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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을 하면서 한참을 기다리니 저 멀리서 항상 타고 다니는 중형세단이 보였다. 그 차는 정류장 앞에 멈췄고 곧 경호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서예리가 우아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검정색 블라우스에 회색빛이 감도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길이는 허벅지까지 내려왔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잘 어울렸다. 그리고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그걸 보니 집에 걸려있는 검은 스타킹이 떠올라서 슬쩍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이 여자는 처음에 만났을 때처럼 꾀죄죄한 행색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더러운 후드티를 그렇게나 입고 다니더니 복장이 완전 바뀌었다. 머리스타일이나 화장도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꾸민 듯 했다. 아마도, 이런 복장의 변화는 검은 스타킹으로 나에게 풋잡을 선사한 그날 부터였던 거 같다.
“아저씨가 날 불러내다니 한 천년은 빨라?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를 보자마자 첫 대사가 독설이었다. 아니 기왕 나왔으면서 저런 말은 왜 하는 거지? 주제를 알라는 걸까? 아니면 변명인가? 참나. 나는 속으로 웃기지도 않다고 생각했으나 언제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기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밥 먹자. 밥 아직 안 먹었지?”
나는 호텔에서 그날처럼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그녀는 오늘도 딱히 뿌리치지는 않았다.
“안 먹은 건 사실이지만, 얼마나 맛있는 걸 먹게 해주려고?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 나, 실망시키면... 아저씨 박제계획 진행시켜 버릴 테니 알아서 해”
“하하하. 박제계획...? 설마 그거, 설마 상세한 계획이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니지?”
이 여자라면 충분히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공포에 떨며 물어보자 그녀는 손목을 잡고 앞장선 내 몸을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무서워? 그러니까 절대 복종하란 말이야. 지금처럼 막 나가면 정말로 계획을 진행시켜서 상세한 계획서부터 아저씨에게 보여줄 수도 있어..”
복종을 외치면서 그녀는 내 뺨을 자신의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뭔가 조금 소름이 끼쳤다. 부드러운 손길 때문인지, 그녀가 내뱉은 말의 공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일수도 있고.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길이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피해버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런 와중에 손목을 놓쳤지만 그녀는 알아서 나를 잘 따라왔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백반 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이 붐볐다.
“여기야. 맛 집이라고. 사람 수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녀는 허름한 식당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 이런 곳일수록 더 맛 집이라는 소리, 들은 적도 있는 거 같고”
그녀는 저번에 야식집에서도 그렇고,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렁탕집에서도 느꼈지만 딱히 서민의 음식점이나 이런 거에 불쾌감도 없어 보였고, 사람이 붐비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그 속에 뛰어드는 게 흥미 있어 보인 달까. 신기하게 생각 한 달까, 그런 느낌이었다. 한 번도 힘을 이용해서 시끄럽다고 사람을 쫓아내거나 한 적도 없었다.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가서 의자를 빼주었다. 그걸 보더니 자리에 앉으면서 말을 꺼냈다.
“어머? 저번에 매너 없다고 했더니, 성장 했네 아저씨? 나, 그렇게 내말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싫지 않아. 후후”
“그래그래. 성장해야지 나도, 언제까지 너에게 당하겠어.”
나는 앉으면서 민유리를 찾았다. 그리고 일단 세이브를 했다. 민유리가 서예리에게 재대로 대답을 듣지 못하면 다시 로드해서 성공할 때까지 도와줄 셈이었다. 성공해야지 데이트도 할 수 있고, 그래야 공략미션을 깰 수 있을 테니 나를 위해서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은 장소라 그런지 유독 경호원들이 따라 들어와서 북적이는 식당 안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서예리도 그걸 느꼈는지 경호원을 향해 말했다.
“이런데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단체로 따라 들어와? 밖에 있으면 충분하잖아”
“하지만 아가씨, 호텔VIP룸이나, 어제 그 노래방안 같이 차라리 폐쇄적인 차라리 경호하기 쉬운데 이런 개방적인 곳에서 밖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뭐? 지금 내말 안 듣겠다는 거야?”
“그.. 그런 게 아니고..저흰 오직 아가씨의 신변을 지켜야 하는지라..”
그러고 보니, 저 우기는 경호원은 저번에 사이비종교 사건 때 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도 서예리가 경호원을 쫓아내서 내가 그녀를 구했었던 기억이 났다.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경호원 같았다. 그렇다면 저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한명만 남고, 나머지는 나가있어. 명령이야. 한명이라도 남겨뒀으니 괜찮잖아? 아저씨는 위험대상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알겠습니다.”
슬슬 서예리가 짜증을 내자 경호원들은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그래도 전부 식당 밖을 지키고 있을 뻔 했는데 한명이라도 남게 되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남은 남자는 방금 그녀에게 목숨 걸고 반박하던 경호원이었다. 그녀의 의자 뒤로 가서 뻣뻣하게 몸을 세우고 주변을 주시했다. 전형적인 군인스타일 이었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곧 관심이 없어졌다. 바로 민유리의 모습이나 찾았다. 주방에서 곧 그녀가 나왔다. 그러더니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뭔가 긴장한 모습으로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오셨어요?”
“네, 일단 백반2인분 주시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눈을 찡긋거리면서 눈치를 주었다. 질문을 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더니 일단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아저씨, 뭘 눈을 찡긋거려? 짜증나려고 하네?, 저 여자 뭔데?”
