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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다시 내 등 뒤에 바싹 붙었다. 여전히 무섭긴 한 것 같았다. 등 뒤의 그녀와 함께 열심히 집안을 뒤지고 다녔으나 특별 한 건 없었다. 서재에 책이 많다는 정도일까? 평범한 별장이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 책상에 일반인의 기호에는 맞지 않는 책이 하나 놓여있다는 거였다. 스스로 만든 책인 듯 저자나 출판사의 이름도 쓰여 있지 않았다. 들춰보니 내용이 가관이었다. 여러 가지 고문기술에 대해서 정리되어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들 이었다.
[철의여인]
[여성의 형상을 한 고문기구. 문 안쪽 에 못을 박아 설계한다. 전 방향에 스파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안에 가두고 문을 닫으면 온몸이 꿰뚫리는 구조.]
[머리 붕괴기]
[이빨이 잇몸 속으로 뭉개져 들어가 턱 주변의 뼈를 부셔버리는 구조. 그 후에는 눈이 튀어나오고 뇌가 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조이며 머리를 조금씩 짜내는 것이 흥분을 가져다주는 고문기구]
[스페인 당나귀]
[날카롭게 선 날 위에 앉혀놓고 다리에 추 같은 무거운 것을 달아 앞뒤로 끌어 당겨서 하체가 조금씩 잘려나가게 하는 고문기구. 요람이라고도 불림]
[톱]
[사람을 거꾸로 매단 후 몸 안의 피를 머리로 몰리게 나둔다. 그 후에 톱으로 몸을 자르기 시작하면 몸이 잘리는 걸 보면서 죽어가게 된다. 복부까지만 자르고 놔두는 것이 포인트]
차마 눈뜨고 못 읽을 만한 잔인한 고문 방법들이 기술되어 있었다. 위에는 중세의 고문방법 이라고 나와 있는 거 봐서, 유럽의 중세에 실제로 행해졌던 고문기술인 것 같았다. 중세뿐 아니라 페이지를 넘기니 현대의 고문방법, 폭탄을 이용한 고문 방법 등 다양한 고문기술들이 총 망라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고문방법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쳐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설마 이건 실행을 해봤다는 뜻 일까? 만약 그렇다면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부러운 삶을 사는 놈이 가진 취미가 이런 토 나오는 것이라니.
동그라미의 숫자로 봐서는, 언론에 공개된 4건의 범행보다, 더 많은 짓거리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끼치는 와중에 바로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이연지가 나에게서 책을 뺏어 들었다.
“으앗....이, 이게 뭐예요?”
눈살을 찌푸리면서 차마 다 읽지 못하고 놀라서는 책을 던져 버렸다. 그녀의 손에서 뿌려 쳐진 책은 침대 쪽으로 가서 떨어졌다.
“이 집 주인이 미친놈이라는 거죠, 뭐긴 뭐예요. 다만 이것만으로는 아무런 증거도 되지 않는 게 문제에요. 그건 그렇고 빨리 주워 와요.”
침대로 날아간 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녀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잔뜩 찡그리고는 침대로 다가가서 마치 쓰레기를 집는 듯이 책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냥 뛰어다니다가도 잘 넘어지더니, 발이 꼬여서는 책 앞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자빠져 버렸다. 급하게 침대를 잡으려고 했는데, 침대는 그녀의 손을 거절하면서 그대로 위쪽으로 밀려나가 버렸다. 무게감이 없는 침대였다.
무거운 침대가, 손이 닿는 정도로 움직인다? 수상했다.
그러고 보니, 장기밀매 사건 때도 침대 아래 지하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자기들끼리 비밀 장소를 만들 때 공유하는 방법일수도 있다 싶어서 침대 아래를 살피니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이건 백퍼센트였다. 아마 이 아래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있으리라.
“연지씨, 마음을 단단히 먹고 따라와요,”
“네..”
공포감이 심해지는지 그녀는 내 뒤에 더 단단히 붙어버렸다. 그녀의 가슴이 완전히 내 등 뒤에 밀착했다. 부드러웠다. 말랑한 느낌을 즐기면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무형검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창을 터치해서 무형검을 장비하고 손전등으로 빛을 밝혔다.
