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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나지막이 나를 부르더니 침대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야?”
“우리 집이지 어디겠어”
“창고가 아니라? 이렇게 좁은 데서도 사람이 살 수 있어?”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 지금은 더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지 않아? 나는 그런 의문들이 샘솟았다.
“갑자기 이런 데로 옮겨졌는데 이상하지 않아? 나라면 좁은 집보다는 그게 더 신기하겠다.”
“아저씨의 능력이잖아? 뭘 새삼스럽게 굴어? 사실 나, 아저씨가 구하러 올 줄 알고 있었어.”
몸을 돌리자 긴 머리가 살랑거리며 나부꼈다.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얼굴은 웃고 있었다.
“만약 안 구하러 왔으면, 실망했을 거야? 물론 눈만 깜빡였을 뿐인데 갑자기 아저씨 집이라는 건 조금은 얼떨떨하긴 해. 대체 이건 무슨 능력인지 아직도 말해줄 수 없는 걸까?”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까치발을 들어서 눈높이를 맞추면서 말하였다. 도발적이며 유혹적인 자세였다.
“그건 아직은 무리야. 그보다 몸은 괜찮아? 꽤나 심하게 감금당해 있던데..”
“응? 괜찮은 것 같아. 그 정도는 예상했었어. 할아버지가 화를 낼 거라는 정도는. 하지만 할아버지의 따위보다는 이미 내 마음속에는 아저씨가 우선이 돼버렸으니까. 할아버지는 내 것이 아니지만 아저씨는 내꺼라고?..”
말하는 걸 보니. 내가 구하러 올 걸 예상했다는 그녀조차도 그 할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말을 해줘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내 품으로 안겨들었다.
"아저씨와 붙어있을때 가슴이 막 요동친다고 했잖아? 그런것들을 신경 안쓰리고 마음먹었더니 더 심하게 쿵광거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쿵쾅거리는 것 뿐 아니라 따뜻한 기분이 들어. 터널에서도 말했지?"
그러면서 그녀는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침묵하기 시작했다. 살짝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한손으로는 그녀의 가녀린 등을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전에 났었던 달콤한 향기가 다시금 코 속으로 들어왔다.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마다, 더 강하게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예리야, 왜 몸을 떨고 그래? 정말 괜찮은 거 맞아?”
“...........”
질문을 했으나 그래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인가 싶었으나, 다시 그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 그렇게 감금당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아저씨가 날 납치했을 때도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았잖아? 그걸 생각하니까 분해서 몸이 떨리나 봐. 나, 할아버지에게 화가 나. 원래도 할아버지를 밀어내버리려고 마음은 먹었었는데, 그래도 조금은 망설이고 있었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를 취급하다니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용서 못해.”
감금당해있었던 사실이 무서워서 떨리는 게 아니고, 분노로 몸을 떠는 것 이었다니.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지금이 딱 내가 우연하게 알아낸 사실을 말해줄 적기인 것 같았다.
나는 결심을 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할아버지에 대해 알아낸 사실을 설명했다. 본 그대로 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어설프게 대항하다가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가족을 완전히 갈라놓은 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더니 내 가슴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서는 살짝 냉정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다리를 꼬더니 턱에 손을 가져겼다.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실성한 사람 같았다.
-쿡쿡쿡...
-하하하하하하하
“그런 거였어? 할아버지가 당신을 밀어내려는 내 마음을 눈치 챈 거야? 그래서 먼저 날 죽이려고? 하하하하. 길어야 20년도 남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은 죽어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시겠다는 거지? 노망난 영감탱이가..”
예리의 입에서 독설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표정은 무너져 내려 있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하나뿐인 가족이 자길 그냥 밀어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예 죽이려고 한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그녀라도 말이다.
“아저씨. 나 이제 정말로 외톨이네? 하나뿐인 가족이 지금 없어져 버렸어.”
“예리야..”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원래부터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그런데 왜 넌 울고 있는 건데?
그렇다. 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여러 가지 표정을 보아 왔지만 맹세코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울 수 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건, 너무 분해서 나는 거야. 이상한 오해하지 마....”