그걸 봤는지 서예리가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어제 본 여자인데 또 뭐냐고 묻는걸 보니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어제 잠시 마주친 사람인데 기억 안나?”
“응?”
내말에 그녀는 주방을 돌아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대답했다.
“몰라. 그보다 저 여자랑 친한가봐? 어제 아저씨가 말했던 대사는 생각나, 분명 단골집이 어쩌고 했지?”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뭔가 가시 돋친 말투가 되어있었다. 안색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진 타이밍에 민유리가 부탁을 한다면 들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또 그때 민유리가 쟁반에 반찬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으나, 그녀는 테이블에 반찬을 내려놓더니 뭔가 말을 우물거렸다.
“저....”
그 말에 서예리는 민유리를 올려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쟁반을 던지더니, 아래에 숨겨 쥐고 있던 식칼을 그대로 서예리를 향해 내리 꽂았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로 뒤에 있던 경호원이 프로답게 재빠르게 서예리의 의자를 옆으로 밀어내었다. 덕분에 심장으로 향하던 식칼의 방향이 바뀌어서 내리찍은 식칼은 그대로 그녀의 팔뚝에 꽂혀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회색빛이 되더니, 갑자기 선택지가 나타났다.
[선택.1 서예리의 상태를 살핀다]
[선택.2 민유리를 대리고 도망친다]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나는 서예리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나도 모르게 선택1을 선택하고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괘..괜찮아?? 피가..”
그런 나를 그녀는 의문에 찬 눈빛으로 응시했다. 고통이 커서 입을 열수가 없는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민유리를 힐끗 쳐다봤다. 그녀는 바로 옆 테이블에 놓인 가위를 들고 서예리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경호원이 그대로 민유리에게 총을 쏴버렸고, 민유리는 그대로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해버렸다.
서예리는 엄청나게 피를 흘리면서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건 마치 아저씨가 꾸민 일이냐는 질문 같았다. 그리고 경호원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눴다. 밖에서는 이변을 알아챈 경호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설명하면 오해를 풀 수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유리가 죽어버렸다. 이건 아니었다. 공략대상을 또 죽게 둘 순 없었다.
[로드하시겠습니까?]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나는 바로 로드창을 터치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의자를 빼주는 시점으로 돌아왔다. 민유리가 왜 서예리를 죽이려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순간은 엄청난 살의가 보였다. 언니를 찾는 게 아니었나? 머리가 아파왔다. 일단은 사건을 미연에 막고자, 서예리를 앉혀놓고는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방에 있는 민유리를 찾아서 억지로 손을 끌고 화장실 앞으로 끌고왔다.
“왜요?”
“너, 서예리를 죽이려는 거지? 대체 왜?”
내 물음에 그녀는 크게 놀라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하더니 모든 걸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밖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그녀를 뒤쫓았다. 갑작스럽게 뛰어가는 우리를 서예리와 경호원들은 멍하니 지켜봤다. 민유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더니, 나를 피해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차도를 건넜을 때 차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쫓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서 서예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추적은 시작되었지만 핸드폰도 버려버리고 달아난 그녀의 행방은 발견되지 않았다. 집에도, 고향에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루정도 기다려 보고는 새로운 공략대상을 찾으려고 했으나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이대로는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나타났던 선택지를 무시하기도 찝찝했다. 그리고 서예리의 정보망에도 발견되지 않는 다는 건 자살이라도 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거기에 서예리를 죽이려한 이유도 궁금했으며, 이 상태로 다른 공략대상을 찾는 건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히든미션은 다 어렵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로드해서, 다시 선택지를 출현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선택.2번이 정답이라는 거겠지?
그런데 그렇게 한다면 한자기가 걱정되는 게 서예리의 분노였다. 그건 좀 무서웠다. 그녀의 분노에 의해서 사라진 사이버종교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서 타협을 했다. 일단은 세이브 없이 진행을 계속 해보다가, 정 안되면 다시 로드해서, 깔끔하게 이 사건을 포기하기로 말이다.
[로드하겠습니까?]
그래서 또다시 그녀에게 의자를 빼주고 자리에 앉던 시점으로 돌아왔다. 선택지를 발동시키기 위해서 그대로 행동했다. 칼에 찔릴 때는 알고 있었기에 막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도망가고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아니면 총에 맞고 죽을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서예리의 팔에 칼이 꽂혀버렸다.
[선택.1 서예리의 상태를 살핀다]
[선택.2 민유리를 대리고 도망친다]
그녀는 로드 전과 똑같이 의문에 찬 표정으로 날 올려보았다. 눈빛이 흔들려 보였다. 여기로 데려온 것도 나였으며, 식칼을 내리찍은 민유리와 아는 사이라고 말한 것도 나였다. 의심은 당연하겠지. 앞뒤정황을 모르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일단 민유리가 죽는 상황만 피해놓고 전화라도 해서 설명하자고 마음먹었다. 더구나 여기서 1초라도 망설이면 바로 총알이 민유리의 머리를 뚫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결심대로 선택.2를 선택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무형검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바로 무형검을 불러내서 민유리의 앞을 막아서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스킬 [무형의 검날]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러면서 스킬[무형의 검날]을 발동시켰다. 도망가는데 방해가 되는 식당문과, 보이는 모든 경호원들을 적으로 인식했다. 그러자 바람이 일면서 식당문이 소멸되고, 경호원들은 모두 기절해 버렸다. 엄청난 소란에 식당사람들을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다른 경호원들이 몰려오기 전에 민유리의 손을 잡고 그대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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