하지만 손전등은 필요 없었다. 지하실에는 형광등 이 켜져 있었다. 창문이 전혀 없어서 불빛이 새나갈 염려가 없었기 때문인 듯 했다. 하지만 어둠 대신 악취가 우리를 반겼다. 너무 지독한 악취였고, 피비린내도 장난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악”
이연지는 앞에 나타난 엄청난 장면에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물론 그건 남자인 내가 봐도 졸도할 만한 광경이었다.
아까 책에서 보았던 [톱]이라는 고문기술을 사용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자 한명이 거꾸로 매달려서 정확히 음부에서 배까지 몸이 갈린 채 죽어있었다. 아래로 흐른 피는 이미 굳어 버린 지 오래였다.
죽은지는 한참 지난 것 같았다. 악취의 원흉은 찾아 볼 것도 없이 이 시체였다. 왠지 이 여자는 결근하고 있다는 이연지의 선배가 아닌가 싶었다. 아까 잡지사의 책상위에 있었던 애인과 찍은 사진의 얼굴과 비슷했다. 물론 눈앞의 얼굴이 너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정도면 완벽한 증거였다. 그놈의 집 아래에서 이정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걸 경찰이 덮치게 하면 재벌이든 뭐든 발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혹시 몰라서 지하실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신고를 했다. 시체를 발견했다고 말이다. 이제는 사라지기만 하면 된다. 신고를 한 내 기록은 게임시스템의 보호를 받을 테니 안전하겠지.
물론 경찰이 이걸 발견할 때까지는 여기서 기다릴 예정이었다. 혹시 몰라서 명함을 받았던 형사에게도 연락했다. 범인이 누구이며, 이곳으로 오면 다 알게 될 것이라고, 김민욱에 대한 걸 전부 설명해서 문자를 날렸다. 물론 내 번호는 공개하지 않았다.
벽 뒤에 숨어 있다가 경찰이 들어와서 조사가 시작되면, [스톱워치]를 사용해서 감쪽같이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 3억이나 하는 [스톱워치]를 구입해 두었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경찰이라기에는 너무 빨랐다. 그녀를 업어들고 뒤쪽의 공간으로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아무래도 주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연쇄살인마 김민욱이 말이다.
그 남자는 지하로 들어오자마자, 반을 잘라놓은 시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너무 아름다워. 고문당해 죽은 시체는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너도 이제 호텔로 옮겨서 산산조각을 내줄게. 기대하렴.”
소름끼치는 대사를 내뱉으면서 갈려져 있는 여자의 음부에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띠리리리”
그때 하필 품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맙소사, 진동으로 하는 걸 잊고 있었다.
[아저씨, 나 끝났어. 어디야?]
열어보니 예리의 문자가 와있었다. 그래 연회가 끝났으니 저 미친놈도 집으로 돌아온 거겠지. 다만 문자를 조금만 빨리 보내서 이놈이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알게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문자가 온 타이밍은 너무나도 최악이다.
“거기 있었나? 벨소리는 꺼두셔야지? 침대까지 건드려놓고 숨어있으면 모를 것 같나?”
하긴 그랬다. 침대가 움직여서 그대로 문이 열려 있으니 못 알아챌 사람이 어디에 있나. 결국지하를 뒤지던 김민욱과 정면으로 마주쳐 버렸다.
“뭐야. 넌 아까 본 벌레 아니냐? 어떻게 여기에 들어와 있는 거지?”
그러더니 이연지를 보고는 웃기 시작했다.
“호오, 설마 나에게 장난감을 바치는 거야? 좋아, 저 여자는 머리를 쥐어짜서 죽여 볼까? 아니면 살인의자? 하지만 난 남자는 싫거든? 넌 그냥 죽어라. 크하하하하”
그러면서 품안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그래도 일대일의 상황인데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건 권총 때문인 것 같았다. 재벌이기는 해도 경찰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지, 예리처럼 자신만의 경호부대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었다. 경호원 몇 명이 전부겠지. 거기다가 비밀스런 취미 때문에 평소에는 대동하고 다닐 리가 없었다. 그러니 권총을 휴대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전혀 무섭지는 않았다. 인지할 수 있는 권총은 [무형검]을 뚫을 수 없다.
