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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나는 위화감이 들었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주의해서 살펴봐야겠지? 나는 그 정치가를 유심하게 관찰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부인도 현관으로 나와서 우리에게 인사했다. 소파로 안내받아서 일단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누나가 정치가에게 말했다.
“의원님, 제가 잠시 나갔던 사이에 다른 전화는 없었나요?”
“없었다네...”
정치가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지칠 대로 지친 아저씨였다. 부인이 곧바로 음료를 가지고 다가왔다. 커피였다. 나는 일단 그걸 한 모금 마셨다. 로드하기 전에 키스를 하도 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누나는 커피를 노려다보다가 부인을 향해 한마디를 꺼냈다.
“저기..커피 말고 우유를 주시면 안 될까요?”
또 시작이구만.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유괴당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부인에게 너무한 거 아냐?
“그..죄송합니다. 우유는 없는 것 같아요”
부인이 누나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러자 포기한 듯 했다. 얼굴이 시무룩했다. 물론 누나가 커피를 입에 대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애써 무시하곤 커피를 다 마신 후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답게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비싸 보이는 그림도 여러 점 걸려있었다.
그리고 정치가 선생은 계속 안절부절 못하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몰골이나 심리상태를 봐도 누나의 말과는 달리 별다른 위화감은 없어 보였다. 일단 조금 더 집을 살펴보기 위해서 정치가에게 허락을 구했다.
“의원님? 화장실 좀 사용해도 될까요?”
“화장실?? 그건 주방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되니 마음대로 쓰시게나..”
그는 손짓으로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누나에게 살짝 눈짓을 하고 소파위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누나는 내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갑자기 정치가에게 말을 걸어서 주의를 돌려주었다.
부인은 식탁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다가, 응? 왠지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착각인가? 거기에 더해 내가 화장실로 다가가자, 갑자기 주방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열더니 뭔가 야채를 잔뜩 꺼내 들었다.
이상하게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보고 말았다. 냉장고 안에는 분명히 우유가 있었다. 우유팩이 앞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보아하니, 이집 아들이 먹던 우유로 보였다. 아들 거라서 주지 않은 건가?
부인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냉장고를 닫고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위화감. 누나가 그렇게 말했던 게 갑자기 이해가 갔다. 정치가 선생에 비해서 이 부인의 행동은 너무 이상했다. 일단 가장 이상한 건 옷차림이다. 남편에 비해서 마치 남에게 보여 주려는 듯,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화장까지 완벽했다. 거의 풀 메이크업 수준이었다. 결혼반지는 끼고 있었는데 뭔가 어색해 보였다. 아깐 분명히 나와 누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 힐끗 거리는 게 영 부자연스럽다.
일단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거실의 풍경. 수많은 그림과, 장신구들을 떠올리니 거기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들의 사진이나, 가족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정치가 선생은 아들이 걱정되는지 제대로 잠도 못 잔 몰골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생각하는데 사진하나 안 찍어줬나? 가족사진은커녕 부인하고 찍은 사진도 없었다. 원래 사진을 안 좋아는 걸 수도 있지만, 차유린의 집처럼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집이 보통 사진이 없곤 했다.
권력다툼에 인한 유괴도 아니고,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데도 경찰에 절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도 이상했다.
요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나? 갑자기 생각이 번뜩였다.
사진하나 없는 집. 부자연스러운 부인의 행동. 그리고 정치가선생은 우리가 집으로 들어온 후 부인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 한마디도 말이다.
이런 모든 걸 종합해 볼 때, 저 부인은 진짜 부인이 아니고 범인과 한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위화감이 해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쉬운 사건인데? 나는 실실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누나에게 잠시 복도로 나가자고 말했다.
“응? 갑자기 왜?”
누나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모으자 정치가 선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갑자기?, 아, 아니네. 맘대로 하시게..”
누나의 말에 뭔가 말 하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주방 쪽을 슬쩍 쳐다보더니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그걸 보니 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누나를 끌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나는 내가 느낀 걸 설명했다. 그러자 누나는 화색이 돌더니 말했다.
“맞아, 나도 부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정말 냉장고에 우유가 있단 말이지? 아까부터 목말랐는데, 마시고싶다아..”
“누, 누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이 못 말리는 누나 좀 어떻게 해주세요. 힘이 빠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지적하자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그럼, 저 여자를 제압하면 되는 건가?”
“그렇지. 그런데 저 정치가 선생은 진짜 맞아? 저 사람도 연기하는 거 아냐?”
“그럴 이유가 없지 않아? 정치가선생까지 가짜면 왜 유괴를 한 거고 이야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하긴 그랬다. 부인이 정치가를 감시하고 있는 게 가장 타당하고 이치에 합당했다. 그래서 경찰에도 신고 못하고 있던 게 아닐까? 지금도 신고 못하게 하는 거고. 바로 옆에서 감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들어가자마자 누나가, 저 여자가 찍소리도 못하게 빠른 속도로 기절시켜 버릴게”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면스프레이가 가장 좋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불가능하다.
“그럼 누나도 화장실 가는 것처럼 해서, 바로 뒤에서 덮쳐.”
“응. 그럴게”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의 손에는, 지팡이로 위장한 애검이 들려있었다.
“저도 잠시 화장실 좀..”
