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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을 태운 차는 병원으로 급하게 이동했다.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경호원들의 연락을 받았는지 병원장이하 많은 의사들이 병원 앞에 나와 있었다.
예리는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 모두 죽었다고 생각해.”
그녀와 일면식이 있는 병원장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영준을 실어서 급하게 움직였다. 깊은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에 손쉽게 치료를 마친 후 최상층의 VIP실로 옮겨졌다. 그 소식을 들은 예리는 가만히 지연을 노려보고 있다가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좀 더 안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취약 같은 게 사용되어서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 진지하게 듣다가 딱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의사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을 한 후, 경호원들이 준비한 의자에 앉아서 기어코 병실까지 따라온 지연을 계속 주시했다.
“너, 나랑 내기할래?”
예리는 걱정스럽게 영준을 바라보고 있는 지연에게 난데없는 제안을 꺼냈다. 그걸 들은 지연이 예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기요?”
“너하고 나, 아저씨가 누구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
“그건..”
“아까 아저씨가 치료받는 중에 들었어. 아저씨를 습격한 건, 전에 소탕했던 사이비종교의 잔당이래. 바로 모두 죽여 버리라고 말했어. 전에 관심이 없어져서 신경을 꺼버렸더니 이런 일이 생긴 걸 후회하고는 있어.”
“아, 그놈들 이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때도 아저씨랑 있었던 거야? 예리는 분노가 포화상태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런 거 용납할 수 없다. 내 물건이다. 아저씨는 내꺼야.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 따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이 여자는 싫었다. 아저씨랑 같이 있는 게 아무 이유 없이 너무나 싫다. 아저씨가 나에게 복종을 맹세한 걸 모르는 멍청한 여자 같으니.
“그건 내가 알바 아냐. 나 내기를 하자고 했어? 나, 은근슬쩍 잔당이 잡히지 않은 척 연기하면서, 네가 잡혀간 것처럼 꾸밀게. 그러면 아저씨가 누구 곁에 있으려고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겠지? 은근슬쩍 장소와 헬기까지 제공할 거야. 그걸 타고 아저씨가 가버리면, 너의 승리. 내 곁에 계속 있으면 나의 승리야. 알겠어?”
지연은 예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내기가 되는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동생과 나의 관계라면 당연히 자신에게 와 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물며, 그녀는 위기상황도 아니고, 자기는 목숨이 위험한 걸로 연출되는데, 당연히 승리가 보이는 내기였다.
“그건, 뭐가 걸려있는 거죠?”
“후후. 너한테 가면, 널 살려줄게. 아저씨하고 만나도 좋아? 하지만 나한테 남으면, 다시는 아저씨한테 접근하지 마. 접근 하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알아.”
지연은 자신이 있었다. 눈앞의 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자에게 거스르는 게 무었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지도 않았다. 여기서 막무가내로 영준을 대리고 나갈 수도 없는 거니, 내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내기는 시작된 거야. 미안하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 집에 가 있어줬으면 좋겠어.”
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짓을 했고, 경호원들이 달려와 지연의 팔을 양쪽에서 잡았다. 지연은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는 그대로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녀가 나간 뒤 예리는 경호원을 불러 들였다.
“섬을 하나 준비해. 자그만 섬으로. 그리고 선택을 하게 만들 꺼야. 나는 잠든 척 할 꺼니 까 그렇게 알아. 잠든척 하면 아저씨한테 저 여자가 섬으로 끌려갔다고 말해. 아저씨가 나를 선택하면 그 순간 내가 이겼다는 걸 설명하고 좌절에 빠진 저 여자를 죽여.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저 여자를 선택해서 섬으로 가면, 섬으로 저 여자도 끌고 가서 아저씨 눈앞에서 죽여 버리는 게 좋겠어. 아저씨를 헬기에 태워 보낸 후에, 바로 쫒아갈 수 있도록 저격수를 준비해둬. 아저씨 눈앞에서 저 여자가 죽으면, 그 후엔 아저씨야. 당연히 날 배신한 아저씨도 살려두지 않아. 그리고 뭔가 이상한 능력이 있는 거 같으니 섬에 가둬 놓는 게 가장 좋아. 물론, 만약이다? 아저씨는 날 선택할 꺼니 까. 당신들의 임무는 그냥 저 여자만 죽이는 되는 간단한 일이 될 걸?”
예리는 그렇게 명령하곤 의자에 앉아서 멀뚱히 영준을 쳐다보았다. 해외에 있는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이상한 공허함과 지루함은 없어져 있었고, 다시 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복종할 테니까, 라고 말했던 지난 번 그의 대사를 떠올렸다.
그 후 얼마 있어 예리는 졸기 시작했다. 시차는 물론이고, 실제로 해외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졸음이 쏟아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영준은 깨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이후 연기를 시작했다.
