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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약한 말을 하는 예리를, 나는 망설임 없이 강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곤 꽤 긴 시간을 그녀와 나는 말없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예리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하지만 행복해. 왜 이렇게 따뜻한 기분이 들까? 전보다 더 이상해졌어, 모르겠어. 이제 생각하지 않을래. 상태가 이상해진다고 아저씨를 멀리두지도 않을 거야.”
그러면서 다시 내 품에 안겨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시 잠들어 버렸다. 아까는 기절했다면 이번에는 심신이 너덜너덜해서 잠들어 버린 거겠지.
의외로 다정한 말을 하면서 내 품에서 잠든, 이 악마 같은 여자를 나또한 뭔가 알 수 없는 따뜻하기도 하고 가슴이 꽉 차는 충만한 감정으로 안고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일어난 것은 한참 후였다. 그리고 터널이 뚫려서 구조대가 나타난 것도 거의 하루가 지나서였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가보니, 경호원들과 구조대원으로 아수라장이었다. 나에게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그녀를 발견한 경호원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구조되었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경호원들은 거의 밀착 경호를 하고 있었다. 폭발에 휘말리게 만든 탓에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한 듯 했다.
예리는 병원에 얌전히 누워있지 않았다. 그래, 터널 안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당한 걸 돌려주고 싶겠지.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물론 하루가 지난덕분에 [붕대]로 인해 화상은 완전히 치유가 된 상태였다. 흉터가 걱정되었는데 강화덕분인지 피부는 깨끗하기만 했다.)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아저씨 나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이 짓거리를 한 범인을 색출해내는 데만 집중할거야. 곧 연락할 테니 얌전히 있도록 해.”
그 말을 남기고는 돌아가 버렸다. 그녀와 만나고 헤어진 적은 많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그녀는 아쉬운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점점 예리에게 마음이 가는 걸까? 이제는 그걸 완전하게 부정하기도 힘든 것 같았다. 터널에서 느꼈던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털어 내야한다. 나에게는 너무 먼 여자다. 사는 세계가 너무 다르다. 게임을 클리어 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중요한 사실이 깨달았다. 재워두고 온 살인마 자식이 말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터널에서 소비해 버렸다.
핸드폰을 보니, 24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김민욱은 지하실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다시 한 번 경찰에 신고를 해두었었다. 자고 있는데 경찰을 저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병원 TV를 살펴보았으나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심야뉴스가 흐르고 있었는데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간은 뭔가 분석이라도 내놓았던 방송들이 아예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중지한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했다는 건 확실했다.
“띠리리리리”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가 와있었다. 예리인가 싶어서 확인하다 나는 기겁해버렸다.
[당장 지하실로 돌아오는 게 좋을 걸? 네 여자가 죽는 꼴을 구경시켜 줄게.]
그리고 사진에는 알몸상태로 묶여있는 이연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몸은 깨끗했다. 뭔가를 당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다만 그녀 아래에는 날이 번쩍 선 목마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고문도구의 하나였다.
너무 많은 시간을 김민욱에게 준 것 같았다. 열이 뻗쳐서 그대로 지하실로 달려가려고 하다가 발을 멈췄다. 너무 함정이었다. 호랑이 굴로 그대로 들어가는 미친 짓이다. 혹시 기습이라도 당하면 [무형검]이 소용없다. [무형검]의 유일한 약점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달려가는 동안 갖은 고문을 당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아직은 옷이 벗겨져 매달려 있기만 한 상태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니 멈추는게 최고다.
아까 터널에서 사둔 [스톱워치]를 사용할 때였다.
[스톱워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창을 터치하자, 곧 세상이 멈춰버렸다. 그리고 나만이 움직였다. 곧바로 그 집으로 달려갔다. 새벽시간이라 거리에 차가 거의 없어서 요리 저리 멈춰있는 차들을 피해 무난하게 김민욱의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로 들어가자 이연지는 무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직 뭔가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을 멈췄으니까.
김민욱은 내가 지하로 내려오자마자 줄을 내려서, 그녀가 고통 받는 장면을나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았다. 그걸 증명하듯 김민욱은 이연지를 매달은 줄로 된 장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의 구석에는 호텔에서 나에게 질문을 했던, 내가 문자를 보내서 이 장소를 알려주었던 형사가 쓰러져 있었다. 바보같이 김민욱이 깨어난 후 이 지하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수사에 제외 되서 혼자 확인하러 왔다가 변을 당한 듯 했다. 빌어먹을. 아까운 목숨을.
아니지. 게임세계다. 진짜현실에선 멀쩡히 형사질을 하고 있겠지? 그렇기를 기도했다.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것만이 그래도 죄책감을 덜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이연지 아래에 있는 고문 기구를 치워버리고, 그녀를 고문 기구에서 풀어내었다. 다만 [스톱워치]를 사용한 상태에서는 몸이 부서질 위험이 커서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녀를 얌전하게 내려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이 개자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이대로 [스톱워치]가 풀리면 또 갑질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몇 대 때려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선글라스]를 사용했다.
그러자 [스톱워치]의 효과가 사라지고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네놈 대체 어떻게?”
김민욱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연지를 구해내고 의기양양하게 서있는 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영준씨!”
역시나 김민욱과 같이 [스톱워치]에서 풀린 이연지가 나를 불렀다.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혹시나 총알이 튀어 이연지에게 부상을 입힐 수도 있어서, [무형의 검날]을 사용해서 김민욱의 믿는 구석을 세상에서 소멸시켜버렸다. 나에게 방아쇠를 당기려다 갑자기 사라진 권총에 기겁을 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줘 패기 시작했다.
