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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연쇄살인을 마주하기 하루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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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편의점에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생전처음 연애에 관한 글들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자연적으로 영준이 떠올랐다. 연애란 무엇일까. 영준을 처음에는 그냥 친동생처럼 생각했다. 누나라고 불러주는 그 자체가 좋았다. 혈연관계가 아닌 누나동생사이는 다 그러는 거라고 영준이 말해서,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는 김에 어영부영 섹스를 해버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뭔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잡지 속에 나와 있는 연인들의 이야기에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그녀였다. 누나 동생의 관계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보다. 영준은 자신에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해준 적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되었다.
잡지속의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자신도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누나동생을 그렇게 동경했으면서, 죽어버린 친동생을 대신한 사람을 그렇게 찾아 해맨 주제에 그걸 넘어서는 관계를 바라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러면서도 지연은 추천 데이트코스 라는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애인과 으슥한 곳에서 스릴만점 콩닥콩닥 데이트라는 이상한 특집이 실려 있었다. 물론 그것이 조금 이상한 특집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지연에게 이런 쪽의 상식이 전무했다. 열심히 잡지를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수험공부를 하듯이 진지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편의점에서 나올 때 들고 있는 건, 편의점 알바가 제발 좀 그만 읽고 가라고 속으로 외치고 또 외치게 만들었던 잡지들이 아닌 우유 한 팩이 전부였다. 물론 편의점 안에서 잡지를 읽으며 우유 여러 팩을 마신 후였다. 사들고 나온 건 그저 예비용이었다.
지연은 뒷좌석에 우유팩을 던져놓고 차에 올랐다. 새로 뽑은 차였다. 갑자기 사라진 차는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도 이용하고,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차가 없었던 것이다. 분하고 울화통이 터졌다. 스승님에게 물려받은 차여서 애착이 컸었는데 나중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가 지연의 가장큰 걱정이었다.
일을 하려면 어차피 차는 필요했다. 솔직히 지연의 통장에 쌓여있는 건 돈뿐이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쿨하게 카드도 아닌 현금을 들고 가서 차를 구입했고 반짝반짝한 새 차를 오늘 받을 수 있었다. 투박한 모습으로 디자인된 SUV 였다. 강해보이는 모습에 끌려서 다른 차는 보지도 않고 구매를 결정해 버렸다.
지연은 새 차를 받자마자 드라이브를 시켜준다고 영준을 불러냈다. 이 기쁨을 그와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편의점에서 시간을 때우다보니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시동을 걸로 출발을 하려고 하다가 백미러에서 영준의 사진을 집어넣은 장식물을 흔들거리는 걸 눈치 채곤, 그걸 풀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자체는 주머니에 넣어서 보관한 덕분에, 차를 도난당했지만 사진은 무사했다. 영준을 만나기 전에는 친동생의 사진이었던 것이 어느새 영준의 사진으로 바뀌어 버렸다. 다만 본인에게 보여주기는 왠지 부끄럽고, 스토커처럼 보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언제나 이렇게 숨기는 중이었다. 스토커 같다는 자각은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나마 말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영준이 이미 나와 있었다. 조수석의 문을 열고 그가 올라탔다. 지연은 영준을 쳐다보자마자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연은 요즘 영준만 보면 쓰다듬고 깨물고 핥고 싶었다. 다만 깨무는 건 참는 중이었다. 마음속에서 쓰다듬는 걸로 만족하자고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요즈음의 영준은 생긴 것 마저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없는 얼굴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뭔가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결 못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볼 때면 희열까지 느껴졌다. 다른 남자라면 졌다는 생각에 분했을 테지만 영준은 달랐다. 내 동생이니까. 그리고 연...인이라고도...하고 싶지만, 영준이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무서웠다.
“누나, 그만 쓰다듬고 출발해도 되지 않을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 지연을 보며 영준이 입을 열었다. 싫은 건 아니었지만 길을 막고 있어서 차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아주기를 바랬다.
“으응, 그럼 갈까?”
지연은 다시 액셀을 밟아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는 물었다. 새 차의 감상을 말이다.
“동생아, 새 차 어때? 멋있어?”
“그, 그렇지 뭐. 누나다운 차라고 할까.”
동의해 주길 바라는 반짝이는 눈동자에 영준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렇게 투박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사람은 몇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올 블랙이다. 검은색은 또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강한 느낌이 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가끔 보면 도가 지나쳤다.
“새 차라서 뭔가 다르긴 하네.”