정치가를 향해 그렇게 말한 누나는 슬그머니 주방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바로 부인으로 위장했다고 생각되는 여자를 뒤에서 내리 찍었다. 지팡이로 말이다. 물론 지팡이에서 검을 뽑지는 않았다, 검을 뽑아 내리찍으면 바로 죽는다.
강한 일격에 그 여자는 바로 쓰러져 내렸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다. 그걸 보고 있던 정치가가 쏜살같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러더니 종이 같은 걸 가져와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잘했네!! 안방의 장롱에 아내와 아들이 잡혀있네, 남자한명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으니, 조심하게. 그놈이 밖의 상황을 들으려고 도청을 하고 있을 수 있으니 글로 적었네. 자네들도 목소리를 내지 말게나]
그걸 본 나와 누나는 서로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커다란 장롱이 있었다. 확실히 이정도면 몸집이 작은 아들과 성인 두 명이 충분히 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나는 지팡이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누나의 검날이 형광등 빛에 번쩍였다. 뽑은 검을 휘둘러서 곧바로 장롱 문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장롱 문은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두 쪽으로 갈라진 문짝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부인과, 어린아이를 피해서, 칼을 든 범인의 팔을 그대로 베어버린 것이다. 부인은 그 순간에 아이의 눈을 막으면서 처참한 광경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굉장한 판단력 이었다. 팔이 잘린 고통에 범인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러 나와 뒹굴었다.
순식간에 부인과 아이가 자유를 되찾았다. 정치가는 고맙다고 누나에게 연신 인사하면서 부인과 아이를 얼싸안았다. 훈훈한 장면이었다. 정치가가 불렀는지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한바탕 엄청난 소란이 휩쓸고 갈수도 있었지만, 정치가 선생이 힘을 쓴 건지, 범인들만 체포해서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범인 중 한명은 병원으로 급하게 이송되었다. 팔만 잘려서 목숨에는 지장은 없을 것이다.
경찰이 돌아가고, 집안이 진정되자 우리는 정신없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아파트를 나왔다.
“역시, 우리 동생, 굉장해.”
“아니야 누나, 뭔가 간단한 사건이었어.”
“후후후, 덕분에 이제 당분간 쉴 수 있으려나?”
누나는 기분이 좋은지 웃고 있었다. 누나의 손에는 냉장고에서 몰래 빼온 우유팩이 들려있었다. 아, 냉장고에 우유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누나, 대체 몇 개를 가져 온 거야?”
칼을 옆구리에 끼고 우유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누나에게 물었다.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응? 냉장고에서 우유가 많던걸? 10팩 정도 있었어, 그래서 2개정도는 티 나지 않을까 하고, 뭐 보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10팩??”
뭔가 이상했다. 다시 위화감이 들었다. 오늘은 왠지 위화감의 연속이었다. 누나정도의 우유킬러가 흔할 리가 없다. 그러니 유통기한이 긴 편도 아닌 우유가 가정집에 10팩이나 들어있는 건 너무 이상한 광경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건이 너무 쉬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으로 위장한 범인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도, 집안에 부인과 아들을 숨겨두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건 그냥 단순한 강도사건 아닌가? 연락을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돈을 바로 건네주고 부인과 아들의 목숨을 구하거나, 그럼 될 일이지, 해결사까지 부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게다가 경찰은 절대로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 해결사인 누나를 부른 것도 이상했다. 범인이 옆에서 바로 감시하고 있는데 해결사를 어떻게 불러? 거기에 뭐 친척으로 위장한 것도 아니고 누나는 대놓고 납치를 해결하러 왔다고 광고하듯 정치가와 대화를 했었다. 그걸 보면 친척이나 지인인 척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도 아닐 것이다.
이건 유괴사건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뭐지? 냉장고에 가득한 우유팩. 부인으로 위장한 범인은 일부러 우유팩을 보여준 건가?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잠시 복도로 나간다고 할 때 정치가가 범인을 슬쩍 쳐다보았고, 그 후에 복도로 나가는 걸 허락했다. 보통 범인 입장에서는 어딘가 도움을 청하러 갈 수도 있으니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게 정상아냐?
이상했다. 너무 쉽게 풀려서 기고만장해 있었는데,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것투성이다. 마치 나와 누나를 사건으로 유인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일부러 수상하다는 걸 들킨 것 같은 느낌이다. 위화감을 뿌리면서 말이지.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하지만 한 번 울리더니 끊어졌다. 왜 걸자마자 끊어?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비통지가 아닌 거 봐서 예리는 아닌 거 같고, 설마 이 타이밍에 민유리? 실수로 끊어 진건가? 혹시 다시 울리면 바로 받을 생각으로 전화를 손에 든 상태로, 세이브를 하려고 창을 불러냈다. 세이브를 해놓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서 이상한 점들을 해결하는 게 좋을 듯 보였다.
뭔가 나도 모르게 히든미션이 시작된 건 아니겠지? 공략대상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히든미션이 튀어나오는 건 시스템상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너무 사건이 복잡하고 이상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다행이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 범인으로 위장한 여자의 행동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작위적이었다.
나는 일단 누나와 상의해 보려고 시선을 누나에게 돌렸다. 누나는 우유를 다 마신 후 차문을 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대로 차가 폭발해 버렸다. 불꽃이 일면서 차문이 차도로 날아가고 차가 튀어 올랐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렸다. 앞에 있던 누나는 그대로 폭발에 말려들어 버렸다. 불길이 치솟고 연기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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