퍽-
퍽퍽-
이빨이 부러져 내리고, 김민욱이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기 시작했다.
“잠깐, 아파..그만해...알았어. 그만할게..그만한다고....아파아아아..!”
“때리지 마 이 새끼야!, 때리지 말라고. 아버지, 때리지 마요. 다 죽여 버릴 거야!”
맞으니까 전 처럼 자아분열을 시작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힘이 실린 마지막 한방을 맞고 기절해버렸다. [수면스프레이]나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지 않고 때려서 기절시킨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분노가 컸었다. 주먹이 아파왔다. 내 주먹도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기절한 놈에게 다시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해 주었다. 이걸로 더 이상은 깝치지 못하겠지. 이번에야 말로 잠들어 있는 동안 경찰에 넣어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연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네. 무서웠어요! 모텔에 혼자 나두고 대체 어디 간 거야. 이 나쁜 놈아!”
그녀는 김민욱이 쓰러진걸 보자마자 나에게 안겨들어 울기 시작했다. 알몸상태로 말이다.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나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보았다. 기회인 것 같았다. 징검다리 효과는 더욱 감정을 고조시키는 법이 아닐까? 그대로 이연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처음하면서도 내 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었다. 한참을 혀를 섞다가 입을 때었다. 살짝 그녀의 가슴에 손을 대자,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여기서는 싫어요..”
그 말이 기폭제였다. 옷을 찾아 입히고 그대로 근처 호텔로 달려갔다. 공략미션 클리어가 코앞이었다. 그리고 이연지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3시간정도에 걸쳐서 말이다. [약]을 사용하며 계속해서 섹스를 했다.
이연지는 지친얼굴로 침대에 누워서 상기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누워있었다.
“저 기자는 안 맞나 봐요. 납치나 당하고.. 생각해보니까 다 영준씨가 한 거고, 전 아무것도 한 것도 없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꿈을 포기하는 발언을 하고만 자신이 슬퍼졌으리라. 나는 그녀의 뺨을 양쪽 손으로 잡고는 애원하듯이 외쳤다.
“연지씨,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에요. 이제 연지씨의 활약이 필요할 때라고요.”
“네에? 어, 어떻게요...?”
“일어난 모든 일을 기사로 작성해요. 사진과 동영상도 있고, 증거도 충분해요. 저놈이 잠들어 있으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터. 지금이 기회입니다. 진정한 기사를 보여줘요!”
내말에 이연지는 양쪽 뺨을 잡힌 얼굴을 위 아래로 강하게 흔들었다. 다시 또 의지가 생긴 모양이었다. 그것에 만족해서 손을 풀어주었다.
“영준씨 말이 맞아요. 당장 쓸게요. 기사로 만들어서 그놈이 깨어나기 전에 뿌리고 말겠어요!”
실신한 듯 누워 있더니 그대로 핸드백으로 달려가서 노트를 꺼내고는 호텔 바닥에 엎드려서 기사를 적기 시작했다. 한동안 엄청나게 진지하게 글을 써서, 엎드린 자세 때문에 그녀의 엉덩이 속 은밀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 완성된 기사는 만족스러웠다. 현장감이 생생하게 밀려왔다. 우리는 호텔에서 나와 그 기사를 거의 모든 신문사에 보내고 방송국에도 보냈다. 아침이 되면 난리가 날 것이다. 당사자가 힘을 쓸 수 없는 사이에 말이지.
“하하하하”
“호호호호”
나와 이연지는 득의양양해서 웃기 시작했다. 호텔로 들어와서 장난을 치면서 잠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건 아침이 되고야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투고를 했건만, 그 어디에서도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전화기를 돌려 신문사에 전화를 했다.
“기사를 투고했는데 어떻게 된 거죠? 그 정도면 특종 아닌가요?”
“아 그걸 보내신 분인가요? 위에서 폐기처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을..”
뭔가 지령을 받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이건 또 어떻게 된 걸까.
“영준씨? 뭐래요? 대체 왜 제 기사가..”
“잠시만 있어 봐요, 샤워라도 하고 있어요. 금방 돌아올 게요”
“네? 영준씨? 영준씨!”
그녀는 나를 따라오려고 뛰었지만, 알몸인 된 관계로 뛰어 나올 수 없는지 그냥 씩씩거리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안심하고는 김민욱의 집으로 뛰었다. 그리고 근처 지구대에 들어갔다.
“시체를, 시체를 봤습니다.”
그들을 억지로 라도 김민욱의 집으로 끌고 가려고 했으나, 상부에서 지침을 받았는지 그들은 오히려 나를 구속하려고 했다. 그것도 다짜고짜 아무 말도 없이 말이다. [무형검]을 사용해서 간신히 지구대에서 탈출해서 달렸다.
자고 있는 놈이 어떻게 이런 압력을 행사하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깨어있을 때 사방에 전화를 돌린 건가? 그러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민욱은 잡지사의 기사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즉 그도 모르게 다른 누군가에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는 그냥 호텔과 몇 개의 기업을 소유한 재벌정도이다. 경찰에게 압력을 행사할 재력은 있겠지만 확실히 방송, 신문, 경찰, 전 분야에 걸쳐서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 다는건 분명히 이전에도 생각했었다. 이건 나라의 정점에 선 권력정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리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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