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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거리가 조금 되는 거 같아서 택시를 탔다. 차가 막히다가, 뚫리다가 1시간을 반복하고 나서야 원하는 장소로 도착했다.
5층 정도 되 보이는 작은 빌딩에 00잡지사라고 나온 간판이 보였다. 잡지사는 4층을 쓰고 있었다. 아직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정보제공자라고 밝히고 왜 몽타주가 실리지 않았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연지가 아직 퇴근 안했으면 일석이조다. 빌딩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흐윽...흑흑...”
그런데 깜깜한 빌딩안의 계단 쪽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바라보니 사람한명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핸드백을 무릎에 올리고 눈을 부비면서 서럽게 울고 있는 중이었다. 흐느끼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연지였다. 전화를 안 받아서 걱정했었는데,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었나 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처지라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연지씨?”
그녀는 계속 흐느끼다가 나를 알아본 것 같았으나,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울 뿐이었다. 오히려 울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졌다.
“으아아앙”
그리고 더 어린애 같아졌다.
“여기서 왜 울고 있어요?”
“흑흑, 몽타주와 기사가, 안된데요. 안 된데... 흐윽, 히귺”
“울음 뚝! 자세히 좀 말해 봐 바요.”
답답해져서 재촉했으나 아무소용 없었다. 그녀는 그 상태로 2분정도를 더 오열했다. 지쳐서 화가 나려고 할 때쯤이 되서야 간신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울음이 완전히 그친 것도 아니어서 여전히 울먹거리는 말투였다.
“기사를 써서 몽타주까지 첨부해서 줬는데, 편집장도 처음에는 좋다고 했었는데!, 인쇄까지 들어 가놓고 갑자기 정지됐어요. 전화 한통 받더니! 흐윽,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당분간 출근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인쇄까지 넘겼는데 그 시점에서 중단되었다고? 인쇄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정보라는 게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고, 그 누군가가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 잡지사에 입김을 불어넣은 걸까? 그렇다면 아까 통화했던 그 형사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CCTV를 조사하려고 하다가 수사에서 제외되었다던 형사의 말이 떠올랐다. 답답한 상황이다. 누군가 힘을 가진 존재가 개입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 TV뉴스는 사건해결에는 쓸모도 없는 빗나간 분석만을 연발하면서 국민을 희롱하고 있지.
나는 어설펐다. 너무나 어설펐다는 생각이 들었다. CCTV와 몽타주만 있으면 범인이 금방 잡힐 거라고 낙관했다. 아주 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범인 본인이 힘이 있는지, 힘이 있는 인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일단 사진으로 얼굴은 알고 있다. 그러면 대체 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범인이 평범한 연쇄살인마였다면 벌써 해결될 사건이었다. 권력을 가진 범인? 히든미션의 난이도가 높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미 발을 들여놓아서 회피도 할 수 없고, 강제력에 대항하고 싶지도 않다. 미션을 해결해야지 뭐.
나는 울고 있는 이연지의 팔을 잡았다.
“연지씨, 그만 울고 잠시 밖으로 좀 나와 봐요.”
“흐극? 네? 자, 잠깐만요?”
그녀는 힘없이 질질 끌려나와 퉁퉁 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냥 놔두세요! 전 잘린 거나 다름없단 말이에요. 이젠 기자도 아니니까...”
“그러고 끝이에요?”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나의 격앙된 몸짓에 그녀는 놀란 몸짓으로 나를 바라봤다.
“끄, 끝이라뇨?”
“그대로 굴복 할 거냐고요? 기자를 하고 싶다면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열정이 고작 그 정도였어요?”
“그..그게..”
멍한 눈을 계속 깜빡깜빡 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한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쐐기를 박아줬다.
“그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밝혀서 그때 다시 기사를 쓰면 됩니다. 고작 추측기사니까 결국은 이렇게 된 것 뿐이에요. 얼굴을 알고 있으니, 뭐하는 사람인지 밝혀내서 다시 기사를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신 없어요?”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눈가에 묻어있던 물방울을 닦아 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통할까요? 이젠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겁니까?”
내가 반문하자 그녀의 눈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 자존심을 건드린 듯 손을 꼭 쥐면서 소리쳤다.
“포기한적 없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편집장이 저한테 사과하게 만들 거예요!”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역시나 주위의 눈은 신경도 쓰지 않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전의를 불살랐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다시 질질 끌어서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작전회의를 위해서였다. 이연지는 주먹을 쥔 손에 계속 힘을 주면서 의지가 불타오르는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내요?”
다만 표정과는 다르게 의자에 앉자마자 맥 빠진 대사를 내뱉었다. 기자라면서 아무런 인맥도 없는지 전혀 대책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 주제에 수첩하고 노트는 전부 펼치고 손에는 펜을 들고 얼굴은 매우 진지했다.
“혹시 경찰에 아는 사람이라든지 없어요?”
“네? 없는데요..?”
오히려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됐다 이 여자야.
결국 내 인맥을 사용해야 하나? 내 인맥 이래봐야, 경찰의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누나가 전부다. 물론 한 명 더 있긴 하지만 논외였다. 그건 악마와의 계약이다. 목숨을 걸고 부탁할 정도로 몰려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니까 결론은 결국 누나다. 누나에게 사진을 보내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고 해야 하나?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것 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진동에서 벨소리로 바꿔놓은 전화가 울음을 토해냈다. 발신자를 보니 등록된 번호였다. 핸드폰을 선물한 뒤 전화는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항상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오곤 했다.
