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현실은 H게임-47화 (47/104)

-------------- 47/104 --------------

나는 무형검으로 민유리가 내리찍는 식칼을 튕겨내었다. 그러자 경호원은 서예리를 보호하는 행동이 필요 없어지자 선택.1때보다도 빠르게 그녀를 쏴버렸다. 그 총격에 민유리는 또다시 내 눈앞에서 즉사했다.

이건 즉 식칼을 튕겨내도, 서예리를 죽이려고 한 결과는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경호원 매뉴얼대로 바로 대응을 하고 민유리는 죽는다. 선택지가 나오지 조차 않았다. 내가 칼을 튕겨낸다는 시도는 결국 실패였다.

[로드하시겠습니까?]

다시 또 돌아왔다. 이제는 지겨웠다. 로드에 쓴 돈과 시간도 쓸데없이 낭비가 되고 있었다. 선택지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튼 강제력 때문에 민유리는 죽는다. 그건 이미 수차례 확인했다. 결국 선택지를 다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서예리가 다치는 건 피할 수가 없어 보였다. 똑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그 선택지는 출현하지 않는다.

선택지를 나오게 해서 저번처럼 숨어있는 선택지가 출현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결국 서예리는 칼에 찔려야 하는 거다.

그리고 또 똑같은 시간이 흘러서 다시 또 쟁반을 가지고 민유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칼을 막지 않았고, 곧바로 서예리의 팔은 칼에 찔려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회색빛이 되더니 선택지가 나타나났다.

[선택.1 서예리의 상태를 살핀다]

[선택.2 민유리와 도망친다]

[선택.3 서예리를 납치한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이 상황에서 서예리를 납치? 제정신인가 이 게임은. 딱 봐도 하드 난이도의 선택지였다. 게다가 팔에 칼이 꽂혀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를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고 납치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걸 고를 수도 없었다. 선택.1은 어차피 민유리가 즉사한다. 선택.2는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물론 납치만 성공한다면, 그리고 민유리까지 데려 갈수만 있다면 금상첨화다. 경호원 없이 평화롭게 대화를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예리의 무력이 잠시나마 해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로 경호원들의 틈바구니에서 두 명을 납치한단 말인가. 게다가 서예리의 다친 상처를 치료안하고 납치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선택지는 결국 골라야 한다. 그건 강제력이다. 이미 확인했다. 지겹도록 확인했다.

결국 아이템을 떠올렸다. 막히면 아이템이다. 그러고 보니, Lv.6에서 새로 생긴 아이템 중에, 약과, 붕대가 있던 것이 떠올랐다. 왠지 쓸모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아이템을 사버리면, 로드하게 되었을 때 또 아이템이 사라진다.

결국 아무선택지나 고른 후에 재빠르게 로드해서 아이템을 재정비 한 후 세이브를 다시하고 선택지를 출현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이용하지 않고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니 이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바로 로드가 가능할 것 같은 선택.1을 골랐다. 그리고 나는 찔린 그녀에게 다가갔고, 경호원은 총을 쏘았다. 그리고 바로 로드창을 불러냈다.

[로드하시겠습니까?]

다시 또 동일 시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번에는 민유리와 대화를 위해서가 아니고 아이템을 정비하기 위해 서예리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정말로 화장실로 들어왔다. 서에리 앞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가며 아이템을 정비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템샵을 불러냈다.

[Lv.6 스카우터 600만원 ]

[수면스프레이 250만원 ]

[만능키 600만원 ]

[카메라 100만원 ]

[변신약 1000만원]

[망원경 700만원]

[스톱워치 3억]

[안경 500만원]

[향수 3억]

[책 2억]

[안테나 5000만원]

[약 3000만원]

[붕대 1억]

[이어폰 800만원]

[연필 400만원]

[선글라스 1000만원]

[외제차 5억 ]

[국산차 8천만원 ]

일단 약과, 붕대다.

[약 3000만원을 구입하시겠습니까?]

[붕대 1억을 구입하시겠습니까?]

둘 중에 제발 치료효과가 있는 아이템이 있기를 바라면서 구입창을 터치했다. 그리고는 소지아이템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약의 상세설명부터 터치했다.

[약] [한알]

[섹스도중에 사용하면, 상대의 쾌감을 높일 수 있다.]

[마약과 다름. 순수한 흥분도만 높여줌]

[심지어 처녀여도 금방 오르가즘에 도달하게 만드는 강력한 약]

[주의 : 섹스 도중에만 사용가능. 전에 써봐야 소용없음.]

