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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큰 욕탕에는 가장자리에 계단식으로 밟거나 앉을 곳이 존재한다. 나는 그곳에 앉아 몸을 담근 상태였다. 즉, 상체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내 옆으로 오더니 나와 똑같이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여기 어때? 나무로 만든 욕탕이라 향기 좋지 않아? 원래 완전히 허름했는데 내가 손 본거야”
어쩐지 분위기가 너무 좋은 목욕탕이었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갑자기 알몸으로 나타난 저의가 뭐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또 무슨 함정을 판 건가? 함정은 이제 안 파겠다고 말했었는데? 그녀가 약속을 지킨다고 할 만한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러고 보니 상처는 어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백지장 같은 머릿속에서 문득 찔렸던 상처가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팔을 살펴보니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물에 닿으면 안 좋은데, 씻는 거 무리 아니야?”
다행히 지금은 나와 같이 계단에 앉아 있으므로 상체는 물에 잠기지 않은 상태였지만 물에 닿을 위험은 굉장히 높아 보였다.
“괜찮아. 그보다 아저씨, 내 몸 어때?”
갑자기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도발하듯이 아예 내 허벅지에 앉아서 나와 밀착해 버렸다. 그녀의 엉덩이가 내 하체를 의자삼아 앉아 마주보고 있는 상태가 되 버렸다. 이대로 섹스를 하면 이게 바로 대면좌위였다.
“너..너무 붙은 거 아냐? 또 무슨 함정을 파려고 그래?”
“후후. 함정 같은 거 이제 안판다고 하지 않았어? 못 믿는 거야?”
“그럼 지금 뭐하자는 건데?”
“딱히 아무것도?.. 그보다 내 몸 어떻냐니까?”
어떻긴, 마른 듯 하면서도 살집이 있는 허벅지와, 그 위로 올라오면 매끈한 허리, 거기에 볼륨 있는 젖가슴과 분홍색으로 퍼져 있는 유두가 매력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리고 팔에 화상자국. 그러고 보니 화상자국은 역시 꾸민 게 아닌 거였다. 진짜로 화상자국 인가 보다. 등에 있던 흉터는 그린 것 인 듯 사라졌으나 화상자국만큼은 처음 만났던 모텔 방에서 봤던 것과 동일했다.
“물론, 아름답지. 이렇게 섹시한 가슴, 만지고 싶어 미칠 정도야”
“그래?”
그녀는 내 대답에 기분 좋은 듯 보조개를 내보였다. 저 보조개는 정말로 마음속에 웃을 때 나타나는 그녀의 특징이다.
“하지만, 안 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막았다.
“만지는 건 허락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안 돼. 아저씨, 물건이 지금 내 아래에서 커지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참, 흥분 좀 하지 마?”
“그럼, 몸을 떨어뜨려 주던지..이게 무슨 고문도 아니고, 이렇게 밀착돼 있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후후후. 고문인데? 말 그대로 고문이야 아저씨”
“그리고 몸매 감상에서 하나가 빠졌잖아? 내 화상자국 어때?”
그리고는 칼에 찔린 반대편의 커다란 화상흉터, 즉, 살이 짓이겨진 그로테스크한 흉터에 대한 감상을 물어왔다. 하지만 그 감상은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딱히 흉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 때 모텔에서와 동일하다.
“그때 모텔에서 말했잖아. 아무 느낌 없어. 그냥 흉터는 흉터일 뿐 아니야?”
“그래?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해준 남자, 없었는 걸? 이거만 보면 무슨 성욕이 사라진 마냥 냉담한 얼굴을 하는 거..”
“저번에도 분명히 말했잖아.”
“아니야. 정정할게”
“뭐? 역시 별로야? 흉터 지웠으면 해?”
“그건 네 맘이지만, 별로라는 게 아니고, 너의 일부니까 흉터도 아름다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흉터를 한손으로 가만히 만지다가, 아예 얼굴을 들이대서 살짝 핥기 까지 해보였다. 흉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내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꺄앙..”
그녀는 답지 않게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더니 나를 밀치고 일어났다. 뭔가 얼굴이 달아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욕조물이 뜨거워서 그런가?