조금 돌려서 칭찬한 뒤 지연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지연은 이미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까 봤던 잡지의 내용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외진 곳. 으슥한 곳. 외진 곳에서 무드를 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울외곽으로 빠져나가 한강 상류지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팔당호를 지나서 수많은 댐들을 지나치는데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너무 외진 곳으로 와버린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도로도 아니었다. 흙과 자갈이 밝히고 있었다. 심지어 비까지 내리기 시자개서 분위기는 최악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나 점점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그렇지? 일단 멈출게. 내비 좀 켜줄래?”
우우우. 지연은 울고 싶었다. 이런 곳을 원한 게 아니었다. 외진 곳이어도 뭔가 아늑한 가로등 불빛아래 차를 세우고 키스를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으슥한 곳 이라기보다는 으스스한 곳이었다. 비 때문에 안개가 자욱했다.
한편 영준은 차에 달려 있는 내비를 조작해 보았지만 현재 위치를 잡지를 못하고 있었다. 불량품이라도 달아준 건가 싶어서 지연에게 말했다.
“내비가 이상해.”
아직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안개와 비 때문에 마치 새벽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영준의 말에 지연은 내비를 바라보았으나 솔직히 이런 기계에는 약했다. 영준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일단 차에서 내렸다. 빗방울이 몸으로 떨어져 내렸다. 영준도 뒤 따라 내려서 지연을 잡았다.
“우산도 없는데, 일단은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 시야도 잘 안 보이고”
“미안해 동생아.”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생각하면서 지연은 차속으로 들어왔다. 한기가 느껴져서 히터를 틀었다. 잠깐 비를 맞았을 뿐인데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영준은 상의를 벗어서 그런 지연의 머리를 조심스레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느껴지자 지연은 기분이 황홀해 졌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솟아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좀 젖은 게 뭐가 중요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준의 팔을 잡고는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애원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누나?”
하지만 최근, 영준은 키스를 먼저 해주지 않고 있었다. 호감도 100이 넘어갈 위기를 겪고 나서 조금 조심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더 안달이 난 지연은 자신이 먼저 키스를 해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키..키스해줘...”
영준은 일단 [호감도]를 체크했다. 최근 지연의 호감도가 조금 널뛰기를 하는 것 같아서 키스하기 전과 후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달라니 걸 거부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일단 사랑스러운 누나였으니, 되도록 잘해주고 싶었다.
91의 호감도를 확인하고 영준은 얼굴을 가까이 하여 지연의 젖은 입술을 빼앗아 버렸다. 지연은 한손을 핸들에 올려놓고 한손으로 그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는 영준의 입술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했다.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키스가 이렇게 좋은 거라고는 경험하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준의 뜨거운 혀와. 자신의 혀를 빨고 또 빨았다. 그러자 감정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상관없어지고, 그가 달라고 하면, 심장이라도 꺼내서 바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것도하기 싫고, 그냥 그와 계속 평생토록 키스만 하고 싶은 감정이 생겨났다.
그러자 갑자기 영준이 혀를 때어버렸다. 지연은 순간적으로 발끈해버렸다. 왜 때냐고 생각했다. 계속하고 싶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계속 연결 돼 있고 싶었단 말이다.
“왜 그래.. 더..더하자.... 누나가 싫어졌어? 왜 때는 거야?”
영준은 곤란했다. 지연이 눈망울이 글썽 거렸다. 울기 직전이었다. 호감도를 체크하니 또다시 난폭하게 널뛰고 있었다. 그녀는 힘을 이용해서 영준을 머리를 자기에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저번처럼 위험수치를 넘어설 것 같았다. 키스만 하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조절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차 밖에서 뭔가 비명소리가 같은 게 울려 퍼졌다. 째지는 것 같은 여자 목소리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영준과 지연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덕분인지 켜놓은 스카우터창 위로 마구 튀어 오르던 지연의 호감도가 95에서 정지해 버렸다. 그래서 영준은 [로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하루빨리 키스만 해도 널뛰기 하는 호감도를 진정시킬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카우터창을 일단 집어넣었다.
영준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는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의 존재가 조금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연에 대한 마음도 거짓은 아니었다. 항상 성심성의껏 대해주는 지연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영준에게는 아직 그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확신도 없었다.
한편 지연은 비명소리에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분위기를 깨버린 비명소리에 짜증이 나서 분풀이를 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비가 그쳐 있어서 지연은 다시 차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아직도 안개는 자욱했다.
“동생아, 일단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가보자. 뭔 일이 있나봐.”
“그래 누나.”
안개 속에서 조금씩 보이는 풍경은 이곳이 산속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언제 이런 산속까지 차를 몰고 들어와 버린 건지 자각이 없었다. 분명히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지연은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실체가 있는 것에는 강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 같은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연이 딱 질색인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유령이나 귀신같은 게 너무나 싫었다. 자신의 검에 맞아도 안 죽을 것 같은 존재들이 너무나 무서웠다.