[섹스로 얻는 경험치x2]

경험치를 2배나 주는 미친 아이템이었다. 공략대상의 동의를 얻어 섹스를 하는 중에 이걸 사용하면, 평상시 경험치의 2배가 들어오는, 거기다가 여자를 쉽게 보내버릴 수 있는 매직아이템이었다. 매우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자주 이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물론 지금은 필요 없었다. 지금 필요한건, 납치나 치료에 필요한 아이템이다. 결국 붕대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붕대]

[모든 부상을 치료한다.]

[사용횟수는 각 레벨마다 두 번 ]

[사용하면 조금씩 상처가 재생된다. 다만 상처가 크면 클수록 재생해]

시간이 걸리고,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의외로 이름과 효과가 비슷한 물건이었다. 그래 바로 이런 걸 원했다. 서예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내가 다쳤을 때 쓰기에도 좋은 아이템이다. 그것도 사용횟수가 레벨에 따라 갱신되는 타입이었다. 만족스러웠다.

일단 이게 있으면 그녀의 몸에 대한 부담 없이 서예리의 납치를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어떻게 납치를 하나 부분은 해결 못했다.

게임시스템 상, 완벽하게 성공할 수도 없는 선택지가 출현할리는 없었다. 함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 말은 곧 아이템 중에 적절한 아이템이 숨어있다는 말일 것이다. 언제나 공략이 막힐 때는 아이템이 큰 도움이 되었었다. 즉 아이템샵에 뜨는 아이템은 무의한 건 없었다.

[Lv.6 스카우터 600만원 ]

[수면스프레이 250만원 ]

[만능키 600만원 ]

[카메라 100만원 ]

[변신약 1000만원]

[망원경 700만원]

[스톱워치 3억]

[안경 500만원]

[향수 3억]

[책 2억]

[안테나 5000만원]

[약 3000만원]

[붕대 1억]

[이어폰 800만원]

[연필 400만원]

[선글라스 1000만원]

[외제차 5억 ]

[국산차 8천만원 ]

확인해보지 않은 아이템은, 스톱워치, 향수, 책, 안테나, 외제차였다. 일단 외제차는 제외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향수와 책. 특히 향수는 아마도 여자를 꼬실 때 쓰는 아이템일 걸로 생각된다. 패스다. 안테나는 좀 끌렸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스톱워치가 더 끌렸다. 사실 전부터 사고 싶었던 건데 너무 비싸서 미루고 미뤄왔던 아이템이다. 스톱워치란 누르면 초를 잴 수 있는 물건이다. 보통 그 누른다는 개념 때문에 많은 H게임에서 시간을 정지하는 물건으로 나오기도 한다.

만약 아이템의 성능이 시간정지라면, 납치에 딱 필요한 물건이다. 그렇게 알기 쉽게 아이템 명을 지었을 까 싶기는 했지만, 하도 가격이 비싸서 기능을 쉽게 추측해도 못 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따라서 안테나 보다는 스톱워치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선택지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납치에 쓸 만한 아이템은 꼭 필요하다. 아니면 무한반복만 할 뿐이다.

[스톱워치 3억을 구입하시겠습니까?]

구입창을 터치했다. 그리고 확인을 위해 소지아이템으로 들어갔다.

[스톱워치]

[각 레벨 마다 딱 한번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다.]

[시간정지시간은 3시간]

[본인을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생명체의 경우 시간정지 발동 시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태로 바뀌니 주위 할 것]

[취급주의 : 굳어버린 생명체를 건드려서 깨뜨리면 정지가 풀려도 복구불가]

[사용횟수 1회]

역시나 이건 나의 예상답게 시간정지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만세를 부르고 날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 필요하니 만들어놓은 아이템이었다. 물론 1회에 3억이라는 미친 비용이다. 다시 사용하기는 어렵겠지. 아무튼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아이템을 모은 것에 만족하면서 화장실 대변 칸에 앉은 상태에서 바로 세이브 창을 불러냈다. 아이템이 사라지지 않도록 세이브를 한 후에 서둘러 자리로 돌아왔다.

서예리는 턱을 팔에 괴고 손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지루해 보였다. 더 급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후는 똑같았다. 이제는 너무 봐서 외울 정도였다. 곧 칼이 내리찍어졌고 선택지가 나타났다.

