. 이런 최후도 지루하지는 않네.

그러나 총알이 나에게 날라 오는 일은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저씨는 할아버지를 덮쳐버렸다. 내 눈에 그 모습이 정확하게 아로새겨졌다.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아저씨가 나를 구하려고 또 몸을 던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마도 단 한 명뿐일 것이다.

아저씨의 행동은 돈으로 움직이는 주위의 경호원들과 다르다. 그리고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것, 권력이라는 이름의 이 나라를 포함한 그 모든 것과 달랐다.

그래서 기뻤다. 순수하게 기뻤다.

차안에서 아저씨는 말했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고. 그리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숨을 걸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도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를 위해 또 목숨을 걸었다. 아저씨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결론이 나오자 가슴속이 뜨거워 졌다.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괴로웠지만 기뻤다. 나는 아마 이 순간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타앙

- 그래 이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몸을 덮친 아저씨 아래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총알은 아저씨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몸에서 쏟아져 내리는 피 때문에 아저씨의 주위가 빨갛게 물들어 갔다.

사람이 죽는 다는 것에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부모님이 죽었다고 들었을 때도 솔직히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려서 일수도 있었지만, 아마 지금이라고 해도 그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필요 없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스스로 나서서 배제해 왔다.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피 묻은 사신의 낫을 선사해 주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수많은 정적을 물리치고 여태껏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피로 물든 땅바닥과 함께 펼쳐진 눈앞에 있는 죽음.

이 또한 똑같은 죽음이다.

그저 사람이 죽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달랐다. 똑같은 죽음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아저씨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서있었다. 새빨갛게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죽음을 예고하는 모래시계 같은 예감이었다. 조금 더 흘러내리면,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아래로 흘러내려간 것처럼 아저씨의 목숨도 끝이 나겠지.

그건 싫다.

싫다. 정말로 싫다. 싫다.

수천만의 목숨 따위보다. 아저씨의 죽음 따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스로도 이상했다. 그저 장난감이 없어지는 거다. 소유물이 없어질 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웃긴다.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저씨를 소유물 따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겨우겨우 몸을 움직였다. 아저씨를 품에 안았다. 내 몸에 아저씨의 피가 묻어나왔다.

“아저씨? 아저씨!”

그를 불러보았지만 눈은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잠시 이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았다. 차라리 감금을 해서 내 안에 가둬둘지언정, 사라지는 건 싫었다. 너무 싫다. 그건 정말로 싫었다.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아저씨?

아저씨를 안아든 내 머리에 어느 샌가 땅바닥에서 빠져나온 할아버지가 총구를 들이미는 게 느껴졌다. 하하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손.

내 머리도 터져나가겠지.

상관없다.

-타앙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이게 죽는다는 걸까?

상관없다. 이미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그걸 깨닫는 게 너무 늦은 것 같아서 아쉬울 뿐이었다. 죽어서야 깨닫는다니. 어리석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저씨가 없는 세상. 어차피 지루할 뿐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 사람과 같이 있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지루했던 삶이었다.

재미없다. 너무나 재미없다. 재미없는 일상.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과, 굴복한 사람, 그리고 대항하는 사람, 재미없다.

재미없는 일상.

지루한 일상.

권력이란 이름 앞에 굽실거리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느끼는 우월감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나날 중에 나는 아저씨를 우연하게 만났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단 둘이 밥을 먹었다. 이때부터 이미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그와 밥을 먹었다. 식사를 그렇게 즐겁게 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앞에 차려진 밥그릇을 싹싹 비워버렸다. 음식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따뜻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게 그저 그 음식 때문이라고 생각한 바보 같은 나는, 쓸데없이 할아버지에게까지 그걸 선물 했다. 할아버지도 조금은 인간다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설렁탕 때문이 아닌 아저씨 때문인 것을, 그러니 아무리 할아버지에게 먹여봐야 당연히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라는 걸 이제 와서 깨닫는 건 역시나 어리석다.

그 이후 나는 계속해서 아저씨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그러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바쁜 일을 끝내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항상 전화를 들었다.

