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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 보다는, 화난 예리가 만 배는 무섭다.
차는 내 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뒷좌석의 문이 열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차안으로 들어왔다. 예리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 지금 막 답장을 하려는 차였어. 정말 미안.”
나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뒷좌석문은 닫혔고 차는 출발했다. 나는 계속해서 변명을 했지만 예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창밖을 응시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앞에 있는 경호원에게 한마디를 꺼냈다.
“집으로 가. 지하실 열어두라고 해”
“잠깐 예리야? 지하실이라니?”
내가 이상한 예감에 물었으나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까 호텔에서 느꼈던 그녀에게 나는 달콤하면서도 빠져들 것 같은 향기는 여전히 내 코를 괴롭혔으나 태도는 완전히 정 반대였다.
“아저씨는 스스로 한말도 못 지키는 사람이야? 나, 실망했어.”
딱 그 말만 남기고 입을 닫아버렸다. 차는 빠르게 이동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팔을 잡아들었다.
“그건 아니야. 이야기를 들어봐. 충분한 이유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방금 전 일을 설명해야 하나 고민을 시작했다. 김민욱과 아는 사이인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멍해졌다. 거대한 폭발음이 일시적으로 청각을 앗아가 버렸다. 놀라서 밖을 보니 차는 터널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터널 입구에서부터 화염이 치솟더니 점점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휘말리는 건 순간이었다. 이미 인지한 순간 [스톱워치]를 사용할 시간도 없었다. 그대로 예리를 안아들었다.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나와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것을 본 예리는 표정이 얼어붙어 버렸다. 하지만 내가 갑자기 안아들자 내 품에서 이상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스톱워치]는 못 사용했지만 폭발을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동차가 터진 게 아니다. 차라리 차에 폭탄이 장착돼 있었으면 순식간에 골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형검]은 이미 김민욱의 집에서부터 사용 중이었다. 폭발로 인한 큰 화염을 차를 뒤집어 삼켰다.
[무형검]의 사용설명은, 눈에 보이는 모든 공격을 튕겨 낸다는 거였다. 폭발과 화염을 눈앞에 인식을 한 이상, 절대적 아이템은 폭발의 영향을 튕겨낼 것이다. 이건 이 평행세계의 신이 만든 아이템이다. 폭발 따위다.
차는 곧 화염에 휘말렸다. 나는 예리의 머리와, 몸을 처절하게 끌어 앉았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연쇄적인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화염은 차를 뒤집어 삼켰다. 내가 있는 공간만이 [무형검]의 가호로 불길을 튕겨내었다. 차체가 폭발에 휘말려 검게 그을려 너덜너덜해졌고, 앞에 탄 기사와 경호원은 즉사했다. 보호막을 친 듯 내 주위만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문제는 예리였다. 몸에서 때어내 살폈으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 나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지만 예리는 군데군데 화상이 심했다. 그 충격에 혼절 한 것 같았다. [무형검]의 영향으로 나와 붙어있는 그녀는 폭발자체에 휘말리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게 아니어서 화염의 열기자체는 그녀의 피부를 그대로 태워버린 듯 했다. 급하게 그녀를 터널바닥에 내려놓고 [붕대]를 불러냈다.
[붕대]
[모든 부상을 치료한다.]
[사용횟수는 각 레벨마다 두 번 ]
[사용하면 조금씩 상처가 재생된다. 다만 상처가 크면 클수록 재생에]
시간이 걸리고,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레벨업으로 아이템 강화가 가능합니다]
화상이 너무 심했다. 이대로는 흉터가 남을게 분명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붕대]는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템 강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것에 기대했다.
[아이템 강화를 하시겠습니까? [강화0] -〉 [강화1] 100만원
[강화0] -〉 [강화2] 200만원 ]
[강화2]까지 강화를 터치했다. 그리고 아이템 설명으로 들어갔다.
[붕대] [강화2]
[모든 부상을 치료한다.]
[사용횟수는 각 레벨마다 두 번 ]
[사용하면 조금씩 상처가 재생된다. 다만 상처가 크면 클수록 재생에]
시간이 걸리고,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 상처 회복 시간 UP
+ 붕대치유능력 UP
엄청난 강화가 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전혀 강화를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붕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바로 창을 터치해서 강화를 한 붕대를 사용했다. [붕대]가 없었으면 쇼크사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화상이라 걱정이 심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터널의 양쪽방향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터널 곳곳에는 달리던 차들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스톱워치]를 사용해서 불길을 뚫고 밖으로 나갈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같이 따라오던 경호원들도 모두 죽어버렸다. 이변을 알았으니 곧 구조를 하러 올 것이다.
이 터널은 예리가 집으로 가기위해서 꼭 거쳐 가는 루트였다. 연회에 참석하고 끝난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루트를 알고 있는 놈이 한 짓이다. 그렇다면 섣불리 밖으로 나가는 건 위험했다.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아보였다. [스톱워치]는 한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최대한 아껴야 한다.
다행이 [붕대]라는 아이템이 있어서 여유는 있었다. 다만 화재로 인한 유독 가스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비상구 표시가 보였다. 마침 딱 중앙 쪽에서 폭발에 휘말린 참이라, 비상구와 가까웠다. 그녀를 안아 들고 비상구로 들어갔다. 환기시설이 되어있는지 공기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문을 닫았더니 화재로 인한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았다. 다만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터널 화재 시에 구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만든 임시 대피소인 듯 했다. 공간은 어느 정도 넓어서 그녀를 똑바른 자세로 눕힐 수 있었다.