[선택.1 서예리의 상태를 살핀다]

[선택.2 민유리와 도망친다]

[선택.3 서예리를 납치한다]

선택.3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소지아이템으로 들어가 바로 스톱워치를 터치했다.

[스톱워치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터치했다. 경호원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빨리 좀 제발. 그리고 다행히 방아쇠를 당기는 것 보다 아이템이 빨리 발동되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선택지가 나와서 회색빛이 될 때도 모든 게 멈추지만 그건 나도 멈춰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회색빛도 아니었다. 세상은 원래 색 그대로였다. 다만 움직이는 사람도, 물건도 없을 뿐이다.

이제 리미트는 3시간이었다. 일단 서예리의 상처부터 살폈다. 상당히 깊게 찔려있었다. 하지만 스톱워치에 의해 딱딱하게 굳어있는 상태라서 섣부르게 칼을 뽑다가 충격에 부서지기라도 하면 완벽하게 낭패였다. 어차피 정지된 상태라 지금은 꼭 치료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치료를 미루고 일단 밖으로 나가 보았다. 달리다가 멈춰버린 차로 가서 앞좌석 문을 열었다. 운전하고 있던 차 주인을 조심스럽게 보도에 내려놓았다. 혹시라도 깨질까봐 주의하다보니 너무 힘들었다.

차는 사용가능할까? 딱딱하게 굳는 건 사람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물건은 굳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멈춘다는 거지. 그럼 사용은 가능 할까? 달리던 차였기 때문에 엑셀이 밟혀진 상태였다. 나는 내발을 거기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핸들을 잡았다. 곧바로 차는 원래 달리던 속도 그래도 앞을 향해 나아갔다. 순식간에 앞에 있던 차와 접촉사고를 낼만한 거리가 되어서 비어있는 반대차선으로 급 유턴을 했다. 한숨을 돌린 뒤에 다시 엑셀을 밟아서 멈춘 차들을 피해 가게 앞에 차를 대었다. 그리곤 중립으로 해놓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대로 다시 가게로 들어가서 서예리의 몸부터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방금 전 옮긴 차주인 보다는 무겁지 않았다. 사람의 실제 무게 그대로인 듯 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살인과 다름없기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녀를 간신히 앞좌석으로 옮겼다. 원래부터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로 굳었기 때문에 다행히 의자에 앉혀 놓기는 수월했다. 그 후 안전벨트로 고정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불안했다. 흔들리는 충격에 금이라도 가면 끝장이다. 그래서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먼저 붕대부터 짚어들었다. 아이템 [붕대]를 이용해서 치료한 후에 진짜 붕대로 감아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원래 목적인 박스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다시 냅다 뛰어서 차로 돌아와 서예리의 몸과 앞좌석을 박스 테이프로 돌돌 감아서 고정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민유리를 옮겼다. 그녀는 살해에 실패한 후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상태여서 서있는 상태로 굳어버린 지라 뒷좌석에 앉히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눕혀놓았다. 그리고 당연히 박스테이프로 고정시켰다. 나중에 이 박스테이프를 제거하려면 가위가 필요할 것 같아서 다시 편의점으로 가서 가위까지 가져나왔다.

그러다 이번에는 핸드폰이 걱정되었다. 위치주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잃어버릴 수는 없는 물건이라 편의점에서 지퍼백과 비닐봉투를 가져와서 핸드폰을 넣은 후에 가게 화장실로 들어가 양변기의 물이 저장되는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문득 민유리도 핸드폰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몸을 뒤졌으나 일을 할 때는 사용하지 않는 듯 몸에 지니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시간은 20분정도가 흘러버렸다. 시간정지 한계시간 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어디로 갈지 곰곰이 생각했다. 집은 안 된다. 서울도 안 된다. 연고도 없어야 했다. 고민하다가 일단은 서울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어차피 3시간이라는 공백이 발생해서 추격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도망치는 걸 눈으로 보면서 쫒는 거와, 아예 흔적 없이 사라진 걸 쫓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드문드문 서있는 차들을 피해서 빈 공간을 이용해 지그재그로 운행했다. 가끔은 사람이 없는 보도까지 이용해 가면서 차를 몰았고 정 공간이 없으면 내려서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외곽고속도로가 가까운게 천만다행이었다. 외곽고속도로는 차들의 간격이 충분해서 속도를 줄이고 가면 그럭저럭 피해다닐만 했다. 그리고 곧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고속도로는 다행히 차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몰라 갓길을 이용해서 질주했다. 달라다 보니 차는 대전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 30분정도 남았다. 하지만 시간정지가 풀리기 전에 목적지를 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완벽하게 흔적을 없애버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마치 가게에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이 사라 진 게 된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톨게이트를 나왔다. 하이패스 전용차로에는 아무런 차도 서있지 않아서 빠져나오는 건 매우 쉬웠다. 톨게이트의 이름을 보니 부여라고 나와 있었다.

