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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안 알려주던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면서 난데없이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걸 보고는 마음이 변한 건가?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아까 민유리가 서예리를 쳐다볼 때의 눈빛은 심상치가 않았다.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아마도 문자를 보낸 이유는 서예리과 관련이 있을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그녀는 대체 서예리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건 전혀 추측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만나봐야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그녀 집을 조사하는 건 내일로 미루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만나자고 한 이유를 들어보고 집을 뒤지는 편이 더 효율적이리라.
[알겠습니다. 내일 9시에 그 커피숍에서 보죠.]
그렇게 결정한 나는 문자를 작성해서 송신했다. 의도를 모르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딱 약속시간만을 정해서 답문을 날렸다.
“띠리리리리”
문자를 작성한 후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혹시 민유리인가 싶어서 재빠르게 발신번호를 확인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다른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동생아!”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차게 나를 불렀는데 말이 빠른 게 뭔가 다급하게 느껴졌다.
“응 누나, 어떻게 된 거야? 그 후로 연락도 없고”
“미안, 누나가 좀 바빠서...지금 어디야?”
힘없이 대답하더니 갑자기 나의 위치를 물었다. 만나자는 걸까 싶어서 일단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여기, ㅇㅇ동 ㅇㅇ2가”
“그래? 혹시 지금 시간 있어?”
누나의 말투가 심상치가 않았다. 나까지 전염이 되서 나도 덩달아 다급하게 대답했다.
“응. 있어있어.”
“그럼 누나가 거기로 갈게, 잠깐 만나자”
“알았어. 누나”
어차피 당장은 할 것도 없었기에 당연하게도 바로 승낙했다. 뭔가 급해 보이는 게 저번에 하다만 섹스를 다시 하자는 등의 달콤한 이유로 만나자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초조하게 30분정도 기다리니 익숙한 차가 나타났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헤어졌던 그날 입었던 옷 그대로의 그녀가 차문을 박차고 나왔다. 상태를 보니 여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모양이었다.
“누나. 무슨 일 있어? 왜 이리 급해 보여?”
“동생아..”
누나는 다짜고짜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더니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무슨 의식을 치루 듯 항상 하는 머리 쓰다듬기를 시전 했다.
“미안..좀 바쁘네..”
“그래?”
나도 덩달아서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누나가 살짝 몸을 때어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날부터, 갑자기 일이 엄청나게 밀려와서, 쉴 틈이 없어졌어. 그것도 특히 아가씨 쪽에서 나를 특별하게 지정해서 케케묵은 일까지 해결해달라고 떠넘겨서 정신이 없어. 그것도 거절하지 못하게 사부님을 통해서...누나가 생각하기에 이거...아무래도...”
하지만 누나는 말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려버렸다. 뭔가를 참는 것처럼 손을 떠는 것 같아서 누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누나는 결국 하던 말을 끝까지 안 하고 얼버무렸다.
“아..아니야.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눈빛이 좀 무서워 보였다. 하지만 일을 많이 맡긴다는 건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거 아닐까? 그 여자가 다른 의도가 있으면 그냥 죽이려고 했을 테지 복잡하게 일을 만들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나가 갑자기 나를 차 앞으로 이끌었다. 나는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그녀의 손에 몸을 맡겨 질질 끌려갔다.
“그걸 말하려고 한 게 아냐. 아무튼 일을 맡은 건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실마리가 안 보이는 사건이 있어서, 의견 좀 듣고 싶어. 이런 건 누나보다 네가 더 잘하잖아?”
두 번의 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돼서 아예 누나는 나를 이런 쪽으로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번에도 아저씨 살인사건을 도와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누나는 차문을 열더니 서류봉투를 꺼내서 나에게 넘겼다.
“누난, 나쁜 놈들을 때려잡으러 가야하니까, 머리 쓰는 일 좀 부탁할게. 그것 좀 살펴보고 뭔가 알아낸 거 있으면 알려줄 수 있어?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어도 상관은 없어. 그래도 나보다는 나을 테니 봐 주기만 이라도 해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일단 서류봉투를 받아들었다. 집에 갈 생각이었으니 가서 살펴보자. 다만 내 능력으로 뭘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 누나는 가볼게, 다시 연락할게. 미안해. 다음에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까.”
“알았어. 누나. 어서 가봐. 많이 바쁜 모양인데”
“응”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쉬운지 계속 나를 힐끔거리면서 쉽게 차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어서 나는 누나에게 다가가 살짝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가볍게 키스를 나누다가 입을 때고 말했다.