일단 예리의 상처가 더 회복되고, 불길이 가라앉으면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누가 이런 테러를 저지른 걸까? 김민욱은 절대 아니다. 그놈은 어릴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고문을 즐기는 괴물이 되었을 뿐, 터널에 수많은 폭탄을 설치할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런 치밀함은 민유리 사건 때 우리를 괴롭히던 그 흑막이 틀림없었다. 그동안 잠잠하더니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정보를 유출시키는 걸 넘어서 아예 목숨을 노리기 시작한 걸까. 계획은 참신했다. 나만 없었으면 예리는 틀림없이 죽었겠지.
하지만 모든 건 한 번에 끝내야 하는 법. 이제 두 번 다시 똑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으리라. 한 번 당한 경호원들이 앞으로 폭탄에도 철저하게 대비를 하게 되겠지.
제발 경호원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예리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권력이 뭐라고, 이런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렇게 연약해 보이고, 가련해 보이는 여자가 말이다. 적어도 겉모습은 말이다. 속이야 그렇지는 않지만...
이걸로 예리도 좀 더 기를 쓰고 흑막을 색출하는데 매달리겠고 다시 뭔가 전쟁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바람이 불 것 같은 예감이다.
“으으..응...”
예리가 신음을 흘리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예리야 괜찮아?”
“아저씨....나, 아파...”
그 한마디를 하고 나를 향해 손을 올렸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몸이 엄청나게 떨리고 있었다. 상처에 안 좋을 것 같았지만, 심하게 떨리는 몸을 가만둘 수 없어서 그녀를 일으켜 안아들었다.
“괜찮아, 금방 나을 거야. 걱정 마 예리야. 지금은 그냥 눈을 감고 쉬 도록해..”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속사포 같이 말을 내뱉었다. 예리는 힘없이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내 품으로 쓰러져 다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너무 걱정 돼서 대피소 밖의 상황을 살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상태를 뜬눈으로 살폈다. 1시간, 2시간, 3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붕대]의 영향으로 화상상처가 아물어갔다.
[붕대]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얼굴은 완전히 내가 품고 있었기에 화상에서 무사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아물기 시작하자 그녀의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표정이 편안해진 걸 보고야 탐색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로드]는 선택지에서 없었다.
이미 [세이브]를 했던 호텔에서는 옆방에서 살인사건은 일어나고 있었다. 레벨8 TIP에서 나왔듯이 한번 발동한 히든미션은 회피가 불가능했다. 회피하려고 하면 강제력이 발생 하겠지, 돌아가서 이 다시 사건도 해결하고, 이 테러도 막으려고 하는 건 험난한 길이다.
게다가 [로드]를 선택하면 시간도 날아가 버린다. 남은시간이 더욱 급속하게 줄어든다. 굳이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예리가 죽었다면 당연히 [로드]를 선택했겠지만 멀쩡히 살아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와 보니 불길은 거의 잡혀 있었다. 밖에서 진화를 시작한 듯 보였다. 다만 입구는 폭발의 영향으로 무너져 내려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면 한 번에 없앨 수는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갑자기 입구의 잔해가 소멸되는 기이한 현상을 많은 사람이 목격하게 된다. 만약에 흑막이 그걸 본다면 나의 패를 하나 밝히게 되는 것이다. 이상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예리에게 붙어있다는 걸 말이다. 그건 좋지 않았다. 예리는 순전히 폭발에서 운 살아남아서 기적적으로 구출되는 게 흑막을 방심시키기에도 좋을 것이다.
입구는 곧 뚫린다. 예리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모든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대피소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예리는 아직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아서, 대피소 벽에 기대고 꾸벅꾸벅 잠이 들어버렸다.
정신을 차렸더니 예리가 몸을 일으켜 내 옆에서 나처럼 등을 벽에 기대고 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가 내 어깨에 기대져 있었다.
어느새 깨어나서 내 옆으로 와 잠들었나 보다. 그렇다면 아직도 구조대가 오지 않은 건가?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폭발이 발생한지 10시간이 더 흘러가 있었다. 무슨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단 말일까.
그러고 있는데 예리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어깨에 기대고 잠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저씨, 일어났어?”
어깨에 얼굴을 기댄 그대로 나를 올려다봤다. 물론 그 자세에서는 내 한쪽 얼굴만 보이겠지.
“너야말로 괜찮아?”
“응, 엄청나게 아팠는데, 조금씩 아픔이 사라졌어..”
“원래 큰 상처는 없었어. 사고 후유증이야”
나는 이미 거의 아물어 버린 상처를 보면서 그렇게 변명했다. 예리는 내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기대고 있던 고개를 들더니 나와 마주보았다.
“아저씨, 나 바보 아니야? 능력으로 나를 살려 준거지?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아니면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거, 알고 있어? 나도 두 눈으로 거대한 화염을 봤었는걸.”
둘러댈 말이 없었다. 그냥 무언의 긍정을 시전 했다. 그러자 예리가 피식 웃었다.
“아저씨가 나를 필사적으로 안아서 보호하는 건 멋있었어?, 그 후도 이렇게 보살펴 줬으니 그냥 넘어갈게.”
“그래? 하하하..”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청나게 아픈 중간에, 한 번 아저씨가 안아줬지? 너무 따뜻했어. 그런 거 처음이야. 만약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그렇게 나를 안아줬을까?”
뭔가 슬픈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 얼굴, 어울리지 않는다. 이 여자는 그냥 오만하고 도도한 표정이 최고로 어울리는 여자다.
“나, 아까는 조금 화가 너무 나서... 아저씨 말에 대답도 제대로 안하고...사실 집으로 데려가서 조금 괴롭힐 생각은 했지만, 죽인다던지 그럴 정도로 화난 건 아니었으니까.. 그 일은 다 용서할게. 그러니까, 한 번만 더 안아줘. 나, 아직도 조금 떨려.. 무서워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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