“움직이지 마, 그 여자부터 해체 할 테니까. 야들야들 하게 생겼네.”
“미친놈아. 이미 경찰을 불렀다. 너는 이미 현행범이야”
내 말에 김민욱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시작했다.
“네, 김민욱입니다. 실은 누군가 장난전화를 해서, 저희 집에 경찰을 출동시킨 것 같은데, 시끄러운 게 싫어서 그러니 좀 막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예.”
아놔. 이자식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경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게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뭔가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신고만 가지고 경찰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 리가 없잖아? 게다가 이미 그것도 막아버렸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그런 식으로 기사도 막았나?”
내 질문에 남자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을 보였다. 오히려 나에게 반문을 했다.
“기사라니? 무슨 소리야?”
역시 이놈에게는 방송까지 좌지우지할 힘이 없다는 건가? 그럼 대체 몽타주는 누가 날려버린 거지? 아니 그보다는 이 자식이 예리에게 보내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열불이 터져 나왔다.
“예리도 이런 식으로 죽이려는 건가?”
자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또 다른 질문을 날리자 김민욱은 화난다는 얼굴로 갑자기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물론 [무형검]을 사용하고 있는 나에게는 닿지 않고 총알은 벽으로 날아가 버렸다.
“네깟 놈이 아가씨의 이름을 불러? 그녀를 죽일 수야 없지? 그 여자는 내 결혼대상 이라고? 나에게 유일하게 어울리는 여자랄까. 거기 누워있는 이름만 여자인 고깃덩어리와는 다르다고. 아가씨와 결혼하면 이 세상 모든 걸 거머쥔 거나 마찬가진데, 죽이다니? 뭐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 차가운 눈길이 너무나 좋아. 그래 언젠가는 그녀도 해체해주고 싶긴 하다. 하지만 넌 그만 죽어버려.”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아무 망설임도 없었다.
이놈의 대사 때문인지 이때 나는 너무나 분노가 치솟았다. 예리를 결혼상대로 생각한다는 이 자식의 말에서 살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달려들어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처음으로 써보는 직접적인 폭력이었다. 올라간 체력덕분인지, 김민욱은 내 주먹질에 허공을 날아올라 버렸다. 그만한 위력이 있었다는 거다.
“나..날쳤어..?”
김민욱은 몸을 떨면서 나에게 총을 발사했다.
-타앙
-타앙
하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다시 주먹을 날렸다.
퍼억- 퍼억-
김민욱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때, 때리지 마. 이 새끼야. 하, 하지마!”
“엄마를 때리지 마, 아버지, 때리지 마세요. 끄아아아악..”
그러더니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면서 환각을 보는 듯 손을 허공에 젓기 시작했다.
“하지 마, 때리지 마세요. 아버지...”
어린아이가 된 듯 질질 짜기 시작했다. 정말로 별거 아닌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했다. 어릴 때 학대라도 당해서 그 트라우마가 이렇게 고문을 즐기게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보인 반응을 보면 말이다. 깊게 관여하고 싶은 남자가 아니었다. 침을 한번 뱉어주곤 이연지를 들쳐 업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확정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다시 출동만 한다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어 있었다. 솔직히 저놈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시체 앞에서 잠들어 있는 그 순간 말이다. 24시간은 깨어날 수 없으니 더 그렇다. 이연지를 근처 모텔에 옮겨서 눕혀두었다. 김민욱이 이연지의 얼굴을 봤지만 24시간동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밖으로 나와서 걷고 있는 내 눈앞에 익숙한 중형세단이 등장했다. 몇 시간 전에 탔던 적이 있던 그 차였다. 나는 속으로 절규를 외쳤다. 그녀에게 답 문자를 보내지 않은 걸 이제야 깨달았다. 김민욱을 때리다가 너무 흥분해서 문자를 해야 한다는 기억이 날아가 있던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먼저 보내달라고 말하면서 연회가 끝나면 문자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 바로 대답하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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