원래부터 연기에는 자신 있는 그녀였다. 게다가 영준은 이미 한 번 그 연기에 속은 적이 있었다. 영준이 예리를 매춘녀라고 알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후 정치가의 집으로 이동해서, 사이비 종교의 집단의 이야기가 나오자, 마치 처음 듣는 것 처럼 미리 입을 맞춘 경호원들과 훌륭하게 연기를 마쳤다. 이젠, 잠든 척 했을 때 경호원들이 지연의 행방을 흘리고, 아저씨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정치가의 집에서 나와 근처 빌딩에 있는 헬기장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그 와중에 크기만 했던 자신심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그 여자를 선택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걸 본 영준이 머리를 지압하겠다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건, 일단은 참아봐. 생각이 있으면 빠르게 행방을 알아내 주겠지. 그보다 머리아파면 지압해 줄게, 머리에 손대도 돼?”
뭐라고 대답할지 살짝 망설였다. 마음이 갈등을 하기 시작한 거였다. 함정을 파지 않는 다고 해놓고, 함정을 판 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했지만, 자신만 선택하면 그만한 보상을 해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틈에 영준은 가만히 있는 게 승낙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갑작스럽게 다정한 손길을 받은 예리는 자기도 모르게 목욕탕에서처럼 또 신음소리를 흘려버렸다.
“꺄앙”
이런 소리를 낸 게 벌써 두 번째였다. 이 남자는 정말 가끔 자신을 무방비하게 만든 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단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지압을 해주었는데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손끝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예리는 다시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이건 대체 무슨 현상인지 제발 좀 알고 싶었다. 그런 예리를 향해 지압을 끝낸 영준이 말했다.
“끝났어, 좀 어때? 후후”
이상한 기분. 뭔가 굉장히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손을 바라보았다. 혹시 저 손으로 그 여자도 만진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눈이 뒤집혀 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손을 들고는 잘라버릴까 라고 물었다. 그건 사실 반은 진심이었다. 다른 사람을 자신에게 한 것처럼 기분 좋게 만드는 장면을 생각하니 차라리 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그걸 실행할 마음 같은 건들지 않아서 농담이라고 얼버무렸다.
대신 한 번 더 마사지를 명령하고, 이때다 싶어서 말했다.
“아저씨, 나 졸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꾸벅이며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영준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다른 사람의 곁에서 졸아본 기억조차 없었다. 이 사람이 처음이다. 왠지 마음속이 간질간질 거려서 정말로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이대로 설마 그 여자를 구하러 뛰쳐나가면, 정말로 죽일 수 있을지 의구심까지 들었다. 목숨만은 살려줄까? 아니다. 배신을 한 본보기는 죽음뿐이다. 그것이 설령 어떤 사람이라도 동일하다.
그래서 조금 기회를 주기로 했다. 힌트를 주기로 한 거였다.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영준이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으응...아저씨..나 배신하면 안 돼?”
그래, 이 정도면 너무나도 큰 힌트였다.
“죽어버려, 아저씨..”
거기에 한마디까지 더 덧붙여 주었다. 말을 이어붙이면 자신을 배신하면 죽일 거라는 직접적인 힌트였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그 여자에게 달려가지 않겠지?
하지만 그 예상은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영준이 차에서 내래서 경호원들과 하찮은 거래를 하고 있을 때 예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눈이 뒤집어 지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분노를 하면 이성을 잃는지,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기분에 잠시 차에서 몸을 떨고 있는데, 갑자기 영준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리는 그대로 진짜로 잠들어 버렸다. [수면스프레이]의 힘이었다.
헬기가 영준을 태우고 날랐고, 곧바로 명령받은 데로 경호원들이 예리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아가씨, 바로 추격할 수 있게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가씨?”
차문을 열고 여러 번 경호원이 불렀으나 예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아이템의 힘이 그녀를 강하게 잠들게 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숨을 살폈으나, 아무리 봐도 그냥 잠든 것이라 경호원은 할 수 없이 차문을 닫고 나왔다.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추격은 어떻게?”
“일단 나둬야지, 아가씨께서 주무시는데 네가 깨워보던지?”
“그건 좀...”
“일단 섬에 가둬놓으면 일어나셔서 처리하겠지..”
경호원들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차를 둘러싸고 예리가 일어날 때까지의 경호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
“아가씨?”
“응?”
예리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경호원을 쳐다보았다.
“조금 멍하게 계시 길래 불러봤습니다.”
“아? 그랬어? 괜찮아. 아저씨 행방은?”
“그게, 더 찾을 필요도 없이 바로 저기 차도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예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도에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웬일로 단 번에 사람을 찾아낸 건지 경호원들을 오랜만에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파리에서 도착하자마자 헬기에서 내려, 차로 이동하자마자 아저씨를 찾아내다니, 위치추적이란 게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저씨, 안녕? 히히. 한 번에 찾아내다니, 경호원들이 웬일이지?”
이 사람의 맹한 얼굴을 보자, 그렇게 지루했던 파리에서의 일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고 괜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모습이 조금 놀랍기 까지 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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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로드로 인해 변하는 주인공과 서예리의 상황을 표현해 봤습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부터, 이야기는 얀루트를 타고 있었고, 얼떨결에 뿌린 [수면스프레이]가 아니었으면 얀루트로 이야기는 종료되었겟죠 ㅎ
결국 로드로 또 현실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예리와 누나가 공존하는건 좀더 예리가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차마 주인공의 기분을 거스리고 싶지 않게 될때나 가능하겠죠.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번 챕터는 너무 사랑쪽에 치우쳤고, 다음챕터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사건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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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