달리다 보니 농촌이 보였다. 그곳에 차를 대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깜깜한 마을엔 듬성듬성 주택이 있었는데 혹시 폐가가 있나 싶어서 둘러보았다. 아이템 [안경]을 사용해서 말이다. 새벽의 어둠을 안경이 환하게 밝혀주었고 곧 을씨년스러운 집 한 채를 발견했다. 딱 이라고 생각해서 차로 돌아왔다.

하지만 두 사람이 깨어나 있었다. 시간정지가 풀린 것이다. 물론 완전히 묶어둬서 난동을 피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서예리는 팔의 고통 때문에 신음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때 서예리와 동일하게 시간정지에서 풀린 민유리가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로등이 없는 이 시골마을은 매우 깜깜했다. 덕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은 움직여지지 않으니 매우 당황한 상태일 것이다. 일단 서예리에게 사용하려던 수면스프레이를 먼저 민유리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잠이 들었다.

바로 다시 서예리에게 가서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던 그녀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그 후 다시 소지아이템으로 들어갔다.

[소지아이템]

[Lv.6 스카우터]

[만능키]

[수면스프레이]

[카메라]

[망원경]

[안경]

[붕대]

[약]

[이어폰]

[연필]

[무형검]

윽. 1회용인 스톱워치는 사라져 있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붕대를 터치했다.

[붕대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누차 확인한 바 있지만 아이템은 동시에 두 개를 사용할 수 없다. 즉 수면스프레를 사용하면서 무형검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만능키를 쓰면서 무형검을 들고 있을 수 없는 거와 같다. 하지만 이미 수면스프레이의 효과를 발동시킨 후에, 다른 아이템의 효과를 덧씌우는 건 가능할까?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치료가 시급해 보였다. 굳어있을 때야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괜찮았지만 잠재운 상태는 시간과 상관없이 상처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그녀의 팔에 꽂혀 있는 칼을 뽑은 후에 던져버리고 바로 [붕대]를 사용했다.

[적용할 상처를 바라보십시오]

창이 시키는 대로 서예리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 지혈이 되기 시작해서 더 이상 피가 콸콸 흘러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설명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사용하자마자 완벽하게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두었던 진짜 붕대를 그녀의 팔에 칭칭 감았다. 이제 나두면 알아서 나을 것이다. 한시름 놓고는 바로 가위로 테이프를 다 뜯어내었다.

지금쯤 아마 가게안도 시간정지가 풀려서 서예리를 찾느라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경찰이든 군대든 뭘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흔적이 있어야 찾을 것이 아닌가. 아마도 차의 흔적을 쫒으려고 CCTV를 활용하겠지만 여기까지는 시간이 정지되어 어떤 기록이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완벽한 납치라고 확신하면서 잠든 두 여자를 한명씩 안아서 폐가 안으로 옮겼다. 안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혹시 몰라서 민유리는 마당에 널려있는 밧줄을 이용해서 묶어두었다. 일어나자마자 서예리를 죽인다며 날뛰거나 도망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복수를 돕는 게 목적이 아니라, 원한을 푸는 게 목적인 납치다. 경호원의 무력이라는 강제수단이 사라지면 서예리도 다짜고짜 민유리를 죽이지 못하고 대화를 할 수 밖에 없겠지.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하며 서예리를 살펴보니 가끔 흘리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숨소리도 고르게 내는 걸로 봐서, 상처치유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깨우지? 수면스프레이로 잠재운 사람을 깨워본 기억이 없었다. 나두면 24시간이나 잘 텐데 그건 곤란했다. 아무리 시간정지로 흔적을 지웠다지만, 언젠가는 납치해 둘 수는 없다. 빠르게 둘 사이의 은원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려면 깨워야하는데 대체 어떻게? 수면스프레이에 그런 기능은 아예 없는 걸까? 혹시 수면스프레이를 한 번 더 사용하면 깨어나지 않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유리에게 다가가 시도를 해보았다. 다시 수면스프레이를 창을 불러내 사용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녀가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물론 [안경]을 장착한 나와는 달리 어둠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해서 잠재웠다. 폐가라 불빛이 없어서 [안경]이 없는 한은 그냥 암흑이다. 대화를 나누기는 곤란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아보였다.