차에서 내릴 때 자연스럽게 가지고 나온 애검을 든 손이 조금 긴장되었다. 그래서 영준의 팔에 있는 힘껏 매달렸다.
“동생아 여기 이상해..”
“조금 그렇긴 하네.”
영준이 보기에도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니 이런 산속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데 순간 지연의 몸이 땅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 영준의 팔을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한 순간이었다. 깜짝 놀란 영준이 있는 힘을 다해 지연의 몸을 끌어올렸다.
“동생아...이게 뭐야? 걷고 있었는데..갑자기 아무것도 안 밟히고..”
지연은 울상을 지으면서 영준의 품에 안겨버렸다. 이 장소가 너무 싫었다. 지연과 몸을 포개고 쓰러져 있던 영준은 그녀를 때어내고 조심스럽게 지연이 떨어져 내렸던 장소를 살펴봤다. 맙소사. 그곳은 절벽이었다.
영준과 지연의 발아래로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연과 보폭을 맞추어 걸었더라면 꼼짝없이 둘 다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상황이었다.
“누나, 진정해 그냥 절벽이야.”
“절벽?”
그 말에 지연은 쪽이 팔려서 대뜸 일어났다. 모든 게 이 안개 때문인 것 같았다. 이곳으로 잘못 들어온 것도 결국 이 안개 때문이다. 안개 따위에 너무 쫄아서 귀신같은 건지 알고 이런 꼴을 영준에게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누군가 몸을 잡아당긴 줄 알았는데 그냥 절벽이었다니. 지연은 누나로써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아서 볼을 부풀렸다.
“그런데, 분명히 비명소리는 이 절벽 쪽에서 나지 않았어? 누구 다른 사람이 떨어진 걸까?”
“뭐? 그치만, 여기 외길인데? 아무리 안개 때문에 잘 안보여도, 차앞으로 누군가 지나가려면 알아차렸어야 할걸? 좁은 공간이라고, 동생아.”
영준에게 그렇게 설명하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오히려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하면 비명소리가 왜 낫는지를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차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았다. 지연은 깜짝 놀라서 영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동생아!.. 여기 역시 이상해!”
너무 싫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다. 영준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강하게 안아들고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단 가보자. 소리가 들린 건 확실해.”
“뭐? 싫어. 누..누나가..있지..”
“응?”
“누나는 귀신이 싫단 말이야!”
커밍아웃을 하면서 차 쪽으로 가려고 하는 영준의 몸을 저지했다. 눈까지 감으면서 고백하는 그 모습이 영준에게는 너무나 귀여웠다. 이 누나의 여러 가지 갭은 항상 봐왔지만, 이번 건 특히나 엄청났다. 바들바들 강아지처럼 떨면서 영준을 붙잡는 모습 그 어디에서 사람을 벨 때의 그녀의 냉혹한 표정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잠깐만 누나, 이건 사람소리야. 남자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뭐? 남자 귀신은 더 싫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이는 지연을 끌고 차 쪽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힘이 너무 강했다. 지연의 힘 자체가 체력을 200까지 끌어올린 영준보다 월등하게 앞서고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결국 끌고 가는 건 실패했다.
“그럼 일단 내가 보고 올게. 여기 있어.”
“누..누나를 여기 혼자 두려는 셈이야? 시..싫어...”
“그럼 같이 갈 거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연에게 다시 묻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확인은 해야 한다는 거에 동의는 하지만, 그래도 귀신은 너무 싫었다. 차 쪽으로 돌아오자,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귀신같은 게 아닌 거 같아. 차에 시동을 거는 귀신이 어딨어?”
“뭐어?”
그 말에 지연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오늘 새로 뽑은 차였다. 그럼 차 도둑놈이 꾸민 짓인가? 영준의 말에 정신이 들어서는 검을 뽑아들었다. 정신없이 달려가자 약초배낭 같은 걸 들고 있는 남자들의 무리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네놈들, 차에서 떨어져”
그들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지연에게 공포 따위는 전혀 없었다. 평소와 같은 살기만을 내뿜을 뿐이었다. 이놈의 차 도둑놈들. 게다가 영준에게 부끄러운 꼴까지 보이게 한 놈들이다. 모조리 벌을 내리겠다고 생각했다.
“형님, 차주인인가 본데요? 젊은 여자 같습니다.”
“목격자는 모두 처리해. 마침 안개가 낀 게 처리하기도 너무 좋잖아?”
“전의 그년처럼 말인가요? 그럼 그때처럼 맛 좀 보고 처리하죠?”