훌쩍린다거나 그런것도 없이 그저 눈가에서 조금씩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너무나 조용하게 울고 있었다. 도저히 못보고 있겠어서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예리는 조용하게 내 품에서 한참을 있었다.
“이제 괜찮아 아저씨..”
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밀치고는 품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곤 방안에 걸려있는 스타킹을 보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스타킹을 주어 들고 살펴보더니 자신의 것이라는 걸 확신했는지 전매특허 보조개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살짝 울었던 관계로 코가 빨개져 있었는데 그 옆으로 보조개를 만들면서 웃어 보이자 괜히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거 소중하게 가지고 있었네?”
스타킹을 손에 들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걸터앉았다. 원래는 하나 더 받았어야 했었으나 로드를 해버려서 병원에서 받았던 스타킹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이게 없었으면 아저씨도 역시 말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최악의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
예리는 그렇게 말하며 스타킹을 다시 침대에 올려놓고는 집을 한 바퀴 빙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여자의 흔적이 있나 찾는 것 같은 눈초리여서 조금 찔끔했다. 물론 그런 흔적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자꾸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보면서 검사하는 모습이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아저씨, 내가 아파트라도 한 채 사줄까? 어떻게 이렇게 좁은데서 사는 건지 모르겠어. 수상한 능력은 있으면서 돈은 없는 거야?”
검사를 끝낸 듯 뒷짐을 쥔 자세로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내 곁으로 돌아왔다. 집을 사준다고? 하하하. 나도 돈은 있지만, 그건 아이템에 쓸 돈이지 집을 살돈은 아니지. 현실로 돌아가면 모를까.
“왜 그렇게 이상하게 웃어? 여자한테 집을 받는다는 게 싫어? 나, 다른 여자랑 같은 취급 받는 거 싫어? 내가 뭘 주던 아저씨는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되는 거야..”
그러세요? 물론 지금 웃은 건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허탈한 웃음이 나온 거지 여자한테 뭘 받는게 싫어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다. 다만 집이라니? 그런 거 받았다가 거기에 감금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부득이 하게 말을 돌려버렸다.
“너 지금 쫒기는 신세인데 돈이 어디에 있어?”
현 상황을 상기시키며 말하자 예리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런 신세라도 돈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어. 아저씨는 내가 감금 좀 당해 있었다고 아무것도 안 남은것 처럼 보여?”
그녀는 내 얼굴을 쓰다듬더니 살짝 멱살을 움켜쥐었다. 강하게는 아니었지만, 그러면서 올려다보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그건 아닌데... 상황이 상황이니까?”
“어떨까나? 나, 비운의 여자는 싫어. 아저씨 말처럼 내 돈도 못찾는 신세가 된거라면 차라리 그냥 죽고말래. 후후후.”
멱살을 풀어주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내 침대에서 뒹굴 거리기 시작했다. 치마를 입고 있는 탓에 무방비한 자세 때문에 팬티가 노출되고 있었다.
“아저씨 냄새가 나.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싫은 냄새일 텐데도 뭔가 포근한 기분이야.”
“그건 뭐 감사한 소리긴 한데, 그것보다 예리야. 우리 집에 더 있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혹시 몸에 또 위치추적기라든지 있는 거 아냐?”
그때 납치했을 때도 위치추적기는 없었다고 말했지만, 신호를 내보낼 수 있는 걸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지금도 뭔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보여서 물어본 거였다.
“으응. 그럴지도? 잘 모르겠어. 날 감금시키면서 장치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라를 벗어나는 게 아닌 이상 어딜 가던지 소용없을 걸? 차라리 이런 좁아터진 방이 더 안전할 수도 있지.”
그런 것 치고는 너무나 태연하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마친 남의 일 같은 모습이다.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상황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옷까지 벗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내가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자 그녀는 쿡쿡 거리면서 웃더니 말했다.
“아저씨가 무슨 소녀야? 부끄러워하기는. 내 알몸 많이 봤으면서 왜 그럴까?”
“그게 아니고, 갑자기 지금 상황에서 옷을 왜 벗는 건데?”
“아저씨가 위치추적기가 어쩌고 말했잖아?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벗어서 다 태워버려야지.”