“들어가, 누나”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차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나는 아무저항하지 않고 차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좌석에 앉아서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럼 가볼게..”
차에 다시 시동을 걸더니 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고 누나의 차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류봉투를 꺼내보았다. 일단 사진이 3장 나왔다. 중년의 남자2명과, 젊은 여자였다. 모두 시체를 찍은 사진이었다. 각각의 사인이 나와 있는 서류가 같이 들어있었는데 모두 교사였다. 교사라면 끈 같은 걸로 목이 졸려 죽었다는 건데, 3명다 목에 난 자국이 동일해보였다. 즉 같은 것에 의해서 살해당한 듯 했다. 여자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일하기 쉬운 복장이었다. 남자들은 그냥 제각각의 옷을 입었다. 솔직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사진하고, 사인만으로 뭘 알아내라는 말인가. 누나도 참.
나는 일단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참을 울려도 받지 않더니, 끊으려고 하는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나 지금 바빠?”
“조..조금, 바쁘네?”
뭔가 금속성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봐도 싸움이 한창인 현장 같았다.
“알았어, 다음에 걸게.”
“미..미안해 동생아!!”
결국 그대로 전화는 끊어졌다. 할 수 없이 나는 일단 서류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고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음에도 무료함이 졸음을 불러왔는지 다시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이 갑자기 들었다. 누나에게는 다시 전화는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바쁜 듯 했다. 시계를 보니 3시간을 졸은 듯 어느덧 민유리와의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채비를 해서, 번화가로 나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10분전에 도착했는데도 민유리는 벌써 와있었다.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살짝 눈 아래가 거뭇거뭇 하달까? 날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와 보조를 맞춰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역시 예의하나는 바른 여자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부터 해왔다.
“죄송해요. 연락할일 없을 거라고 해놓고, 먼저 문자를 해서”
“아니에요, 오히려 저야 환영이죠.”
내가 뒷머리를 긁으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까지는 뭐 평범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했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모양인지 서예리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거절해놓고 갑자기 불러내서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게 이기적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꼭 물어봐야 할 게 있어서요. 정말 염치없지만, 그.. 어제 같이 있던 그분과는 어떤 사이..신가요? 애인?”
“네에?”
어이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러버리자 주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런, 너무 황당한 이야기를 하니까 놀라서 이성을 잃었었다.
“그럴 리가요. 그 여자를 애인으로 삼을 수 있는 남자가 있기는 한지 궁금하네요.”
“하지만..그 친해 보이셨는데..?”
그녀는 마치 애인이 아니라면 곤란하다는 투로 나에게 되물었다. 친해보였나? 하긴 서예리와 그때 나누던 대사의 내용을 모르면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한테 딱 붙어서 귓속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해에요. 그런 사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이라면, 유리씨에게 작업을 걸었을 리도 없잖아요?”
“그..그런가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팍 떨궈 버렸다. 이건 나와 그녀가 연인이 아니라는 것에 더 실망한 눈초리였다.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나한테 관심이 있다면 연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을 하던 가 좋아해야지, 아쉬워 할리는 없을 것이다. 젠장.
“왜 그러시는데요? 서예리를 아시는 거 같은데, 혹시 그녀에게 부탁할 거라도 있어요?”
일단 대충 짐작 가는 건 이 정도였다. 그녀와 친한 사이가 아니라니까 아쉬워하는 걸로 봐서는 뭔가 나를 통해서 부탁할게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네? 마,,맞아요..혹시.. 그분에게 부탁 좀 드릴 수 있으세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녀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번 나오기 시작하자 계속 해서 눈가에서 뚝뚝뚝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훌쩍거리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괘..괜찮아요?”
무슨 부탁인지 모르지만 정말로 간절한 거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울어버릴 정도의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뭐 서예리가 들어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말을 꺼내볼 수 있었다. 연락처가 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인데요? 전해줄 수는 있으니까, 사정을 들려주실래요?. 울기만 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그..그게...”
한마디 하고 눈물을 닦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가족이, 그분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져서,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데, 접근할 방법도 없고...포기하고 있었는데, 영준씨가 그분과 같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제발 자리를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영준씨는 그냥 그분과 같이 와주시기만 하면 되요. 나머지는 다 제가 무릎을 꿇던 뭘 하던 해서 물어 볼 테니까...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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