그런 그가 처음에 반지를 주었을 때부터 나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물론 손에도 맞지 않는 반지였지만 그냥 좋았다. 그것이 사이비종교의 문양이 새겨진 거라는 걸 알았을 때, 아저씨가 그런 집단과 관계가 있나 생각하면서도, 그렇다면 그 종교를 뿌리째 없애버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로 만들고 싶었다.

나를 공격한 떨거지에 대한 분노는 사소하다. 그 떨거지들에게 지옥을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 굳이 사이비집단의 본거지까지 쓸어버릴 정도로 나는 한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지를 볼 때 마다 아저씨가 준 반지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같은 문양을 쓰는 집단 따위 당연히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에서 생각하니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만, 그때 당시는 왜 그렇게 교단을 부셔버리고 싶었는지 몰랐었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괜찮다. 그날 나는 아저씨와 키스했다. 내가 키스 따위를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상을 주었다. 나를 구해줬으니까. 그 정도는 포상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전에 건물 안에서 나를 가소롭게도 나를 협박하면서 안았을 때 이미 나는 마음이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아저씨 옆에만 서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괴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면 가슴의 괴로움의 몇 배는 더 힘들어졌다.

이런 감정. 이런 마음. 이런 느낌.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 모든 게 불편해졌다. 그래서 이런 알 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정말로 바보 같은 짓을 할 뻔했다. 아저씨를 죽여 버리기로 한 것이다. 순전히 불편한 마음을 고치고 싶어서였다. 호텔에서 마지막 만찬을 먹인 후 마지막 선물로 처녀를 준 뒤에 가차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생각.

이미 그때도 아저씨 없이 살 수 없는 마음이 돼있었다는 걸 꿈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꾸민 어이없는 행동.

아마 그때 아저씨가 나를 말리고, 노래방으로 데려가서 마음을 바꾸게 하지 않았다면 아저씨의 죽음과 그리고 나의 죽음까지도 조금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아저씨를 잃은 공허함에 나는 아무렇게 살아가다가 할아버지의 손이든, 정적의 손이든, 어쨌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겠지.

죽어버리고 나자 이렇게 쉽게 인정해 버리는 모든 것들.

살아서는 왜 그렇게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아저씨를 장난감 취급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차안에서 입으로 해주는 게 아니고 섹스를 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이후도 계속해서 웃기는 짓의 연속이었다. 민유리라는 여자가 아저씨 옆에 나타난 후, 나는 안절부절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그 여자와 정을 통했다고 생각했을 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민유리를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찢어 죽여 버리고, 나를 배신한 아저씨도 가차 없이 지옥을 보여줄 마음이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저씨 앞에서 나는 마음이 약해진다.

약해지고 약해진다.

내 이득과 관련 없는 부탁 따위 단 한 번도 들어준 적 없었다. 하물며 정말로 싫은 여자를 살려달라는 부탁은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아저씨가 슬퍼하는 건 더 싫었다.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부탁하는 아저씨를 내버려 두는 게 불가능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후 그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나는 그저 용서했다. 이렇게 한 사람을 많이 용서하고 용서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아저씨는 특별했다.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

나에게 복종한다고 해준 그 사람.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던 사람.

처음으로 밥을 먹어준 사람.

처음으로 내 흉터를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준 사람.

오히려 흉터를 나의 일부로 받아준 사람.

처음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사람.

나를 내가 아닌 나로 만들어 버린 사람.

내가 처음으로 부탁을 들어준 사람.

고등학교 때 문자를 하던 아이들을 하찮게 생각했었다. 왜 그런 시간낭비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와 대등하게 이야기 해주는 사람 같은 거 단 한명 없던 외톨이 같은 어린 시절.

아저씨는 나에게 핸드폰을 주면서 문자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바보 같게도 나는 문자에 중독되어 버렸다. 아저씨와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가 좋았다.

평범하지 않은 나.

그래서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주위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에게 마치 친구가 생긴 것 같은 즐거움을 전해준 아저씨.

일이 있어서 아쉽지만 문자를 그만하려고 했던 어느 날 밤,

아저씨가 웬일로 문자를 조금만 더하자고 했던 어느 날 밤.

나는 중요한 회의까지도 캔슬해 버렸다.

그저 문자를 위해서 말이다. 만나는 것도 아닌, 고작 문자를 계속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오가는 회의를 망쳐버린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 이미 아저씨가 너무 소중해서, 무슨 말이든 들어줘 버린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내가, 아저씨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일 수도 있다.

