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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뒷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서예리에게 하듯 공손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옆에서 차를 보며 놀라고 있는 민유리를 먼저 태우고, 나도 연달아 올라탔다. 그러자 문을 열어주었던 경호원이 앞좌석으로가 앉았고 곧 바로 차는 출발했다.
“예리는 집에 있나요?”
내가 물어보자 경호원은 바로 대답했다.
“아가씨께서는 지금 나가 계십니다. 먼저 손님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아 예..”
뭐 전화로도 먼저 가있으라고 했었다. 바쁜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민유리는 경호원과 차의 분위기에 압도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꽈악 쥐고 있는 게 뭔가 부자연스러워서 물었다.
“왜 그래? 긴장돼?”
“그것보다는...곧 언니가 일하던 곳으로 갈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좀 떨리는 것 같아요”
하긴 그럴 수도 있었다. 언니가 죽은 곳이기도 하고, 그녀에게는 감회가 새롭겠지. 언니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어진 그녀를 두고 창밖을 바라봤다. 서예리의 집에를 다 가게 되다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차는 한참을 달렸고 교외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곧 저택이 나타났다. 난 막연하게 영화에서 나오는 엄청나게 큰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거대한 저택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전통적인 가옥이었다. 마치 옛날 조선시대의 고관대작들이나 건축할 수 있었다는 99칸의 대저택 같은 느낌이었다. 기와지붕이 뭔가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경복궁 같은 궁궐의 느낌이랄까? 그거보다는 규모가 작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사람을 압도시켰다.
게다가 전통가옥이라도 설비는 최신식이겠지? 할아버지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집도 그런 듯 보였다. 대문에서 차가 멈췄고 곧바로 경호원들이 차문을 열어주었다. 어느덧 어두워진 하늘아래 대문 앞 등불이 차 앞을 밝혀주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곧바로 안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정원이 보였다. 경호원은 나에게 집을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저 안쪽 건물은 안채입니다. 주인어른이 사용하시는데, 외국에 나가 계시니 다행히 인사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예리의 할아버지면, 정말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굳이 만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경호원은 계속해서 그 앞에 있는 기와지붕을 가리켰다.
“저 건물이 아가씨께서 쓰시는 곳이고, 옆에 보이는 게 머무시게 될 사랑채입니다. 그리고 옆으로 길에 늘어선 건물이 고용인들이 행랑체입니다. 인원이 가장 많이 사용하다 보니 제일 길고 커다랗죠. 곳곳에 안뜰, 뒤뜰과 작은 연못이 있는데 자유롭게 돌아다니셔도 상관은 없지만, 안채에만 접근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아가씨의 허락이 없다면 당연히 아가씨께도 접근시켜 드릴 순 없습니다. 일단 방을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설명을 들은 후 사랑채로 안내받아 들어갔다. 민유리는 경호원의 설명에 행랑채 쪽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나를 따라왔다. 그리곤 각각 방을 안내받았다. 방안은 현대식이었다. 침대와 TV부터 있을 건 다 있었다. 나는 간단히 방을 둘러보고 나왔다.
“저기, 사랑채를 쓰는 다른 손님들이 있으신가요?”
“아뇨, 오늘은 없습니다. 두 분이 전부니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둘러보다 보니 응접실이라고 쓰인 곳이 있었다. 뭔가 상당히 넓은 온돌식의 방이었다. 무시하고 나는 일단 조사를 시작할까 싶어서 경호원에게 말했다.
“그, 부탁했던 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된지 모르겠는데..”
“네, 저쪽 방에 다 준비해 뒀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을 보고 나온 민유리와 합류해서 나는 경호원이 안내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엄청난 서류더미들 깔려 있었다.
“사건에 대한 모든 자료는 준비해 뒀으니 살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도움이 필요하시면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고맙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경호원은 고개를 숙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민유리와 나는 서류의 양에 압도해서 힘이 빠져 버렸다.
“오빠 뭔가 엄청나지 않아요?”
“그렇지?”
일단 서류를 들춰보았다. 아무렇게나 들춘 서류는 사건 발생 시에 일하던 고용인들의 명부였다. 그런데 너무 많았다. 밖에서 외부인이 침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당연히 내부인의 범행일 것이고 이중에 분명히 용의자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추리지?
“혹시, 언니는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는지 알고 있어?”
“네. 제가 15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가서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 같으니. 언니가..억울하게 죽은 건, 5년차 때였을걸요?”
5년이라. 뭐 기밀문서 때문에 범행을 하려고 했다면, 아무래도 그렇게 오랜 기간 잠입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실제로 서예리도 오래 일하던 고용인을 제외하고 갈아엎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럼, 우리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시점에, 이 집에 일한지 2~3년 정도 된 신입들을 우선 한 번 추려보자”
“네!!”
민유리는 언니의 사건을 조사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찬지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와함께 수많은 고용인의 명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하도 서류를 봤더니 눈이 아파왔다. 하지만 거의 습관적으로 다른 서류로 손을 옮겼다. 그러다가 민유리의 손가 내 손이 닿아버렸다.
“앗...”
나와 민유리는 동시에 손을 때면서 서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아..아냐, 미안. 그래도 손 좀 닿은 걸로 그러지 말자 우리..”
“오빠!! 전 자랑은 아니지만 남자 경험이 거의 없단 말이에요. 소녀적 감성이라 어쩔 수 없어요. 흥, 오빠 같은 선수인줄 알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시 서류를 손에 가져갔다. 그 모습에 왠지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의 볼을 쿡 찔러보았다. 진지하게 서류를 보고 있던 민유리는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뭐...뭐 하는게예요?”