“나, 만지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지? 거, 거기에 핥기 까지 해?”
“아니 그러니까, 가슴을 만진 것도 아니고, 니 흉터가 그만큼 그것도 너의 일부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녀는 내말에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 눈빛이 너무 오묘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더니 욕조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의아해진 나는 그녀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예리야!!”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려고 했으나 그녀의 말이 내 걸음을 막아섰다.
“나, 기분 안 좋아. 쫒아 오지 마.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따라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명령하더니 목욕탕 밖으로 떠나가 버렸다. 무슨 감정의 기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따라오지 말라니 갈수도 없어서 샤워부스로 가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좀 더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기분이 찝찝해서 흥이 나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다며 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화상자국 좀 핥았다고 저렇게 될 줄이야.
대충 머리를 감고, 몸을 비누로 씻은 후에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경호원이 서있었다.
“저기, 예리가 뭔가 남긴 말 없어요?”
“나오면 사랑채로 데려가라고만 하셨습니다. 식사도 그리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요?”
같이 밥 먹을 기분도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로 기분이 상한건가? 그래도 쫒아내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대체 알 수 없는 여심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하고 있는데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바로 씻은 후라서 그런지, 그 바람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산책 좀 하고 들어가도 됩니까?”
“상관없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경호원의 말에 나는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이라기 보단 화단이랄까. 여러 가지 꽃들이 심어있었다. 거기를 지나 행랑채라고 소개한 커다란 건물을 따라 위로 걸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라고 한 주제에, 뒤에서 감시하듯 따라오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집안에는 CCTV가 없나요?”
“네. 주인어른의 방침 상, 집안에는 없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에 하나가 있고, 드나드는 사람을 찍기 위해 정문에 하나 있을 뿐입니다. 주인어른이 CCTV에 찍히는 걸 많이 싫어하셔서 두 곳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없습니다. 다만 정문 밖에는 외부출입자를 감시하기 위한 CCTV로 도배되어있습니다. 담벼락을 위에서 바깥쪽을 찍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집안은 많은 고용인들과 저희들의 눈까지 피해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서 사실상 CCTV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저희 경호요원들은 집안 곳곳에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뭐 그건 그런 거 같았다. 목욕탕이든, 어디든 가는 길목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듯 꼭 누간가 지켜서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많은 경호원과 고용인들을 전부 매수라도 하지 않는 한 몰래 움직이거나 출입하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럼 새벽은요?”
“마찬가지로 새벽조가 투입됩니다. 특히나 아가씨께서 새벽에 활동하는 걸 즐기셔서, 오히려 요즘에는 새벽에 더 경호가 강화되어 있습니다.”
뭐 어찌되었든 CCTV가 없다고 해서 몰래 움직이는 건 불가능 하단 말이었다. 역시 진범은 고용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경호원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CCTV에 대해서 설명해주던 경호원이 내 옆으로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자유롭게 산책은 가능하시지만, 이 앞은 아가씨의 방이 있습니다. 이 안쪽으로는 고용인이라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원이 확실한, 그리고, 어릴 때부터 키워진 극소수의 고용인과, 경호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례지만 아가씨께 출입하셔도 좋다는 허락은 듣지 못했습니다.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딱히 그녀를 보러 온 것도 아니었다. 기분 상했다며 들어가 버린 여자다. 지금은 그냥 두는 게 나았다. 출입금지라니, 어쩔 수없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서 그만 사랑채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고용인으로 분해서 스파이가 잠입 했더라도, 서예리의 근처로 웬만해서는 접근 할 수 없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왕 진범이 고용인으로 가장해서 잠입했다고 한다면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암살 같은 건 왜 노리지 않은 건가 궁금했는데 조금 의문이 해결된 기분이었다.
사랑채로 돌아와 서류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으나, 민유리는 보이지 않았다. 언니가 사용했다던 행랑채의 방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언니가 지내던 곳에 들어갔으니 정신이 나가 있으리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되어서 그냥 나두기로 하고 혼자서 서류를 뒤적거렸다.