할아버지와의 싸움도 그랬다.

물론 아저씨의 일이 아니더라도, 차근차근 할아버지를 밀어내버릴 준비를 하고 있던 게 사실이다. 이미 수많은 정치가들과 이야기를 끝마치고, 해외까지 손을 뻗어 두었었다. 조용하게, 모든 건 조용하게 처리할 셈이었다.

사람을 귀찮게 하는 할아버지를 은퇴시켜 버릴 계획은 오래전부터 진행 중 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까지 빠르게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그걸 물론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김민욱.

그 남자가 제안한 계획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 냉정한 할아버지가 푹 빠져있을 만도 했지. 하지만, 그 남자는 너무 머리는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해둔 체 끝까지 감추고 있었다. 우리와의 파트너쉽이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야 자신의 계획의 가장 중요한 트릭을 알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기도 전에 김민욱은 잡혀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살이라는 죽음으로 말이다.

사실 그걸 막는 게 내 일이기도 했다. 자꾸 김민욱을 건드리는 방해꾼에 대한 소식을 듣고 범인을 추적한 게 나였다. 할아버지가 중심이 되어 있는 계획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중에 내가 가로챌 때를 위해서 방해자는 용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테러를 자행한 범인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해자를 색출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바쁜 와중에 아저씨가 나를 호출했다.

그가 나를 먼저 불러낸 건 2번째였다. 처음에는 황당해서 무슨 대접을 하려는지 보자며 나가주었지만, 이번에는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전화를 끊자마자 아저씨를 만나러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방해자가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 해를 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화조차 나질 않았다. 오히려 아저씨가 방해를 했다는 걸 할아버지가 모르게 만들고 싶었다. 이 사람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지우고, 대타를 만들어 내자-

그렇게 생각했다. 당한 거에 100배를 갚아준다?

화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나를 배신했다고 매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아저씨에게 해가 가지 않게 상황을 조작하려는 내 자신이 이상했다.

왜 나는 아저씨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할아버지에게 공격을 받을 까봐 걱정되어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저 복종을 했으니까. 소유욕이니까. 기르는 개를 용서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 내 잘못이다.

그걸 왜 아저씨가 죽어서야 깨닫는 거지? 그리고 더한 건, 아직 할아버지에게 대항할 준비가 완벽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아저씨를 위해 할아버지에게 대항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솔직히 살아가면서 남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남자는 정말로 번번이 나의 예상을 깨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그리고 나는 믿고 있었다. 결국에는 아저씨가 나를 구해줄 것이라고. 그리고 결국 나를 구해주고 목숨을 버렸다.

만약 아저씨가 목숨을 버린 사실에 냉정했으면 내 머리에 총알이 날라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할아버지를 구속한 후 상황을 수습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미 치사량을 넘는 피를 흘리고 있는 아저씨의 몸에 다가가기보다 상황을 수습하면 죽을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몸도 마음도, 그것을 거부했다.

어차피 아저씨가 없는 세상은 지루할 뿐이다. 결국 처음 한 이야기로 돌아올 뿐이지.

하하하하.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일까?

내 곁에 아무도 없던 나날들. 그 안에서 겨우 소중한 사람을 찾아냈는데.

그 순간이 죽음이라니.

차라리 이 하얀 터널 같은 세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이것이 끝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고 나는 당연히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까?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마 머릿속의 기억까지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편해지겠지. 빨리 터널의 끝에 도달했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

그런데 긴 하얀 터널에서 벗어난 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멀쩡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순간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나는 착한일이라고 한 번도 한적 없는데 어째서 이런 기적이 찾아온 건가?

“아저씨, 괜찮아?”

아저씨를 보자마자 멍청한 질문을 하면서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따뜻했다. 살아있다는 실감을 나게 해주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치는 이 기분을 꺼려했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이건 다 아저씨가 너무 소중해서 그런 것이라고.

혹시 이게 아저씨가 말한 사랑일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 난건지, 어째서 아저씨까지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분하고 화나가서 우는 게 아닌, 기쁘고 기뻐서 흘린 눈물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분해서 울어본 것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메말라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쉽게 나를 울리다니.

아저씨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레벨.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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