“그냥? 볼이 너무 귀여워서?”
민유리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갑자기 내 옆구리를 꼬집기 시작했다.
“저..정말!! 진범을 잡아준다더니, 진지하게 안하고 장난칠 때에요?”
나는 그걸 때내려다가 그대로 그녀를 깔고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서류가 휘날리면서 우리는 몸이 밀착해 버렸다.
“오..오빠...?”
얼굴과 얼굴이 코앞에 닿아서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민유리는 당황한 표정을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왠지 이대로 고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나서 나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문이 벌컥 열려서 깜짝 놀라 쳐다보자 이 집의 주인께서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셨다. 들어와서는 엉망이 된 서류더미와 당황한 표정의 우리를 보더니,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뭐하는 거야?”
“아니 서류를 찾다보니 엉망이 좀 돼 버렸다고 할까?”
인기척에 몸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피바람이 불 뻔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그러면서 당황한 우리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화제를 돌려버렸다.
“지금 돌아 온 거야?”
“응, 조금 전에. 아무튼 아저씨, 그만 하고 나와 봐”
민유리는 놀라면서도 일단 서예리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서예리는 그건 본척만척도 안하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나오라는데? 일단 가볼게.”
“아, 저도 부탁할게 있는데..”
“그래? 근데 인사도 안 받아 주는데 부탁을 들어주려나?”
“일단 해봐야죠. 안 들어 주면 할 수 없고요..그럼 그냥 혼자서 서류나 계속 보고 있을게요.”
“그래, 나와 봐 일단”
민유리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서예리는 당연히 민유리를 힐끗 보더니 불쾌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 여자 내 눈에 치이지 말게 하라고 한 거 잊었어?”
“아, 그게..”
내가 설명하려는데 민유리는 서예리에게 고개를 90도로 숙이더니 그 상태에서 애원하듯이 입을 열었다.
“아..아가씨. 전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정말 염치없기는 하지만, 어..언니가 살던 방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부탁드려요”
고개를 계속 숙인채로 민유리는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을 했지만 서예리는 뭔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단칼에 거절할 것 같았다.
“맘대로 해.”
하지만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을 해줘 버렸다. 별것도 아니라는 듯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돌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날 따라와”
그리고는 몸을 돌려서 사랑채를 나가 버렸다.
“먼저 가볼게, 볼일 보면 여기로 와있어”
“네, 오빠도요.”
서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서예리의 뒤를 쫓아 뛰었다. 따라가니 그곳은 식당으로 보였다. 쓸데없이 큰 테이블이 압도적이었다.
“나, 아무것도 안 먹었어. 배고파. 그러니 아저씨한테도 특별하게 밥을 먹을 혜택을 주도록 할게. 후후 영광이지?”
그러면서 테이블의 가장 끝, 쉽게 말해서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바로 옆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러자 서예리는 옆에 앉아 있는 나를 얼마간 응시하더니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저씨? 이렇게 넓은 테이블에 하필이면 왜 내 옆에 앉고 그래?”
“응? 넓으면 넓을수록, 둘밖에 없으니 가까이 앉아야 안 외로운 거 아냐?”
“나, 평생을 이렇게 먹었는걸?”
헐? 이렇게 큰 식당에서 혼자? 이런 곳에서 혼자 밥을 먹는 건 어떤 기분일 까 싶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해매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는 자신의 코를 잡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아저씨. 안 씻었지? 나, 불결한 거 싫어해. 보아하니 어제부터 안 씻은 거 같은데...”
“으응?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밥을 먹기도 전에 죽고 싶은 걸까? 나, 지금 싫다고 말했잖아?”
“그랬지...알았어. 알았어. 씻고 와도 돼? 아까 그 사랑채에도 씻는데 있지?”
“경호원한테 안내해 달라고 해”
“네..네...씻고 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나와 버렸다. 땀 냄새가 좀 나는 건가? 하여간 민감한 여자다. 어쩔 수 없이 경호원에게 씻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자, 곧바로 큰 욕탕으로 안내받았다. 아까 그 사랑채에도 씻을 곳은 있던 거 같았는데 왜 굳이 이런 곳 까지? 의문이 남았지만 깨끗이 씻으라는 의미인거 같아서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대중탕과 맘먹는 크기의 큰 욕탕이 눈에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목욕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명령받아서 씻게 된 거긴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앞에 있는 샤워기로 못을 씻은 후에 욕탕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이 너무 행복했다. 그때 갑자기 욕탕의 문이 열려서 시선을 돌린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건 서예리였다.
“풉.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그것도 알몸이었다. 당연히 안 놀라게 생겼어? 하지만 서예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타월로 몸을 가리는 것도 하지 않고는 그 큰 가슴을 흔들거리면서 바로 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꺄하하하. 얼굴 빨개졌어. 아저씨, 내 알몸 처음 본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 내 엉덩이에 깔려있기도 하지 않았나? 후후”
“가..갑자기 넌 왜 들어온 건데?”
“나, 집에 돌아와서 안 씻은 게 생각나서. 그리고 우리 집인데 아저씨가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 같은 거 없달 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욕탕의 물을 가르며 내 옆으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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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하려던 걸, 조아라 서버가 느려서..이상하게 올리게 되네요..아..
왜이래...
========== 작품 후기 ==========
한가지 말씀드리면 이건 폭풍전야의 평온함일뿐..눈치빠른분들은 52편보고 낌새를 아셨겠죠?
다음화부터 또 본격적인 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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