태우는 건 둘째 치고 뭐 확실히 옷을 갈아입는 건 좋은 선택이긴 했다. 그래서 잡았던 손을 풀어주자 다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녀는 알몸이 되었다. 터널에서 당했던 화상자국이 남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져서 조금 뚫어져라 그녀의 피부를 살펴봤더니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침대 위 이불로 몸을 가리면서 소리쳤다.
“뭐..뭘 그렇게 쳐다봐? 보...보지마. 아저씨. 그 옷이나 처리하고 와!”
목욕탕에서도 그렇고 언제나 알몸을 보이는 거에 부끄러움 한 점 없더니 갑자기 소녀틱한 반응을 보이면서 이불로 몸을 가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런 관심도 없던 그녀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생겼단 말인가? 그 말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이 쓰인다는 이야기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웃음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와 버렸다.
“아저씨? 빨리 옷 처리하고 오는 게 좋을 걸? 그리고 돌아오면서 그렇게 기분나쁘게 웃은 이유에 대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눈썹을 치켜뜨면서 귀는 빨개져서는 외치는 예리를 놔두고 나는 황급하게 집에서 나왔다. 뭐 정말로 위치추적기가 있다면 확실하게 처리하는 편이 좋았다.
[무형검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바로 무형검을 불러낸 뒤에, [스킬]을 사용했다.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리고는 그녀의 옷가지를 바라보고는 분자단위로 이 세상에서 소멸시켜 버렸다. 손을 털고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예리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뭐라도 걸쳐야지. 내 옷 줄게 기다려봐.”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티셔츠 중에 가장 깨끗한 걸 골라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걸 바라보더니 킁킁 냄새를 맡고는 옷을 걸쳐 입었다. 남자에게도 큰 티셔츠라서 그런지 가뿐하게 그녀의 허벅지까지 내려와서 중요한 부분을 모두 가려주었다.
하지만 내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는 알몸의 여자. 그것도 그게 서예리라는 생각이 자꾸 피가 하반신으로 쏠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얘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침대에 다시 걸터앉았다.
“아저씨...그러면 변명을 들어 보실까?”
잊지 않았다는 듯 다시 나를 귀엽게 노려보면서 그녀는 말했다. 변명이라니? 그래 변명을 해야지.
“웃은 건 당연히 예리의 몸매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웃은 거지 다른 뜻은 없어”
“그 말 정말이야?”
“응 정말이지. 너한테 미쳤다고 거짓말을 하냐?”
“흐음. 그런 거면 봐줄게. 후후. 나중에라도 거짓말 한 게 밝혀지면 아저씨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난 할아버지에게도 배신당한 여자니까.. 아저씨까지 배신하면 조금은 동요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배신을 할 리가 없으니 그건 논외로 치고 지금 상황에 대한 대책은 있는 거야? 너무 태연한 거 같은데..”
당연히 배신을 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대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태연한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등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침대위에 올라가 있었던 만큼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걸터앉아 있는 나를 껴안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저씨. 섹스 할까?”
“뭐? 이 상황에서 무슨 소리야?”
“내 몸이 아름답다며. 그럼 섹스 할 마음도 있다는 거 아냐?”
“그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꺼낼 때마다 언제나 함정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거지? 제발 그 장난 좀 그만하면 안 돼?”
그러자 예리는 등 뒤에서 더더욱 나를 강하게 껴안더니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나, 지금까지 감금당해있던 처지야. 어떻게 함정을 만든다고 그래? 섹스를 하면 왠지 아저씨에 대한 내 마음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옛날처럼 아저씨를 죽인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없어. 걱정하지 말고 섹스하자 아저씨. 나 이제 아저씨 밖에 없어”
그녀의 말랑한 가슴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솔직히 계속해서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중이었고 그녀말대로 더 이상 함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A를 공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나를 더욱 고민시키려는 듯, 회색빛 세상이 되어버리더니 선택지가 등장해 버렸다.
[선택.1 함정은 없을 것이다. 이대로 예리와 섹스한다.]
[선택.2 언제 위치가 들킬지 모르는 상태에서 섹스라니 위험하다. 섹스보다는 예리의 안전에 더 신경을 써서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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