할 일이 없어져서 다시 서예리를 바라보았다.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잠든 그녀의 입술을 만져보았다. 매우 부드러웠다. 갑자기 헬기에서 그녀의 키스가 떠올랐다. 무슨 미친 생각을 떠올리는 거냐. 나는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고개를 돌려 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눈앞의 여자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아마도 평소에는 함부로 몸에 손 댈 수도 없는 존재가 눈앞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눈을 땔 수 없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도 그럴게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는 그녀라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한들 만지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수면스프레이를 사용하면 바로 경호원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니 말이다.

노래방 안에서도 따라 들어오지만 않았을 뿐 나를 완전히 신뢰한 게 아니기에 계속 감시의 눈길이 느껴졌었다. 그렇기에 이 여자에게만은 수면스프레이를 통한 장난 따위는 완벽하게 불가능했고, 평소에도 손대는 것조차 큰맘을 먹어야 했다. 물론 그녀의 묵인 하에 요즘은 거리낌 없이 손목정도는 잡게 되었다. 엄청난 발전이긴 했다.

응? 그러다가 갑자기 엄청난 생각이 떠올랐다. 후다닥 소지아이템으로 이동했다. 수면스프레이의 스킬을 터치했다.

[수면스프레이] [강화5]

[말 그대로 수면스프레이.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아이템창을 클릭해서 대상을 바라보면 수면스프레이 발사.]

[대상은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할 것.]

+ 스킬 [허벅지] 생성

[허벅지]

성행위스킬

스킬 발동시, 수면스프레이 사용 후 하체를 이용한 유사성행위 가능.

효과범위 : [조건] 대상의 호감도 70이상

스킬사용횟수 : 1회  스킬이용시 경험치x2

그래 바로 이거다. 그녀가 경호원과 떨어져 있는 지금은 거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이걸 사용해볼 찬스였다. 다만 호감도 70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음으로 대했다고 말한 적 있었다.

“난 아저씨를 믿었어. 얼마나 믿었는지 모르는 거야? 내가 누가 부른다고 그렇게 쉽게 나올 사람 같아? 그것도 자다 말고 밥 먹자는 말 한마디에 쪼르르?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었어. 그리고 아저씨랑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는 경호원조차 안 데리고 들어갔던 거 기억 안나? 아저씨가 날 해칠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 그만큼 아저씨를 존중해줬는데 아저씨가 먼저 배신했잖아? 내가 말했지. 당한 건 100배로 갚아준다고”

그녀의 대사였다. 물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녀지만 그때 전화 속에서 했던 말만 보면 실은 호감도가 70은 되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호감도만 가게에서 떨어뜨리지만 않았으면 말이지. 배신감이 생겨나버려서 호감도는 대폭 하락했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민유리가 기적적으로 호감도가 70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안경]을 잠시 해제하고 [스카우터]로 호감도를 체크했다.

민유리

나이 : 23세

남자친구 : 없음

직업 : 아르바이트

공략난이도 : D

사는곳 : 서울시 OO구 OO동 OO번지

전화번호 : 현레벨로는 불가

공략정보 : 지방에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중.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남친을 사귄 경험이 없다. 그것보다는 이루려는 꿈이 너무나 강대해서 아예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략을 위해서는 그 꿈으로부터 접근해야한다.

호감도 : 50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허벅지]를 사용하기에는 20이나 부족했다. 차라리 그냥 서예리에게 스킬 [허벅지]를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호감도가 높다고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서예리의 호감도는 아마도 의미 없다. 엊그제도 섹스하자고 해놓고 저격수를 배치해 놓았으니, 호감도 높다고 공략미션을 깰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A란 그만큼 섹스하기 어렵다는 뜻이니 말이다.

다만 허벅지를 이용해서 호감도가 70아래인지 위인지 확인만 가능하면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정보를 전혀 열람할 수 없는 그녀이기에 조금이라도 수치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필요했다. 게다가 만약이라도 [허벅지]가 사용이 가능하면, 경험치는 대폭 오를 것이다. [허벅지]는 경험치x2를 주는 스킬이다. 거기에 그녀는 풋잡만으로도 몬스터급의 경험치를 선사했었던 적이 있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 스킬 [허벅지]를 사용했다.

레벨.6[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