“여보세요?”
“나한테 와 아저씨.”
“뭐? 그게 무슨 소리?”
“정류장으로 차를 보낼 테니 타고 오면 돼.”
언제나와 같이 일방적인 명령을 하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얜 또 갑자기 왜 난리야?
욕은 나오지만 이미 그녀가 말을 내뱉은 이상 거부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통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이연지를 향해 말했다.
“잠깐 볼일 좀 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 여기라면 사람도 많고 보는 눈도 많으니 별일 없을 거예요. 대신 혼자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같이 범인을 알아내자고 해놓고 혼자 어디가요? 싫어요. 같이 가!”
몸을 일으키는 내 팔을 두 손으로 잡더니 눈을 이글이글 불태우기 시작했다. 절대로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빛에서 느껴졌다.
“이거 안 놓으면 앞으로 정말로 안 돌아올 겁니다?”
“그치만!”
“지인들 한테 몽타주와 비슷한 사람 본적 있는지 물어 보고 있어요. 금방 올 테니까”
“우우우우우!”
볼을 부풀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웬 아양이야 이게.
“싫어요!”
뭔가 좀 태도가 변한 거 같은데? 의지를 불어넣었더니 오히려 의존적이 되었나?
“핸드폰 보면 부재중 전화 있을 거예요. 그거 제 번호니까 무슨 일 있으면 거기로 연락하고, 아무튼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요.”
급해진 나는 그녀의 팔을 살짝 뿌리치고 뛰쳐나왔다.
“이 나쁜 놈아!”
내 뒤통수를 향해 그렇게 외쳤으나 다행히 말을 알아들었는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커피숍에서 나온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 근처 번화가의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시간은 밤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 어디로 불러낼 셈인지 몹시 궁금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이미 차가 마중 나와 있었다.
본적 있는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며 나를 맞이했다.
“타시죠.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뒷좌석으로 들어가자 차는 바로 출발했다. 목적지가 궁금해서 앉자마자 경호원에게 질문을 날렸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실은 지금 정재계 연회가 열리는 도중인데, 아가씨께서 갑자기 모셔오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무튼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연회장? 그런 곳에 나를 왜 부른 거지? 목적지를 알게 되자 궁금증이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돼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내 시야에 곧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익숙하냐고? 차가 들어온 곳은 아침에 나왔던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이리로 오시죠.”
호텔보이가 문을 열어주기에 밖으로 나오니 경호원이 나에게 손짓을 하며 앞장서 걸었다. 뒤를 따라 도착한곳은 2층에 있는 대형 연회장이었다. 문밖에는 많은 경비들이 서있었다. 앞장서던 경호원이 나를 가리키면서 뭔가를 설명하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개방되었다.
안으로 들어오니 정면에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거기엔 [리베트 계획 수립 기념] 이라고 적혀있었다. 나와는 평생 관련이 없는 이야기 일 것이다. 정재계가 합작한 들어봐야 우울해지는 계획이겠지.
“아가씨는 저쪽에 계십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향해 경호원이 말했다. 그렇게 예리가 있는 곳을 가리킨 다음 고개를 꾸벅이더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그가 가리킨 곳을 향해 눈을 돌리니 내가 서있는 방향에서는 등만 보이는 한 남자와 마주 보고 이야기 하는 여자가 보였다. 예리였다. 얼굴표정이 별로 좋아보이지가 않았다. 계속 미간을 좁히면서 짜증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앞에 있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나가 있으라는 건가? 확실하게 하려고 나도 문밖을 향해 손을 가리키자 그녀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기껏 들어왔더니 나가라니? 물론 나가라는 데야 별 수 없었다.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연회장 밖으로 나와서 벽에 기대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고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나에게 걸어오더니 갑자기 짜증을 냈다.
“아저씨, 왜 이렇게 늦게 와?”
“늦다니? 전화 받자마자 바로 온 건데?”
“몰라. 여기 너무 재미없어. 지루해. 짜증이 폭발해 버릴 것 같아서 아저씨를 부른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느려터지게 나타나니까 오히려 짜증이 배가 된 기분이야.”
“짜증이 왜 폭발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흠, 일단 서서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러니 1층 홀로 갈래?”
“늦게 온 주제에 명령하는 거야?”
“권유 하는 건데요?”
나는 그냥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마도 거부할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손을 뿌리쳤을 텐데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나를 따라 1층 홀로 내려왔다. 일단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그녀를 앉혔다.
“그래서, 뭐가 그리 짜증이 나는데? 나 때문은 아니지?”
“다 짜증나. 원래 할아버지가 계획한 일인데 직접 나와야 할 텐데도 나한테 미루고, 오늘따라 무조건 나보고 가라는 거야. 그러니 짜증이 안 날수가 있어? 항상 자기 맘대로 지만 오늘따라 정도가 더 심했단 말이야.”
그녀는 가족에 대한 정은 1밀리그램도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말투로 말하더니 나를 올려봤다. 아닌가? 냉혹하긴 한데 조금 나한테 투정을 부리는 거 같은 기분도? 에이 설마.
“너무 짜증이 나서 머리아파. 그래서 아저씨를 괴롭히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부른 거야.”
미간을 계속 좁히는 모습이 확실히 머리가 아프긴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살기가 있었다. 전에 한 번 그녀에게 시전 한 적이 있었으나, 로드를 해버려서 흐지부지 되 버렸던 필살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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