아까 대충 추리긴 했지만, 사건발생시, 일했던 고용인들 중에, 2~3년 안에 들어온 신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다행히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6명 정도였고, 아직 못 뒤진 서류를 뒤지면 조금 더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귀찮았지만 남은 고용인 명부를 더 뒤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파일로 정리되어있으면 더 쉬울 텐데, 일일이 서류를 살피자니 고욕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명부를 뒤졌으나, 결국 추려진 건 아까 그 6명이 전부였다.
그래서 일단 그 명부를 두고, 사건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대한 서류들로 손을 옮겼다. 읽어보니 2~3년 된 신입을 찾지 않더라도 대충 용의자는 추려져 있었다. 뭔가 헛수고를 한 기분이었다.
『고용인 살해사건 및 문서유출사건에 대한 보고서
사건당일
고용인중 이상진 백용진 민유나가 사망함.
사망추정시간은 21시~22시 사이로 밝혀짐.
그중 살해된 이상진은 빼돌린 서류를 가지고 있었음.
안채는 주인어른이 없을 때만 청소를 하게 되어있음.
주인어른이 계실 경우 그 집사2명을 빼고는 그 어떤 고용인도 출입불가.
따라서 당일 날, 해외로 주인어른께서 출타한 때를 노린 것으로 보임.
이날은 아가씨도 해외에 나가계신 중이셨음.
평소보다 경호원의 숫자는 1/3정도. 나머지는 아가씨와 주인어른을 경호하기 위해 출타.
청소 중에 안채에 서류가 들어있는 금고로 접근한 걸로 보임.
이날 청소담당은 총 7명.
보통 신입이 안채청소에 붙여지는 일은 적으나, 주인어른께서 해외 체류기간이 길었던 관계로 많은 고용인들이 불려나간 바람에, 청소담당은 평소와 다르게 급조되었음.
7명중에 2명은 이날 사망한 이상진 백용진
하지만 민유나는 청소담당에 껴있지 않았음.
원래는 민유나가 청소 담당이었으나, 이날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지수연이 대신 들어간 것으로 밝혀짐.
청소를 담당한 7명중에, 죽은 2명을 제외하고 범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남은 5명을 집중적으로 조사함.
그중 서류를 들고 있던 이상진은 공범 같은 존재로 파악. 뭔가 트러블로 서류를 넘겨주지 않다가 싸움이 나서 살해한 걸로 추정 되어 짐.
범인으로 떠오른 건 이날 청소를 한 5명.
하지만 5명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가 존재.
5명 모두 이상진 백용진 민유나가 살해당한 사망추정시각에 다수의 고용인들과 함께 식사 중이었음. 목격자 다수. 강력한 알리바이가 존재. 도중에 빠져나간 사람도 없음.
5명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이뤄졌지만 결국 증거를 찾지 못함..
집안을 뒤엎듯이 수색하였으나 이상진이 가지고 있던 서류가 안채에서 없어진 서류 전부라서 해서, 결국 문서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사건은 덮으라는 명령을 받음. 』
아우 머리아파. 짜증이 몰려왔다. 미궁에 빠질만했다. 무엇보다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너무나 완벽했다. 이들 말고 안채에 출입한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안채를 경비하는 경호원들의 눈이 호구가 아니고 안채 입구에는 CCTV까지 있다. 5명중에 서류를 빼돌리고, 3명이나 되는 사람을 살해한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상진이 서류를 가지고 있어서, 사건은 더 미궁으로 빠진 듯 했다. 이상진은 그날 안채 청소담당이기도 했고, 당연히 서류를 가지고 있었으니 가장 의심되는데 죽어버렸다. 그럼 안채에서 서류를 빼돌린 건 이상진이고, 살해한 건 또 다른 별개의 사건일까? 그렇다면 청소를 담당한 저 5명에게 알리바이가 있는 것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최근에 이상진이 가지고 있던 서류가 외부에서 공개되었다고 말했다. 그날 유출된 걸로 봐도 타당하겠지. 그럼 두 사건이 별개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결국은 미궁이었다. 그날 청소를 했던 5명중에, 결국 범인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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