지연의 귀에 그들의 대화가 뚜렷하게 들렸다. 원래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래도 무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망설임까지 없어져 버렸다. 영준이 돌아왔을 때, 5명의 남자는 그녀의 검에 의해서 모두 바닥을 기고 있었다.
목숨은 살아있었으나, 모두 팔이 잘려서는 바닥에 피를 뿌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지연은 화가 안 풀렸는지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마구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순전히 영준에게 쪽팔린 모습을 보이게 만든 데에 대한 분풀이였다. 그 무자비한 폭력에 다섯 명의 남자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모두 혼절해 버렸다.
“다치진 않았어?”
“괜찮아. 귀신이 아닌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피를 봐서 그런지 아직도 냉정함이 묻어있는 말투로 말하면서 피가 묻은 검을 털어내더니 지팡이에 스르르, 꽂아 넣었다. 영준은 그들 옆에 쓰러져 있는 약초바구니를 보았다.
“누나 이건 뭘까?”
영준의 말에 그때야 약초바구니가 들어온 듯 지연은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본 적 있는 식물이었다.
“이거 대마야. 이 근처에 이놈들이 키우는 대마 밭이 있나본데?”
지연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곳에 조폭 같아 보이는 놈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이상했는데 이걸로 의문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익명으로 신고를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너무 과잉대응 한지라 인맥을 통해서, 정체가 들키지 않게 이쪽으로 경찰을 보내도록 처리한 것이다. 그러자 영준도 차로 올라왔다.
영준이 올라오자 다시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혀버렸다. 절벽 앞에서 무슨 추태를 부린 건지. 솔직히 아무리 귀신이 싫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건 눈앞의 남자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자꾸 보이게 되는지, 정말로 동생으로 생각한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다시 키스가 하고 싶어졌다.
아까도 도중에 끊겨 버려서 불만족스러웠다.
“그...동생아..?”
“응?”
어느새 사람을 베어버리던 냉정한 표정이 사라지고 뭔가 에로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영준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키스를 원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초등학생도 알아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스카우처를 켜고서는 키스를 시작했다. 지연은 영준을 잡아먹을 듯이 강렬하게 키스를 요구했다. 하면 할수록 부족했다. 손을 맞잡았다. 영준이 아직도 젖어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기는 누나의 특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연이었으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신을 누나가 아닌 연인으로 봐준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짝 입을 때고는 상기된 얼굴로 영준을 불렀다.
“영준아..”
자기도 모르게 동생아가 아닌 이름을 불러버렸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입 밖에 내가 백배는 더 긴장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잡지에서 그런 것처럼, 자신은 아마도 영준을 동생이 아닌 남자로써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영준아...!”
한번 튀어나오자,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시 키스를 요구했다. 영준은 영준대로 놀라버렸다. 누나가 이름을 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호감도가 갑자기 고정이 되어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이것은 동생과 남자라는 갈등사이에서 감정이 폭발해서 폭주를 하던 지연의 호감도가, 그를 남자로 보기로 마음을 먹자마자 더 이상 폭주하지 않고 고정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영준아, 누나 좋아해?”
입을 땐 지연이, 간절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살짝 손끝이 떨려왔다.
“누나를 좋아하지 당연히.”
영준이 그렇게 대답했으나, 지연은 살짝 눈썹을 꿈틀거렸다. 누나로써 좋아하는지, 여자로써 좋아하는지에 헷갈리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잡지를 보면서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에 그냥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자로써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들을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다시 키스에 빠져들었다. 서로의 침을 마시면서, 그와 하나 되어가는 기쁨을 만끽했다.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확연하게 시야가 밝혀졌다. 키스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은 길을 확인 해보려고 차에서 내려왔다.
“누나 근데, 조폭들은 다 남자인데? 결국 그 비명소리는 대체 뭐였지? 이건 해결되지가 않았어.”
“응?..”
그렇게 말하다가 지연은 갑자기 조폭들이 말하던 대화가 떠올랐다. 분명히 대마를 옮기다가 마주친 여자를 죽인 것 같은 뉘앙스였다. 지연은 다시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영준의 손을 꽉 잡고 절벽 쪽으로 이동해 보았다.
절벽아래에는 여자시체가 걸려있었다. 마치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절벽 위를 노려보면서 입을 벌리고 죽어있었다.
“꺄아아악”
지연은 다시 영준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리고는 강한 힘으로 영준을 질질 끌어서 차로 돌아와 마구 시동을 켰다.
“저, 여자야. 저 여자... 그 비명은 저 여자라고. 영준아, 귀,, 귀신이야...”
그리고는 액셀을 밟아서 후다닥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안개가 걷혀서 곧 도로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내려오다 보니 아무리 안개로 길을 잃었어도, 이 산길로 접어드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 같았다. 영준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조금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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